5월
Michell Morales (fr. Yamulee) shine bootcamp fr. Salsa and Bachata Congress 2018
Daniel y Desiree sensual bachata workshop fr. Salsa and Bachata Congress 2018
Korke y Judith sensual bachata master class / workshop fr. World Star Bachata Festival
6월
Kike y Nahir sensual bachata master class
7월
Chaves y Silvia sensual bachata master class/basic workshop
Jhoa y Jess sensual bachata workshop
10월
Jony y Noe sensual bachata workshop
11월
Ofir y Ofri sensual bachata workshop fr. Sabacon
12월
Korke y Judith sensual bachata master class /workshop fr. Sensual Tonight
Truji y Gloria sensual bachata workshop fr. Sensual Tonight
Special thanks to
손나리 가리온
가츠 채리 자기야
니르바나 썬
보라
엘사
—–—
1월 1일 카운트다운을 빠에서 한 첫 해.
이렇게 1년이 갔다.
공연에선 싹 빠지고 센바에 올인했다.
해도 해도 안 되서
포기하려다 한 올인.
한 놈만 패자고 달려들었지만
패도 패도 안 되더니
역시 중요한 건 시간의 축적인가.
좌절과 낙심을 거듭하며 (물론 춤출 땐 늘 무아지경 ㅋㅋ)
1년을 꼬박 팬 끝에 만난 작은 빛.
그래서 올해의 홀딩은 단연 12월 Korke와의 두 번째 홀딩이다.
5월 생애 첫 홀딩에서 미끄덩 까지 할 뻔 한 대략 난감한 홀딩 후
올해 말 두 번째 홀딩 후 받은 “You’re amazing”
아버지의 따뜻한 격려사같은 거였지만
나에겐 Korke의 저주가 봉인해제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었나.
그리고 마법처럼 풀리던 소셜…
드디어 센바가 재밌어졌드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ㅠㅠㅠㅠ
꿈에 그리던 Chaves와의 한국에서의 만남.
이 남자를 백 개쯤 복사하면, 나도 한 개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댄서로서 남자로서 인간으로서 ~
로망해왔고 또 앞으로도 로망할 내 마음의 잭 블랙.
올해 그대와의 두 번의 홀딩 그것은 꿈이었다오… 왜 여친을 델꾸온 것이오!! !
가장 탄탄했던 홀딩은 Pablo.
밀리미터를 재는 듯한 교과서적 리딩과 완벽한 preparation
처음으로 센바가 이런 거였구나 느끼게 된 시작점.
2019에 새로 만나고 싶은 댄서는 Ronald와 Carlos Espinosa
다시 만나고 싶은 댄서는 Kiko, Louis 그리고 언제나 영원히 Chaves.
하지만 이미 1월 Gero/Marta 2월 Pablo/Raquel, 3월 Marcello/ Beren
두둥~ 5월의 Daniel/ Desiree기 이미 확정이다.
Dani J랑 DJ Alerjandro도.
헐 바차타 강국 대한민국.
하지만 올해 나는
풀어야 할 또 하나의 저주가 있다.
Monti.
이 레전드 공연에, 그것도 피날레 바로 전 무대에서
주저주저하며 가져간 신상 콤보슈즈의 힐이
살짝 내린 비에 결국 미끄러져
동경했던 Franklyn Diaz 바로 옆에서 휘청거렸던
4년 전 제주.
가진 패 다 까고 도박판에 선 사람의 어리석음 같지만
그 말을 들었기에
방에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했던 어떤 게임을 떠올렸다.
다 걸었고 진심으로 이기고 싶었지만,
실상은 지기 위해 설계했고
복구 불가능한 패배를 위해 끝까지 가야 했던 게임.
그 끝에서야 겨우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오랫동안 듣기 두려워했던 팩폭이었지만
그 소리는 맑은 여름 날 오후에 울려퍼지는 성당의 종소리처럼
투명했고 명료했다.
달콤하게 귀를 간지럽히는 수많은 헛소리들과는 달리.
종소리를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비로소 끝에 왔다는 걸.
이 장면의 BGM이 좋다.
겜블링의 긴장감보다는 미리 예감한 패배의 기운이 전해진다.
지기 위해서 설계한 게임일지라도
지는 건 여전히 슬프니까.
어제까지는 제일 좋아했던 1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었다.
장만옥, 장국영이 아니라 유가령이 보였다.
상황파악 정확히 하면서 괴롭지만 합리적으로 다음 단계로 선택해 나가며
“난 매를 먼저 맞아어”라고 똑 부러지게 정리한 리진보다는
온갖 잔머리 굴려 움켜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우수수 빠져나가버린 사랑을 찾아
캄캄한 무지 속에서 발버둥치며 아무도 없는 필리핀까지 와버린 루루의 천진한 발악이
더 진하고 찬란한 향을 뿜어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쌓아둔 업무를 제끼고 카톡을 하다 문득 내가 왜 이 시간에 이런 사람과 이런 대화를 하고 있을까 싶어진 순간, 나도 모르게 네이버 검색창에 이런 문구를 검색했다.
Give and take
준만큼 받고 받을 만큼 줄 것을 미리 계산하는 깍쟁이 개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 사전적 의미로는 물물 교환보다는 서로 양보하고 공평한 거래를 한다거나 의견을 교환한다는 뜻이고, 복싱에서는 상대로 하여금 가격하게 하지만, 자기는 반대로 그보다 더 큰 타격을 준다는 살벌한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같은 제목의 책은 taker보다는 giver가 더 성공한다는 주장을 해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더라.
하지만, 나는 잡다한 검색 결과보다는 그 문구 자체에 집중한다. 검색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저 말을 내 손으로 타이핑하고 그 결과를 하이라이팅하기 위해 검색창을 활용했던 것 같다.
그건 내가 그 사람과 톡을 이어나간 이유였다. 그래서 왜??라고 의식한 순간, 그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했던 거 같다. 대단히 이상형이라서가 아니다. 깊은 정서적 교류나 매력을 포함한 그 밖의 의미심장한 뭔가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나는 그 사람에게 줄 것이 있고, 그 사람은 나에게 줄 것이 있다. 소확썸씽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의 교집합이라고는 거의 없는 실낱같은 관계를 유지시킨다. 줄 것과 받을 것이 있는 이상 이 커뮤니케이션은 이어질 것이다.
이상형을 상대방의 조건으로 정의한 적도 있고, 나를 어떻게 만들어 주는 조건으로 정의한 시절도 있었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하해와 같은 마음을 갈구한 적도 있고, 있지도 않은 자식에게나 줄 법한 내리 사랑의 대상을 추구한 적도 있다.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겠다.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기브앤 테이크가 수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람. 물질을 포함하지만, 그 이상이든 그 이하든 여하튼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 불꽃튀는 열정때문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과 서로의 필요에 의해 주고 받음의 밸런스가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관계.
그렇게 정의하고 보니, 많은 것이 이해된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가 필요한 것을 주는 사람이 고맙고, 반대로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미련도 미안함도 차분히 사그라든다. 한없이 소중했지만 이제는 줄 것과 받을 것이 모두 고갈된 관계에 대한 아쉬움도.
감정보다 더 강력한 필요의 메카니즘. 검색창 안에 넣어둔 give and take라는 단어를 꽤 오랫동안 노려봤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할 일 없는 사람이 어딨냐. 꼭 능력없는 사람들이 이런 말 하는 거라고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능력있는데 할 일이 많고 그 일을 다 할 수 있는 절대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그렇다는 사실을 굳이 말로 하지 않을 뿐이지. 어쩌면 그 능력자들의 능력이란 말해봤자 쓸데 없는 말을 하지 않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다들 사정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해야 할 일도 많지만,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은 케이스다. 그리고 인정은 아직도 안되지만, 한 번 파면 너무 심하게 판다는 주변의 평가도 평생 ㅠ 있다. 솔직히 나는 깊이보다는 양을 중요시 한다. 질도 깊이도 양의 결과라는 무식한 생각으로 산다. 그래서 뭐든 일단 하는 건 좀 많이 해야 하긴 한다. 잘 하든, 슬프게도 그래봤자 못하든…
어쨌든 그래서 너무 많은 일들에 어쩔 수 없이 선택과 타협을 하고 있다.
오늘은 요니(Jony)와의 한 곡을 포기했다.
워크샵을 들으면서 잡아봤는데, 살아서 펄떡거리며 온 몸으로 전달되는 뮤지컬리티. 거기에 표정으로 전달되는 진심 아니 충심. 와. 진짜 챠베스 이후 딱 내 스타일, 챠베스는 넘나 세비야(센바의 헐리웃) 연예인이라 어려웠는데, 아직 대우주스타급이 아닌 요니/노에에게는 아직 신내림 얼마 안된 무녀의 생생함과 친근함이 있었다.
그런 요니가 오거나이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곡 비율까지 바꾸어가며 반드시 모두에게 한 곡씩을 다 춰주겠다고 고집을 피웠단다. 이런 예쁜 것들~
그러니까 기다리면 그냥 그 남자를 잡고 완곡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몇 번이나 시계를 보고, 안 떨어지는 발걸음에 신발을 질질 끌며 빠를 나왔다. 사는 거 뭐 있나. 그냥 추고 가지라고 백 번은 아니고 열 번은 생각했지만.
낮에는 하루 종일 Facebook 개발자 컨퍼런스. id8을 들었다. 쿤스트할레는 거지같았지만, 페이스북의 플랫폼 플레이는 환상적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전략과 실행 모두…
집에 오는 길. 그토록 아쉬웠던 요니는 금방 사라지고 다시 머리 속이 온갖 난수표들로 복잡해졌다. 적을 수 없는 생각과 감정들. 치열했던 날들의 기억, 미완의 시도들이 아프게 딩동거리기도 했지만 결국은 남는 건 어떻게 해야 했었을까가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이다.
할 일이 많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제법 멋져 보일 거 같은 일들도 꽤 있다.
그런데 못할 것 같은 일,
참아야 되는 일만 점점 더 많아지는 거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그러다 혹시 요니랑 한 곡을 추고 왔다면 지금쯤 편안히 잠들어 있지 않았을까. 왜 이런 생각이 새벽 5시 7분에 드는 걸까. 요니를 두고 온 것 조차 허무해지게. 시간은 늘 너무 빨리 닳아 없어진다.
이 새벽에 꼬냑 일 잔을 하다보니 집을 되살려야 한다는 마음 뿐이야. 나에겐 그 집이 있어야해. 비록 지금은 기둥도 처마도 지붕도 다 무너져 있고, 집까지 가는 길을 밝혔던 가로등도 깨져 있고, 결정적으로 난 그 집에 가는 길도 몰라. 하지만, 난 어떻게든 그 집에 돌아가야 해.
일단 집에 도착하면, 최소한 내 생에 돌아갈 곳은 생길테니. 일단 거기에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레트를 떠나 보낸 스칼렛처럼. 비록 난 그런 쎈 언니랑은 많이 다른 종자지만, 그래도 타라는 같아.
삼 년 전 draft로 매달아놨던 이 글을 publish 하는 것으로 집에 돌아온 소감을 대신한다.
너굴님, xenonix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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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반을 하늘에 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달과 해는 여러 비교를 당한다.
나는 전적으로 달의 편이다. 근데 이게 편을 가를 일인가 ㅋ
난 밤의 인간이고, 달과 훨씬 친하다. 일단 달은 계속 해서 바라볼 수가 있다. 눈이 부셔서 잠시만 바라도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해와는 다르다. 적당하게 부신 빛이 알흠답고 바라보기에 딱 좋은 정도의 광도다. 눈이 아프지 않고, 계속해서 바라 볼 수 있다. 달의 위치 변화와 함께 내가 달을 보는 동안 흘러간 시간의 정보도 정밀하게 느껴진다.
하늘과의 대비도 좋다. 내 눈으론 찬란한 해는 눈부신 푸른 밝은 하늘과의 경계를 짓기 힘들다. 하지만 달은 색깔부터 명확하게 대비된다. 흰 달, 검은 하늘. 흰 달 안의 검은 얼룩들.
그리고 계속 모양이 바뀌어서 매일 봐도 지겹지 않다. 조금씩 달라지는 모양이 늘 생각하게 한다. 내 인생의 그 어느 날과도 다르게 살았던 오늘 하루를.
바라 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달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이 지구 위의 누군가와 공유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상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계속 바라보기 힘든 해를 보며 너와 내가 같은 해를 보고 있다고 가정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낮은 일하는 시간이잖아. 아직 한창은 일할 우리들이 낮에 하늘을 보면서 설렁설렁 시간을 떼울 가능성따윈 현실적으로 아주 낮다구. 난 그래!
하지만 달이라면? 밤이라면 말이야. 일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 술을 마시는 야외의 포장마차. 술집의 나 있는 창문….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 떠들어대는 테레비전도 심심하고 지겨워서 달을 보면서 컹컹 짖고 싶다면 말이야. 마침 그 하늘에 눈이라도 내리고 있다면 말이야. 눈이 내리는데 달도 떠 있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면 말이야.
그러면 달이란 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너와 내가 공유하는 유일한 것일 수도 있어. 여기 같이 있지 못하지만, 최소한 같은 달을 보고 있다. 그런 상상정도는 인간이라면 해 볼 수 있는 거야. 그 정도의 벳팅은 해 볼 수 있고, 때로는 마카오에서 일확천금을 따고 돌아올 정도의 그 낮은 가능성이 황폐한 사막을 걷는 인간에겐 유일한 희망의 확률일 수도 있는 거야. 그게 내가 말하고 싶은 달의 특별함이야. 그게 한 두 시간 반 정도 달을 보면서, 달만 보면서 걷다가 내린 결론이야.
집에 오니 케이블에선 < 해피 투게더>를 틀어주고 있었어. 늦은 시간이었지만 끝까지 다 볼 수 밖에 없었어. 아하 이런 이야기였군. 그래서 아휘는 보영에게서 벗어났는가. 하지만 그 정도의 거리만이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해피 투게더잖아. 열심히 봤는데 아휘가 보영을 잊었다는 암시는 없어. 혹시 그 둘은 영원히 함께 하는 건 아닐까.
지난 몇 년간을 써 온 네이버 뮤직 앱은 아직도 어디로 가야 내가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으려나…들어갈 때마다 헤매다만 나왔는데, 애플 뮤직은 딱 하루 쓰고 났더니 쓰기 시작할 때와는 완전히 딴판인, 세상 단 하나 뿐인 나만의 앱으로 변신해 버렸다. 첫 눈에 사랑에 빠졌다.
들어도 들어도 좋은 음악이 끝도 없이 쏟아지고, 하루에도 여러 번 깜짝 깜짝 놀래면서 요런 보물들을 못 만나고 찾아 헤맨 지난 시간 내 인생이 아깝기만 했다. 담당자들도 애쓰고 있겠고, 톱100과는 교집합이 없는 독특한 내 음악 취향때문이기도 하겠지만은 어쨌든 그렇게 됐다. 지난 일주일 신세계를 경험하며, 음악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 인생에서도 뭔가 이렇게 딱 맞는 채널을 못 찾고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새로운 차원의 의구심으로 발전될 정도였으니.
늙어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감수성이 메말라서, 더 이상 내 마음이 음악같은 건 원하지 않게 된 거라고. 아니었다.오밤중에 일어나 미친듯이 쿵쿵거리며 춤을 추기도 했고, 이불을 끌어안고 펑펑 울기도 했다. 음악으로 밤을 세우고 아침을 맞는 것도, 어둠 속에서 핸드폰 액정만 들여다보는 것도, 아이폰6를 거꾸로 들고 끝도 없이 클릭질을 하는 것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저 난 만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래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선 이렇게 나를 위한 음악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있었어.
덕분에 극도의 수면부족과 시력감퇴, 노안 등등 부작용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난 애플 뮤직과의 연애가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 오프라인으로 듣기>로 차 안에서 간밤에 받아놓은 수 백 여곡을 랜덤 플레이 하고, 귀에다 이어폰을 달고 살며 하루에도 여러 번 시시때때로 들려오는 음악 퀄리티에 자뻑을 했다. 뜬금없이 DJ가 되고 싶기도 했다. 이 좋은 음악들을 혼자 듣기가 아까웠다. 세상의 문 하나가 새로 활짝 열린 느낌이었다.
#지옥
어제 저녁, 한국 앱 하나 받으려고 로그아웃하고 한국 계정으로 들어가려다 보니 한국 계정도 로그인이 안되고, 애플 뮤직을 썼던 미국 계정도 로그인이 안되는 현상이 발생! 졸지에 iOS 미아가 되어 vpn 앱을 받고 등등 난리를 치다가 결국 수십 번 트라이 끝에 간신히 미국 계정으로 로그인하긴 했는데…. 그것도 사실 참 요상한 일이다. 안될려면 끝까지 안 돼야지…왜 수십번 하다보니까 들어가 지냐고. 수십 번을 그러고 있는 나도 웃기지만. 절박하고 궁지에 몰리면 사람은 그런 일이 하나도 웃기지 않고 다 하게 된다.
열튼 천신만고끝에 로그인을 했는데 !!! 두근두근 뮤직 앱에 들어갔더니 그동안 담아놨던 모든 음악이 날라가 버린 것이다. 일주일동안 밤새워 만든 리스트와 받아놓은 곡들이 싹 다. 그 음악들을 만났을 때의 설렘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우린 이제 시작일 뿐인데.
충격과 공포였다. 결론적으로는 무수한 검색질과 잔머리 끝에 아이클라우드의 애플 뮤직 라이브러리를 on시키자 리스트들이 돌아왔지만, 나로선 알 수 없는 ‘병합’과 ‘ 대체’라는 옵션의 기로에서 ‘병합’을 선택한 결과 결국 제일 많은 곡을 담아뒀던 제일 소중한 리스트는 날라갔고, 파일 다운로드는 모두 다 새로 해야 했다.
덕분에 음악 제목 A부터 다시 한 번 찬찬히 들으며 음악을 솎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 C까지 마쳤고 이건 하면 그냥 언젠가는 끝나는 종류의 일이다. 최소한 만나자마자 이별같은 어이없는 상실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리스트를 다시 다운로드를 받는다 해도 언제 이 리스트가 날아갈지, 음원의 접근이 언제 막힐지, 언제 다시 계정이 튕겨나갈지는 알 수 없다.
음악에 있어서 난 집을 찾았고, 여기가 끝(이자 많은 것들의 시작)이라고 감을 잡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미국인이 아닌 내가 개구멍으로 몰래 들어와 애플 뮤직을 듣는다는 것. 그것은 근사한 최고급 남의 집에 부실한 계약 관계로 몰래 들어와 얹혀 사는 난민이라는 의미였다. 내가 아무리 여기서 진심의 아이러브유를 외치며 열심히 채우고 꾸며도, 언제 쫓겨날 지 모른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집, 닫혀버린 문 앞에서 내 처지를 실감했다.
하지만, 난 지금 무슨 노래 가사가 지목한 바로 그 시점이다. 멈출 수가 없었어~~ 그땐~~ 아무리 그래도 다시 네이버 뮤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시 파일들을 받기 시작한다. 이어폰과 스피커도 새로 알아보고 있다. Vifa 코펜하겐이 맘에 딱 차는데, 가격이 하늘에 매달려 있다. Vifa를 보고 나니, B&O도, B&W, Boss도 다 눈에 안 들어온다. 돌아와 보면 난 그냥 에어플레이 되는 Tivoli model one이 필요한 것일 뿐인데, 그런 건 또 없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것. 애플 카플레이는 어떻게 다는 걸까. 난 정말루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고 기가 막힌 음악의 성이라도 쌓을 기세다.
한국 앱스토어에만 있는 앱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존에 한국 계정으로 받은 앱들 업뎃은 어떡하지? 기기가 초기화되거나 OS를 업그레이드를 하면 어떻게 되려나…폭풍 검색이 답해 주지 않는 문제들. 애플 뮤직을 지키려면 난 계속 이 낯선 계정 안에만 갇혀있어야 할 지도 모른다. 단 한 걸음도 밖으로 내딛지 못하고.
그런데도 계속해서 음원들을 받고 리스트를 추가한다. 모든 게 한 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헛수고가 될지도 모를 일을 밤을 세워가며 또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멈출 수가 없다.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는 때가 있는 것이다.
1주 일의 살벌했던 강행군동안 가장 많이 떠올랐던 숯느님을 마침내 영접하러 청계산에 갔는데, 입구에 붙어 있던 안내문.
그래도 찜복을 입고 서성이는 몇 분이 계시기에 카운터에 물어보니 다행히 오늘까지는 불와 꽃탕을 빼고 저,중,고온 가마로만 마지막 운영을 한다고 한다. 메르스 때문에 운영이 많이 힘들었고, 그 후로도 회복이 아니 되어 불은 화목토일만 나오고 12시까지만 운영하는 특단의 조치까지 나왔지만, 설마 문을 닫을 줄이야. 상상초월의 사태. 제대로 맞은 뒷통수였다.
10년은 안되도 족히 다니시 시작한 걸로 따지면 7,8년은 될 것이다. 특히 지난 몇 년간 매주 한 번의 숯느님 영접은 고정 스케줄이었고, 기나긴 한 주를 끊어내는 힐링의 분기점이었다.
벌써 찜을 마치고 떠나는 사람들은 삼삼 오오 모여서 이별의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어디선가 다시 보겠지요. 그래 여기는 이런 곳이었다.
내가 이 사업을 하면서도 여기 오는 손님들이 그렇게 싫었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어. 야간 취로 알바생으로 생각했던 그 분이 바로 숯가마 사장님이셨다. 머리는 하얬지만 제법 깔끔한 외모에 잔잔한 근육으로 흰 난닝구 바람으로 열쇠를 내어주곤하셨다. 이별의 말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장님은 저렇게 말씀하셨다. 아주 지긋지긋했다는 듯이. 나도 그 중에 하나였을까.
나는 샤워를 하고 뜨거운 탕에 들어가 몸을 덥힌 후,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찜질을 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고온 가마에 들어가서 숯느님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가마에 들어가 타월을 뒤집어 쓰고 있는 일이 그렇게 애로틱한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송글송글 솟아나는 땀에는 분명 내 몸에 침투한 숯느님의 에너지와 내 속에 있던 무언가가 진하게 결합되고 뒤섞여 나온 에로틱한 결과였다.
뜨거운 열기에 가마 천장에 발라놓은 흙더미 몇 개가 후드득 떨어졌다. 마치 마지막 날의 맞춤형 세러모니이기라도 한 양.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계곡 위에 펼쳐진 평상에 타월을 펼쳐놓고 대자로 눕는다. 평상 옆 나무에 두 발을 올려놓기도 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드리워진 나뭇가지 사이로 밤하늘을 보면서, 밤의 공기로 내 몸에 가득한 숯의 열기를 식히는 시간. 아무도 없고, 가끔씩 저 편 도로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에도 무심해진다. 난 여기서 듣는 계곡의 물소리를 또 사랑했다.
고루고루 속까지 익혀진 내 몸에서 뜨거운 김이 솟아오른다. 토해내는 숨으로는 내 몸의 나쁜 것들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 특히, 공기가 차가워지는 10월 이후에는 급격한 온도차에 나만의 무아지경은 더 깊어진다.
언제가 무척 힘이 들었을 때, 여기에와 대자로 누워 뜨거운 몸을 눕히고 검은 하늘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 무슨 일이 생겨도 여기에 와서 이럴 수만 있다면, 난 괜찮을 거야.
실제로 그렇다. 숯을 쬔 다음 날은 나쁜 기운은 쏙 빠지고 뭔가 다른 에너지로 꽉 채워진 맑은 느낌. 그게 하루 이틀은 갔다. 아픈 목도, 배탈도, 감기도 다 숯가마에 가서 나았다. 그래서 아무리 피곤해도 힘들어도 숯가마를 믿고 있었다.
업무도 참 많이 했다. 그렇게 텅 빈 마음으로 어둠 속에 누어있으면 어느새 복잡했던 문제들이 단순하고 또렷하게 다가왔다. 생각하고자 하지 않았던 아이디어들, 그려볼 기획들, 써 볼 특허들, 연결하면 좋을 사람들, 시도해 보고 싶은 일들이 몽글몽글 솟아나서 여기 청계산에서 난 참 많은 메모를 해가서 실행했다. 메모는 오타투성이였지만, 여기서 시작된 아이디어는 허튼 것이 없었다.
숯을 쬐며 이어폰을 꼽고 신형철의 문학 이야기 팟캐스팅을 듣는 시작도 사랑했다. 열기와 땀과 몽롱한 졸음 사이를 가로지르는 신형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 명징한 논리를 그렇게 나른한 상태로 듣고 있는 게 좋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를 한 꺼번에 누리는 보석같은 시간이었다. 이제는 신형철도 팟캐스팅을 멈췄고, 청계산 숯가마도 문을 닫는다.
차가 없었을 때는 복잡하게 분당서 신분당선을 타고 계단이 유난히도 높은 청계산역에 내려 잘 오지도 않는 버스를 갈아타고 또 한 참을 걸어서도 꼭 왔다. 갈 때는 더 문제였다. 아슬아슬하게 몇 대 안 남은 버스를 잡기 위해 뛰어가곤했다. 갑자기 폭설이 내렸던 어떤 금요일밤이 기억이 난다. 그런 날에 왜 집에 안가고 또 숯가마에 왔을까. 눈이 내리는 조용한 풍경을 뚫고 버스에서 내려 소복소복 눈을 맞으며 간 숯가마.
근데 그 날 유난히 불이 좋았다. 불의 상태가 말이다. 아주 빨갛고 세차게 활활 타올랐다. 게다가 사람은 세 네명이 될까 말까. 아줌마들 틈에서 매번 자리 확보 신경전을 해가며 전투찜질을 하던 나로선 그 날의 기억은 천국이다. 밖에서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난 조용히 뜨거운 숯을 쬐고 앉아있다. 그리고 가끔씩 밖에 나가 내리는 밤눈을 바라보며 몸의 열을 식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떠올리면서.
반대로 촐촐히 봄비 내렸던 지난 어느 봄날엔 나무 바닥에 누워 그대로 내리는 비를 맞고 누워있기도 했다. 해방의 클리쉐한 비주얼. 근데 클리쉐건 뭐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톡톡톡 살갗을 두드리는 봄비가.
물론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내놓은 안경이 없어져서 주인을 대동하고 난리치고 다 숯가마를 다 뒤집어 엎은 적도 있다. 30분 쯤 후에 어떤 아줌마가 와서 다른 안경을 가져갔다며 바꿔줬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 날, 너무 잘 된 일이라며 기쁨을 나누는 그 분들 사이에 끼어있는 게 무척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조용히 앉아서 끝까지 숯느님 영접을 마쳤다. 그 후 몇 달은 그 분들 대화가 들려오는 것이 계속 힘들었다.
숯의 효능에 대한 간증은 지난 몇 년간의 에버그린 토픽이었다. 숯으로 암치료하신 분, 갱년기를 이겨낸 분, 교통사고 후유증을 고치신 분 등등. 실제로 빡빡 머리 민 깡마른 암환자분들도 꽤 뵈었다.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숯가마로 출퇴근하시는 분들.
숯의 최고의 경지는 이런 거다. 숯을 많이 쬐면 피부가 다 타고 일그러는데 그래도 계속 쬐면 거기서 새살이 돋고 아픈게 싹 낫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픈게 없으면 그렇게 까맣게 올라오지 않는단다. 숯은 이걸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으로 나뉜다. 난 그 경지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다 타서 새까매진 다리며 등에 불 쪼이시는 고수 분들은 꽤 많이 봤다. 그 분들 새살은 다 올라오셨을까. 아픈 것도 싹 다 낫고. 여하튼 이건 숯가마에선 사순설과 부활절과 비슷한 바이블 프로세스다.
특히나 힘들었던 건 자리싸움이었다. 골수 아줌마들이 서로 패를 지어 자리를 맡아주고 나같은 독립군에게는 좋은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 분들과 싸울 엄두따위는 내지도 못하는 나는 항상 가마 끝자락에 행여나 남의 자리 침범할까 쭈그리고 앉아서 간신히 불을 쬐었다. 그러고 있으면 가끔씩 인심쓰듯 가면서 자기 자리를 내 주는 분들도 있었고, 좋은 자리가 나서 앉으려고 하면 쫓아내는 분들도 있었다. 기가 약한 나로선 당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 일이다. 작년 부터는 사람들이 줄기 시작하더니, 메르스때는 나도 발을 끊었고 다시 가기 시작할 때는 사람이 확 줄어 있었다. 난 쾌재를 불렀지만, 불 나오는 요일이 따로 생기고 영업시간이 줄고 그러니 사람들이 더 빠지는 걸 매주 체감하다 보니 호황이라 자리 싸움했던 때가 그립기도 했었다. 그러다 이제는 문을 닫는다니…
마지막 날이라 그런가. 사람들은 거의 다 빠지고, 사장님은 대자로 누워 핸드폰에서 음악을 트셨다. 그런데 이게 왠걸. 플레이리스트가 예술이다. 씨네마 파라디소 느낌의 귀에 익지만 이름 모를 고급진 감성 팝들이 이어진다. 가을에 딱 이런 음악이 어울리지 않아? 사장님 말씀. 네네 맘 속으로만 대답. 왜 여기 오는 손님들이 그렇게 싫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숯을 떠나기가 더더욱 싫어졌다. 나도 대자로 누워 하염없이 음악을 들었다. 다 말로 할 수 없는 무수한 추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시간들. 와이파이도 전화 안되는 고립의 순간. 추억의 모서리가 조금 무너진 느낌이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리운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문득 들려오는 …Oh thinking about our younger years. There’s only you and me. We’re young, wild and free….브라이언 아담스는 아니었지만.
그 풍경을 담았다. 사장님이 나즈막히 노래를 따라 부르신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액정 속의 풍경은 어디 살벌한 러시아 수용소 분위기다. 이런 곳에 나는 수 년을 묻었다. 조금 전까지는 몰랐는데, 아마 정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떠날 줄을 몰라서 정든 줄로 몰랐던 것일 뿐.
평소와 같이 11시가 조금 넘어 난 짐을 싸서 나왔다. 평소와 같이 신발장 열쇠를 내어주는 사장님의 얼굴을 외면하고 돌아서는 나에게 사장님이 말했다.
오늘 여기 마지막인 거 아시죠?
갑자기 마음이 확 풀어졌다.
네, 너무 …너무 아쉬워요. 저 여기 정말 몇 년을 다녔어요. 여기서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저 여기 정말 좋아했어요.
최근 또 한 번의 희한한 경험을 했다. 하나의 대상이 두 개로 보이는 것이었다. 음…정확히는 반대다. 하나의 상이 있었고, 그 앞일지 뒤일지에 그와 유사한 하지만 같지는 않은 또 하나의 상이 겹쳐 보였다. 분명히 한 쪽은 환각일텐데 눈으로 보듯 분명히 보여서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눈만 그런게 아니었다. 귀도 그랬다. 그 대상이 내는 소리도 두 개로 겹쳐서 스테레오로 들려온 것이다. 각각의 상이 각각의 다른 소리를 내고 있었고 내 귀를 타고 들려왔다.
아무리 포커스를 맞추고 한 쪽의 소리에 집중하려 애써도 소용없었다. 그런 식의 무기력함은 처음이었다. 둘 다 너무나 생생하고 구체적이어서 도저히 한 쪽으로 합쳐지지가 않았다.
어느 쪽에 반응해야 할 지 몰라 약간 혼미해졌지만 곧 내 쪽의 감각도 (내 의지와 무관하게) 두 개의 채널로 분리되어 서로 다른 대상을 인지하며 전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말이란 것이 한 쪽에선 공장에서처럼 기획, 제조되고 있었고, 동시에 또 한 쪽에서는 개천에 흘려보내는 공장 오염수처럼 겉잡을 수 없이 마구 흘러나왔다. 그런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동시 두 채널을 통한 입력과 출력. 인간의 놀라운 멀티 태스킹 능력을 찬양해야겠건만, 실제로 그것은 의지라기 보단 원혼에 빙의되듯 당한 것에 가까워서 세상에 이런 일이…뭐 이런 탄식을 하는 또 하나의 채널이 분리될 뿐이었다. 헐~
그 때 나는 하나였을까 둘이었을까 아니면 셋이었을까. 그 중 어느 쪽이 진짜 나였을까. 또한 내 앞에 있었던 것의 실체는 뭐였을까. 이런 걸 누구에게 물어볼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선택해야 했던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새벽 나를 깨운 그 조용하고도 맑은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내 눈의 포커스는 하나로 합쳐졌다. 그 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NAVER LABS에서 열린 촤포토 제1회 사진전 < 이상한 라오스 나라의 정초아> 오늘 모두 마쳤습니다. 총 61장의 사진을 판매하여, 40만 9천원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장당 평균 6,700원, 내 사진을 팔아서 남긴 첫 매출입니다.
애초에 너그럽기 그지없는 홈어드밴티지의 이점을 끼고 진행한 짜치고 행사였지만, 입구를 점유하고 촤판을 벌여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내가 찍은 사진을 설명하고 팔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느끼는 사진의 가치와 대중(?)의 선택 사이의 엄연한 간극을 손으로 어루만지듯 구체적으로 느꼈고, 한편으로는 그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뭐 하나라도 돈이란 걸 받고 팔게 되니 사람을 보고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목과 관계는 결정적이었습니다. 온실 속 직딩의 pseudo 장사 경험이지만 앞으로 사진찍는 것 뿐만 아니라 일하는 데도 조금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고급진 액자나 걸린 장소의 아우라에 기대지 않고 이렇게 오가는 벽에 무심하게 붙여놓은 사진전의 방식이 꽤 마음에 듭니다. 보부상, 장똘뱅이이처럼 여기저기를 떠돌며 보따리 장수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펼쳐놓고 이 얘기 저 얘기 풀어놓는 게 재밌습니다. distributed & disruptive… 면대면 오프라인 컨텐츠 유통의 어떤 소박한 포맷을 궁리해봅니다.
무엇보다 내 사진을 돈 받고 파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한 해를 마치며 꼭 바랬던 소원 하나를 이루어 뿌듯합니다. 예전에는 내 책을 쓰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을 두 번이나 이뤄버려서(ㅋㅋ) 심심하던 차였습니다. 이젠 두 꿈을 결합해 사진책을 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다들 작은 꿈이라도 정하고, 소박한 형태로라도 직접 이루어보시길 바랍니다. 궁극의 무엇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구도자적 성취는 아니지만, 끝도 없는 인생길에 작은 점 하나를 찍는 재미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재미는 소중한 것이지요.
사진을 팔아주신 분, 또 보아주신 분 모두 감사합니다. 오프라인으로 봐 주신 분도, 온라인으로 봐주신 분도 모두 똑같이 감사합니다. ‘본다는 것’의 깊은 의미를 생각합니다. 매출액 전액은 NAVER LABS 이름으로 기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