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true love is truely there, my dear?
Yes, if your warm heart is.
빛은,
둘이 함께 하는 그 짧은 순간에만
어딘가 고장으로 구멍난 것처럼 잠깐 새어들어 올 뿐.
그 따스함으로 낙인찍어
이미 뚜껑 덮힌 엉뚱한 허공을 향해 맹렬하게 가지를 뻗게 하는 잔인한 기억이다.
하여 난,
어둠 속에서 하얀 두 개의 손이 포개지는 아름다운 결합의 순간조차
금방 떨어뜨릴 도자기를 들고 서 있는 것처럼 불안했고
아들뻘 되는 젊은이 팔을 부여잡고 장보러 나온 할머니가
괴상한 목소리로 꽥꽥거릴 때, 이건 또 무슨 음모인가 의심했고
스크린에 산소가 조금씩 희박해져 가는 것을 느끼며
자동화된 자기 방어 기제를 가동시키듯
불안스레 결말을 예측하고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일하시는 신’의 뜻은
근시안에 시달리는 인간의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은 저 너머에서부터 온다.
사랑이 그러하듯. 대가의 예술적 비전이 그러하듯.
Sadly some times even true love can be broken, oh dear.
Yet, it does not mean the world is ending.
그걸 보여준 테레사 챈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수준이 높은 건지, 지루한 건지 알쏭달쏭한
저 무수한 말줄임표 영화들 중 하나에 불과했을 지도 모르겠다.
챈 할머니께서 서툰 타자로 느릿느릿 찍어가는 한 자 한 자가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더니 어느새 송이송이 눈부시게 피어나, 마음은 온통 꽃밭이다.
그 만발한 꽃밭 한가운 데에서 나는 이 밤이 끝나지 않을 것 처럼 줄줄줄 눈물을 흘리고 있다.
Be with me, my beloved love,
that my smile may not fade
열 여덟개를 수 없이 외치며 도착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택시까지 잡아타고 뛰고 또 뛰었는데도 8시를 맞출 수가 없어
결국 첫 곡을 화면으로 봐야 했다.
내 좁다란 마음은 보글보글 거리는데, 내 좁은 마음을 기다리는 음악은 너무 컸다.
한 거대한 영혼이 음악의 몸을 빌어 무대 위에 현신하다.
쿠바의 뜨거운 태양은 가차없는 생의 고문조차 탈색시켜 버리는 것일까?
오래 침묵한 영혼의 밑바닥에 부서진 언어들을
할아버지는 일체의 흔들림없이 그 수많은 음표들로 정확한 본래 자리에 건져내신다.
10분 남짓한 저 연주에는 대체 몇 개의 음표가 들어 있는 걸까?
한 번, 두 번도 부족해 건반 쓸기를 세 번씩 하시며
너무 많은 음표 따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원하는 것이 저 너머에 있다면 정지선을 지나쳐 버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
과잉, 과열, 과시…하지만 발데스 할아버지는 그 모든 것이 괜찮다고 말씀하신다.
만족을 모르는 넘치는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하나의 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어떻게 당당하게 말해야 하는지.
과열된 영혼이 어떻게 아름다움으로 정제되는지.
때려부술 듯 건반을 망치질해도, 여기에는 파괴의 느낌이라고는 전혀 없다.
혼란을 종식시키는 질서의 창조. 그것이 열정의 본래 의미라는 것을 들려주신다.
늘 예술의 전당 무대가 재즈 공연에는 너무 휑하고 멀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만은 빈틈 없이 꽉 채워진 느낌.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고…게다가 흥겨워 뛰쳐나와 막춤까지 춰주시는 할아버지.
본인 흥에 겨워 무대를 즐기는 것 자체가 최고의 팬 서비스라는 것을 아시는게다.
고요함과 들끓는 정열과, 클래식과 재즈와 기쁨과 슬픔과 원시와 근대와 …
모든 것을 하나로 녹여내는 거대한 강물같은 음악.
할아버지는 크셨다.
큰음악의 품에 안겨, 그 경이로움에 마음껏 취했던
시작부터 끝까지 황홀했던 체험.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끝나고 싸인회
이 쿼르텟은 피아노, 베이스, 그리고 드럼 라인이 둘이다. 드럼과 콩가.
특히 콩가…두드려 댈 때 흰 자위 희번덕 드러나고 거의 신들린 수준.
전체 사운드가 원시성과 역동성으로 휘청~
큰 손. 남들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할아버지의 amazing 공연~ 이렇게라도 감상하시라.
(※ 3분 10초~3분 55초, 5분 40초~ 6분 5초 !! 넘어간다…
이게 눈 앞에서 펼쳐졌다니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순간.)
할아버지의 아버지인 베보 발데스의 공연 – 디지 길레스피, 냇킹콜 등과 작업한 쿠바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이 또한 눈물나도록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특히, 2005년 FeedFlare 서비스 런칭 전 포스팅된 Feed for Thoughts는
당시 내가 봤던 RSS와 피드에 대한 내용 중 가장 선진적인 관점이었고,
단순한 학술적 전망이 아니라 실제 서비스를 구현하고 운영하면서 도출된 현장의 비전이라는 점에서 탁월했다.
게다가 곧 이어 No Feed is an Island (어떤 피드도 섬이 아니다) 라는 타이틀 아래
이런 관점을 실제 서비스로 구현한 피드 플레어(FeedFlare)라는 걸출한 서비스를 내놓았으니.
어찌 이런 서비스에 버닝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구글이 피드버너를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솔솔 쏟아져 나온 것도 바로 이 때쯤이다.
미디어계의 야후가 블로그 검색을 위해 테크노라티를 인수할 거고
(실제로 테크노라티는 초기 설계부터 상당히 media-oriented였고, – 테크노라티 UX담당 데렉 포와젝 블로그 참고
또 그 후로도 계속 그런 방향으로 강점을 보였고 진화되어 왔다.)
기술계의 구글이 피드버너를 인수할 것이다.
게다가 RSS를 매니지하는 피드버너는 XML 기반의 구글 베이스와 좋은 궁합이라는 말들이 떠돌았었다.
하지만 결국 그 수많은 인수 합병 중에도 여전히 피드버너와 테크노라티는 인디로 남아있다.
어쨌든 이런 여러 영향에 삘 받아
내가 쓴 초안 원고의 RSS 챕터는 1차분 99페이지, 그것도 A4 용지 기준이라는 거. RSS로만 책 한 권 쓸까 싶었다.
천신만고의 세월을 거쳐 책 페이지 기준 45 페이지 분량으로 정리가 되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수 페이지에 달했던 피드버너는 박스 하나로 싹둑~)
분량도 분량이지만
한국에서의 표준 포맷을 통한 데이터 유통이란 아직 요원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장벽들이 있어
내가 흥분한 만큼을 한국 시장에서 객관적으로 설득할 자신과 의의를 찾지 못한 이유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구독’이라는 부분으로 타협점을 찾았는지 모른다. 핵심은 ‘포맷’이건만…
하지만, 자기 분야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비전을 가진 뭔가를 만나는 것은 즐거운 경험.
이들의 행보는 미투 플레이어들의 기능이나 UI 업그레이드 정도와는 그 수준이 다른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피드버너 역시 나에게 그런 큰 즐거움을 주었던 서비스로 기억된다.
비를 좋아한다. 단, 회사 안 가도 될 때만.
비가 오면 나는 내 방을 온종일 굴러다닌다. 그 똑같은 짓을 여기까지 와서도 또 한다.
3만명 넘게 참가한다는 도쿄 마라톤 구경이고 뭐고
아이 좋아라~ 하면서 따땃한 코다치 안에 착 달라 붙는다.
요시다 슈이치의 7월 24일 거리를 읽으며.
아 미적지근…진짜 내 취향 아니야.
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야금야금 요시다 슈이치를 읽고 있고
그렇게 계속해서 일본에 오고 있다.
근데 좋아진 것 같다. 여기.
설이라고 민박집에서 만들어주신 스페샬 ‘떡국’
편의점에서 후다닥 떡국이랑 완자사다 국물도 제대로 안 내고 만드신 것 같은데
맛이 일품이다.
“그런데, 이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 건가요?
한 살을 더 먹지 않으려면 떡국을 먹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나름 심각한 질문에…주인장님은 황당해 하시고..
감사합니다!
유진이는 맛있는 거 먹여주신 고마움은 절대 잊지 않아요. 특히나 손수 제작일 경우 더더욱.
유진이가 3일간 묵었던 와라와라 민박.
너무 훌륭합니다. 게다가 이상하게 내가 들어간 날,
숙박이 모두 캔슬되서 한 층을 죄다 독채로 썼다는 전설이,,,
싼 데다, 인터넷, 전화 다 무료로 편하게 쓸 수 있고
주인장님께서 친절하게 여행에 대한 조언도 해 주시고
뜨끈뜨근한 물이 콸콸 나오구, 화장실에는 비대도 있고…한 마디로 강추!
지하철이 바로 옆으로 지나가 좀 시끄럽지만, 피곤하니 거의 들리지 않는데다
심지어 낭만적으로 느껴지기 까지 했다.
다가와 멀어지고 다시 돌아온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니까. 그게 바로 여행이니까.
좋은 기억을 가진 분들이 흔적을 많이 남겨놓았네요.
저는 혼자 빨빨 거리며 돌아다니는 통에 같이 하지는 못했지만,
밤마다 여행자들끼리 모여 술 한 잔 마시며 파티 여는 분위기.
동경에 좋은 숙소 많겠지만,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민박집은 많지 않겠죠? 감사히 잘 묵었습니다.
(떡국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라…헤헤)
# 록본기 나잇
비가 그치자…록본기로 출동!
거리와 바를 휘젓고 다니며 녹본기를 느껴본다.
출출할 때 간식은 1946년 부터 빵가게를 했다는 Almond라는 가게의 대표 메뉴 슈크림!
대표인지는 어떻게 아냐구?
스미마셍에 이어 유진이가 가장 많이 쓰는 일본어 “오스스메”
일본에서 정말 유용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 한 마디면, 진짜 많은 것들이 나이스하게 해결된다.
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때문일까? 불륜의 느낌이 물씬.
< 아담이 눈뜰 때>에서 장정일의 63빌딩 묘사가 떠올르려고 한다…뭉게뭉게, 옛끼!
다들 Crazy 모드셨던 클럽.
동경 남자들 …어울려 놀 때도 확실히 한국애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
이런 차이들을 짚어가는 것이 참 재밌다.
생활 속에서 사람과 삶을 느끼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동경 디즈니랜드나, 지브리 스튜디오나 뭐 이런 것들 보다는.
# 밤의 시부야 – Life is beautiful
동경의 밤을 느끼려면 시부야로 가야한다.
버라이어티 그 자체인 낮의 시부야도 좋지만,
고즈넉한 밤의 시부야는 가슴에 하얀 보름달 같은 것이 둥실~ 떠오르게 한다.
시부야 밤은 죄다 공사중!
도로공사, 건물 공사, 간판 공사, 디스플레이 교체…온갖 공사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퇴폐나 쾌락의 렌즈를 들이대기에는 너무도 건설적인 시부야 밤.
경찰들도 요소요소 잘 배치되어 있어
위험하다는 느낌은 별로?! (이럴 때만 겁이 없어지는 이상한 유진이)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 곳곳에 24시
혹은 지하철 첫 차가 다니는 5시까지 영업하는 업소들이 많다.
심지어 옷가게까지도…야간 쇼핑의 즐거움도 살짜쿵~
하지만 이 동네의 밤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유령처럼 이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
그리고 여기서도 그 세력을 드러낸 커플부대원들.
모두 다 핸드폰을 생명줄처럼 붙잡고 잇다.
커다란 건물에 혼자 남은 아이도.
24시간 옷가게의 점원 오빠도.
어디론가 닿고 싶은 마음들이 캄캄한 밤을 전파로 떠돈다.
문 닫은 파르코
비온 뒤, 누군가 내팽개치고간 우산도 있고
물기가 다 빠지지 않아 가로등에 비쳐 반들거리는 낮은 계단들도 있고
사람이 다가가면 저절로 불이 켜지는 친절한 가게 조명들도 있다.
Closed 표지판 뒤로 쓸쓸히 조명받는 가게 안 디스플레이
휘황하게 불 밝힌 스타벅스
시부야의 작은 골목들을 한 걸음 한 걸음 샤방샤방 짚어본다.
밤은 깊어만 간다.
난 야밤에 엄한데 싸돌아다니는 게 왜 이리 좋을까
서울에서도 방콕에서도 도쿄에서도 하코네에서도….
장소만 바뀌었을 뿐, 늘 나는 똑같은 걸 되풀이 하고 있다.
언제나 방에 누워서 멀뚱멀뚱 있다가 이건 아니지, 하며 뛰쳐나가
택시를 잡아 타고 미지의 그곳을 향해 달려 가는 순간이 있다.
정녕 집시의 후손이더냐~~ Heck!
걸었으니 배고프고, 배고프면 먹어야지.
언뜻 보기에도 괜찮은, 새벽 3시 반에도 사람들 버글버글한 라멘집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계란이 대인기라고 하는데,
과연~ 깨보면 반숙이라는 것이 반전 포인트! (일본말로는 써 있나? 난 까막눈이므로)
국물에 담궈진 종이처럼 얇게 저민 돼지고기는 샤브샤브급이다.
짠 라멘 먹고 났더니 이젠 술 한잔 땡겨
가까운 칵테일 바로 직행!
우~ 온갖 종류의 술들을 보라! 다시 한 번 일본인의 카테고리와 수집 정신!
얼핏 세 보니 그 작은 바에 술만 한 200종이 있더라.
듣도보도 못한 술이 즐비하며…잭 다니엘같은 유명한 술이라도 버전별,년도별로 따로 갖추고 있으니.
인상적이었던 바텐 언니와 오빠.
(어쩌다 보니 가로로 찍었다 ..돌리려면?? –;;)
참으로 이해는 안 가지만….언니는 밤새도록 얼음을 깬다. 뭔가 칵테일에 필요한 것이겠으나
1시간 동안 쉼없이 얼음을 깬다. 이건 거의 얼음조각 작품 제작의 수준이다.
투덜거리지도 않고 그냥 열심히 깬다.끝도 없이 깬다.
무슨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 같다.
기계가 해 줘야 할 일 같은데,,, 설마 이걸 매일 밤마다?
바텐 오빠는 제조가 예술이다.
스무 살이나 됐을까 싶은 뽀송뽀송한 외관인데, (나이 물어보니 시크릿이랜다..짜식!)
칵테일 제조만 들어가면 거의 작두타는 무당의 수준으로 몰입해서 격하게 흔들어 대는 탓에
앞에선 나마저 숙연해질 정도다.
중요한 건 손님들이 칵테일 시킬 때마다 매 번 그런다는 거.
이런게 장인정신인가?
장인정신이란 매일 매일 똑같은 그 지겨운 걸 지루해 하지도 않고
끝도 없이 반복할 수 있는 능력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하지만 그 결과로서의 맛은? 황홀하다.
걍 시간 떼우기로 들어갔다가 1시간만에 칵테일만 세 잔 마시고 나왔다는.
마지막에는 “걍 오빠가 만들어 주고 싶은 거 해주세요~” 그랬더만 (=>번역 “칵테일 오스스메~”)
잠시 고민하다 이것저것 섞더니 턱하고 한 잔을 내놓으며 제목을 읊는다.
“Life is Beautiful”
그래,,,이거였다.
이번 동경 여행이 내게 남긴 마지막 말.
입 안에서는 신 맛과 달콤함이 복잡 미묘하게 뒤섞인 톡 쏘는 쾌감이 쓸고 지나간다.
# 시부야 야간 청춘 학교 – 하교하는 아이들
5시가 되자 어디서 숨어 있다 나왔는지
새벽의 어둠 속에서 아이들이 다시 거리로 뛰쳐나와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
한 곳을 향해 줄지어 걸어가기 시작한다.
밤을 노닐다 첫 차를 타고 집으로 하교하려는 시부야 야간학교 학생들.
시부야 역이 빠글빠글!
점심시간 을지로의 넥타이 부대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것 이후로
가장 인상적인 사람 풍경~
다들 조금은 피곤한 모양~ 그래도 시부야 간지는 살아있다!
야간학교 하교길에서 기념 한 컷~
다른 역에서는 거의 사람들이 타지 않다가
신주쿠에서 몇몇 아이들이 내리고 또 타는데
역시나 신주쿠에서 탄 애들은 스타일이 좀 떨어지고,
이상하게도 담요나 배낭 등 …뭔가 정처없는 북대기들을 하나씩 들쳐메고 있었다.
이 애들의 하루는 또 어찌 흘러갈까?
또 1년은, 5년은, 10년은…
시부야 청춘 학교는 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삶을 열어줄까?
그와 무관하게 뱅기시간이 빠듯한 유진이는 급짐을 싸서 공항으로 출발~
ANA를 타고 갔다 ANA를 타고 왔다.
ANA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단어인가.
분홍 앞치마를 두른 그 발그레한 볼의 스튜어디스 언니들은 얼마나 예뻤던가.
그 영롱한 빛은 사라졌어도…난 아직 아무 대책도 계획도 없이 혼자서
한국을 떠나 방콕이란 낯선 도시로 향했던 그 첫 순간의 떨림을 잊지 못한다.
그 때, 그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꿈처럼 펼쳐졌던 그 처음이 너무 깊어서
무슨 일이 펼쳐질 지 모른다는 그 대책없는 설레임에 중독되어
난 아직도 여행이라면 계획을 할 줄 모른다.
버릇 나빠졌어, 인정. 하지만 내 탓이 아니다.
항상 내가 바랬던 것 보다 훨씬 더 감동적인 것을 주어 벅차게 했던 저 위의 탓이다!!
(떠넘기기~^^V)
이번에도 마찬가지.
내가 바랬던 모든 것들과 …
꿈꾸었으되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까지도 모두 채워진 여행.
이젠 내가 바텐더가 되어
깊고 오묘한 맛의 칵테일 한 잔 멋지게 믹스해서 세상에 대접하고프다.
그래도…당신의 혀는 아직 이 맛을 느낄 수 있지 않냐고.
밴드들에게 10분 전 알리미 역할을 하는 스태프 유세키 코바야시군도
클라리넷 연주자다. 전공은 정치학.
소울푸드 카페 연주를 보며 정말 잘하는 거라고 엑셀런트를 반복하며 몇 번씩 감탄을 한다.
특히나 색소폰 부시는 유타카 유미수키씨의 박력있는 연주!
캔사스 시티 밴드의 타쿠 아저씨와 다른 연주자들도 와서 한참을 공연을 보고 가더라.
접기 싫은 이 시간을 중간에서 자르고
멀리서 바라 보기만 했던 레인보우 브릿지를 건너 요코하마로 날라간다.
일본 여행 두 번째 하이라이트는 요코하마 모토하치에서 펼쳐진
때늦은 St. Valentine day’s Party.
요코하마 인터내셔널 하이스쿨 동기 동창생들이 주축이 되어
수 십년 째 그야말로 ‘소셜 라이프’를 함께 해 오고 계시다.
나는 2004년 코시고에 The Fish and Jazz Festival에서 만나 워커씨네 집에서 함께 한 파티가 인연이 되어
이번에도 감사히 초대를 받았다.
덕분에 머나먼 이역 만리 타국땅에서 팔자에 없는(T_T) 초콜렛 선물도 받고.
맛있는 프렌치 뷔페도 잔뜩~ 넥스트도어(Nextdoor)라는 이름의 식당을 통째로 빌렸는데
요코하마의 유럽이라는 트렌디 스트릿 모토하치에서도 손꼽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이라고 한다.
역시 동창생 분이 하셔서 시세보다 값싸게 접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루 말 할 수 없이 맛있었던 디저트.
성분은? 생크림, 아이스크림, 직접 구운 바삭 쿠키 그리고 마약, 최음제, 뽕 등등이 아닐까.
(얼마나 맛있게 먹었으면, 나 먹는 걸 물끄러미 보시더니 한 접시 더 가져다 주셨다…^^;;)
오늘 발렌타인 파티의 드레스 코드는 ‘레드’ !
나이드신 중년의 아저씨들도 모두
빨간 장미를 꽂거나 빨간 하트 무늬가 잔잔히 박힌 와이셔츠등으로
딱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한껏 멋스럽게 차리고 오셔서 격의없이 재미나게 놀았다.
참 멋있었다! 소셜 라이프란 이런 것이다…싶을 만큼.
다행히 나는 새빨간 바지를 입고 갔으므로 드레스 코드에 상당 부합했다고나 할까?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사는 재미를 늘려가는 것도
나이들면서 꼭 갖추어야 할 인프라 중의 하나같다.
뭐하면서 어떻게 밥벌어먹고 살까 만큼…
앞으로 뭐하고 놀면서 재미나게 살까?를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유진이는 정신 못 차리고 헤롱거리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늦도록 먹고 마시고 논다.
내가 봐도 이런 거 너무 잘하는 나!
달콤한 와인과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구 뒤섞어 마시며.
좋다, 좋다, 좋다, …그러면서.
=====
도쿄로 돌아와 동네 선술집에서 전골에 사케 한 잔을 더 걸쳤는데
카메라를 안 들고 가 사진은 없지만~
일본 사케는 또 다른 천국이다.
사케 먹구 것두 부족해 유통기한 지난(?) 꼬냑까지 찾아 먹구 한참 쑈쑈쑈를 하다가
눈 떠보니 숙소에서 쟈켓이랑 양말이랑 머리띠랑 그대로 착용한 채 얌전히 이불에 돌돌 말려있었다는.
술기운에 눈은 제대로 안 떠지지만
귓가엔 쿵쿵…숙소 옆으로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창문에 툭툭 부딪치는 빗소리.
어둑어둑한 방 안-
두 번째 일본 12.2도 …세 번째 24.5도
내 마음의 온도처럼 그렇게 들쭉날쭉이다. 조금 더 따스해지고 싶지만, 봄은 아직.
과학자들이 시험관을 들여다보듯 난 그저 온도계만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Day 1 – 2007. 2. 16 Fri
# 신주쿠 – 좋은 예감은 밥에서 시작한다!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맛있는 것부터 먹어보자~
분위기? 맛? 물론 난 맛을 선택해. 고르기만 해도 된다는 것은 얼마나 편한 것인지.
신주쿠의 중심을 가로질러 수에히로로 향한다.
수에히로 – 스끼야끼, 샤부샤부, 비프 스테이크
이름에 아무 뜻은 없다고 했다.
다만 펼쳐진 신주쿠의 현란한 야경을 내려다 보며,
옆 건물에 성냥갑처럼 층층이 먹고 마시고 떠드는 금요일밤 동경의 인간들을 넘겨다 보며
그저 떠나왔음을 실감했을 뿐.
소고기, 맛있었다! 말랑말랑 고소하니 떡도 예술이고.
맥주 한 잔 곁들이니 금상첨화. 일본 맥주 정말 맛나자나~
스끼야끼인 관계로 끓인 재료들을 날계란 훌훌 풀어 말아먹는데,
뭐든지 조금씩 과잉인 나는 계란 한 알로 부족해 한 알을 더 시켜 먹었다.
다행히 계란값은 더 안 받는듯. >_< 기분좋게 배두드리며 케이크로 직행~
유진이가 늠흐늠흐 따랑하는 동경의 빵과 케이크.
다이칸야마의 끼르훼봉인지 먼지 그런 유명한 데 가보려 했으나, 꼭 그럴 필요없다.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왠만하면 다 맛있으니까~
신주쿠 꼼므싸 스토어 5층의 케이크 전문 ‘꼼므싸 카페’
금요일 밤이라고는 하지만, 문 닫는 11시까지 사람들이 버글버글했다.
금요일 밤, 앞으로의 3일..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눈 앞에 펼쳐진 케이크들의 유혹 앞에서 실존의 고뇌에 가까운 선택의 압박!
이거 24개 다 싸가도 아쉬울 판에, 딱 두 개만 고르기 너무 힘들었다.
최종 선택의 포인트는 치즈와 딸기.
그런데 악-소리 나게 만들었던 다크호스는 차, 일명 거봉티.
차 안에 큼직한 거봉 한 알이 퐁당 빠져있는 차인데,
그 진한 포도향이라니…차에 취해버릴 듯.
신의 물방울 흉내내기 모드로 표현해 본다면
“아앗, 여기는 포도밭! 아니..이럴 수가. 이건 믿어지지 않아.
마치 밤을 이겨낸 영롱한 새벽 이슬의 정기를 흠뻑 머금은 거봉알들이 내 입속에서 굴러다는 것 같아.”
근데 케이크 먹는 동안 차가 식지 말라고 빨간 모자(?!) 덮어놓는 센스에서 좀 깬다.
뭐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만 그래도 이 짜침이라니.
떠나가라 노래도 불렀다. 내 마음의 옛날 노래들.
기분이 좋았다.
그대로라면 그 밤, 좁다란 동경 골목골목들을 다 내 노래로 채울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아, 나는 떠나온 것이다. 휴우… 2년.
Day 2 – 2007. 2. 17 Saturday
# 긴자, 신주쿠 – 좋은 것은 좋은 마음으로 즐긴다.
눈을 뜨자마자 또 맛있을 것을 찾아 떠난다. 길떠나는 정장금…
긴자의 규에베(?) 동경에서 top 5에 드는 스시집이란다.
내가 손으로 그린 개발새발 그려온 지도로 이 집을 찾을 턱이 없다.
대책없이 역에 내려 길을 물었더니 한 친절한 일본 아저씨가 핸드폰을 척 꺼내더니
지도 검색으로 위치를 찾아주신다.
폰맵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네비게이션 수준의 지도. 음..조아.
열 피스에 5775엔, 여태까지 내가 먹었던 스시는 모두 불량식품! 꽝꽝
사르륵 눈이 감기면서…
주방장님들이 중앙 카운터에서 직접 스시를 떠 주시는데,
거의 토크쇼 수준으로 손님들과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 받으며, 스시를 뜬다.
마치 그 또한 서비스의 하나라는 듯이.
역시나 니뽕스러운 꽃미남 오빠들은 아무 말 없이 재료 나르기에 바쁘다. 참, 인생이란…
도쿄를 누비고 다닌 유진이표 보랏 의상!
스시집 앞에서 한 컷~ ^^V
내친김에 긴자까지 가보자~
프라다 매장의 백,, 인디어 추장 차녀 스타일~
명품 스토어 가득하지만 그 보다는
차가 다니지 않는 대로에서 마구 휘젓고 다니는 느낌이 잼나더라.
길거리 인형쑈도 보고.
긴자 기념컷~
다시 신주쿠로 돌아와 들린 중고 CD, DVD 판매점 디스크 유니온
백화점식으로 층마다 장르와 시대별로 전문화된 매장 소개를 보면서
다시금 이 집요한 카테고리 정신을 느낀다.
근데 이게 너무 좋다는 거지.
층마다 컨셉이 너무 분명하고, 인테리어에서 점원들까지 이 분야의 전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라틴 쪽에 가서 마나(MANA) 있냐고 했더니, 1초도 주저없이 “아, 멕시코의 락그룹이요~” 하면서
마나의 중고 CD를 척 꺼내 준다. 그것도 700엔 대의
아..말로만 듣던 롱테일이닷!
금광의 발견 !!
주초 발데스 몇 개 그리고 곤잘로 루발까바 칸은 싹쓸이~
계산대에서 포장해 주던 일본 오빠는 한 술 더 떠서
“이번에 한국에 주초 발데스 온다며? 일본에는 안 오는대” 그러면서 아는 척을 한다.
“아아 맞아. 3월에 공연해. 나도 갈 거야~”
주초 발데스의 한국 공연 일정을 꿰고 있는 월드 매장의 오빠.
이 머나먼 일본 땅, 널디 넓은 신주쿠에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공연 하나를 콕 짚어 멘트해 주는 이런 오빠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맞춤형 롱테일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리라.
그 므흣함을 안고 발걸음을 옮겨 신주쿠 분카 센터로 향한다.
내가 이번에 일본에 온 이유가 거기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