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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재스민> – 알렌식 짝짓기의 새로운 경지

Blue Jasmine

블루 재스민 (2013, Blue Jasmine)

블랑쳇(Blanchett)이 블랑쉬(Blanche)를 연기한다. 95년판 영화에서 스탠리 코왈스키 역할을 맡았던 알렉 볼드윈은, 사기꾼이자 바람둥이인 재스민의 전남편으로 분한다. 뉴 올리언즈가 아닌 뉴욕에, 열차가 아닌 비행기로 도착하지만 블루 재스민은 시작부터 끝까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고스란히 현대로 옮긴다.

참 오랫만의 알렌옹 뉴욕 귀환작이라, 뉴욕의 정취를 배경으로 뒤얽히고 꼬여가는 인간관계의 도시남녀 스토리를 기대했는데, 정작 알렌옹은 뉴욕이라는 공간만 차용해 셰익스피어도 그리스도 아닌 1940년대 미국의 대표 비극으로 휙 되돌아가셨다.

왜 하필이면 Streetcar 였을까. 신경쇠약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가까스로 버텨내다 결국엔 나락으로 추락해 버리고 마는 비극의 결말은 우디 알렌스럽지 않다고 느껴졌다. 나에겐, 갈기갈기 분열되는 정신을 황당한 외연으로나마 가까스로 추스려 모으고, 그런 자신을 제 3자처럼 바라보며 쓰디쓴 웃음을 지으면서도 삶을 지속하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이 우디 알렌이었기 때문이다.

그 옛날 ‘범죄와 비행’이나 최근의 ‘매치포인트’ 에서도 좋았던 것은 결국 살아남는 그들의 블랙한 결말이었거든. 하기야, 사회의 제도적 응징은 빠져나갈 수 있어도, 소리없이 스며들어 정신을 찢어발기는 악마에게는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경찰에게서는 피해갈 수 있지만, 신경 분열의 연옥(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은 피할 수 없다. 이 외에 재스민에게 어떤 통로를 열어줄 수 있었을까.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 알렌 옹의 본격 비극이라는 점에서, < 카산드라 드림>이 겹쳐지지 않을 수 없다. < 카산드라 드림>은 제목에서부터 명백하게 희랍 비극을 차용했고, 그냥 살인도 아닌 친족 살해까지, 알렌 옹 영화 역사 사상 최대 잔혹치를 찍었다. 영화는 한 발 한 발 예언된 듯한 나락을 향해 가는 추락과 분열의 과정이다. 재스민 역시 직접 칼을 들어 누군가를 살해하지 않지만 복수심에 가득찬 그녀의 결정은 남편을 자살로 몰아간다. 재스민의 파멸 역시 그 지점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 카산드라 드림>은 원치 않는 죄를 짓기까지의 자기 분열의 과정이라면, < 블루 재스민>은 우발적 충동이 야기한 죄 이후에 벌어지는 파멸의 과정을 현재형으로 둔다. 둘 다 ‘죄와 벌’이고, 결과는 영혼의 파멸이지만 < 카산드라 드림>은 죄를 짓기 전에 받는 벌을, < 블루 재스민>은 죄를 지은 후에 받아야 하는 벌을 그린다. 어느 쪽이 더 가혹한가. 우디 알렌이 그린 두 과정을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을 선택할 수 없이 그냥 막하막하다. 그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욕망’을 쫓은 댓가라기엔 너무 가혹하지만, 그래서 비극인 것이다.

내년 오스카 여주상의 강력 후보라는 케이트 블랑쳇. 과연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우디 알렌 영화를 통틀어 이만큼 독보적으로 영화 전체에서 강력한 존재감으로 못처럼 나 홀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캐릭터는 본 적이 없어 좀 낯설었다. 알렌 옹 영화에서 연기의 백미는 늘 앙상블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것은 한편, 스탠리의 부재를 실감하게 한다. 스탠리의 역할의 ‘칠리’는 여동생 진저의 남친으로 머물뿐, 재스민으로 대항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Streetcar의 핵심이 블랑쉬-스탠리 사이의 강력한 성적 긴장감이며, 클라이막스 역시 최고조에 이른 긴장감의 해소(?) = 블랑쉬의 결정적 파멸의 순간 이라고 본다면, 이 관계가 빠진 재해석은 아무리 새로운 반전을 숨겨놓았다 해도 허전할 뿐이다. 재스민의 에너지를 맞받아칠 카운터파트너가 없는 것이다.

재미있었던 것은, 결국 자신의 남편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결정적 이유가 정치적 올바름, 경제적 이유, 자신에게 가한 사기 범죄 등등의 거창한 것이 아닌 바람핀 남편에 대한 ‘질투’였다는 것이다. 남편과 가족, 그리고 자기 자신을 파멸로 치닫게 하는 비극의 시작이라기엔 너무 사소한. 여자란, 인간이란 결국 그런 사소한 감정에 거대한 운명을 휘둘리는 존재라는 것.

어쨌든 알렌옹은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그리스 비극, 셰익스피어, 미국 근대 비극을 모두 자신의 오리지널한 감각으로 훑어가고 있다. 그것도 영화라는 대중 엔터테인먼트의 미덕 안에서. 정말로 흥미로운 여정이다.

노화는 필연적 쇠퇴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한계를 알렌옹은, 새로운 공간, 새로운 배우와 젊은 피 그리고 고전 등과 자신의 오리지낼리티를 교배하는 방식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다. 자신이 쌓은 기존의 것에 새로운 것을 겹쳐 새로운 색깔들을 막 뽑아내신다. 쇠퇴를 막는 수준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시며. 80세를 향해가는 노감독이 말이다. 자기 복제의 함정을 짝짓기로 넘어서는 이러한 창작 방식이 나에겐 너무나 흥미롭다. 삶에 있어서도 적극 벤치마킹해야할 방식이 아닌가.

긴 수명과 끊이지 않는 짝짓기 + 생산 때문에 알렌 옹은 넘사벽의 대가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알렌옹. 이 여정은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부디 장수하시고, 계속 만들어 주시기만을…결론 : 알렌옹은 진정한 짝짓기의 대가이시다^^;;

ps. 하지만, 누군가 말한 이 영화가 알렌옹 최대 걸작이라는 평가에는 반대한다. 무수한 original works를 만들어낸 알렌 옹의 베스트로 어찌 고전 작품의 재해석을 꼽는단 말인가ㅠ

pps. 그 동안 본 알렌옹 영화 Rome with Love, Cassandra’s Dream, Whatever Works, Anything Else, Melinda and Melinda, Hollywood Ending, Sweet and Lowdown ㅠㅠ 다 넘넘 재밌당. 이 중에 몇 편은 두 세번씩. 언제 리뷰 다 쓰지 ㅠㅠㅠ 써 놔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