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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방학 – 양털깎기

가끔은 관계의 방학을 맞는다.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대개 누군가의 결심으로 시작되지만, 관계에서 어느 한 사람에게만 좌우되는 결과는 없다고 믿기에 서로의 선택으로 맞게 되는 방학이다.

관계란 상어와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주식의 그래프가 꺾이듯 소강 상태에 들어간 관계는 스러진다.

우리는 더 이상 등교를 하지도, 서로의 수업을 듣지도 않는다. 점심시간에 같이 도시락을 까먹지도 않고 방과 후에 축구를 하고나서 서로의 손을 잡고 집에 돌아오지도 않는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침을 튀겨 가며 수다를 떨거나 힘을 합쳐 누군가의 뒷다마를 까는 일도 없다.

모든 건 중지되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고 방학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 각자의 시간에 벌어지는 일들이 서로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바꿀지 기대와 걱정이 들기도 한다.

관계의 공매도 리포트를 쓰며, 왜 이 관계가 계속될 수 없는 지에 대해 가열찬 계산을 하고 복기를 둔다. 그렇게 관계에 돋아난 부적절한 양털들을 깎고, 개미들을 털어내고 적정한 밸류와 거리를 계산한다.

다시 시작할 에너지를 얻는 것은 가격과 거리에서부터 온다. 바닥을 기며 충분히 낮아지고 충분히 멀어졌음을 실감할때 때 비로서 대상이 다시 보이고 바닥을 치고 올라갈 에너지가 모인다.

개학은 그 순간 온다. 절대적으로 너무 소중해서가 아니라 이 가격과 이 거리에 비해서는 소중한 것이라고 느껴졌을 때.

우리는 다시 시작할 에너지를 충전하고 관계에 돋아난 부적절한 양털을 깎고 적정한 밸류에서 다시 만난다. 다시 좀 더 우상향을 기대할 수 있는 높이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 소위, 유기농 조정이라고 불리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니 잠깐의 방학에 지나친 의미 부여하거나 서트레스 받지 말 것. 함께 갈 사람이라면 개학은 필연적이다. 억지스러운 노력으로 방학을 미루거나 개학을 앞당기려 할 필요도 없다. 보다 적정한 관계의 보정 과정이라고 봐야겠다.

그냥 물흘러가는 대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을 찾아, 방학과 개학은 계속될 것이다. 누군가의 잘못이나 책임이 아니다.

물론 그 방학에는 정해진 일정이 없다. 몇 년 씩 방학이 계속되는 끝나지 않는 방학은 결국 졸업을 맞는다. 어떤 선을 넘어버려 순식같에 종료된 관계도 있다.

우리는 이제 추억의 앨범 속에서나 서로를 찾을 수 있다. 그 앨범조차 결국은 기억의 다락방에 숨겨져 들춰보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자연법칙의 일환인 것을…

오늘 대보름달을 보며 나의 관계의 포트폴리오를 돌아봐야겠다.
방학과 개학, 졸업을 맞은 모든 관계의 대상들이 편안하기를 바래봐야겠다. 개학에 임박한 관계들도

이렇게 퉁쳐봤자 달라질 거 없다는 주의지만 명절은 한 번 쯤 이래보라고 있는 날 같기도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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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어제 밤에 문득 깨달았다.

난 TV, 카톡, 페북, 인스타, 주식앱 중독이라는 걸.

시력이 급저하되고 책속의 글자들이 희미해지고
손목에 터널이 와 등까지 저릴 때까지도 몰랐네.

수동적으로 접수하는 단발적 메시지와 휘발되는 자극적 숏컨텐츠들로
머리 속이 텅 비고, 자가 발전의 생산 결과물이 1도 없는데도
기계적으로 always produce라는 프로퍼갠더만 외치고 있었네.

그저 쳇바퀴 안의 다람쥐처럼 계속 저 사이를 뺑이치며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어야지 라는 꿈속의 꿈같은 희미한 그림만 그리고 있었네.

여기저기 뜨는 빨간 뱃지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흘리며 에너지를, 시간을 쏟고 있었네.

이런 이런. 난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일단 이렇게 써놓고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