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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 : 깊은 빡침의 칸타타

제길슨. 올해 새해 첫 날 보고 써 놨다가 코헨의 위대함에 대해서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듯하여 draft로 묶혀 뒀는데…
2015년의 1분기를 다 보낸 이 시점에 이 글을 다시 꺼내 보니 정리고 뭐고 어이없으면서 그냥 눈물이 앞을 가리네.

새해 첫 날 본 영화의 중요성이여….
그리고 르윈과 같은 여정이니 노를 저으라느니 말라느니 영화 감상이랍시고 쿨한듯 나불나불대는 것과 실제로 그러한 현실을 맞닦뜨리는 것의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여.
ㅠㅠㅠㅠㅠㅠㅠㅠ

올해 1분기는 새해 첫 날 본 영화 제목 그대로 인사이드 초아였다.
아무리 코헨쓰가 위대한들, 난 인제 그만 아웃사이드초아 할랜다!!
그런 의미로 정리안됀 채 괴발새발 그냥 올림. 이걸로 끝나라고! Draft에 놓여있으면 르윈의 저주가 영영 계속될 것만 같아서…그리고 내년 1월 1일에는 완전 해피해피 러브러브 샘솟는 영화 볼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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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기타 하나와 고양이 한 마리, 뉴욕의 겨울…안타깝게도 이 카피는 영화의 포인트를 전혀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누가 이 영화의 포인트를 한 줄의 카피로 요약해낼 것인가.

2015.1.1 < 인사이드 르윈>을 선택했다. 밤마다 지인의 카우치를 전전하며 루저로 살아가는 뉴욕의 포크송 가수 르윈은 쉴틈없이 쏟아지는 엿들을 온몸으로 맞으며 뮤지션으로서 전기를 찾아보고자 시카고로 떠난다. 무박 삼일의 험난한 여정의 결과는 출발했던 바로 그 자리로 되돌아와 삶에서 유일하게 붙들어왔던 음악을 내팽개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엿들의 폭격은 계속되어 그런 결단조차 제대로 실행할 수 없다. 와우! 이것이 2015 새해 첫 날을 여는 영화…

영화를 보고 나서 바흐의 선율을 떠올렸다. 지루하리만치 반복을 거듭하며 층층히 쌓아올려지는 정연한 음계들, 드라마틱한 기승전결 없는 단순하고 소박한 음들의 모여 그 총합으로 마침내 닿게되는 신성의 경지. 불필요한 장식은 없다. 과도한 감정도…하지만 결국 우리는 어떤 깊은 곳에 닿게 된다.

< 인사이드 르윈>도 그렇다.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의 부리짓처럼 반복되는 모멸스런 빡침의 상황들. 뭐 그리 대단히 웅장한 스케일이나 끝에 뒷통수를 후쳐치는 반전같은 건 없다. 그렇다면 영화가 무척이나 짜치고 지루해야 할 것 같은데, 결과는 정반대다.

무심하게 등장했다 쓴웃음을 짓게 만들고 빠르게 퇴장하는 에피소드들. 하지만 그 에피소드들은 순간으로 휘발되지 않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시 튀어나와 의미심장한 후기를 찍는다. 한 개의 깜짝쇼 빅반전 대신 매 순간 극히 마이크로한 층위에서 인물들의 대사와 선택이 보는 이의 벳팅을 비껴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끝까지 비껴나가다 끝나버리는 카타르시스 없는 희한한 영화 체험을 하게 된다. 하나의 큰 놀람 대신, 순간순간 미세한 쇼크들이 쌓여가다. 그 쇼크들이 깔때기처럼 수렴되는 곳은 빡침 짤방같은 표정 뒤에서 실상 그다지 드러나는 것은 르윈의 내면이다. 그리고 이 순간들은 어느 순간 ‘하루 푹 자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피로’가 한 인간의 인생을 쓰나미처럼 덮쳐온다. 날 것의 인생이다. 영화화될 수 없는 순간을 스크린으로 찍어 올린 ‘예술’의 경지이시다. 멋드러진 포크송은 그 위에 얹은 화룡점정의 데코레이션. 끝내주는 대체불가 코헨브라더쓰이다.

‘왜 코헨의 영화에서는 모든 씬들에 뭔가 있어 보일까? 별 거 아닌 것 조차도. 그 무엇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런 의문이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그 답을 보았다. 그 사소한 순간들이 실제로 중요한 뭔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실제 인생에서도 중요한 것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이러한 매 순간들이라고 코헨브라더쓰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르윈이 고양이를 버리고 나온 순간, 르윈이 자신의 아이가 있는 도시의 표지판을 지나친 순간. 어린 시절의 노래를 바칠 때 아버지가 똥을 싼 순간. 인간을 파괴하고 인생의 방향을 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들이다.

< 파고>가 떠올랐다. 잔인한 연쇄 살인 사건을 둘러싼 범죄를 다루지만, 결국 이 영화는 남편이 우표를 붙이는 마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거기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파고를 그렇게까지 좋아했을지 모르겠다. 입신 경지의 코헨 브라더쓰가 아직도 여전히 이 사소한 삶의 순간을 붙들고 있어서 너무너무x100 좋았다. 이 그 사소한 순간들을 경지에 다다른 최고의 솜씨로 살려내 주어 좋았다. 그래서 이건 1960년대 뉴욕의 실패한 포크송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내 얘기였다. 잘해 보려고 해도 시시때때로 브레이크가 걸리고, 살기 위해 소중한 것을 버리고, 그걸 버려도 계속 살아지며 빡침과 동행하는 내 인생의 이야기다.

고양이를 버리고, 도망가는 씬. 영화 초반에 골파인 교수의 비서가 적시하듯 cat is 르윈이며, 고양이를 버림으로써 자신을 배신한 것이다. 뒷자석에 남겨둔 롤랜드 터너는 부축없이는 움직이도 못하는 지경이다. 이들을 버리고 혼자만 탈출해 또 다시 히치하이킹을 감행하는 르윈의 검은 실루엣과 그런 그를 무심히 지나쳐가는 차들의 모습. 아무 대사도 설명도 없었지만, 화면은 무겁디 무거운 비극감이 짓누른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차를 얻어탄 르윈이 멀쩡히 시카고에 도착한다. 하지만 도착하자 마자 재수없게 쌓인 눈에 발이 빠지 양말까지 모두 젖어버린다. 이렇듯 무거운 비극과 어이없는 코메디를 아무 것도 아닌 양 밀가루 반죽처럼 하나로 뒤섞어 버리는 솜씨. 매 순간이 이것이 무엇인지 도당체 정의할 수 없게 만드는 스핑크스의 퀴즈와도 같은 독특한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비극과 코메디, 성과 속이 나란히 어우러지며 뛰어노는 이 영화가 나에게는 알알이 박힌 보석들처럼 눈부시게 느껴진다. 모든 순간들이 웃기지만, 그 웃긴 순간들이 매 순간 심오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사소하고 잡스런 씬들에 응축된 고밀도의 상징성들은 날 것의 이야기에 잡힐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수수께끼같은 원형의 아우라를 덧씌운다. 코헨님들은 영화 하나 속에서 수 없이 많은 반전들을 썼다. 이렇게 코헨느님들은 모든 순간을 새로이 창조하셨다.

연속되는 빡침 속에서 가끔씩 욱한 르윈은 미약한 반격을 하기도 하지만, 그 반격은 번번히 아무 영향력도 없이 사그라든다. 골파인 교수의 집에서는 쫓겨나오고, 롤랜드 터너는 흑마술 괴담을 쏟아내며 지팡이질을 계속한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바주인이 진과 잤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르윈은 참지 못하고 무대의 여인를 모욕한다. 자기가 받은 모욕을 돌려주기라도 하겠다는듯이. 하지만, 얼핏 성공적으로 보이는 이 짜친 화풀이조차 건물 뒤에서 대차게 얻어맞는 것으로 자신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을 때린 여인의 남편에게 르윈이 던진 말은 의미심장하다. Au revoir. 안녕이라고 번역이 이 불어 인사말은 잘 가란 말이 아니라, 다시 보자는 뜻이다. 남자는 르윈을 때리고 나서 넌 이 시궁창에 남아라. 우린 떠날테니라고 독설을 퍼붓한다. 하지만, 르윈은 빡침은 계속될거고, 누구나 이 빡침의 시궁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율리시스의 여정과도 같은 고단한 여정을 통해 마침내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저 한 마디의 인사말에 담아냈다. 그리고 이 말은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다.

나의 2015도 르윈의 여정과 다르지 않을거다. 무언가를 갈구하며 길고 짧은 여정들을 하겠고, 별별 일들에 빡이 치겠지. 민폐도 끼치고, 신념을 배신하는 짓도 하며, 영혼이 파괴되는 듯한 기분도 느끼겠지. 하지만 그 조차 지나갈거야. 가끔은 If I had wings같은 멋진 선율이 내려, 내 마음을 쉬게 하리니. 자, 출발하자. 노를 저어라 초아시스여….

↑↑↑↑↑↑↑↑↑↑ 바로 이 마지막 부분…ㅠㅠㅠ 난 이때 몰랐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