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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February, 2007

웹 2.0 수익창출 컨퍼런스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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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2.0 수익창출 컨퍼런스 2007
2007년 2월 23일(금) – KMOBILE 주최

제가 발표한 주제는
< 웹2.0 서비스 개발 전략 및 차별화 방안>였습니다. (총 1시간)

제가 서비스를 보는 기본 프레임은
[서비스 = 데이터 +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이 프레임을 바탕으로 웹 2.0 서비스에서
어떤 새로운 데이터가 나오고 있는지(데이터 2.0)
그것을 소비하고 유통하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애플리케이션 2.0)
의 개괄을 통해, 여기에 어떤 새로운 서비스의 기회가 있는 지 짚어보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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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의 한계로 심도 있는 내용을 전달을 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지식이나 사례보다는
어떤 프레임에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의 방향을 잡아 보시는 기회가 되셨으면 좋겠네요.

혹시 이런 관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시면
제 책에 더 자세한 내용이 나와있으니 참고해 보시구요. :-)

정유진의 웹 기획론 > 네이버 가격 비교

보랏 : 질서에 맞장뜨는 상상초월 보랏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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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Borat: Cultural Learnings Of America For Make Benefit Glorious Nation Of Kazakhstan, 2006)

※ 2007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부문 남우주연상수상

오프라 윈프리 쇼에 단단한 눈매에 양복을 잘 차려입은 한 중년의 백인 남자가 출연했다. 수 천명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 정도를 물고문 하는 것이 뭐가 대수냐고 한다. 이라크 공격 이유는 정당했으며, 미성년자가 낙태 수술을 받으려 할 때 시술 병원은 부모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런 말을 참 잘도 지껄인다. 이 사람은 빌 오라일리다. 폭스 뉴스에서 < 오라일리 팩터(O'Reilly Factor)>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정직, 성실, 가정, 교육, 교회, 애국심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전파하고 진보세력의 위선과 사실 왜곡을 가차없이 폭로 비판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기를 구가하는 극보수주의 언론인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미 2000년 진보 성향의 < 래리킹 라이브>의 시청률을 능가했으며 그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보랏을 봤다. 촌스런 회색 양복에 뽀글 머리, 콧수염을 기른 카자흐스탄 리포터가 등장한다. 미국 문화를 배워보겠다며 저 멀리 중앙아시의 북부에서 미대륙의 중심부로 날아온 그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저질이고, 최소한의 예의조차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뻔뻔하다. 사교 파티에 똥봉투를 들고 등장하며, 홀딱 벗고 엉덩이로 상대방의 얼굴을 짓뭉개며 침대 위 레슬링을 벌인다.남는 것은 ‘핑크 플라밍고’를 봤을 때와 비슷한 트라우마다. 구역질이 날 수도 있고, 왠지 모를 거부감과 울렁증에 극장을 나와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카메라는 이 모든 것을 별 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그야말로 다큐멘터리식으로 뒤쫒는다. 이 여정에서 보랏은 페미니즘, 중산층, 미디어, 인종차별, 종교, 유대주의, 게이문화…등 현재의 ‘미국’을 구성하는 온갖 것들을 상상초월 보랏식으로 각개격파한다.

진보적이 되는 것은 쉽다. 비판적이 되기는 쉽다. 그런 태도를 좋아하기는 더 쉽다. 다들 조금은 비딱한 것에 쉽게 마음을 끌리고, 기존의 질서를 갑갑해 하며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이 거대하고 단단한 질서와 1대 1로 맞장뜨는 건 다른 문제다. 기존의 질서를 뒷받침하는 논리와 시스템은 강력하다. 이 밑바닥도 진정성이다. 이들이 합체해 거대한 성곽을 이루어 보주주의의 헛점와 비밀을 감싸고 지킨다.

영화는 눈으로 보여주는 영상 매체다. 영화가 도전이나 투쟁이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무언가를 보여줌으로써 가능해진다. 하지만 눈으로 보여줘야 할 대상을 그들이 숨기고 있을 때, 영화는 포기하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마이클 무어는 집요하게 논리를 세우고 지독스럽게 파고들어 증거를 파헤치고 폭로하는 실증적인 방식으로 그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보랏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신 그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대낮의 뉴욕 한 복판에서 양복 바지를 내리고 자위를 한다. 대상을 스토킹하다가 경계가 허술해진 빈 틈에 닫힌 커텐을 열어 제치며 폭로쇼를 펼치는 대신, 그 커텐 뒤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일들을 난 모르쇠~ 하지만 자기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통해 바로 그것을 눈 앞에 들이대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꼭 ‘자살폭탄테러’같이 느껴진다. 왠만한 자극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질서 세계로 침투해 거의 자해수준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망가뜨림으로서 충격파를 가한다. 그래봤자 오라일리 같은 인간이 꿈쩍할 리 없지만, 그래도 극과 극에 서 있는 이 두 남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 정유진의 웹 2.0 기획론>에 나란히 찬조 출연해 주셨다는 것. 모든 것이 미적지근한 상대성의 원리로 흘러가는 요즈음, 그것이 가장 안전한 방식을 깨달은 지 꽤 되는 나이지만 때로는 이런 꼴통들이 등장해 썰만 무성한 이 무기력한 세계에서 텍사스 전기톱이라도 휘둘러 주기를 바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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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way, thang you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 오…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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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 로미오와 줄리엣> 2007.2.10(토) 세종문화회관 7:30

이것은 영국이 낳은 비극적 사랑의 위대한 원형에 대한 프랑스의 도전일까? 줄거리는 셰익스피어의 그 로미오와 줄리엣이건만, 그들이 노래하는 언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그 걸쭉한 ‘대사빨’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말하자면, 햄릿에서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가 안 나온 격이다. 그 대사를 빼고 뮤지컬 햄릿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어색한 질문에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프렌치 아티스트들은 ‘아니, 우리는 그 보다 더욱 심오한 것을 만들 수도 있다’라고 답하는 듯 하다.

그렇게 이 작품은 프랑스의 비옥하고 풍요로운 최상급 떼뚜아르에서 정수만 뽑아 모은 듯한 내공 만 단의 대사들이 서막에서부터 쿵~하고 이성과 감성에 동시 다발로 메스를 들이댄다. 이어지는 < 베로나>는 단연 압도적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니가 아는 그런 것인 줄 알았니? 오, 아마 아닐걸! 이 작품에서 가장 경이로운 부분은 공연으로서의 화려함이나 완성도가 아니라 기저의 텍스트다. ‘증오의 꼭둑각시’로 죽음의 소매 자락 아래서 애증에 발버둥 치는 가련한 인간의 운명에 대한 통찰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장미빛 농밀한 수사와 만나 활짝 꽃 피운다. 여기에 덧붙여진 음악은 또 어떤가? 셰익스피어를 완전히 재창조 해 보려는 듯한 이 야심찬 텍스트의 시도를 뒷받침 하듯, 하나같이 강렬에 강렬을 더해 에너지로 끓어 넘치고 배우들은 이 기운을 받아 절절이 노래하고 펄펄 날아다닌다.

우리의 정원에는 꽃이 만발하고
우리의 여인들은 아름답소. 이곳은 지상의 낙원과도 같지..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지옥에 있소 .
그대는 지금 그러한 베론에 머물고 있소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하며, 밤마다 잠이 드는 당신
이곳에선 누구도 믿을수 없지
베론에 오신걸 환영하오.

베로나 中

그러니까 모두 다 아는 뻔한 스토리를 아름다운 음악과 현란한 무대장식을 입혀 무대에 올린 그런 뮤지컬이 아니라, 영혼이 깃든 시도라는 거. 압도적인 스케일이나 거대한 무대 장치 같은 건 없다. 오히려 난 ‘해석’에 공들인 최초의 그 시도를 음미하며 곡이 끝날 때 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어쩌면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초월해, 내가 늘 인정해 마지 않는 ‘그런’ 종류의 시도에 대해.

아쉬운 것은 시간이 갈 수록 왠지 그 처음의 감흥이 적정한 가열 시간을 초과한 부대 찌게처럼 점점 쫄아드는 이 느낌. 심각에 심각을 더하고, 강렬에 강렬을 더하니 남는 것은 그 요지부동 긴장의 틈바구니에서 애써 꼬투리 잡아 잠시나마 휴식을 갖고자 하는 불량 관람자의 헛헛한 웃음이다. 마지막 20분은 줄리엣의 죽음을 ‘어떻게 말하지?’라는 벤볼리오의 울부짖음에 옆자리 친구와 “그런건 SMS로~” “걍 단도직입적으로” 등의 장난성 리액션을 귓속말로 주고 받으며 키득거리는 나를 발견!

15세때 시작된 아동 학대(?!)를 계기로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던 티볼트의 고뇌, 친구에게 비극적 소식을 전해야 하는 벤볼리오의 고뇌, 딸은 가진 고뇌 캐퓰릿의 고뇌, 이도저도 아무 것도 모르겠는 신부님의 고뇌까지…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어. 이렇듯 절정의 클라이맥스가 되어야 할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전후좌우에도 온갖 고뇌와 비극의 오라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으니, 도당췌 핵심은 뭐냐고요. 맨 마지막 신에서 돌아가며 절창을 뽑아내는 온갖 캐릭터의 향연을 보고 있노라니, 두 주인공은 죽은 채 누워 있는 데도 무대 위에는 로미오와 줄리엣들이 각각 족히 너댓 명은 되는 듯 꽉 차서 넘친다. 일명 ‘에브리바디의 로미오와 줄리엣화’ (너도 로미오, 나도 로미오) 현상이라고, 같이 본 친구는 같은 걸 “어떤 노래든 아무 데서나 막을 내려도 말이 되는” 노래들이었다고 표현하더라.

셰익스피어는 아무리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중간 중간에 한없이 광대나 바보들의 막간극이나 소극 같은 설정을 집어 넣어, 긴긴 시간 극을 지켜봐야 하는 관객들의 긴장한 신경을 마사지 해 주고, 극의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주석과 담론을 이끌어냈으며 해석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는 그의 대사들 또한 정작 맘비우고 읽으면 그 기막힌 비유들에 남녀노소 누구나 낄낄거릴 수 있는 즐거운 텍스트일 뿐이다. 셰익스피어는 후대에 자신을 학문으로 연구할 단련된 지성들 대신 그저 오후의 구경거리를 찾아 극장에 몰려온 거의 모든 계층의 일반 관객들을 즐겁게 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뮤지컬의 노래들은 참 거대하고도 심오하다.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특히 장난과 광기 사이를 오가는 머큐쇼의 재기발랄 장광설과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 속에서 삶의 지혜와 애정을 보여주는 유모의 정감어린 대사들이 빠지니 이거 참, 왜 이리 허전한건지. 시소 저 쪽을 지켜줬어야 할 그들마저 한 패로 무거워지며, 극의 무게 중심이 심하게 휘청~하는 느낌이랄까. 죽음을 한 인물로 형상화한 설정은 신선했지만, 그녀 역시 너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듯 해서 난 부담스러웠다. 꼭둑각시 놀음을 내려다보며 제 멋대로 인형의 실을 조종하는 그녀가 이들의 비극을 좀 더 비웃거니, 낄낄대며 이 판을 좀 더 즐겨줬다면 어땠을까. 타자화된 그들의 비극이 좀 더 선명해지지는 않았을까.

‘로미오와 줄리엣’하면 떠오르는 줄리엣의 명대사들 (by 셰익스피어)

- 장미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향기는 마찬가지잖아요.

- 아, 변덕장이 달님에 두고 맹세하지 마세요.

- 그럼 당신 입술에 키스해야지. 혹시 독약이 아직도 입술에 남아 있다면 나도 당신을 따라 죽을 수 있을거야.

- 아, 반가워라. 여기 칼이 있군. 이 가슴의 너의 칼집이다.

보너스~ 말하기 싫은 상대를 대응하는 줄리엣의 귀여운 반어법 작전

패리스 : 신부님께 고해하러 오셨나요?
줄리엣 : 그렇게 대답을 하는 건 백작님께 고해를 하게 되는 셈인걸요
패리스 : 날 사랑한다는 걸 신부님께 숨기지 말아요.
줄리엣 : 백작님께 고백하지만 전 신부님을 사랑해요.

소박하지만 가슴에 와닿아 작은 미소를 짓게 하고, 쉽지만 그 안에 풍요로운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이 그리워졌다. 집에 와서 얼른 원작을 펴 보니, 역시 이 맛이 셰익스피어다. 줄리엣에 대한 들끓는 모성애를 고백하는 대신, “로미오님을 찾아 얼른 아가씨를 기쁘게 해 드릴께요”라고 말하는 유모. 우리가 세상의 왕이라고 선언하는 대신 처녀들이 누워있으면 누군가 배를 눌러도 참고 견디게 만드는 법을 배우게 해 아이를 쑥쑥 낳는 아낙네로 만든다는 맵여왕의 야설(??)을 늘어놓는 머큐쇼. 너무나 편안하고 웃기고 귀엽고…모던하다!

원형에 대한 도전이 강렬할 수록, 그 원형의 위대함은 더욱 부각된다는 것. 훌륭한 뮤지컬 한 편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그런데, 이 좋은 걸 학교 때는 왜 그리 지지리도 공부 안 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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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가 가장 열광한 캐릭터는 ‘잘 노는~’ 머큐쇼! 원작에서도 뮤지컬에서도 단연! (제일 왼쪽)
가운데 로미오도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네. 머. 그렇다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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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 좀 땡겨보자~ 끝나고 앙코르 비슷한 뒷풀이로 대표곡 두 개를 불러 주던데 이 때가 본 극보다 더 신나더라.
역시 어깨 힘 쫙 빼야만 느낄 수 있는 흥이 있다니까…큐쇼씨도 흥이 뻗쳐주시고~

축구 반전 캐릭터 시리즈

동국의 미들스보로행은 많은 이들에게 반가움 이상의 뭉클함을 안기는 것 같다.
그의 팬이 아니었던 나조차 이번에는 진심으로 그의 성공을 응원하고 있으니.
우리는 성숙함의 이면에서 그가 겪어야만 했던 시련의 행간을 읽고 내심 짠해 하는 걸까.

친구랑 그 얘기를 하다가 그 왕자병 동국이가 이렇게 어려운 일들을 겪고 성숙해지고 참 인생이란…의 요지에서
“근데, 이제는 지성이가 나대는거지~” 의 삼천포로 방향을 틀어 낄낄대며 주거니 받거니 한 축구 반전 캐릭터 시리즈.

~ 나대는 지성
~ 말아끼는 천수
~ 성숙한 루니
~ 드리블해서 골 넣는 반니
~ 천천히 뛰는 호날도
~ 호날도 몸매 호나우두
~ 반데사르 몸매 마라도나
~ 장발의 랄손
~ 이관우 얼굴 드록바
~ 머리 핀 사하
~ 퍼거슨 몸짓 무리뇨
~ 껌씹는 벵거교수님
~ 주름살 편 제라드
~ 모든 일에 의욕적인 리켈메
~ 경기에 져도 미소짓는 가투소
~ 힘없는 발락

나대는 지성이, 경기 중에 안 뛰고 가만히 있는 지성이, 클럽가서 작업거는 지성이…상상만 해도 너무 웃긴다.
뭉게뭉게 역발상이란 돈 안드는 즐거운 놀이~

재방송이라도 봐서 다행이었던 두 경기! 유진이의 다크서클은 깊어만가고…

[프리미어리그] 맨유 : 왓포드 4:0 맨유 승 – 트레블 크레이지 모드여, 합체하라~

드디어 올드 트래포드에 두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떴다. 날도와 룬희.
날도 칩샷 어시스트에 이은 룬희의 칩샷 골~
유진이 왈 일명 맥도날드 슛이라구 이 두 아이가 함께 만든 둥근 M자의 깨끗한 곡선은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정말 두 개의 태양이 뜬 것 처럼…
아아, 보면 볼 수록 기분 좋아지는 룬희. 세 경기 연속골…드디어 발동걸린게냐.

룬희- 칸토나 골 비교 영상

특히나 지난 포츠머스 전에서의 로빙슛!
굉장한 슛…정도라는 건 누가 봐도 알지만, 이 골을 보고 퍼기 영감님이나 현지에서는 에릭 칸토나의 재림 운운하는 모양이던데
직접 비교한 영상을 보니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 칸토나의 ‘거만한 세러모니’ 원츄!
재능이 있는 자들은 조금은 오만해도 좋다…라는 한 어른의 말씀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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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는 드리블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뛰어가는 다리 모양이 아무리봐도 만화 주인공 뛰어갈 때 다리 모양이 동그라미에 쳇바퀴 돌아가듯이
다다다다다…그거 같다. 볼 때마다 혼자서 엄청 웃는다. 아무리 봐도 저 모양은 만화다.

이제 지성이만 합류하면 완벽하겠다. 맨유의 트레블은 트레블 크레이지 모드가 이끈다!
룬희, 날도…그리고 지성의 트레블 크레이지 모드여, 올드 트레포드의 푸른 잔디 위에서 합체하라~

아, 이러면 또 아스날의 초절정 꽃띠 영(계) 거너스님들 섭하시겠는걸.

[칼링컵 준결승] 아스날 : 토튼햄 3:1 아스날 승 – 벵거 유치원의 미래는? 한 마디로 ㄷㄷㄷ

토튼햄이 많이 밀리는 경기였지만 정작 골은 잘 나지 않아서 내내 흥미진진하게 봤다.
특히, 미도가 동점골을 넣으며 후반으로 가면 갈 수록 경기가 재미있어졌다는.

한준희 : 이건 정말…뭐라 말할 수 없는 인저리 타임이군요!

책 쓰면서 꽤 오랜 시간 토굴파기 운동을 하다가 축구로 복귀한 지 한 달 남짓,
주말에 한 두 게임씩 챙겨 보며 경기마다 낯설어 두리번 두리번 선수들 하나하나 새롭게 익히고 적응 중인데
오늘 눈에 들어 온 아이는 클리시와 데니우손이다.

클리시의 칼같은 플레이! 엣지하다. 프랑스산 85년 생.

~벵거 박사님의 다국적 수재 유치원생들 명단

파브레가스 87년생 스페인산
데니우손 88년생 브라질산
와코트 89년생 영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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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프레쉬한 이 꽃띠들을 어쩌란 말이냐…애들이 좀만 더 크면 아스날은 뭐가 될까? 가운데선 왕리 행님 딱 버텨주시고~

특히 오늘 데니우손이 수비수 세 명 제치고 하는 드리블은 그 때의 그 데니우손을 떠올리게 했다.

94년 미국 월드컵 때 TIME지에서 올림픽 특집으로 선수 소개하는데 히바우두가 페라리라면, 데니우손은 ‘람보르기니’라고 하더라.
그때나 지금이나 촌티 폴폴 날리는 난 데니우손도 람보르기니도 생전 첨 들어보는 이름들이라 이게 뭔 소린가 했는데,
실제 경기에서 데니우손의 그 현란하다 못해 어지러운 드리블과 헛다리 짚기를 보며 쇼킹해하며,
모르긴 몰라도 람보르기니가 굉장한 차인 모양이구나..라고 역추측 했던 기억이 있다.
참고로 그땐 이 좋은 인터넷이 없어서 모르는 뭘 알아내기가 참 거시기했던 시절.
(하지만 과유불급이랄까. 아쉽게도 그의 현란한 드리블은 그저 드리블이였을 뿐. 지난 시즌 씨날도군 욕먹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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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 하나의 리틀 데니우손 역시 아스날에서 그와 비슷한 몸짓들을 보여주며, 피에 흐르는 브라질 DNA를 증명했는데
쇼킹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아스날 플레이에서 못 봤던 스타일이라 상대적으로 새로웠고
어느새 아스날을 프렌치 커넥션이라 부르기에는 좀 거시기해진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가끔식 피레스와 비에이라가 그립다..)

이로서 칼링컵 결승전은 첼시 vs 아스날. 또 하나의 빅매치가 2월을 채우고 있다!

ps. 근데 아데바요르도 85년생 이라는 거. 그 마스크라는 게…거 참.
볼을 따라 90분 내내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아데바요르의 그 성실 만땅 플레이는 참 감동적이다.
감히 토고의 박지성이라는 칭호를 붙여줄 만 하겠다.
살짝 아쉬운 공통점이라면 골로 마무리가 안된다는 거…한 골 넣긴 했지만, 그 모드였으면 최소 세 골은 들어갔어야 할 것 같은데.
이에 친애하는 한 친구는 골대를 맞추면 반점이라도 줘야 한다! 는 이상한 논리를 주장했다.
거기에 더해진 나의 주장은….그것도 지성이가 맞춘 것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