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쌓아둔 업무를 제끼고 카톡을 하다 문득 내가 왜 이 시간에 이런 사람과 이런 대화를 하고 있을까 싶어진 순간, 나도 모르게 네이버 검색창에 이런 문구를 검색했다.
Give and take
준만큼 받고 받을 만큼 줄 것을 미리 계산하는 깍쟁이 개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 사전적 의미로는 물물 교환보다는 서로 양보하고 공평한 거래를 한다거나 의견을 교환한다는 뜻이고, 복싱에서는 상대로 하여금 가격하게 하지만, 자기는 반대로 그보다 더 큰 타격을 준다는 살벌한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같은 제목의 책은 taker보다는 giver가 더 성공한다는 주장을 해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더라.
하지만, 나는 잡다한 검색 결과보다는 그 문구 자체에 집중한다. 검색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저 말을 내 손으로 타이핑하고 그 결과를 하이라이팅하기 위해 검색창을 활용했던 것 같다.
그건 내가 그 사람과 톡을 이어나간 이유였다. 그래서 왜??라고 의식한 순간, 그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했던 거 같다. 대단히 이상형이라서가 아니다. 깊은 정서적 교류나 매력을 포함한 그 밖의 의미심장한 뭔가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나는 그 사람에게 줄 것이 있고, 그 사람은 나에게 줄 것이 있다. 소확썸씽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의 교집합이라고는 거의 없는 실낱같은 관계를 유지시킨다. 줄 것과 받을 것이 있는 이상 이 커뮤니케이션은 이어질 것이다.
이상형을 상대방의 조건으로 정의한 적도 있고, 나를 어떻게 만들어 주는 조건으로 정의한 시절도 있었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하해와 같은 마음을 갈구한 적도 있고, 있지도 않은 자식에게나 줄 법한 내리 사랑의 대상을 추구한 적도 있다.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겠다.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기브앤 테이크가 수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람. 물질을 포함하지만, 그 이상이든 그 이하든 여하튼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 불꽃튀는 열정때문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과 서로의 필요에 의해 주고 받음의 밸런스가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관계.
그렇게 정의하고 보니, 많은 것이 이해된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가 필요한 것을 주는 사람이 고맙고, 반대로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미련도 미안함도 차분히 사그라든다. 한없이 소중했지만 이제는 줄 것과 받을 것이 모두 고갈된 관계에 대한 아쉬움도.
감정보다 더 강력한 필요의 메카니즘. 검색창 안에 넣어둔 give and take라는 단어를 꽤 오랫동안 노려봤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