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닷컴 » 2011 » April

Archive for April, 2011

쓰나미 전야

1

후쿠시마 원전의 쓰나미 전야(……뻥이오~)

@ 분당 한국 가스 공사

same same different

떨어진 것과 솟아나는 것

insomnia-10

insomnia-13-2

지는 것과 피어나는 것

insomnia

insomnia-44

Green & Grey

insomnia-10-2

insomnia-27-2

생명과 죽음과, 이러짐과 피어남, 생명의 초록과 음습한 회끼
가지가지 것들이 잘도 어우러진…여기도 분당을 ㅎㅎ vVVvvv….

봄날의 혼자말

insomnia-2

오랜만에 탄천을 걷는다. 바람 불 적마다 벚꽃잎들 하얗게 날린다.

봄날의 눈을 맞듯, 꽃잎 맞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어깨에 머리에…

나리는 그것들을 향해 나즈막히 불러본다. 쥐꼬리만한 목소리로. 심장 쿵쿵, 말문 터진 벙어리처럼 묵혀둔 말들이 줄줄 새어 나온다. 있자나…나 말이야. 있자나 나 정말. 나 정말 정말…

때늦어도 꽃구경일 줄 알았다. ‘분분한 낙화’에 혼자말 실어보내고 빨개진 코끝을 문지르는 출근길, 난 너무 늦게 왔다.

꽃피는 걸 못 봤는데, 벌써 지고 있다니.

당신이 오는 걸 몰랐는데, 벌써 가고 없다니.

데자뷔

boots

버려진 낡은 구두짝에서도 한 인간의 긴 여정을, 피로한 생의 밑바닥을 핥듯이 헤아렸던 사람.

‘그래…너무 많은 것을 보려 애쓸 필요는 없는 지도 몰라.’ 출근길 데자뷔. 아침의 단상 :-)

불면증 5 : @.@

insomnia1

응?????????

불면증 4 : 우울의 적합한 대상

오늘밤도 여전히 불면신의 강림을 영접했다. 물론, 낮에도 영접했다. 그토록 깊은 사랑으로 나의 낮과 나의 밤을 함께하시는 불면신은 그간의 나의 방만을 꾸짖기라도 하듯, 너무나 많은 시간을 벌로써 하사하시어, 그 시간을 모두 정보와 노동으로 채우는 사역으로 단죄하셨다. 해서, 나의 뇌는 이런 짬짜비빔면스러운 맥락없는, 그러나 맥락이 아예 없지도 않은 난장판 꼴라주를 그리게 되었다.
.

collage
난장판 일부 발췌

그리고 이윽고 이 기사에 이르렀을때, 고열과 심적 압력을 견디지 못한 나의 심장은 우울의 노심용해를 시작했고, 피폭 경계령을 발동해 불면신의 뜻을 어기고 모든 미디어에서 5클릭 이상 떨어져 있을 것을 키보드에 통보했다.

이런 경위로,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이토록 낯선 ‘심야의 독서’라는 행위를 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의 오염을 막을 특단의 조치로써.

‘하라 켄야’ 일본 디자이너. MUJI.
.
muji
MUJI 포스터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이 있다’

현실계의 암울한 팩트와 구렁텅이같은 감정들이 고도로 정제된 백(白)의 표면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는 느낌이랄까. 강한 기호를 가지게 하는 상품보다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느낌을 주고 싶다는 그의 디자인 철학은 직접 디자인한 본인의 글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저 혼자 달려나가는 혼란한 마음에 정연한 질서를 부여한다.

‘디자인의 디자인’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지만 곧 현실의 일부가 되어 많은 이들을 감동시킬 존재들을 창조하기 위해, 역으로 현실을 분해하여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버리고 다시 조립해가는 복잡한 과정을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서 목표하는 감동이란 것 조차 압도적인 세계 앞에 울컥하는 터트림이 아니라 그저 일상의 사용에서 투명하게 얹어지는 보편재로서의 충실함에 보내는 조용한 경외심에 가까운 감정이다. 그 부분이 너무 좋았다.

아름다운 컨셉 보드에서 출발해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상도 받고, TV에도 나오고, 그 업계에서 엄청 회자되는 디자인 산출물도 직접 써 보면, 정작 고상한 컨셉과 미의 치장에만 열을 올렸지 소비자의 이해에는 별 관심이 없었구나라는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윈도우에 전시된 것을 관람하는 사람들이야 그저 아름답다 박수치면 그만이지만, 정작 그 제품을 심지어 매일매일 쓸 수 밖에 없는 사람으로서는, 그 아름다운 디자인 앞에 얼굴 붉히며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에휴~

논리적인 설계와 우아한 구현이 한 치의 틈도 없이 우아하게 직조된 그의 글은 하나의 디자인 작품같다. 딱딱한 논리와 무거운 통찰조차 아름답게 세공하지 않고서는 밖으로 내보낼 수 없는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일지 모르겠다.

두 번째 책 ‘백(白)’은 좀 더 추상적인 주제였지만(그러나, 역시 감동), 오늘 읽은 책은 좀 더 가벼운 것이었다. ‘포스터를 훔쳐라 +3′ 젊은 날의 하라 켄야씨가 91년 월간 연재한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조금 발랄하고 패기넘쳤지만 그의 글을 이미 타고난 세공사의 솜씨였다.

여기서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그의 우울을 접했다.

< 블레이드 러너> 미술 감독했던 세계적인 거장에 일본 업체 일을 맡기고 중간에서 디렉팅하다 망한 과정을 그린 짧은 글이다. 엄청 대단한 사람인 줄 선입관 가지고 쫄면서 빈틈없이 기계적으로 일하다 일 끝날 때쯤 미국으로 만나러 갔는데, 결과물은 실망스러웠다. 알고 보니 소탈하고 자유로운 사람이어서 만사 제쳐두고 미리 만나 얘기했으면 일이 잘 됐을 것 같다. 그래서 돌아오는 태평양이 우울했다는 얘기다.

오늘 밤, 유난히 이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우울’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갑자기 독서 이전에 느꼈던 시대의 우울이 너무나 피상적으로 느껴지면서, 문득 좀 더 진지하게, 구체적 우울해지고 싶다는? 그래야 한다는? 욕구를 느끼게 된 것이다.

젊은 날의 하랴 켄야 식으로 우울할 사안들도 몹시 많은데, 구체적인 일상과 업무에는 뺀질거리며 잘 생각해보면 우울해야만 했을수도 있을 상황을 교묘하게 비껴가고, 어쩌다 난 많은 시간에 본 몇 편의 기사로 거대한 시대와 이념을 우울해 한다라…지금 내게 적합한 우울의 대상은 무엇일까. 혹은, 정말 진지한 대상이어야 할 시대의 우울 역시 그저 내 불면증에 *몹쓸 어뷰징*되는 있는 것은 아닐까.

푹 자고 나서도 이렇게 시대가 우울한지 다시 확인해 봐야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자야한다. <=허무한 결론-_-;;

불면증 3

잠이 가출했다. 원래도 집에 잘 붙어있던 녀석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기록적이다. 13오버. 이것이 내가 1주일동안 잔 총 시간이 아니라, 18홀 골프타수였다면ㅠ

더 황당한 건 몸 쪽 반응이다. 사람 얼굴과 같은 특수 부위에 대해서만 싹 지워버리는 선택적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잠자는 법이란 걸 아예 까먹은 것 같다. 그런 하찮은 건 원래 별로 필요하지도 않았다는 식이다. 멋대로 집 나가버린 괘씸한 녀석에게 일부러 ‘외면’이라는 방식으로 화를 내고 있는 건지, 작동능력 떨어진 늙은 노인의 치매에 가까운 상태인건지 잘 모르겠다. 처음엔 아쉬운 소리를 하며 화해를 청하는 것도 같기도 했다. 하지만, 임계치를 넘어서자 몸은 유례없는 역방향의 근성을 발휘했다. 해가 뜨면 무섭게 달렸고, 어둠 속에서는 등돌린 면벽수도자처럼 고고하게 각성을 지속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처럼.

뭉크의 절규꼴 난 건 의식 쪽이다. 처음에 저러다 꺽이겠지 룰루랄라 계산기 두드리며 쓰러질 타임재다, 예상못한 몸의 강단에 깨갱하더니 급기야 셔틀버스의 토막잠조차 거부하고, 이젠 아예 1시에 잠들었다 눈 뜨면 2시 반인 식의 단호함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질려버렸다.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연인의 갑작스런 변심에 충격과 공포를 느끼는 여인네처럼, 어찌할 바 모르는 채 양 손 뺨에 대고 아악-
.
.
.
.
흠…

??????

아니다. 틀린 것 같기도. 어쩌면 미친 폭주는 의식쪽인지도. 몸은 지쳐빠진 채로 그저 끌려다니는 건지도.

아 어쨌든지간에 .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미국에서 호출한 순백의 멜라토닌 기사가 침대맡에 찾아와 입맞춰준다면, 내 몸은 다시 이 미친 백야의 저주에서 벗어나 밤비가 뛰노는 왕자님의 성에서 포근히 잠들 수 있다는 것인가. 몸은 잠과 다시 뜨거운 화해를 하고, happily ever after할 수 있다는 것인가. 화사한 동화는 커녕 그냥 평범한 일상정도라도 감지덕지한데 말입니다. (굽신)

정말 희한하기 짝이 없는 하얀 낮과 하얀 밤이…계속되고 있다.

불면증 2

insomnia
@탄천

백야, 밤을 지배하는 빛. 여름날 과즙처럼 끈적끈적 들러붙는 끈질긴 빛의 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