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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May, 2012

첫 사랑, 마지막 사랑

# 첫 사랑 < 건축학 개론>

친구들의 머리 위로 동동 말풍선이 떠다녔다.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자기의 과거를 보고 있었다. 스크린은 각자의 과거를 비추기 위해 세워둔 거울이었다.

나에게 이 영화의 런닝 타임은 6시간을 넘어간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과 서로의 생활을 공유한다. 어려운 사정도 있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뭔가 구체적 언어나 사건사고로 풀어 내기 어려운 아쉬움의 알갱이들이 강바닥의 모래알처럼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이 때 누군가의 급작스러운 제안. “우리 < 건축학 개론> 보자~” 이미 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각자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양해을 구하고, 무리한 심야 영화 관람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영화가 끝나고서, 너무 늦었다며 싱슝생슝 택시를 잡으러 가다 결국은 에라 모르겠다, 포장마차로 발걸음을 돌려 굳이 소주잔을 기울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아한 영화 감상평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 옛날 각자의 캠퍼스 러브 스토리에 대한 침튀기는 열혈 수다로 끝을 맺은 술자리. <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는 여기까지를 포함했다. 이 부분이 더해지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 영화였다.

친구가 묻는다. “너는 누구야?” 으음. 대답은 2002년과 2012년 사이의 어딘가를 서성였다. 모든 사랑이 첫사랑이지? 그때 그때가 다 첫사랑 아니야? 기준에 따라 다르지? 무엇을 ‘처음’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등등. 하지만, 답하지 못했다. 나한텐 말이야, 첫사랑이 아니라, 첫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이야기가 < 건축학 개론>이야.

사랑이 어려웠고, 지독히 방황했고, 누구와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 그때 우리는 함께 했었고, 서로의 미숙함와 우스꽝스러움에 대한 목격자였다. 많이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밤, 영화에 아니 추억에 심취한 친구들은 잊었던 추억의 잔해들을 기워 기억의 집을 짓는다. 이 집은 매일 자고 생활하고 아이들이 웃으며 뛰노는 마이 스위트 홈은 아니지만, 가끔씩 들러 쉴 수 있는 마음의 별채같은 것. 여기 내리쬐는 햇살과 선선한 바람은 그 옛날 우리가 함께 했던 시절로부터 긴 시간을 거쳐 온다.

다음 날 한 친구의 문자.
“간밤에 집에 와서 자는 데 과거연애상대들이 총출동해 나와서…아주 피곤했다.”

ㅋㅋㅋ 건축학 개론…

# 마지막 사랑 < 은교>

자극적인 소재가 자극적인 깊이를 갖추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영화의 에너지는 소재에 휘발되어 심연의 단단한 바닥을 뚫어내지 못한다.

알면서도 굳이 극장에서 와이드 스크린으로 보기를 고집했던 이유는, 글쎄. 늙어감에 대한 나 자신의 새삼스러운 자각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나이에 무엇이 가능한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영화의 대답을 들어보고 싶었다. 아니, 하나의 가설이라도, 힌트라도 구하고 싶었다. 내가 점점 다가가고 있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낯선 세계에 대해 가지는 원초적인 질문이다.

무리였다. 이음새의 연결고리가 빠진 에피소드들은 헐겁고 노쇠한 기차처럼 덜컹덜컹 힘겹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박해일의 노인 연기는 몰입을 막아섰다. 80대 노작가의 정서적 회춘에 므흣한 미소를 보내기에도, 그 파국에 비극감을 느끼기에도 어색하다.

가장 화가 난 것은 은교를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몸이 다 드러나는 교복, 대충 걸치고 창문 닦기, 반바지 입고 침대에서 뒹굴링. 순진한 듯 아무 의도도 없다는 듯 그래서 자극하는 행동들. 너무 빤해서 화가 났고, 그러기엔 은교가 너무 총명해서 화났다. 대작과와 교감할 수 있는 예민한 은교와 포르노 주인공처럼 무심한듯 질펀한 은교 사이에서 갈팡질팡…

소문난 야한 씬들. 야하지 않았다. 야한 건 행위가 아니라 욕망의 컨텍스트…도중에 길을 놓친 관객에겐 생뚱맞게 펼쳐지는 살색씬일 뿐. 그 타임에 왜 갑자기 지하실로 내려가야 되는 거니, 은교야. ㅠ

김고은이라는 배우의 미래가 궁금하긴 하다. 역대로 로리타 역을 맡은 배우는 망하고 만다는 징크스가 있다. 애드리안 라인 감독님의 로리타는 팔다리 길고 징글맞은 아이여서 배우로서 별 기대가 되지 않았고, 제레미 아이언스가 아까울 지경이었지만, 큐브릭 감독님의 로리타였던 뾰족턱 금발머리 수 라이언은 매력덩어리였다. 수려한 꽃중년 제레미 아이언스와는 달리, 제임스 메이슨은 진짜 동네 아저씨스러워서 그 애욕이 더욱 기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쨌든 로리타 배역을 맡은 두 배우는 모두 배우로서 실패했고, 로리타는 아니지만 또 하나의 로리타스러운 상황인 < 연인(L'amant)>의 여주였던 제인 마치도 비슷한 길을 갔다. 김고은이 그 징크스를 깰까.

아쉬운 마음에, 나보코브의 < 로리타>를 펼쳐 들었는데, 험버트의 이 말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왜 갑자기 슬퍼졌을까…잘 알게 되면 미워할 수 없다. 나보코브는 너무 집요하게 묘사해서, 너무 잘 알게 만들었고, 그래서 절대로 험버트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어떤 상상초월 금기의 선을 넘더라도, 마음의 한 갈피가 닿게 되는 것이다. 그런 예리한 구체성을 < 은교>에게서는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러한 구체성 속에서만 인간은 또 이야기는 선와 악, 정상과 비정상의 클리쉐를 뛰어넘는 것 아닐까. 80대 노인이 10대 소녀에 품는 기묘한 욕정까지도.

희한하고도 즐거운 동거생활을 나와 함께 해오는 동안, 가장 비참한 형태의 가정생활이라 할지라도 소위 근친상간 – 결국, 집 없는 아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이었지만 – 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하는 사실을 나의 로리타가 점점 명확하게 깨닫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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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렇게 두 편의 영화. 한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게 하고, 한 영화는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힘 빠진 청춘과 회춘한 노인네. 둘 다 참 딱할 정도로 서투르다는 공통점이 있다. 첫 사랑이든 마지막 사랑이든, 그렇게 서투르다가 엇갈려 가는 게 인생인가보다. 너도 그랬고, 나도 그랬지. 간만의 블로그에 결론이 왜 이래-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