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남양군도의 외딴 섬에 고립돼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서양 여자의 입체 누드사진을 들여다보는 한 젊은 병사의 심리에 대한 추측에서 시작됐다. 그 입체 누드사진은 현실보다도 더 생생한 환상을 그에게 보여줬을 거라면서, 나는 고립된 사람들에게 현실이 한순간 뒤흔들리면서 그보다 더 생생한 환상이 나타나는 건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떠들어댔다. 제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현실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므로. 인간은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감각이 바뀌면서 현실이 무르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기 마련인데, 이를 두고 십자가의 성 요한은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이라고 불렀다. 모든 성인(聖人)들은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해 그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현실이 오직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다. 하지만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을 경험한 그 다음 순간, 모든 성인들은 감각적 현실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지 깨닫게 된다. 현실이 감각적으로만 성립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모든 게 덧없을 뿐이라는 허무주의에 빠져야 할 텐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더욱더 그 감각적인 생생함을 즐기게 되니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 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최상의 행복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바로 실망했으면서도 다섯 번 줄기차게 찍으며 일본이, 동경이 좋아진다 좋아졌다…
나이가 드니 역시 좋은 게 좋은 거고, 좋은 걸 누릴 줄 알게 되어가는 구나.. 생각했지만
방콕에 와 보니, 아 여기는 내가 사랑하는 곳이다.
인생에서 배우는 것도 좋고 누리는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것이 젤로 좋구나.
남자가 아니라 한 도시를 통해 느낀다.
# 태국에서 머리올리기
처음 와 본 수완나폼 공항.
어색했다.
거대하고 깔끔해서. 내가 좋아하는 태국의 냄새가 안 나서.
처음 와 본 골프장
파타야 근처 크리스탈베이 CC
골프장이란 게 이런 거구나.
이 넓디 넓은 데 쬐그만 구멍 하나 뚫어놓구 공 넣는 거.
왜 굳이 그런 걸 해야 하는지, 잘 이해는 안되는 전제였다.
골프는 마음을 볼 수 있는 경기라는데.
쎈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도
물 앞에서는 꼭 한 두 클럽씩 길게 잡아야 생각한 거리만큼 나간다.
스윙은 그만큼 솔직하게 내 마음을 드러낸다.
욕망과 두려움을.
그런 점은 좋았다.
물론 클럽에 공이 맞는 경우에만. –;;
하체만 박세리
4일간 5번의 라운딩.
그래도 Par~도 한 번 했다는 거. 보기도 몇 번.
파 3 홀에서는 원 온도 시켰고, 드라이버로 나름 장타도 날려봤고
우드로 공을 저 멀리 띄워보기도 했다.
겨우 비행기값을 모아 모아 한 번씩 다녀 갔던 이 곳에서
이젠 이런 걸 하고 있네~
좀 먹구 살만해졌다구, 그 옛날 어려웠던 시절 피를 나눈 친구와 멀어진 느낌.
그래서였을까?
낡은 썽테우에 홀로 실려
떠나면서야 오히려 편해지던 마음.
신기한 골프 체험.
# Chaotic Khaosan Night, that I LOVE
방콕으로 향해가는 두 어시간 버스 속에서야 비로소
내 자신으로 돌아가는 느낌.
카오산의 밤이다.
참말 정신없어진 곳.
그래도 무질서 속에서 불꽃처럼 이는 생기에
마음이 환해지는 곳.
라이브 클럽들이 많아졌다.
저 위에 옥상 라이브 클럽.
밤마다 노랫소리와 박수 소리, 사람들의 함성이 흘러나와 나를 유혹했다.
노래부르는 아이들
그냥 메인 로드만 걸어다녀도 볼 거리, 할 거리가 가득하다.
아쉬운 점은
나와 친한 길거리 화가 친구들이 죄다 메인 로드에서 쫓겨났다는 거.
예전에는 상점들이 밤이면 문을 닫아 그 앞에서 좌판을 깔 수 있었는데
이젠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술집과 상점들로 바뀌어
더 이상 그림을 놓고 팔 데가 없어졌단다.
내가 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는
라이브다.
예전에는 카오산에 이런 게 별로 없어서
라이브 들으려면 시내 나가야 했는데
이제 카오산은 이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만족시켜주는 원스톱 솔루션이 되어버렸다.
마사지, 라이브, 쇼핑, 레스토랑, 숙식 …..에 이르기까지
꽤 고급의 솔루션들이 들어차있다.
내가 죽쳤던 바는 < 사바이 사바이>
태국말로 easy easy 라는 뜻이라고 한다.
동남아틱 하게 생겨주셨지만
기가 막힌 기타와 노래를 들려주었던 친구.
라이브 끝나고 길거리 배회하다 우연히 마주쳤다.
룸피니 공원 근처의 Ad Maker에서도 연주를 한다는데, 일정이 꼬여서 못 들으러갔다.
대신 사바이에서의 다른 공연 한 장면~
록 밴드인데 ..음 역시 좋다.
걸걸한 목소리의 칼잇수마 리드싱어 오빠는
너무도 진부한 유진이의 신청곡 It’s my Life도 불러주셨다~
흐흐흐
손에 힘줄 잡히는 거 봐.
4일 동안 골프에 매진한 결과다.
지금은 뭐…다 풀려버렸지만.
# Original Painting on Khaosan Rd.
그리고 꼭 들려야만 하는 이 곳.
버드네 가게 Original Painting
세 친구가 합작을 해서 낸 가게라고했다.
바로 조 게스트하우스 뒷골목이다.
익숙한 친구들의 그림이 이젠 제법 그럴 듯한 shop에 전시되어 있다.
아직 20대였던 시절 맨 처음 버드를 만났을 때
맨 처음 버드가 지금 보다 훨씬 못하는 영어로 나에게 떠듬떠듬 했던 말.
I want to be an artist.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가끔씩 버드에게 묻는다.
– Are you an artist now?
그의 대답은
– I don’t know.
이번엔 이렇게 물었다.
– So, what’s your dream?
그의 대답은
– Now, I just want to protect my shop.
세월이 흘러…이제 넌 지키고 싶은 걸 만들었구나.
그에게 질문하지만 결국 늘 난 나 자신에게 묻고 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늘 내가 갈 길을 생각하게 한다.
이름 좋다~
Fake가 아닌 Original.
그래두, 얘들 노는 건 3년 전이나 5년 전이나 왜 이리 똑 같냐.
저눔의 장기말야.
# 밤 새 노는 건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
룸피니 공원 근처 야시장
너른 비어 가든에서 끝내주는 라이브를 들으며 맥주를 마실 수 있다.
귀에 익은 팝들을 타고난 탤런트의 춤과 음악으로
별 재창조에의 집착도 없이 쉽게쉽게 들려주는 전형적인 동남아스탈 라이브.
대단한 예술성도 아니건만…난 그 음악에서 느껴지는 참을 수 없이 가볍고 명랑한 세계관이 너무 좋다.
예술에의 집착 없이 마구 샘솟는 탤런트가 좋다.
방콕 라이브바의 아쉬운 점은 대개 2시면 끝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찾아간 방쿤폼(Bangkunpom)
카오산에서 뚝뚝이를 타고 한 10분쯤 가면 된다.
외국인 하나 없이 진짜 태국 애들이 와서 밤 새 술 먹고 노는 곳.
그래서 허접하지만, 또 그래서 오리지널하다.
술도 먹고 당구도 치고 가라오케도 부르는데.
따로 룸이 있는 게 아니라 넓은 홀의 여기저기에 모니터가 달려있고
예약 순서대로 돌아가며 한 명씩 노래를 부른다.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오픈형 홀방식이다.
아무도 눈치 안 보고 혼자서 신나게 노래부르고
다른 애들은 즐겁게 듣는다.
ROSO의 자이쌍마를 신청했더니 애들이 신기해 하더군. 어떻게 아냐고. ㅋ
다들 함께 따라불렀다~ 물론 나는 자이쌍마~ 그 부분만.
들어봅시다. 로소의 명곡 자이쌍마.# 방콕의 스케치
낡은 가판의 비디오 테이프
버스나 전철에 노란 옷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엔 무슨 아시안 게임 단체 자원 봉사자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국왕의 생일을 기념해 매 주 월요일 그리고 가급적 다른 날도 노란옷을 많이 입는단다.
대단하신 저 royalty.
백화점 매장에도 노란 옷들이 그득그득.
엘르 매장이라는 거. –;;
대규모 쇼핑 센터 씨암 파라곤 지하의 레스토랑
튀긴게를 곁들인 쏨땀
원래 누들은 없었는데 특별 주문해서 맛있게도 얌얌~
결과는 늘..
너무너무 맛있는 거였다. 음음.
이런 데서 혼자 밥먹는 거 너무 익숙하다.
좋은 현상일까?
한국에서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왠지 어색하다.
아니면 내 나라이기 때문?
# 카오산의 낮과 밤
다시 카오산으로
개난장판 BrickBar
형용 불가. 그냥 개판이라고 보면 된다.
마구 춤추고 노래하고 정신없다.
일탈 직전의 여인
논스모커의 겉멋샷 —;;;
개난장판 조금 맛보기
라이브에서는 특히 집시 바이올린 같은 거 하는 애가 인상적
또 다른 모습의 낮의 카오산
제법 깔끔하신!
버드 그림이 걸려 있는
카오산 뒷골목의 인도식 라니 레스토랑
밥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여전히 그리는 버드
나는 여전히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까?
MAMA always makes the BEST FOOD
드러워 보이지만
맛은 최고
태국에서의 last but best meal.
밤마다 웃으며 맥주를 서빙해 주었던 사바이 사바이의 친구들
멀끔하신 오른쪽 분이 탄군
꽁지머리 액, 수더분하고 붙임성 좋은 니.
그리고 공항으로 떠날 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너무너무 가기 싫어서 잔뜩 맥주를 마시고 퉁퉁 얼굴이 뿔어버린 나.
그래도 오고야 마는….
떠나야 할 시간
비행기 타지 말아버릴까. 수없이 생각했다.
tax refund도 받고 해서 바트화가 꽤 남았는데
면세점에서 아무 것도 사지 않고 그대로 들고 왔다.
바트화를 남겨와야만 다시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거라는 약속같은 거라도 받아두고 싶었다. 나 자신에게서라도.
정신없고 힘들고 마구 꼬여버린 일정.
최악이었어.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빠른 시일내 꼭 다시 와야 겠다고 마음먹게 된 일곱 번 째 방콕행.
시계가 걸려있지 않은 극장이나 백화점처럼
그런 곳에서 한 시절을 보내며, 가짜라도 잠시라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올까?
망가진 내 몸이 그 허름한 먼지투성이 정류장에 떨궈지면
너는 나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거기 오래된 우리상회 평상에 운명처럼 앉아있을테냐.
그럴 가능성만큼이나 믿어지지 않는 디테일들로 가득해서 불편했고
그 불편함만큼이나 그럴 가능성을 전혀 믿고 있지 않음을 확인해 안도하게 했던,
신파 일보직전의 인생 막장 교훈극
필드 나갈 형편이 못 되는 목마른 골퍼들이 좁은 방 스크린 앞에 모여
광활한 필드를 상상하며 스윙을 휘두르듯
바짝바짝 메말라 버린 가슴의 30대 건어물女 역시 스크린 앞에 앉아
저 먼 지평선을 너머로부터 다가오는 한 남자를 꿈꾸며 귀찮은 연애를 대신한다.
두 번째 세 번째가 있을랑가는 모르것지만
여하튼 그 첫 번째 남자, 하비에르 바르뎀(Javier Bardem). 그리고 그 남자의 하체 수난기.
뜨거운 태양으로 쩍쩍 갈라진 사막 바닥을 붉은 망토로 쓸어 내리며
반바지를 걸친 스물 두 살의 남자가 투우 연습을 하고 있다.
“난 최고의 투우사가 될거야”
하지만 이 순간 카메라가 클로즈업 하는 것은 터질 듯 탱탱한, 그의 두 다리 사이.
자전거를 끌며 소 역할을 해 주던 친구는 무심히 대꾸한다.
“넌 이걸로 더 유명해 질거야.”
이 남자는 정말로 유명해진다. 유명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발탁될 정도로.
하지만 맨 처음 그를 훑었던 카메라의 시선처럼
영화 속 광고판 역시 이 남자의 젊은 야심대신, 유난히 발달한 멋드러진 턱관절 대신
얼굴도 이름도 없는 그의 거대한 하체만을 클로즈업 하고 있다.
En tu interior, hay un sanson
당신의 내면에 삼손이 있다.
황폐하고 뜨거운 사막 가운데 우뚝 솟아있던 거대한 광고판처럼
그 존재감만으로도 가슴에 지울 수 없는 각인을 남기며
말이나 스타일보다는 직관으로 파고드는 남자.
결국 그는 자신의 소원대로 투우사가 된다.
좀 더 정확히는 망또 대신 하체를 흔들며, 소 대신 여자들을 잡는 투녀사(?)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같은 매춘부를 사랑하는 아빠와 아들,
여자를 아들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아들의 여자에게 붙인 남자를 탐욕하게 되는 엄마,
애인의 아이를 임신하고서 지고 지순하게 그와의 결혼을 꿈꾸다, 육체의 유혹에 못 이겨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관능적인 젊은 처자,
한 점의 어색함도 없이 마치 그것이 자신의 의무인양 딸의 애인에게 탐스런 가슴을 내밀고 환타지를 부추키는 엄마 등.
몇 나오지도 않은 인물들 간에 종잡을 수 없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짝짓기의 중심에도 그의 하체가 있다.
콩가루의 진수를 보여주는 내용과는 달리 화면 가득히 흐르던 서정적인 주제곡이 마음에 촉촉히 젖어 들었던 하몽 하몽(Jamon Jamon)이다.
남자건 여자건 난 스페인 배우들을 좋아한다. 여자들은 정말 여자 같고, 남자들은 정말 남자 같다.
하비에르 바르뎀 역시 다른 그 무엇보다 ‘남자’라는 느낌을 확 뿜어내는 스페인 종마.
처음부터 ‘색골’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겼던 이 남자를 처음 만났던 영화는 라이브 프레쉬(Carne Tremula)
여기서 그는 부자집 초날라리 기집애 하나를 구하려다,
‘하필이면’ 그 국보급 하체에 총에 맞아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는 의협심 강한 형사로 나온다.
결국 남성성의 이면의 얼굴은 ‘남자다움’이 아니던가. 또 다른 의미에서 여자를 구원하는.
영화는 몇 년 후로 넘어가 불구가 되어 휠체어 장애인 농구 경기에서 맹활약하는 그를 보여준다.
팀이 승리를 거두자 축배의 샴페인을 터트리며 기뻐하고,
그 초날라리 부자집 딸은 더 이상 우아할 수 없는 요조숙녀 현모양처로 180도 변신해 그의 옆에서 기쁨을 함께 한다.
심지어 그는 휠체어를 탄 채로도 아무 문제 없이 반토막난 높이에서 아내와 열렬한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장애라는 불운이 우리 모두가 갈구하는 생의 진정한 사랑과 기쁨으로 화학변화했다고 섣불리 결론 내린다면
그것은 우리의 알모도바르씨를 띄엄띄엄 보는 행위일 것이다.
결국 그렇게 생의 대변신을 겪었던 여자는 자신을 집요하게 갈구하는 신체 튼실한 다른 영계남과의 하룻밤에 홀라당 넘어간다.
그리고 아침에 들어와서 남편한테 한다는 말이 이거다.
“밤새 했어요. 너무 좋아서…울었어요.”
순도 100%의 솔직함이 사랑하는 이를 산산조각 내는 직격탄으로 돌변하는 이 결론에는 어떤 윤리적 합리화도 없다.
그냥 휠체어 탄 놈만 억울하다. 바로 이것이 그토록 욕먹는 본능지상주의 알모도바르식.
나를 홀딱 빠지게 했던 내 인생 최고의 영화, 내가 본 첫 번째 알모도바르다.
그러한 이중, 삼중고를 겪어냈던 그의 하체에 이번에는 아주 제대로 마비가 걸렸다.
오픈 유어 아이즈란 굉장한 영화로 동갑내기의 자존심을 자극했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씨 인사이드(Mar Adentro)
이 영화에서는 오프닝부터 아예 침대다.
온갖 여자들을 홀렸던 그 침대에서 이제 그는 여자들 시중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무기력한 전신마비 노친네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설정 탓에 영화는 내내 각종 베드신(??)을 펼쳐 보이며 ‘자신의 생명을 종료할 권리’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지만
그보다 난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배우의 매력에 대해 다시금 눈뜨게 되었다.
평생을 침대에 묶어있어야 하는 대머리 중년 남자가…얼마만큼 매력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육체가 아닌 attitude에서 발산되는 매력. 그러나 이 매력의 근원에도 변치 않은 중량의 그의 남성 호르몬이 있다.
결국 씨 인사이드에서 바르뎀 연기의 절정은 온 몸으로 발광되어야 할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고작 입으로 나불거릴 수 밖에 없을 때의 절망감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집에 가는 언니를 꼬시려 흙먼지를 날리며 야마하 600을 타고 그 길을 수 십 번 왕복해도,
휠체어에 앉아 골대를 향해 슛을 쏴도, 무기력하게 전신마비로 묶여있는 침대에서도
이퀄라이저의 바늘을 끝까지 치솟게 하게 하는 그 안의 에너지 레벨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수난 일로였던 그의 하체의 역사와는 달리 이제 하비에르 바르뎀은
그저 튼실한 스페인판 변강쇠에서 스크린 속에 우뚝 서 깊은 눈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진짜 연기자로 거듭나고 있다.
돈내고 영화표까지 사서 극장에 들어간 내가 스크린 속 그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 속 그의 시선이 나를 관통해, 세상만사 귀찮은 건어물女에게까지도 짜릿함이라는 잊혀진 그 무엇을 다시 경험하게 하는.
그의 하체가 수난을 거듭할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에너지를 표현하는 그의 연기는
더욱 복잡다단하게 심연으로 켜켜이 그 층위를 더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