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Travel

[2005년 5월] 유진이의 여섯 번째 태국 여행기 : Same Same Different

2005년 6월 5일 저녁,
어두운 코사멧 핫프랏께우의 드넓은 해변에 누워 있었다.

낮의 열기를 머금은 따뜻한 파도가
하얀 거품을 만들며 가슴까지 밀려올라왔다 저 멀리 쓸려내려가고
하늘에는 쏟아질 듯 가득한 별들.

가슴을 씻어내리는 깨끗한 파도 소리 사이로
조그만 속삭임이 들려왔다.
“책을 써야지-”
작은 소리였지만 그 말이 들려오자 다른 복잡한 생각들은 모두 사라져서 기분 참 좋았고
그게 그 책의 시작이었다.

이젠 힘들던 시간도 지났고, 책도 나왔고,
그 책을 썼다는 사실조차도 멀어졌는데.

2년 만에 다시 추억해 본다.
영원히 태국을 그립게 만들 그 시간들.

[2005년 5월] 유진이의 여섯 번째 태국 여행기 : Same Same Different

Categories유진이의 여행기포토 아카이브

[2005년 5월] 유진이의 여섯 번째 태국 여행기 : Same Same Different

여섯 번 째 태국 – 2005. 6. 4 Saturday ~6.10 Friday

또 왔다.
비행기 문을 나가자 확 다가오는 뜨거운 열기
이국적인 열대의 향.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나를 맨 처음 반겨주는
저 낯설고도 반가운 형이상학(?!) 문자들.

# 팟퐁 – 다시 이 거리에

호텔문을 나서 팟퐁으로 직행한다.
팁탑에서 밥을 먹고, 라디오 시티에 가기 위해서.

한 2주? 매일 새벽마다 여기서 밥을 먹었던 적이 있더란다.
메뉴를 고를 줄 몰라 옆에 서 있던 무표정한 땅달보 웨이터 아저씨에게
어설프게 recommend만 외쳤었지.
그때마다 그 아저씨 군말도 없이, 주저도 없이
메뉴판 어느 한 줄을 지목했었다.

그 카리스마 압도되어 난 아무런 토도 달지 못하고
네네~하는 눈웃음을 지으며 음식을 기다렸지.
그 다음 아저씨가 들고온 음식은 언제나 최고였어.
아저씨는 매일 다른 메뉴를 지목해 주었고
매일 새벽 반복되는 그 무언의 공감대 때문에 난 하루도 여길 거를 수가 없었어.
많이 돌아다녔고, 음악과 싱하에 잔뜩 취해있었고, 마음은 들떠 있었어.
그런 기분이라면 무엇을 줘도 맛있게 먹었겠지만,
아저씨가 골라준 메뉴들은 한번도 빗나가지 않고
그런 내 기분을 몇 배쯤 업시켜 주었지.

꼭 그 때가 나의 어린 시절같다.

그래, 그리 대단한 식당은 아냐.
내 마음을 쑥 자라게 했던 시간들과 함께 했던…나에겐 눈물과 웃음의 팁탑.


이 동네는 여전하구나.
밤을 밝히는 제멋대로 걸려있는 형광등…


요상스런 문자와


더 요상스런 언니들


그리고 변함없는 라디오 시티
엘비스, 탐 존스, 보스 밴드까지


왜 이 곳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걸까.

스무 살 후반 내 마음을 훌쩍 자라게 해 버린 이 곳,
이 동네 속으로, 다시 왔다.

눈물을 거두고 웃음도 지우고
아무 것에도 설레어 하지 않는 이런 재미없는 모양으로 다시 와버렸네.

# 나의 첫 번째 방콕 탈출 : 코사멧 핫 프라케우 – RELAX

여섯 번째 만에 처음이다. 태국에서의 탈방콕!
걍, 쉬고 싶었다.

코사멧 가는길


시작은 에카마이


에카마이에서 반페로


반페에서 배타고 코사멧으로


코사멧에서 핫프라케우로
핫프라케우는 White Sand Beach, 하얀 모래비치라는 뜻이란다.


썽테우도 안타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
아저씨 전신 문신의 포스가…그런데 만드시는 솜길은 섬세하기만 하다.

핫프라케우에 도착하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꽉 잠근 틈새까지 스며들어 트렁크안까지 수북히 쌓이는
밀가루처럼 고운 입자의 모래와


무지개

숙소도 정하지 않고 그대로 백사장에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게 했던 무지개.
고맙다는 느낌이었다.
마음을 찌르는, 이런 식의 환영. :-)

숙소를 잡자마자 주저없이 벗어(?!) 제치고 물 속으로 풍덩~
별로인 수영 솜씨지만 그래도 헤엄은 좀 쳐지더라.
낮동안 햇볕을 가득 머금고 따땃한 온기를 전해주는 물 속에서
굳은 마음도 스르륵 풀여가가는 것을 느끼고

기분 이빠이 좋아져서 머리도 홱 따고
해변 맛사지도 받았다.

수영 하다가 백사장으로 나와 쉬고 있으면
돗자리 하나씩 든 아줌마들이 “맛사~ 맛사~”하고 외치고들 다니신다.
그러다 눈맞으면 바로 그 자리에 돗자리 까는데
내가 할 일이라고는 그 위에 쭉 펴고 누웠다가 끝나면 지갑에서 한 200 바트 꺼내 쥐어드리는 거다.

코사멧표 즉석 해변 오일 마사지의 가장 놀라운 점이라면
백사장에서 날라온 미세한 모래 입자들이 오일과 섞여
뭔가 말할 수 없이 까끌까끌 야시시한 100% 샌드 스크럽 오르가즘 효과를 만든다는 것이다.
해질녘 저 멀리 석양이 내리고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 불어와 몸을 간지르는데
철석 철석 파도소리는 귀에서 그치지 않고.
아무리 고급이라도 도저히 스파라던가 이런 데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경지.

몸의 회복이 마음의 평화를 부르는가.
해변에 쭉 뻗어버린 그 행복한 가수면 상태에서…체험했다.
뭔가 조금씩 돌아와서 채워지는 느낌.

그때 난 돗자리 위에 누운 게 아니었다.
쓰러진 거였다.
간신히 간신히 여기까지 기어와서.


코사멧 해변의 밤.
저 먼 코리아에서부터 혼자 여기까지 찾아 기어들어온
솔로부대 여행자를 위한 차려진 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만
그래도 무작정 이 대열에 끼어 본다.
사랑해 마지않는 싱하와 어설픈(!!!) 씨푸드…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밤바다.


솔로부대원들의 만행은 여기서도 계속되지만

난 거기에 눈길을 주거나 질투를 할 새도 없었다.
그 때 난 알모도바르라는 남잔지 여잔지에 푹 빠져 있었거든.


해변의 아침

대략 2km쯤 되어 보이는 이 기다란 해변의 아침 산책.
한국만 뜨면 몇 배는 심해지는 선천적 야행성 기질에 있어 유일하게 예외였던 이 곳.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버릴 만큼 아름다운 코스였다.


ㅋㅋ


완전 어울려X3 …ㅋㅋㅋ


해변의 연인

코사멧은 연인들을 위한 공간이다.
이틀동안 아무리 둘러봐도 혼자는 나뿐이다.


하지만 그런 저런 사정을 따질 필요는 없다.
이런 햇빛 찬란한 여유 앞에서~


Relax…


편안해 보여.
이 동네에선 개들마저 죄다 퍼지고

수영하다 들어와서 책읽다
책읽다 또 가서 수영하다
이것만 반복해도 더할 수 없이 행복하지만.


그래도 드러나는 관광 본색!
스쿠버라는 일정을 우겨 넣어본다.


다이버 유진


스쿠버를 하고 말겠노라는 유진이의 땡깡에 어쩔 수 없이 착출된 세 남자
정말 표정에서부터, 돈때문에 마지 못해 이러고 있다는 강한 불만의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유진이의 첫 번째 스쿠버는 성공~!!
무려 수심 10m까지…

어두운 바다 속에 펼쳐진 신기한 세상 보면서
음 그래 사무실의 네모칸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입증.

하지만 스쿠버 끝나고 튜브에 몸을 맡긴 채
해맑은 초록빛 바다에 둥실둥실 떠서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던 순간이 더 감동적이었다.
전갈자리 유진이는 물이 좋다~

# 다시 방콕 : 몸과 입과 귀의 쾌락

그렇게 이박삼일 분의 도끼 자루를 부식시킨 후..다시 방콕으로 오는 길


꽉꽉 막힌 월탯 앞 사거리 교통도 여전하고


화려한 도시 뒷편, 태국 사람들의 비루한 삶도 여전하고


대형 광고판 속에서 그들의 욕망을 관음하는 나도 여전하다.
태국 남자의 로망이란 이런 걸까?


비잉 스파 (Being Spa)
연못 주변으로 스파룸이 빙 둘러져 있다


장장 다섯 시간 반짜리 스파.
내 언제 이런 호사 누려보랴


태국이기 가능한 일


이런 또 다른 스파도

맛있는 것도 빼 놓을 수 없지.


랏차다 쏘이 12(씹썽), 랏차다 스윗 호텔에서 쫌만 걸어가면 보이는 꾸앙 씨푸드
분위기는 실외 포장마찬데, 관광객이 아니라 진짜 방콕사람들 와서 외식하고 가는 데란다.


핫 팬 오이스터…T_T (생각만 해도 눈물이..)
입안에서 톡톡 씹히는 탱글탱글 살아있는 굴 속살들…


한국식 사이비 똠얌쿵 말구…지대로 스파이시한 원단 똠얌쿵~


이것도 한국식 뿌팟 뽕 커리 아닌 제대로 뿅가리~
이 집의 대표메뉴.
토실토실한 게 살들과 오묘한 소스의 만남…직접 가서 먹기 전에는 상상 불허.
윽윽…….


메뉴 하나하나 이루 말할 수 없이 너무너무 맛있는 것이다!


이제는 가이드 라이프 접으시고
방콕의 유수 필드를 주름잡는 진정한 프로로 거듭나신 나락님.
연락을 드리건 안 드리건 언제나 마음 속으로 의지하고 있는
유진이의 듬직한 방콕의 기둥서방(?????)님 ^^;;

이런 맛있는 음식은 물론
언제나 유진이가 그릇된 환락의 길로 빠지지 않을까 불철주야 모니터링
늘,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여행 사진에서 패턴화 되어버린 …유진이가 쓸고간 테이블


방콕가면 한 번은 꼭 들리는 아눅사왈리의 색소폰(SAXOPHONE)
변함없이 좋은 음악. 쿨한 친구들.
Aron Jazz Band.
몇 명은 남아있어 반가웠다.

거부할 수 없는 쾌락이 가득가득
방콕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유.

모든 것이 변한다는데…언젠가는 몸이 느끼는 이 쾌락마저도 변할까?
아마도 그때는 방콕이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이리라.

# 다시 카오산 : Same Same Different


그리고 카오산


이게 머야~
너무 변해 있었다. 속상할 만큼.


60바트 짜리 칵테일 수레는 그나마 애교

정신없고 복잡하고 돈만 밝히는 비싼 카오산.
이제 드디어 카오산을 뜰 때가 된걸까.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예고도 없이 찾아간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래는 버드와


그림은 변해도, 여전히 변치않는 버드의 소들


이 거리를 지키는 친구들.
그리고 저 놈의 장기.

다시 조금씩 되찾는다.
아직 나에겐 카오산에 다시 와야할 이유.
변해도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 속에서.
그 변하지 않은 것들이 변해가는 것들에마저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는 것.


북적거리는 것도 잠시


함께 모여 있는 것도 잠시


결국 모두들 흩어져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그 정신없는 카오산에서도.

이제 나 역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 안녕, 스타벅스 카오산


현란한 전광판


그 골목 사이 꼭꼭 숨어있는 스타벅스 카오산

동경에서 버드 만났을 때
꼭 와보리라 결심했었던,
동경 한 가운데서 방콕을 너무도 많이 그리워하게 만들었던 스타벅스 카오산


Room….
스타벅스라는 게 태국에선 이럴 수도 있다.
쾌락에 관한한 탁월한 DNA


2층 전시실.

버드, 여기 언젠가 너의 그림을 전시하겠다고 했었잖아.
그 날은 언제 올까.
그 때 내가 여기 올 수 있을까.

어라.
어느 새 마음은 이 여행을 시작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을 묻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행이란 것.
다른 질문을 하게 해 준것만으로도.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 답을 상상하게 해 준 시간만으로도.

그리고……이 것.


내내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정신없이 줄을 치고 별표를 치면서
페이지들이 넘어가고
가슴은 쿵쾅쿵쾅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태국에서
난 처음으로 태국보다 더 황홀한 것에 중독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방콕에서 방콕보다 더 좋은 게 생겼다.

그 날의 메모
센티멘탈 대폭발~!
이 정도면 감성은 뭐 20대 못지 않다 –;;;

이 책을 스무살에 읽었다면 이 책은 내 인생의 바이블이 되었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운명의 수퍼 에잇을 찾았을 것이다. 카뮈보다도 겐지보다도 난 알모도바르 캠프에서 청춘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이젠 너무 늦었다…나는 눈물이 날 것도 같고, 웃음이 날 것도 같다. 수퍼 에잇이 없다. 나는 아직 8mm도 완성을 못했다. 주말은 너무 피곤하다. 대신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본다. 그가 내게 화장을 해 줬으면 좋겠다. 금발 가발을 뒤집어 쓰고. 입술엔 초록색 립스틱을 칠하고, 새빨간 누나가 되어 그에게 팔베게를 해 주고, 그가 지어낸 거짓말을 들으며 온 밤을 깔깔거리고 싶다. 짓무른 웃음이 빛을 막아내는, 밤이 지나도 아침이 오지 않는 그런 길고 긴 밤을.

집에 오자마자 알모도씨의 DVD를 다 사고
그의 전작을 감상하고, 리뷰를 쓰겠노라고 결심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대신 난 아주 오랫동안 동굴에 틀여박혀 책을 써야만 했다.

그래도 그때 그 여행이 있어
책을 쓰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고
알모도바르씨에 한껏 삘이 받아
뭔가를 해보겠다는 열정도 되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제까지나 나에게 태국은 그대로 일거라 생각했는데
달라진 것을 더 많이 느꼈고
그래도 여전히 같은 것들이 남아 있어서
다시 변해버린 것들에 적응하며, 새로운 기쁨을 찾았던 시간.

덫에 걸려 넘어진 듯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던 순간,
종교를 찾듯 본능으로 기어갔던 2005년 태국의 스케치다.

Categories유진이의 여행기포토 아카이브

[2007.4] 5th 일본 여행 (3) – 대정전의 밤

Day3 – 2007. 4 29 Sunday ~5.1 Tuesday

한 점에 서면 다른 두 점을 다 볼 수 있어 좋은
트라이앵글.

어떤 쪽으로든 갈 수 있지만 결국 어디로도 갈 수 없어
빙빙 제자리를 돌게하는 난감한 도형

# 록본기 아트 트라이앵글 (5) – 모리 미술관 :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술관

늦은 밤 고대하던 록본기 힐스에 도착했는데~
까딱까딱하던 배터리님이 드디어 수명을 다하시…남기신 것이라곤 달랑 이거 한 장.

하루 종일 쇼핑할 것 먹을 것으로 가득 찬 록본기 힐스를 돌아 보셨군요.
돈을 쓰고 배도 부르고 혀도 만족하고 양 손에 쇼핑백 가득하네요.

하지만 또 다시 어둠이 내려
마음은 보잘 것 없는 사냥꾼이 되어 오갈데 없이 헤메인다면

바로 지금이예요.
천국으로 더 가까이 가야할 시간.

360도로 둘러싼 통유리 환상적인 도쿄의 야경을 관람할 수 있는 모리타워 전망대.
홈페이지

그 앞에서 서면
아무리 예상했다 하더라도 그 예상을 넘어서는 전경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거기 조그맣게 불밝힌 도쿄타워가 눈에 들어 올 것이다.
그 순간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당신 마음에 가장 깊이 박힌, 바로 그 사람이다.

숨기고 숨겼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만드는 그 곳,
아무런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모리 전망대.

그리고…한 층만 더 총총히 올라가면 바로 이어지는
280m 높이 맨 꼭대기 층…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술관, 모리 미술관.

밤 10시까지도 열어주시는 센스까지…좋았다!
(휴일은 12시까지라는데…이거 완전 딱 내 취향)
공중에 발을 디디고 < 일본의 웃음전>을 보라.

놀라웠다. 그 규모와 기획력.

반은 일본 미술에서 찾은 미소라는 모티브
The Smile in Japanese Art : From the Jomon period to the Early Twentieth Century

나머지 반은 컨템포러리 미술에서의 웃음의 해석
All about Laughter : Humor in comtemporary art


포스터에서는 과거 쪽을 모던하고 추상적으로,
현대 미술을 오히려 고색창연하게…거꾸로 시각화했다.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전력을 다해 흡수해 봤지만
봐도 봐도 끝이 없어 그 무차별 융단 폭격식 컬렉션 앞에
디스크와 메모리 용량의 한계를 느끼며 백기 펄럭~

컨텐츠에 관련한 한 정점을 경험한 기분.

사진은 못 찍었어도 잊지 않겠다.
그 수 많은 작품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놓여있었는지.

# 록본기 아트 트라이앵글 (6) – 국립 신미술관 : 정공의 아우라

마지막 코스는 기대도 하지 않았던 국립 신미술관
근데 저기, 건물 휜 것 좀 봐.
예사롭지 않지?

두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모네전과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내가 매표소 앞에서 주저주저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할머니가 내게 다가오시더니
알 수 없는 일본어 한 마디를 하시며 내 손에 뭔가를 쥐어주고 총총히 사라지시는 거였다.

표였다.

처음엔 표인지도 몰랐다. 그냥 무슨 찌라시 같은 것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림을 대조해 보니 모네전 말고 또 하나 그거 포스터랑 똑같이 생긴 걸 보고 혹시 표인가 했다.

그래도 미심쩍었는데 나중에 전시실 입구에서 표를 내니 들여보내주는 걸 보고 표인줄 알았다.
무슨 전시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는데 시작부터 떡하니 걸려있는 만 레이
이어 팔자에 없는 피카소, 샤갈, 모딜리아니까지…
나중에 한국와서 물어보니 < 퐁피두의 이방인전>이란다.

교과서에서나 봤던 명작들 죄다 직접 봤다.
사진으로 찍어 놓은 그림과 진짜 그림은 참 많이 다르더라.
이런 거 자꾸 보면 책으로 그림 보기 싫어지겠더라.

어쨌든 이런 훌륭한 거 보게 해 주신 할머니,
고맙습니당!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저한테 하신 그 한마디가 무슨 말이었는지 아직도 궁금하지만요.

내 돈 주고 표 사서 본 전시회는 모네전이다.
전혀 우습게 볼 수 있거나 진부하다고 평가절하할 수 있는 전시가 아니었다.
초콜렛이니 일본의 웃음이니 하는 것과도 차원이 달랐다.
정공의 아우라다.

인상 깊었던 것은 세 가지다.

1) 컬렉션
어떻게 저걸 다 모았냔 말이다.
전 세계 흩어져 있는 주요 모네 작품은 싹쓸이한 듯.
이런걸 가능하게 하는 돈과 네트워크의 힘…대단하다.

2) 구성/기획력
마네의 전 작품을 시간 순이 아닌 주제별로 묶어 각 전시실에 배치한다.
주제라 해도 단순히 꽃이나 물과 같은 오브제나 내용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작품별 속성으로 구분했다.
modernity/composition/rhythm/synthesis …예를 들면 이런 식.

그런데 재미있는 건 메인 전시실 옆에는 작은 서브 전시실이다.
듣도 보도 못한, 모네와 무관한 컨템포러리 작가들의 작품들이 놓여져 있다.
뭐하는 애들이냐고?
모네의 그런 작품 속성이 현대 미술에서 어떻게 재해석되는지를 보여주는 애들이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바로 그 조그만 방들이
이 전시회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리고 있었다.

3) 내셔널리즘??!

전시의 맨 마지막 섹션은 이를테면 < 모네와 일본> 아니 < 일본과 모네>다.
모네가 얼마나 일본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지, 일본의 인사들이 모네의 예술활동을 얼마나 극진히 지원했는지
모네의 작품 세계에서 일본이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것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이른바 모네에게서 찾은 Japonism이다.

이렇게 말하면 좀 별론데 …이런 별로인 주장에 강력한 힘을 싣는 것은
바로 컨텐츠다.

특별히 주장을 하지 않아도 떡하니 온갖 구체적인 물증들을 가져다 벽에 붙여 놓으니
눈으로 보는 한은 반박하기 힘들다.

네트워크와 돈을 쏟아부어 모네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해 정신못차리게 해 놓은 다음
결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그 위대하신 모네님을 후원한 일본의 존재감.

그렇게 뒷통수 한 대 맞은 느낌으로 전시장을 빠져나오면 여기에도 역시나.

뽐뿌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자연스럽게 열리는 지갑을 겨냥한
‘이것’들이 있다!
너무도 적합한 타이밍.
하지만 곰곰히 살펴보면 모네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은 이것들.

나는 늘 ‘기획’이라는 것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좋게 보면 있는 걸 잘 구성해서 부가가치 만드는 거고
어떻게 보면 이거 참 인위적인 거다.

그래서 이런 걸 한참 보다보면
놀라고 감탄하고 경외심이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작은 샘에서 퐁퐁 솟아오르는 샘물 같은 것을
마시고 싶어질 때가 있다.

기획같은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하지만 신국립 미술관에서 가장 아트스러운 것은
건물 그 자체가 아닐까.

햇빛 눈부신 날 여기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날은 비가 왔지만.

모네가 가도 또 어떤 괴물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겠지.

< 이 날의 메모>
방대한 컬렉션 – 돈과 세계 수준 네트워크
디지털 컨버전스 – 미래 성장 동력
상품화 – 생활과 아트의 만남. 둘 사이 매개는 돈
내셔널리즘 – 서양지향주의와 자국우월주의의 절묘한 공존

# 마침내 키스 자렛 – 동경에 온 이유

2007년 4월 30일 월요일.

신주쿠로 더 깊숙히 들어가 본다.
츠타야니 츠나하치니 무지니 딸기모찌니
동경은 맛있고 배부르고 섬세한 것들로 가득찬 산타클로스 보따리다.


일본애들 주제곡 : 딸기가 좋아~


식사는 신주쿠의 명물 츠나하치에서
유명한 덴뿌라 전문점이다


바로 테이블 앞에서 튀겨 주는데


하나도 안 느끼하고 입에서 살살 녹는다. 강츄!

여행은 끝나가는데 더 어디를 다닐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원래 내 마음은 두 가지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난 한 가지를 기다리고 있다.
그 한가지 때문에 고작 두 달만에 다시 동경에 온 거고.

바로 이것
우에노 동경 문화 센터.

…이것!

결국 왔구나. 여기
그렇게 또 일생의 소원 하나에 줄을 그었다.
그것이 바로 나이가 먹는다는 것의 최소한의 의의겠지.

첫 번째 파트에 네 곡

두 번째 파트에 네 곡

앙코르 두 곡

이 중에 아는 거라곤 고작 My funny valentine, Come rain or come shine, When I fall in love 세 곡 뿐. T_T

첫 세션보다 두 번째 세션이 더 좋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의 독특(?)한 공연 문화때문이다.
첫 세션 끝나고 인터미션 20분 줬는데 이게 왠일인가.

맥주, 샴페인, 와인…죄다 나와서 모두들 술을 마셔대는 것이었다. 청중들 거의 모두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덕분에 나도 과감히 비루 한 잔…그리고 또 한 잔에 완전 알딸딸 해져서
두 번째 세션은 그냥 꼭 꿈결같았다.
동경이 아니라 뉴욕의 어디, 같았다.

내 청춘을 함께 했던 키스 자렛씨.
수많은 밤을 함께 했던 키스 자렛씨.
수많은 낮도 함께 했던 키스 자렛씨.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던 키스 자렛씨.

이렇게 당신을 만났네요.

그 때 나를 매혹시켰던 자기 혼자서 바닥으로 침잠해가는 독보적인 광기의 솔로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익히 경험해 보지 못한 최고급의 세련된 사운드.
아저씨 셋이서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음의 미로.
너무 깊다. 깊고 깊어서 이대로 빠져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냥 그대로 계속해서 가야할 것 같았다.
지금도 그 잔상이 아른거리면, 내 주위가 다 이상하게 느껴진다.
어 내가 왜 여기에 있지…난 거기로 가야 하는데.

밤이 깊어가고
순수한 아름다움의 결정체가 내 앞에 놓여있다.

가끔씩 머리를 휘저으며 물어본다.
정말 네가 이걸 봤냐고.

# 감동 혹은 눈물

그 다음 날은 돌아오는 날이었다.


사진에 한 병이 빠져서 아쉽다. 글렌피딕.
술만 일곱 병 싸들고 왔으니 카트는 무슨 피라미드 돌덩이같이… –;;

하지만 지난 4월 내 일본 여행은 그 카트보다 훨씬 더 무겁게 꽉꽉 채워진 여행이었다.
많은 것이 마음에 담겨 버렸다.


6개의 전시와


3개의 컨서트

하지만 마음에 더 깊이 남는 것은


말없는 이 두 편의 풍경.

< 대정전의 밤에>를 트렁크에 집어 넣었던 그 순간부터
흐릿한 전기불마저 끊어진 밤을 관통해 내 가슴을 밀물처럼 채워줄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런 일들이 이렇게 네 개의 밤에 걸쳐 물처럼 스며들어 마음의 어긋난 부정교합을 맞춰주었다.

내가 간절히 기다렸던 건 키스자렛이 아니었나 보다.
감동. 감동. 그리고 눈물.
그리고 너무도 예기치 않은 순간, 그것을 만났다.
치유..그리고 결심

하지만 …

(끝)

=========================================

[2007년 4월] 유진이의 다섯 번째 일본 여행기

[2007.4] 5th 일본 여행 (1) – 청춘의 밤 (day 1,2)
[2007.4] 5th 일본 여행 (2) – 록본기의 밤 (day 3)
5th 일본 여행 (3) – 대정전의 밤 (day 4,5)

Categories유진이의 여행기포토 아카이브

[2007.4] 5th 일본 여행 (2) – 록본기의 밤

Day3 – 2007. 4 29 Sunday

일요일은 보는(to see) 날!

# 록본기 아트 트라이앵글 (1) – 후지 필름 박물관, 무언가를 정의하는 방식

지금,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록본기다.

그 중에서도 아트 트라이앵글.
록본기의 3개 지역 (모리타운, 미드타운, 국립 신미술관)을 엮는 도보 10분 내의 미술관 투어 코스.
북퍼스트의 life 관련 잡지들도 죄다 아트 트라이앵글을 집중 조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록본기 4a 출구.

미드타운과 국립신미술관의 방문객 유치 경쟁 뜨겁다.

신미술관? 흥~ 이거 좀 고리타분 구린 거 아냐.
(라는 말도 안되는 콧방귀를 뀌면서)

그리고 주저없이 미드타운으로 향하다 중간에 발견한 또 하나.
< 후지 사진 박물관>

미드타운 바로 옆 건물이다.

프로 사진작가 200인전.
이건 약과다.

프로아닌 사진작가는 10,000인이 모였으니까.
여하튼 늘 놀라는 바이지만, 이네들의 커버리지/카테고리 정신은 대단도 하시.

프로건 아마건 모두들 자신의 방식으로 photo is를 정의한다.
말이 아니라 자신이 찍은 사진을 통해.
사진이란 무얼까.
그것은 말로 블라블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진 그 자체로.

그럼 나도 그냥 입닥치고 봐주겠다.
너희들이 정의한 사진이 뭔지.


누구에겐가 사진은 아이들


누구에겐가는 시간


커뮤니케이션


희망?

모두들 각자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사진을 찍게 하면서

새로운 사진을 정의하게 하면서.

# 미드타운 – 미래형 복합 공간

새로 개장한 미드타운 입구

최첨단의 쇼핑, 인테리어, 전자제품, 레저, 예술, 주거, 공원의 복합체

인터넷 게시판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신기한 거 다 모여있더라.
이런 게…최첨단인가?

개들을 위한 특급 애견숍까지

I’m Korean girl in Tokyo…Oh, oh I’m alien. I’m a real alien.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놓여진 느낌.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미드타운 공원 초록 풀밭에 앉아서 맛있게 냠냠했던 도시락~
세 종류의 다른 밥이 너무 맛났었다! 햇살은 반짝반짝 빛나고 일요일이고 나는 동경에 있고…

밥 앞에서는 미래인지 현재인지 과거인지 따위는 중요치 않아!
살아있다는 현실감만이 배불리~

# 록본기 아트 트라이앵글 (2) – 선토리 미술관 : 과거 현재 미래의 퓨전


일본 미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모종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선토리 미술관

멋지구리~

전시 자체는 매우 익숙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미술관을 나오는 순간

과거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날라온 것일까?
출구와 연결된 숍에는 전시에서 봤던 익숙한 모티브를 응용한 제품들이 가득 놓여져 있다.

재해석의 힘은 강력하다.
사람들의 지갑을 열어, 고가의 상품들을 팔아치울 만큼

상품으로 재해석된 일본 고대 미술의 향연
난 전시보다 오히려 이 숍에서 더 일본을 느낀다.

# 록본기 아트 트라이앵글 (3) – 21_21 Design Place : 나르는 상상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를 필두로 일본의 잘나가는 컨템퍼러리 아티스트들의 모였다는
컨셉부터 색다른 디자인 플레이스 21_21

미드타운 조금 옆에 바로 붙어있다.
굉장한 규모는 아니지만 매우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공간이라는 느낌.

오픈 기념전의 주제는 초.콜.렛.
젊은 작가들이 초콜렛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쏟아냈다.

사람들 꽤 많이 와서 보더라.
물론 내가 무시했던 국립신미술관의 < 모네전>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물론 전혀 무시할 만하지 않았지만.

초콜렛 곽으로 쌓은 기둥, 초콜렛 포장 금박지 은박지에서 모티브를 딴 작품과 의상,
초콜렛 소품들, 초콜렛을 만드는 사람들, 초콜렛 느낌이 나는 장난감들…

은박지에 쌓인 새까만 현대인의 쾌락이 예술 작품으로 재해석!
전시실 벽면을 채우고 있는 카카오 농장의 노동자들의 시선이 상당 부담스럽다.
이런 불편함마저 의도된 것이겠지만.

in search of an inspiration…


구엽당~!


아이디어 번뜩이는 아기자기하고 다채로운 컬렉션.

전시실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 위쪽으로는 커다란 모니터가 설치되어
벌거벗은 두 남녀의 초콜렛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테크놀로지. 그리고 이로 인해 가능해지는 인터랙션.
기존의 예술이 지독히도 결합하고 싶어하는
지금 일본이 개척하고 있는 새로운 장르

백반바지와 백구두의 매치.
역시나 일본 오빠들 예사롭지 않다.

여기서도 예술은 커머스와 만난다.

바로 옆 미드타운의 이세이 미야케 매장 Please Please에서는
초콜렛 컨셉으로 매장을 꾸미고, 전시의 핵심 컨셉을 옷으로 만들어 하여 팔고 있다.

커머스와 아트의 부적절하지 않은 만남

여하간 징한 것들!

컨텐츠를 구성하고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에 관심 충만한 유진이의 머리 속은
휭휭 날라간다. 배우자 배워!

# 록본기 아트 트라이앵글 (4) – 샤넬 : 스타일리쉬 왕국


스타일의 왕님.


황금빛 찬란한 샤넬 왕국이시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보라. 또 다른 감각의 제국이 펼쳐지리니.
상상 초월하는 압도적인 인테리어의 성전 앞에 넙죽 절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


여기에 들어온 순간 시간도 공간도 휘발되어 버린다.
도쿄도 뉴욕도 밀라도 아닌…여긴 그저 시간도 옷매무새를 고치고 지나간다는 샤넬의 궁.


백성들이여~ 그대들에게 잠깐의 황홀한 휴식을 선사하리니.
이 어두운 궁으로 빨려들어와 스타일의 아편에 취해보라.

RESTIR Midtown

=========================================

[2007년 4월] 유진이의 다섯 번째 일본 여행기

[2007.4] 5th 일본 여행 (1) – 청춘의 밤 (day 1,2)
[2007.4] 5th 일본 여행 (2) – 록본기의 밤 (day 3)
[2007.4] 5th 일본 여행 (3) – 대정전의 밤 (day 4)

Categories유진이의 여행기포토 아카이브

[2007.4] 5th 일본 여행 (1) – 청춘의 밤

Day1 – 2007. 4 27 Friday

다시 나리타
17.2도.

12.1도, 24.5도, 10.9도…그리고 오늘은 그 사이 어딘가의 17.2도.
아직은 춥다. 하지만… 금방 따스해지겠지.
신주쿠로 가면. 그 높은 빌딩들 뒷편 어느 골목길을 걷다보면.

# 신주쿠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레이지가 아코를 데리고 갔던 병원이 있을 니시 신주쿠를 거쳐
일본 라멘 대회 1등 했다는 전설의 라멘 먹으러 멘야 무사시로.

소문대로 줄 서진 않았고, 맛도 그랬다.
멘야 무사시 앞에 매운 라멘집이 있던데 거기가 맛났을 듯.

이런 옛날 니뽕스러운 포스터들이 벽면에 잔뜩 붙어있고

뻘건 유니폼 입은 영계 오빠들이 단체 기합을 넣으며 라멘을 내 주는 색다른 정취 정도랄까.

정작 기대했던 라멘은 국물이 너무 강하고 느끼했다.

그래도 기념은 해야지~ 일본에서의 첫 끼.

그날 오후 내내 신주쿠 한 바퀴를 긴 반지름으로 빙~ 돌아오며
처음 왔을 때 그토록 실망했던 쇠락의 신주쿠, 아무리 걸어도 절대 잡히지 않는 이 거대한 미로가
내 마음에 조금씩 친숙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오갈 데 없는 잡초들의 거리, 하지만 잡초의 억센 뿌리들이 뒤엉켜 절대 무너지지 않을…신주쿠.
난 이 복잡함과 막돼먹음과 쉽게 곁을 내 주지 않는 쎈 기운에 매료된다.

# 첫 날은 치에 아야도 – 수다쟁이 왕언니

작정하고 보고 들으러 온 여행.
(절대 마시고 퍼질러 노래하고 대책없이 헤매다니려는 게 아니었는디!)
치에 아야도 언니의 콘서트로 문을 연다. 짠~

우에노에 자리한 도쿄 문화 센터~
키스 자렛씨 보러 월요일에 한 번 더 와야 할.

꽉 찬 관객들. 그런데 역시 중장년층이 많았다.

무대 위에는 그랜드 피아노 하나 뿐.

산전수전 다 겪고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모두 음미할 줄 알게 된 큰언니같은 치에 아야도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래서 키스 자렛 콘서트 하기 3일 전에 언니 공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빙고’를 외치며 일본 여행 스케줄을 확정지었다.
언니의 노래는 특히나 봄밤에 딱이다.
흐드러지게 핀 봄꽃이 뿜어나는 향기가 마음 깊은 속까지 자욱해져
잊고 싶은 아픈 추억까지도 아름답게 물들일 때,
언니의 노래는 ‘살아있는 게 얼마나 좋으니?’라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

역시나 언니의 노래는 그랬다.
예의 그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Everything must change~”라며 첫 곡을 시작할 때~
아, 그렇구나. 모든 것이 바뀌어가는구나. 그렇게 바뀌고 바뀌어 나는 여기에까지 와 있구나.
가슴의 갈피로 멜로디들이 스며들어, 참 행복했다.

대부분 재즈 스탠다드 넘버였고, 내가 듣고 싶었던 돈나도키모는 안 불러 섭섭했다.

하지만 중간에 반주하러 나온 오빠가 예뻤다는 것으로 봐 주련다.
십 몇년을 함께 노래한 오빠라던가.

일본인들은 함께 오래한 무엇을 참 소중히 여기는구나.
새로움보다는 그 함께 한 시간에 보다 가치를 두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둘이 함께 부르던 ‘tenderly’
그 녹아내릴 듯한 감미로움 속에서

“저는 연습보다는 라이브가 좋아요.
무대에서는 여러분들이 저를 응원해 주고 있다는 것을 가깝게 느낄 수 있으니까요.”

언니는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사람 맞는 거 같다. 최소한 무대 위에서는 그랬다.
함께 하고 박수 쳐 주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통해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감사하는 …매우 상식적인 사람.

# 밤의 하라주쿠 – Tender is the Night

꼭 한 번 와 보고 싶었던 하라주쿠에 너무 늦게 왔다.
소문난 크레페도, 벼룩시장과 예쁜 옷들, 특이한 너희들, 주말마다 열린다는 코스프레 아이들도…모두 다 보고 싶었는데

하라주쿠의 밤은 너무 일찍 막을 내린다.
Live, Love, Eat ….
(하지만 10시 전에…응? –> 이거 너무 시시하잖아. 그래도 청춘은 밤! 아니냐고)

벽화만 남은 닫힌 셔터들 사이를 또 다시 걸어본다.

문 닫을 준비하는 크레페 상점과

이거 내 이상형(?!) 잭 블랙 맞어? 반가운 마음에 찰칵찰칵~

그리고 또 걷는다. 요요기를 거쳐 신주쿠로
샤방샤방샤방…~참으로 오랫만에 이렇게 걸어본다.

철부지처럼 향긋한 밤의 냄새에 제멋대로 이끌려 다니며 만난 무수한 골목들,

요요기역 근처, 무작정 들어가 보고 싶은 좁다란 술집들을 거쳐…실제로 내가 술 마실 그 곳까지.
그래도 눈을 떠 보면 어쨌든 내 침대다.
언제나 주장하듯이, 아무리 마셔도 집은 찾아 간다는 거.

그래도 아침은 나보러 눈을 떠 보라고 한다.
술 먹으러 가야지~ 그러면서.

Day2 – 2007. 4 28 Saturday

에비스 역에서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로 가는 길.
실내에 편리한 에스컬레이터로 이어진 제대로 된 출구를 찾지 못하면
이런 멋진 건물들 사이를 지나며 한참을 헤매야 할 수도 있다.

나중에 보니 후카츠 에리양과 츠츠미 신이치씨가 나오는
일드 < 사랑의 힘(戀ノチカラ, 2002)>의 배경이 되는 건물이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밤새 광고 시안을 만들고 새벽녘에 저 건물을 빠져나오던 그들.
저 옥상에는 아직도 멋진 라운지 체어가 있어서 맥주를 마시며 작은 파티를 열 수 있는 걸까.

어번한 도쿄를 보고 잡어 떠난 길.
하지만 삿뽀로 비어 박물관 표지판에 붙들리면,
그런 어번한 풍경조차 알콜기에 흔들거리는 퇴폐적인 풍경으로 변할 수 있다.

#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 황홀한 맥주의 맛

아무런 정보 없이 찾아간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에서 자석처럼 끌려들어간 삿뽀로 비어 박물관.
어색하게도 홀에서는 피아노 컨서트가 열리는 가운데…
(술과 음악이라…그리 어색하지 않을 수도 있긴 하겠다)

그네들 답게 맥주에 관한 사료, 문헌, 사진, 역사, 광고, 맥주 제조 과정, 도구,
맥주에 얽힌 에피소드를 주제로 한 3D 입체 영상까지…
맥주에 관한 모든 것을 관람객의 동선에 따라 총망라 스토리텔링
일본의 컨텐츠 구성 능력에 다시금 놀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 박물관의 핵심이라고 하면

역시나 맷주 그 자체가 아닌가!
‘컨텐츠’로 할 수 있는 맥주에 관한 모든 뽐뿌질, 그리고 귀결하게 되는 종착지는 Tasting Room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바로 이 절묘한 타이밍의 예술이, 알고 보니 전형적인 일본식 상술(?!)이었다.
나중에 미술관 투어에서 보다 생생히 밝혀지지만 말이다!

그래도 난, 잠시 여기가 천국이 아닐까 생각했다.

네 종류의 대표 맥주 테이스팅.
하지만 저 중간의 안주에 주목하자.
유진이를 일본 여행객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

삿뽀로 비어 크래커와 비어 치즈. 내가 맛 본 최고의 맥주 안주다!
별 것 아닌 크래커일 뿐이지만….어쩌면 저렇게 맥주와 잘 어울릴 수가.

이렇게, 유진이의 favorite는 Yebisu – The Black으로 밝혀졌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은은한 캬라멜 맛. 음……..

매우 일본답게, 이런 분도 계셨다는 거.
삿뽀로 비어 박물관에 기린 모자 쓰고 와서 무슨 고시공부하듯 맥주맛을 음미하고
빽빽한 낡은 노트에 메모하고, 카탈로그 찾아서 성분 대조하고.

하지만 난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강조하고픈 것은

바로 이겁니다. 비극은 3봉지 밖에 안 사왔다는 거.
그래서 일본 가는 지인들마나 바지가랭이 붙잡고 애원해야 한다는 거.
삿뽀로 비어 크래커 한 박스만 사다달라고. T_T

※ 주의 : 이 크래커의 특징은 걍 크래커만 먹으면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약간 씁쓸한 크래커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
혹은 와인이나 소주나 위스키와 먹어봤자 이게 뭐지 싶다는 거.
하지만 맥주! 맥주와 곁들였을 때만 마리아쥬 대 폭발 한다는 거……..

# 커피 전문점 베르데 – 토요일 오후의 오아시스

에비스에서 다이칸야마 넘어가는 길.
일본 가서 많이들 거치는 도보 코스라고 들었다. 물론 나도 가고 싶었지. 다이칸야마.

하지만 거기까지 못 가게 된 건 중간에 발견한 간판 하나 때문이야.

베르데.
Verde.
초록.

창 너머로 가스 렌지에 커피물들이 퐁퐁퐁~ 끓어오르고 있었다.
따스한 불빛아래
로렐라이처럼 지친 여행자를 유혹면서~

자석처럼 그 작은 찻집으로 끌려 들어간다.
다이칸야마 따윈 어떻게 되도 좋아. 꼭 와플스에 가서 와플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게 그 작은 베르데가 나를 불렀다.
그냥 지나쳐 가려는 나를 정말로 부르는 것 같았어.
그때 너처럼.

커피프린스처럼 꽃미남들이 줄 서있는 곳은 아니지만
포스 넘치는 바리스타 아저씨.
헝겁으로 된 도구를 이용해 뭔가 내내 제대로 인 듯한 드립의 내공을 보여주신다.
손님들에게마다 모두.

그렇게 몇 년을, 혹은 몇 십년을. 지치지도 않고 드립만을…
그게 내가 일본에서 가장 즐기는 점, 그리고 가장 질려하는 점.

나에게도 어떤 종류의 커피를 원하는 지 복잡한 옵션들을 묻는다.
줄기차게 ‘오스스메’로 통과~

이 이상한 이웃들.
남자, 여자, 늙은이, 젊은이, 중년의 아줌마…전혀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들이
하나 둘 씩 베르데의 가게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를 하고 서로를 반기고
오픈 카운터 주변에 모여 친근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내가 본 일본의 특징은 오픈 키친, 오픈 카운터.
호스트 혹은 호스티스가 그 중심에서 음식을 서빙하며 대화를 주도한다.
만담가처럼 혹은 뚜쟁이처럼.
일본의 가게들에서는 어디서나 작은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그 중심에 chef 혹은 barista들이 있다.
단순한 요리 솜씨 가지고만은 이룰 수 없는 경지.

그들에게 말은 우리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무엇’일까.

그와 무관하게 커피맛은 heaven이다.
난 그냥 여기에 주저 앉아 커피맛에, 그리고 혼내를 숨긴 이웃들의 다정한 풍경에 취해 본다.
저녁이 내리고, 영원한 청춘의 거리 시부야가 나를 부를 때 까지

베르데에 취해서…깜빡 졸다가
허겁지겁 전철타고 시부야로.
내가 향해간 곳은……

시부야 B.Y.G
백양 메리야쓰 아님.

# 시부야 – 라이브와 술과 노래…청춘의 밤

키스 자렛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더 찾아보니 이상하게도 봐줄 것들이 충만했어.
BYG도 클럽 쿼트로도, 7th Floor도, 블루노트에도. 아카사카 B 플랫HUB, 라이브하우스 Friday도

동경 라이브하우스 정보
http://bro-a.mods.jp/livehouse/livehouse/tokyo.html

하지만 역시 인생은 계획한 대로 다 채워지지는 않는지
그래도 꼭! 이라고 생각한 것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몇몇들 것 외에는 찾아지질 않았어.

그 중에 B.Y.G는 ‘그래도 꼭!’이라고 생각한 것 중의 하나.
시부야에 있는 쬐끄만, 그러나 꽤 그쪽에서는 알아주는 듯한 라이브 바다.

카운터 주변은 CD와 LP 판들, 공연일정으로 꽉 채워져 있고.

오늘 토요일 밤에는
내가 지난 번 신주쿠 재즈 페스티벌 때 확 빠져들었던 타쿠 아저씨가 이끄는 캔사스 시티 밴드(Kansas City Band)의 새판 < 大人の事情>의 쇼케이스 공연이 있었다.

새로운 음악은 지난 번 것들보다는 어둡고 복잡했지만
어른의 사정이란 결국 그런 것일 테니까.
< 모이스처가 스루스루> 등 지난 번 노래들도 함께 불러줘서 2시간 동안 흠뻑 만끽했다.

화장실에도 빽빽하니 공연 스케줄

새파란 젊은 애들이 이런 곳에 빽빽하게 모여 음악을 즐긴다.

역시나 일본답게 혼자 온 사람들 많았고, 혼자 온 여자들도 많았다.
그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참 이상한 동네.
그 이상함은 금방 편안함으로 바뀌어 나는 이후로 내내 동경의 나홀로 모드를 그리워하게 된다.

내 옆에 앉은 언니는 혼자서 2시간 내내 뻑뻑 줄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마셔대며 밴드를 즐기시더라.
꽃미남이라고는 하나 밖에 없는 아저씨 밴드지만 그래도 all 남성 밴드라는 잇점 때문일까.

나이드니 본 것을 다시 보는 것이 그저 좋아지는 이 현상은 어쩌나 싶을 만큼
단 한 번의 인연에 이리 마음을 뺏기니 어쩌나 싶을 만큼
그저 좋기만 했던 시간.

그 다음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시부야의 밤과…술!
바야흐로 사케가 등장할 시간.

은장금 언냐의 일본 체험기가 왜 그리 생생히 떠오르던지
끌려가듯 전철 아래 일본말 잔뜩 써진 주점으로 당당히 걸어들어가는 나.

잠재의식이란 이리도
무섭다.

그 다음 찾아간 와라와라. 일본 대중적인 체인 술집이다.
오코노미야키와 감자 튀김, 볶음밥, 맥주…야밤에 참 배불리 자알도 먹었다.

술 먹었으면 노래를 불러야지.
분홍 종이꽃 찰랑찰랑 걸려 있는 시부야의 노래방을 구경시켜 줄께.
알로하~

일본 노래는 영어 캡션이 없고
에릭 클랩턴을 불러도 이런 그림이 나와 사람 황당하게 하더라.

Do I look all right? And I’ll say yes.

조금 취해서 시부야와 신주쿠의 골목들을 빙빙 싸돌아다니기도 했던
레온 보러 간다고 가부키초의 광고판들을 훑고 다니긴 했던
wonderful tonight.

깊어도 더 깊어도
시부야의 밤은 왜 이리 비슷한가.
청춘의 밤은.

쌩스, 료.

=========================================

[2007년 4월] 유진이의 다섯 번째 일본 여행기

[2007.4] 5th 일본 여행 (1) – 청춘의 밤 (day 1,2)
[2007.4] 5th 일본 여행 (2) – 록본기의 밤 (day 3)
[2007.4] 5th 일본 여행 (3) – 대정전의 밤 (day 4)

CategoriesTravel

[2007년 4월] 유진이의 다섯 번째 일본 여행기 : 네 개의 밤

2007 04 키스자렛 트리오 동경 콘서트

여느 때와 달리 분명한 목적이 있었던 여행.
난 그 목적이 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거라고 믿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내 계획따위는 전혀 빗나간 지점에서, 내 마음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만났다.

4월의 끝, 5월의 시작…두 달 만에 다시 찾은 나의 다섯 번 째 일본記

[2007.4] 5th 일본 여행 (1) – 청춘의 밤 (day 1,2)
[2007.4] 5th 일본 여행 (2) – 록본기의 밤 (day 3)
[2007.4] 5th 일본 여행 (3) – 대정전의 밤 (day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