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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April, 2014

the day after

1.
그날 오전에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제목으로만 보고, 전원 구출이라고 해서 또 무슨 이상한 사고가 났구나, 이 나라가 뭐 그렇지 ㅉㅉ 그렇고 말았지. 그 날은 왜 그리 바쁘던지. 쓸 것도 많고, 기술 세미나도 있어서 강사분 에스코트에, 세미나 진행에, 회사 투어까지 시켜드리고, 자리에 돌아와 밀린 몇 가지 일을 처리하니 저녁이었어. 운동을 조금 하고 나서 또 허둥지둥 식당 마감시간에 맞춰 밥을 먹으러 갔었지. 늦은 시간, 아무도 없는 텅빈 B1에서 김조가리에 밥을 비비며, 뭐 재밌는 거 없나 하고 스마트폰을 열어보는데 바로 그 뉴스를 보게 된거야.

식판을 앞에 두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어. 식당을 정리하던 아줌마는 그런 나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먹고 가세요.” 그러고 가셨지. 그런데 이상하게 밥이 잘 넘어가더라구. 더러운 손바닥으로 연신 뺨을 닦으며 애들 어떡해 애들 어떡해 하면서도, 오른손으로는 부지런히 수저질을 하고 있더라구.

야근을 해야 하는데, 일 대신 뉴스를 뒤지기 시작했어. 나는 이제 프로 직딩이 맞는가봐. 거기서도 일 걱정이 먼저 되더라구. 대응할 부분들을 정리하고, 마음의 각오도 했지. 집에 와서는 TV를 켰어. 그제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된 TV 뉴스를 보게 됐지만, 채널을 몇 바퀴 돌리니 계속 똑같은 화면,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되는 거였어.

그래서 아주 오랫만에 트위터란 곳도 들어가 보게 되었어. 아수라장, 감정과 분노의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거기를. 하지만 새벽이 되자, 시차가 반대인 저 반대편 나라의 기술 뉴스들이 도배되더라. 그런 뉴스를 기다린 게 아닌데, 그런데도 계속 리프레시를 할 수밖에 없었어.

그 날은 왜 이리 재미있는 기사도 많던지. 구글이 유난히 많은 걸 쏟아낸 날이기도 했어. 크롬 데스크탑에, 아웃포커싱이 되는 카메라 앱에, 스트리트뷰 이미주 주소 OCR 인식률이 90%를 넘었다고도 했어. 미친 듯이 기사를 fav하고, 읽기 시작했어. 하루 밤에 이렇게 많은 테크 뉴스를 읽은 게 언제였더라.

특히, NYT Farhad Manjoo의 기자의 마크 주커버그 인터뷰는 특A급이었지. 너무 많은 리프레시끝에 나는 그 새벽에 마크 주커버그 인터뷰 기사를 번역에 몰두하기 시작했어. Can Facebook Innovate? 그건 정말 훌륭한 기사였어. 질문도 대답도 모두. 번역을 끝내고 생각했지. 아침에 눈을 뜨면 몇 명을 구했다는 기사가 뜰까. 내일 아침에는 뭔가가 뜨겠지?

두어 시간 얕은 잠에서 깨어나,바로 폰을 들고 뉴스를 열어봤지만. 아직? 아직? 아직은?

회사에 출근을 해서도 누구와 무슨 말을 할 수는 없었던 것 같아. 일과 관련된 부분에서 대응 원칙을 다시 확인하하고, 회사에 번역한 인터뷰 기사를 돌렸고, 그리고 할 일들이 있었지. 가끔씩 뉴스만 리프레시 했지만, 애들을 구했다는 소식은 없었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어. “이러고 있다고 해서, 제가 싸이코패스는 아니랍니다. 정말이예요. 믿어주세요.”

그날은 마침 미리 정해놓은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적당히 웃고 떠들며 밥을 먹었지. 노땅의 회사생활에 대하여 셀프 디스를 하기도 하고, 겹치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나눌까 논의하고, 건더기를 분석하며 돼지순대국밥과 소순대국밥의 차이를 따지기도 하면서. 하지만, 아무도 아이들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어. 그냥, 날씨가 왜 이래…왜 이리 우중충해. 바람은 왜 이리 많이 불어. 그러고 말았지. 흐리고 바람이 심한 봄날이었지.

거기서부터 12일 아니 13일이 지난 거야.

처음엔 그랬어. 아, 역시 이 세상은 시궁창이구나. 더럽고 역겨운 냄새로 가득해. 하지만, 줄줄이 엮인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천천히 난 이게 그런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런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메두사처럼 한 몸을 하고선, 서로의 머리를 꽈배기처럼 비비 꼬아, 수면 아래서 목을 치켜든 가공할 악의 실체가 내 눈앞에 드러난거야.

2.

아이들을 태웠던 배의 실질적 소유주는 27년전 한 공예품 공장에서 공장장과 직원들 32명이 자살한 사건의 배후로 지목받았다고 해. 하지만, 그는 그 역시 살인마와 다를 바 없는 당시 대통령, 그리고 그의 동생을 등에 엎고 무사히 빠져나갔대. 당시 죽은 직원들 앞으로 쓴 170억의 사채는 지금으로 치면 수천억원에 이르는 돈이래.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 전 세계에 묻어놓은 그 사람의 재산은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래. 하지만, 그 사건은 어떤 사이비 종교집단의 엽기적 행각으로 마무리되고 말았지.

그는 그 종교집단에서 살아있는 예수로 불렸다고 해. 야훼를 변형한 이름을 아명으로 쓰면서 말이야. 종교 서적도 여럿 집필했다더군. 교리의 핵심은 일단 입교를 하고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거래. 육신의 죄는 지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거래. 그 배의 선원들 90%가 이 종교를 믿었대. 선장부터 말이야. 그들은 이미 구원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어. 자기가 무슨 짓을 하든지말야.

아, 그런데 이 종교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고 말이야, 신도의 폭도 상당히 넓대. 이 종교에서는 심지어 꽤 성공적인 다단계 사업도 펼치고 있다지. 국내 다단계 매출 순위 4위? 쯤으로 집계가 된 표가 나돌더군.

또 그는 세계적인 사진작가래. 그의 전시회는 예술의 성지와도 같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공원과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열렸대. 루브르 관장님은 그의 미술을 ‘평범함 속의 비범함’이라고 불렀고, 베르사이유 궁전의 관장은 ‘영원과 혼동되는 순간’이라는 평을 남겼대. 작가는 전시에 앞서 각각 16억, 20억을 기부했다고 알려져 있어. 파리 시내 버스에 랩핑 광고도 했다지. 물론, 전시회를 기념해 초호화 파티도 열렸대. 유명인사와 각국의 대사가 참석하고 왕립 오페라, 유명 음악인들의 콘서트, 불꽃놀이가 미니 이벤트로 진행된, 도저히 얼마를 들였을지 상상하기도 힘든 그런 파티말이야.

하지만, 그 정도는 합당한 투자였을거야. 이후 그의 사진은 계열사에 판매되어 500억 이상의 비자금으로 변신했다니 말이야.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도 당시 그의 사진이 수 백억의 가치가 있다고 의견을 냈었대. 이 정도면 꽤 높은 ROI가 아니겠어. 게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간 그 낡은 배를 불법 개조해 자신의 전시실로 쓸만큼 드높은 예술혼을 불태웠던 예술인이었던거지.

그는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래. 그리고, 자신의 작업실 창에서만 촬영하는 특이한 방식을 고집한대. 그래서, 프랑스의 너무나 작고 아름다운 마을을 통째로 사들였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누리고, 또 자신의 작품으로 남겨두기 위해서. 물론 그 외에도 세계 곳곳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지. 더욱 값비싼 땅을 사들일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예술을 위해 그 작은 마을을 사들였던걸까.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없어. 그는 이미 해외로 출국했고, 사이비 종교 집단 자살 사건 이후에도 끊임없이 유력 정치인들과 돈독한 관계를 다지고 있었다니까. 말하자면 그는 대한민국의 정치사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빠졌던 때도 없이 어두운 어딘가에서 면면히 그 맥을 이어온거야.

그러니 또라이 선장놈이 그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힐 지는 몰라도, 그가 단두대에 설 일은 아마 없을거야. 그는 세계적인 예술가이지, 사업가이자, 종교인이니까. 우리가 갈구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영원불멸의 언터쳐블이니까.

3.

화사한 하늘색 정장. TV에서 그 분의 의상을 보고 기겁을 할 수 밖에 없었어. 그 색이 담고 있는 깊은 뜻을 미처 몰랐던 미개한 국민이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녀는 직접 현장에 내려와 국민을 대신해 실무자들을 협박하기도 했어. 잘 못하면 다 짤릴거라고. 애들을 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간을 그렇게 쓰고 있었지.

이후, 정부가 한 일을 다 나열할 필요는 없어. 지치도록 생산되고 있으니까. 컵라면의 소중함, 계란의 중요성, 앰뷸런스의 용도변경과 피로한 시간에 몰려드는 졸음에 대하여. 이 정부가 썪었다고 거대하게 말하는 것은 별 감흥을 주지 않아. 하지만, 이런 깨알같은 소립자 에피소드가 가진 구체성의 힘이라니! 그 덕에 난 이 정부에 대해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인 상을 그릴 수 있게 되었어. 하루에도 몇 번씩 피가 거꾸로 솟아 뇌를 정지시켜 버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하지만 시간에 이르면 말이야. 혹여나, 그 아이들을 살릴 수도 있었던 그 시간에 이르면 말야. 그들이 그 시간을 어떻게 써버렸는가 하는 대목에 이르면 말이야. 여기선 그냥 우린 다 죽어야 하는 거야. 그래 이 정부말고, 다 포함해 우리 말이야. 우리가 우리 손으로 직접 뽑아준 이 정부가 한 짓이니까 말이야. 결국 이런 세상을 만드는데 어떤 식으로든 일조한 우리니까 말이야. 고작해야 SNS에서 의로움과 분노를 떠들어대는 짓, 거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말이야.

그 서글픈 풍경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어. 그건 너무나도 초라한 자화상이라서 말야. 거기에서조차 유족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구호품을 빼돌린다는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이미 너무나도 충분히 뭉크의 절규스러워서 말이야.

결국 우린 도처에 악마들을 살아남고, 악마들이 머리를 키우고, 악마가 떵떵거리는 세상을 만든거야. 악마는 또 다른 악마를 인큐베이팅하고, 그들이 서로 합심해 세력을 넓혀간다는 이야기지. 참, 악마라고 하니 이 대목에 말이야. 20년 연한이었던 운항 배의 연한을 30년으로 늘려준 것이 바로 전 2byte 정권때 이루어진 일이었다는군. 그 덕에 18년이나 된 낡은 배를 수입해 세월호라 이름붙일 수 있었대. 절묘하지 않아. 단 한 명도, 단 한 축의 악도 이 이야기에서는 빠지는 게 없어.

종교와 예술, 정치와 돈. 무방비하고 무기력한 다수와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소수가 참으로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며, 각각의 악이 얽히고 설켜 서로를 지지하고 버텨가면서 수 십년간 차근차근 이 비극적인 사건을 향해 오고 있었어. 우리가 만든, 혹은 방치한 거대한 악의 플랫폼 위에서. 그리고, 그 정점에서 아무 죄 없는 수 백명의 아이들이, 또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거야. 마치 하나의 상징처럼.

따라서, 이 사건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또 일어나. 이 사건은 매우 명백한 메커니즘에 의해 발생했고, 그 메카니즘은 단 한 조각도 바뀌지 않을거거든. 오히려, 더욱 더 공고해 지겠지. 안전지대는 없을거야. 있는 자들은 그들만의 ‘노아의 방주’에 더욱 단단하게 쌓아올리겠지. 나머지는 다 똑같애. 내 차례, 혹은 당신 차례인거지. 예외는 없다. 확률과 재수의 문제일 뿐.

누군가 나를 던져 남을 먼저 돌본다거나 하는 짓은 점점 더 하지 않게 될거야. 그야말로 무법천지, 그냥 정글인거야. 이런 삶을 살게 되어 유감이야. 나에겐 자식이 없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인거지.

그러니 이건 또라이 선장 한 놈의 무책임이 빚어낸 어이없는 사고 정도가 전혀 아닌거야. 이 사건은 이 세상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이야.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은 없다는. 구원은 오지 않을 거라는.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자기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을 구출시켰어. 아이들은 서로의 몸을 묶고, 핸드폰으로 구조를 요청하고, 학생증을 입에 물었어. 끝까지 뭔가를 하고 있었어.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동안. 마음 아픈 이들은 현장으로 뛰어가 자원봉사를 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돌보려 치유 프로그램을 준비한대. 합동 분향소는 줄이 너무 길어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는 거야. 조금씩 돈을 모금하기도 한다는 거야. 오대양에서 세월호까지 수 천억씩 재산을 축적한 싸이코패스 살인마는 벌써 저 멀리 그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곳으로 튀어버렸다는 데 말이야. 다 썩어버린 세상에서도 또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 있다는 거야.

설국열차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어. 이 영화를 그리 재밌게 보진 않았어. 난 < 살인의 추억>과 < 마더>를 사랑하는 봉준호의 팬이거든. 그런데도, 가장 자주 떠올리는 영화를 꼽으라면 그건 설국열차야. 설국열차는 말이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야. 이미 빙하기는 닥쳤고, 생존자들은 설국열차에 칸칸히 분류되어 갇혀있어.

봉준호는 너무나도 정확히 지금의 현실을 보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꼭 말하고 싶었던 거야. 세상은 이미 멈출 수 없는 설국열차라고.

예프게니 키신 내한공연 – Mission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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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神을 만났다. 두 번째 만남.

클래식은 문외한이지만 그냥 보고, 직접 듣고 싶었다. 발레는 몰라도 강수진의 움직임을, 토슈즈를 신고 사뿐히 뛰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처럼. 그저 그 뿐이었다. 쇼팽이든 스크리아빈이든 아무래도 좋았다. 그게 뭐든, 그건 한 인간이 자기 생의 거의 모든 것을 바친 결과물이니까. 이런 관점의 관람객에게, 퍼포먼스의 소소한 부침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승부나 대면이라기 보다는, 받아야 할 감동은 모두 미리 채웠고 남은 것은 인증정도인 좀 재미없는, 전폭적으로 치우친 태도니까^^;;

결혼도 하지 않고, 콩쿨도 나가지 않았다. 부모님과 6살에 만난 스승 칸토를 제외하면 거의 누구와도 접하지 않는 격리된 삶이라고 한다. 난 지극한 기계적 성실함이 자아내는, 오그라드는 감수성이 배제된 무심한 열정에 매혹된다. 그저 손가락이 망치인양 쳐두드리듯이 연주한 키신의 라깜빠넬라가 나에게는 최고인 이유다.

윤디리가 그렇게 좋다고들 한다. 그 빠른 속도에도 전혀 손상되지 않는 서정성이 놀랍다고들 한다. 막귀인 나에게도 느껴지는 선명한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의 연주는 너무 달았다. 너무도 섬세하고, 정교했고, 감정이 많았다. 그래서 내 미천한 개취로는 도저히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시드니 심포니의 지휘자로 등극한 아쉬케나지의 끼워팔기같은 느낌이었던 키신과의 첫 번째 만남. 아쉬케나지의 라흐마니노프로 젊음의 짧은 한 때를 누렸던 나에게는 뭔가 헛헛한 만남이었고, 메인 연주 한 곡으로 만난 키신은 두고두고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롯이 키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놀랐던 것은 내가 열광했던 그 키신이 아니었다는 것. 풍요롭고 서정충만하고. 내가 피상적으로 이해한 기계적, 구도자적, 자폐적 연주가 전혀 아니었다. 당근!!! 그런 어마어마한 천재, 대가가 이런 문외한의 이해 영역에 머물러 있을 리가.

그런데도 감동스럽더라. 전혀 알거나 범접할 수 없는 순정의 알고리즘을, 수식 자체는 아니라더라도 최소한 그 최초의 발상이나 아이디어, 세계관을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주는 누구처럼. 대가는 그렇더라. 첨 듣는 스크리아빈이 이렇게 마음을 흔들줄이야. 난해할 거라 지레 짐작했었는데, 그저 아름다웠다. 물론, 내내 내가 보고 듣고자 했던 것은 기계적 성실함뿐이었지만.

어쨌든 이리하여, 내가 가장 내 눈으로 보고 싶었던 세 명의 아티스트를 모두 영접했다. 인생의 중요한 미션을 간신히 마친 느낌? ㅎㅎ 키스 자렛, 강수진, 키신. 모두 K를 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키신은 10대, 키스 자렛과 강수진은 20대 초반에 만났다. 세 사람에게는 모두 대번에 사로잡혔었다. 그 때는 그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아주 머나먼 꿈이었다. 그들을 너무나 먼 세계에서 왔고, 그들을 실제로 만날 수도 있다는 상상을 시작도 하지 못했다. 다른 세상의 도장이 찍혀져 밀봉된 음반과 영상 속에서만 간신히 접선할 수 있는 별에서 온 그대들이었다.

그때는 이렇게 고작 돈 얼마를 내고 이룰 수 있는 쉬운 꿈이 아니었는데, 살다보니 그렇게도 될 날도 맞이하고 있다.

그냥 살면서 한 번쯤 이들 세 사람을 내 눈, 내 귀로 듣고 봤으니 어느 정도는 됐다 싶으다. 에릭 클랩튼 포함하면 네 명~

올해는 강수진을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고. 자렛 옹과 키신은 몇 번은 더 올 것 같구. 쫌 넓혀보면, 약간 다른 기분으로 곤잘로 루발까바 정도? (요새 모하심??) 달달마왕 곤잘로님은 반드시 남자와 함께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교과서적인 구상 정도만. 마이클 잭슨은 갔고, 김현식 유재하도 갔으니 별로 욕심나는 인간도 없다. 문명진 또 볼 거구, 장국영은 갔고.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쳇 베이커… 근데 죽은 사람들만 그리워하고 있기엔 너무 좋은 봄날이다.

방에 음악을 틀어놔야겠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음악을.

키스 날리는 키신 ~ 걷는거 땀닦는거 웃는 거 인사하는 거. 피아노 치는 거 빼고 죄다 어색어색. 그래서 더 좋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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