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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February, 2006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언제나 소중한 것을 깨닫는 곳은 새파란 하늘 아래

여행을 하고 나면, 그 기록을 남기고 싶어집니다. 오래오래 추억을 간직하고도 싶고, 남들에게 뽐내고도 싶죠. 그래서 요즘 블로그나 미니 홈피에서는 각종 여행기가 넘쳐납니다. 가보고 싶었던 세계 여행기를 그럴듯하게 풀어놓은 멋진 블로그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하면서 불끈! 두 주먹을 쥐어 보게도 되죠. 하지만, 그런 기록에의 욕망은 지금부터 1300년 전, 신라시대 한 어린 승려의 마음 속에서도 똑같이 피어 올랐던 것 같습니다.

한창 성장의 과정에 있는 19살의 승려가 서기 723년부터 4년 동안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40여 개국을 둘러 본 여행기,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책 <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입니다.

우선 이 젊은 스님이 거쳐온 노정도를 살펴볼까요?

그야말로 방대한 여정이죠? 요즘 유행하는 배낭여행 스케줄표에 못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혜초는 왜 이렇게 머나먼 여정에 오르게 된 것일까요? 그 때에 지금처럼 배낭여행이 유행했던 것도 아닐텐데요.

하지만, 그 옛날 신라에서도 유행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승려들의 당나라 유학이었다고 합니다. 삼국을 통일한 후 신라는 당나라와의 관계를 더욱 밀접히 하면서 불승이나 유학생들의 당나라 유학을 적극 권장했습니다. 이 중 대부분의 이 유학파 승려들은 귀국하여 깊은 학문과 높은 덕행으로 국사(國師)의 높은 존대를 받고 신라 부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인도로 가거나 중국에 남아서 불교를 전도했다고 하는데요. 바로 그 중의 한 사람이 혜초 스님이셨던 것이죠.

스승인 금강지를 광주에서 만나 불교의 일종인 밀교를 접하게 되고, 스승의 권유로 광주를 떠나 스승이 건너온 바닷길을 거꾸로 잡고 인도로 향한 여행을 시작한 것이 서기 723년. 이 출발은 무려 4년의 여정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들린 나라들은 인도에서 티벳, 페르시아(현 이란), 터키 등을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여행기의 내용에서는 각 나라의 특징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간단히 적고 있는데요. 요즘 여행자들에게도 드림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티벳을 묘사한 부분을 살펴볼까요?

이보다 더 동쪽에 있는 토번국(吐蕃國, 티베트Tibet)은 순전히 얼어붙은 산, 눈 덮인 산과 계곡 사이에 있는데, 사람들은 전(氈)으로 만든 천막을 치고 산다. 성곽이나 가옥은 없으며 사는 곳은 돌궐(突厥)과 비슷한바, 물과 풀을 따라 이동한다. 이 나라 왕은 비록 한 곳에 거처하기는 하나 역시 성곽도 없이 그저 전으로 만든 천막에 의지하는데, 그것을 큰 재산으로 여긴다. 땅에서는 양, 말, 묘우(描牛, 야크yak), 모포, 배 따위가 생산된다. 의상은 털옷과 베옷, 가죽 옷인데, 여자들도 그렇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지대가 아주 춥다. 집에서는 늘 보릿가루 음식을 먹고 떡과 밥은 적게 먹는다. 국왕이나 백성들이 모두 불법을 알지 못하며 절간도 없다. 거개가 땅을 뚫어 구덩이를 만들고는 거기에 누워 자므로 침상이 없다. 사람들이 대단히 까맣고 흰 사람은 아주 드물다. 언어는 다른 여러 나라와 다르다. 털옷과 베옷을 입기 때문에 서캐와 이가 대단히 많은데, 이를 잡기만 하면 곧바로 입속에 넣고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 (본문 263p)

짧은 글이지만, 제대로 핵심을 파악하는 노련한 눈썰미가 느껴지지 않나요? 40여 개 나라의 지역과 견문을 두루 섭렵하고 있는 왕오천축국전은 불과 6,000 자 남짓한 글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8세기 무렵 인도, 중앙아시아에 대한 생동감 있는 묘사와 정확한 기술로 전세계적으로 높은 문명사적 가치를 지닌 중세 세계사 연구의 으뜸가는 진서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오도리크의 ‘동유기’,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와 더불어 세계 4대 여행기의 하나로 꼽힙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여행기이죠.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 3월, 중국을 탐험하던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1200여 년을 조용히 잠자고 있던 제목도 이름도 없는 부실한 두루마리 하나가 세상의 빛을 본 것이 불과 98년 전 일이죠.


△ < 왕오천축국전> 잔간이 발견된 돈황 막고굴 전경 (본문 중에서)

원본은 프랑스 파리 국립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외국어 본은 1938년 독일에서 발간 되었고, 이후 일본에서 면밀히 연구되어 각종 학술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오히려 국내에서의 연구가 늦었는데, 이 책은 원문 분량의 40배에 가까운 503개의 자세한 주석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연구서처럼 느껴질 만큼 알차고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 프랑스 파리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원문 (본문 중에서)

하지만, 왕오천축국전에 이런 딱딱한 기록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 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和答)이 안 들리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끝 서쪽에 있네.
일남(日南)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주가 소식 전하러 계림(鷄林)으로 날아가리
(본문 198p)

아무리 불법 수행의 결연한 의지로 떠난 여행길이라고는 하지만, 이 때 혜초 스님은 겨우 스무 살 남짓의 젊은 남자였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여행길에서 만난 삶과 죽음, 여행의 어려움 등 책 속에서 혜초 스님은 이렇듯 고국 신라에서 연마한 서정적인 필력을 아낌없이 보여주시고 있으니..그래서, 왕오천축국전은 시가 있는 ‘서정적 여행기’로 읽히기도 합니다. 역사서인 동시에 문학서이기도 한 것이죠.

아랍, 이슬람 세계로 진출한 첫 한국인, 콜럼버스 보다도 800년 가까이 먼저 세계의 구석구석을 누볐던 자랑스러운 세계인 혜초. 하지만, 스님은 이런 엄청난 타이틀에 야망을 품고 길을 떠나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아마도 우리와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먼 이국을 생각하며, 언젠가 그 땅을 밟아볼 꿈으로 밤마다 가슴을 두근거리는 그 마음말이죠. 블로그도 디지털 카메라도 유레일 패스도 없던 그 시절에도 피끓는 청춘의 누군가는 그렇게 저 먼 지평선을 바라보며, 낯선 저 편을 향한 가눌 수 없는 궁금증을 품은 채 여행을 하고, 그 기록을 남겼습니다. 어때요? 더 분발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나요?

△ 중천축의 마하보디 득도처 대탑 앞을 지나는 혜초스님 (디지털 복원) 본문 중에서

혜초 스님이 780년 향년 76세로 입적하셨던 오늘,
언젠가 이 디지털 세상에 남겨진 수많은 기록들도 왕오천축국전 못지 않은 훌륭한 인류의 자산으로 남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 젊은 날의 여행은 인생을 바꾼다. 내 삶을 변화시킨 여행기!

체 게바라의 모토사이클 다이어리
23살, 호기심많은 의대생이였던 한 젊은이가 4개월간 친구와 함께 남미 대륙 횡단하는 여행을 결심합니다. 낡고 오래된 ‘포데로사’라는 이름의 모터사이클을 몸을 싣고, 안데스 산맥을 가로질러 칠레 해안을 따라 사막을 건넌 후, 아마존으로 뛰어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서 말이죠.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로의 이 여행은 8개월로 늘어나고, 민중의 삶과 아픔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며 그는 이전의 그로 돌아갈 수 없는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훗날 쿠바 혁명의 영웅, 가장 현명하고 인간적인 지도자로 추앙받는 세기의 영웅 ‘체 게바라’라를 탄생시킨 계기가 된 그의 육필 여행기를 만나보세요. 영화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

청년 이시다 유스케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식품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배낭 하나 달랑 자전거 짐칸에 싣고 알래스카로 달려갔고 전 세계 87개국 95,000km를 누비고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심장에는 파란만장 대하소설 10권짜리 이야깃거리가 가득했죠. 각 대륙에 숨어 있는 ‘세계 최고’를 직접 확인해 보자는 단순하고도 소박한 꿈을 위해 자전거 하나에만 의지한 채 7년 반 동안 전 세계 87개국을 홀로 여행한 일본 청년의 세계일주 여행기.

LOVE & FREE
명문대학 중퇴자이자, 변변한 음반 한장 없이 자칭 록가수를 자인하던 한 건달. 아무도 자신의 원고를 받아주지 않자, 홧김에 출판사 하나를 차리고, 26살에 여자 하나를 꼬셔서 신혼여행을 떠납니다. 오대양 육대주를 떠돌아다니며 정처없이 써내려간, 치기어린 글과 거침없는 앵글은 이렇게 또하나의 책이 되었습니다. 1년 8개월의 신혼 여행. 그 속에서 그는 사람과 삶을 만납니다.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언제나 컴퓨터 앞이 아니라 새파란 하늘 아래였다’ 가슴시린 깨달음입니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여행기 하면, 우리의 한비야 언니를 빼놓을 수 없죠! 잘나가는 국제 홍보회사의 차장 자리를 박차고 <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으로 일약 우리들의 꿈의 대명사가 되어 버리더니, 우리 땅에 섰다가, 중국 견문에 이르고 그것도 모자라 마침내 지도 밖으로 행군해 버리고 맙니다. 인생의 후반을 준비해야 하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이 꿋꿋한 바람의 딸의 행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수 많은 대한민국의 작은 바람의 딸, 아들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준 한비야. 그녀의 화이팅을 바랍니다.

▣ 책 못지 않은 감동과 설레임, 여행 블로그!

리서치 해서 추가…각종 여행 블로그

▣ 함께 떠나는…네이버 여행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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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


백남준 인물 검색

이 책의 표지는 1961년 제 12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서 < 길에 끌리는 바이올린>을 퍼포먼스중인 故백남준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긴 줄에 바이올린을 매달고 시멘트 바닥을 천천히 걷고 있는 백남준 씨의 모습. 그가 생전에 피아노나 넥타이에 대해 했던 말을 패러디해 본다면, “바이올린이란 연주 뿐만 아니라 줄에 매달아 길바닥에 끌고 다닐 수도 있다.”

현재 미술을 뒤흔든 천재적 실험 작가로 평가 받는 그는 이렇게 평생을 사람들의 고정 관념 속에 갇히 악기와 TV와 그 많은 사물들을 해방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미적 관념의 해방을 통해 인간의 근원과 자유를 표현했죠. 이 책은 제목처럼 그 과정에서의 그 치열한 삶의 예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빼놓을 수 없는 그 특유의 장난스러움과 유희 정신을 포함해서 말이죠.

타계 소식과 함께 아티스트 백남준에게 각종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기사와 추모 방송 물론, 각종 추모전과 행사들이 기획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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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이 책에 주목하게 되는 특별한 이유는 이 책이 오랜 기간 동안 백남준과 교류를 나누었던 저자가 1년 이란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기사를 모태로 만들어졌다는 점. 그러면서도 백남준이라는 브랜드를 신화화 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려내고자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글을 쓰게 된 비평가 이용우 교수는 나와 오랜 동안 사는 이야기, 예술 이야기를 나누어 온 지기다. 우리가 사람에 대하여 다 알지 못하듯이 글을 쓰면서 그도 나의 인생과 작업의 일부분을 이해하고 기술할 것이다. (본문 10p)

책 앞머리에 있는 글입니다. 백남준씨가 직접 동아일보 연재 기사의 1회에 기고했던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고작 나의 일부분을 알고 기술할 거라니. 앞으로 계속 연재 글을 써야 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기분나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책에서 펼쳐지는 저자의 내공도 만만치 않습니다. 백남준이라는 거대한 후광에 매몰되지 않고, 백남준의 예술과 삶의 드러난 앞면은 물론 뒷면까지를 함께 짚어내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백남준 역시 몇 줄의 분석으로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함락될 인물은 아니었지만요. 마치 백남준과 이용우가 팽팽한 기싸움이라도 벌이는 듯 하다고 할까요? 나중에 저자가 소호의 작업실에 찾아갔을 때 “이용우가 쓴 글 속에 내가 모르는 내용도 있더구먼! 재미있게 잘 읽었어.” 라고 평했다니, 승패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은 가장 훌륭한 검증을 받은 셈입니다.

지난 3일 故백남준의 장례식에서는 백남준을 위한 작은 퍼포먼스가 벌어졌습니다. 방문한 조문객들의 서로의 넥타이를 가위로 잘라 관 안에 넣은 것이죠. 수북히 쌓인 지인들의 넥타이 조각들 사이에서 백남준은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생 동안 극단적인 파격과 혁신을 추구했던 그는 이 정도의 평범한 아이디어에 만족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가 사랑하는 친구들을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며 벌였던, 그 과격한 퍼포먼스에 비하면 말이죠.

▣ 백남준의 친구들

  • 조셉 보이스 : 백남준의 예술적 쌍동이라고 일컫어지는 현대 미술의 개척자. 플럭서스의 창시자. 그가 사망하자 백남준은 갓과 보이스의 펠트 모자를 태우며 넋을 기리는 < 보이스 추모굿 (1990)을 벌였다.
  • 존 케이지 : 미국의 전위 음악가. 백남준이 꼽은 인생의 스승으로 플럭서스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함. 연주자로 4분 33초 동안 피아노 앞에 가만히 앉아 있다 퇴장하는 ’4분 33초’로 유명
  • 샬로트 무어만 : 백남준의 예술적 분신. < 섹스 트로니크> 등 수많은 퍼포먼스를 같이 했으며, 끊임없이 예술적 영감을 주고 받았다.

지금도 그들은 하늘나라에 모여 뒤늦게 도착한 백남준의 환영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겠죠? 천사의 머리 위에 얹힌 링을 굴렁쇠로 굴린다거나, 날개로 붓글씨를 그린다거나 하면서요. 그를 잃은 여기도 각종 행사와 뉴스로 시끄럽지만, 저기 윗쪽이야말로 앞으로 한참은 시끄럽겠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저 위를 바라보며 한 마디 하고 싶군요. 굿모닝 미스터 백남준! 그렇게 우리는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 백남준의 대표작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습작 (1960)피아노로 쇼팽을 연주하던 백남준이 갑자기 관중석에 내려와 관람중이던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고 사라졌다가, 근처 술집에서 공연장으로 전화를 해 공연이 끝났음을 알렸다. 플럭서스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


휴먼 첼로 (1961,1971)
샬로트 무어만이 백남준을 몸에 첼로의 현을 대고 연주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미디어의 빅브라더화를 예견한 조지 오웰 <1984>년의 주장과는 달리 텔레비전을 통해서 세상이 지구촌으로 바뀐 모습을 생생히 전달. 1984년 1월 1일 전 세계에 생중계. 백남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됨.

기타 대표작

▣ 백남준 관련 동영상

▣ 백남준 관련 사이트

- 백남준 공식 웹사이트
-
백남준 팬사이트(국내)
- FLUX : Nam June Paik in the 90′s

▣ 백남준 어록

한 행사장에서 죽으면 무엇이 가장 섭섭할 것 같냐는 질문에 존 케이지가 “백남준의 입담을 못 듣는 것이 가장 아쉬울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거침없고, 재기발랄했으며 늘 화제를 몰고 다녔던 백남준 어록.

▲”원래 예술이란 게 반이 사기입니다” -1984년 귀국 인터뷰에서

▲”넥타이는 맬 뿐만 아니라 자를 수도 있으며, 피아노는 연주 뿐만 아니라 두들겨 부술 수도 있다.” = 1962년 관객의 넥타이를 자르고,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면서

▲예술가는 좀 게을러야 해. 그래야 이것저것 궁리할 시간이 많지”-1995년 호암상 예술상 수상 직후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는 한국인의 가능성과 생명력을 남대문ㆍ동대문 시장에서 찾는다. 세계 경제의 경쟁력은 유통과 자유시장 기능인데, 남대문ㆍ동대문 시장은 이 문제를 100년 전에 이미 해결해 놓았다” – 1999년 4월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소원이며 한국에 묻히고 싶다” – 2004년 10월 뉴욕 맨해튼의 백남준스튜디오에서 신작 발표를 겸한 기자회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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