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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July, 2011

Ref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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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히지도 않고 멀어지지도 않는, 象

(발상은 괜찮았구만 사진 왜 이래 -_-;; …소등의 아우라 2가 되려나..)

라이딩~ 한강 출격

비가 그쳤다. 시즌이 온 것이다. 한강으로 출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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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차를 많이 못 탔다. 겨울이 길었는데, 봄에는 공사가 다망했었고, 여름엔 비가 왔다. 지긋지긋한 불면증과의 전쟁도 힘겨웠었다. 무엇보다, 안양천 합수부를 넘어서지를 못했다. 그것보다는 더 달릴 수 있었지만, 마음이 그랬다.

그런데, 올해 처음 마지노선 같던 안양천 합수부를 넘었다. 당산 철교까지 왕복 30km. 그다지 긴 거리는 아니다. 걱정도 좀 했는데, 왠일인지 가는 길엔 훨훨 날았다. 내친 김에 마포, 원효, 한강대교까지 달려보고 싶었지만 간신히 자제했다. 그런데 왠걸! 역시나 오는 길이 죽음이었다. 성산대교에서 안양천 합수부까지 그렇게 길었던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다리에 힘풀리고, 눈은 골뱅이 모양이 되고… ㅎㅎ

작년 가을엔 올림픽 대교 찍고, 미사리 진출할 판이었는데 고작 당산철교 왕복에서 이리 후달리다니. 내 체력 다 어디 갔어? 잉잉…일본 감독 테라야마 슈지가 쓴 <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라는 책이 있다. 2011년 후반을 맞는 나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 스마트폰을 버리고 한강으로 나가자>.

7월~8월은 프리시즌이다. 가을 정규 시즌을 대비해 열심히 체력을 갈고 닦아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올해는 욕심내면 안될 것 같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참 많이 힘들었던 상반기였다. 시동 정도를 걸어 보는 거지. 그리고 찬찬히 기본 정도를 되돌리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작 잔차타고 나가면 완전 흥분해서….ㅎㅎ 특히 한강만 보면 정신줄 놓는다. 담주엔 야간 라이딩해보고 싶다. 밤의 한강 너무 멋지니까.

7월의 히감독님

어제 밤이 히(치콕) 감독님이 꿈에 나오셨다. 팩토리 27층에서 영화 워크샵 같은 걸 하고 있는데, 직접 오셔서 8mm로 시범을 보여주셨다. 캠을 들고, 창밖을 촬영하시는데 낮게 천천히 찍다가 갑자기 캠을 하늘로 들어올리시며 건물 아래쪽으로 렌즈 방향을 트셨다. 카메라에 연결된 화면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던 나는, 화면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런 높이감에 현기증을 느끼며 뒤로 물러서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야. 역시 히감독님은 화면으로 모든 걸 보여주시는구나. 꿈속에서도 히감독님의 촬영에 연신 감탄을 했다. 어제 본 <39계단>이 너무 재미있었던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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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 세계의 명화> 7월 히치콕 특집. 나에게는 하늘에서 보석들이 막 떨어지는 것 같은 시간이다. 토요일 밤마다 죽이 딱 맞는 누군가와의 데이트가 잡혀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것들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데, 그게 내 취향의 문제인지 세상의 문제인지 영화의 문제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특히나 여름이면 더더욱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어지면서 왠지 모를 소외감도 깊어지는데, 이런 때 히감독님의 영화는 큰 위안이 된다. You’re not alone~ I’m here with you~

선배 생일 챙겨주느라 < 이창>은 반절 밖에 못 봤다. 사실, 피핑 톰질하는 앞부분이 재밌는데. 그래도, 코넬 울리히의 원작 를 읽는 계기가 되었다. 코넬 울리히, 일명 윌리엄 아리리쉬는 내가 제일 좋아했던 추리작가 Best 3에 꼽는다. 두 대가의 만남이라니. 원작도 멋있었다^^ 순수한 ‘관찰’을 통해 자기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진실에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그려진다. 대가들은 군더더기가 없고, 명료하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그냥 이해가 다 되고 뭉게뭉게한 부분이 없다. 사술을 부려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법이 없이 늘 정공이다. 그러면서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열광하게 만든다.

문장과 영상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원작에서 히감독님이 더한 캐릭터들의 맛을 확인하게 되어 기뻤다. 능글맞은 제임스 스튜어트와 공주님 그레이스 캘리. 하지만, 사건이 진전되면서 그레이스 캘리는 누구보다도 더 깊게 사건 속으로 빠져들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위험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재치넘치게~임기응변. 반전 금발미녀랄까. 이런 캐릭터들을 더해 원작의 의도를 명확히 표현하면서도, 자신의 세계를 명확하게 만들어내신 솜씨가 대단하다. 여력이 뻗쳤다면, 코넬 울리히의 문장과 히감독님의 영상 캡쳐를 교차 편집해서 올려보고 싶으나…여력이 안 뻗친다. 누가 해 주면 좋겠다만 ㅠ

< 현기증>에서는 킴 노박의 아름다움이 새삼스러웠다. 이상한 여자다. 두 가슴을 봉곳이 세우고, 개미 허리를 있는대로 조여맨 채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걷는 금발 미녀. 우아하면서도 천박하고, 지적이면서도 육감적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피카소 그림 속 여자같은 신비감을 준다. 영화의 이중 캐릭터에도 딱이지만, 제목에도 딱 맞는 참으로 적절한 캐스팅이지 싶다.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현기증이 나는데, 남자들이 보면 어떨까? 그냥 스토리와 관계없이 현기증, 그 자체다.

< 현기증>은 어두운 영화다. 한 여자에게 천착하지 못하고, 지 좋다는 여자에게 농담따먹기 밖에 안되는 느물느물한 퇴직 형사 제임스 스튜어트. 트라우마에 발목잡혀 누구에게도 진심을 주지않았던 잔머리 뺀질남이 한 여자에게 있는대로 진지해져 미쳐가고 결국 정신 병원에 갇히기까지의 과정은 서스펜스 이상의 서늘함을 던진다. 하지만, 이 조차 끝이 아니다. 전반부에 가득한 농기는 점점 물이 빠지고, 영화는 점점 이상한 심연으로 관객들을 데려간다. < 현기증>은 히치콕의 어두움이 가장 여과없이 날을 세운 영화 같다. 하지만, 희망 한 가닥 남기지 않는 비극에서조차 히감독님은 오바하는 법이 없으시니…..그저 납죽. 개인적으로 제임스 스튜어트 짝사랑하는 여자 캐릭터. 이런 게 히감독님만의 묘미일거다.

그리고 어제의 <39계단>. 예~전에 봤는데, 스토리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서 다행이었다. 순간순간이 촌철살인이고, 모든 기대를 한치의 주저도 없이 뒤엎어 버리는 반전의 연속이다. 35년도 작품이니 36세 때 감독하신 거지만, 아직 히감독님의 진짜 전성시대가 오기 전인 ‘영국 시대’ 끝물의 작품이다. 흑백의 철지난 영상이지만, 그때 이미 히감독님이 히치콕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면이나 촬영이 좀 촌스럽다 뿐이지, 캐릭터는 왠만한 요즘 영화/드라마보다 훨씬 더 모던하다. 보다가 너무 많이 웃고, 놀래고… 왠만한 기대는 칼처럼 잘라버리는데, 아…진짜 재미가 뭔지 아는 감독님이시다. 그리고 이 현란한 캐릭터들의 향연. *살아있는* 인간들. 핵심작렬의 대사들. 한 순간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악마적 디테일들. 유머감각까지도. 사실 히감독님 영화는 분석보다도 명장면을 꼽으며 낄낄거려야 제 맛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거의 모든 장면이 명장면이라서, 정리를 할 수가 없다. 그래도 빼놓을 수 없는 것. 직업 의식! 직업 의식…ㅎㅎ 영화 전체를 풍미하다가 결국 반전의 포인트로 승화되는 캐릭터들의 직업 의식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다.

거장의 초기 작품처럼 재미있는 게 없다. 다소 어설프기도 하고 허술할 수도 있지만, 그를 그답게 만들어 주는 것, 그래서 내가 그에게 열광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초기 작품에 다 들어가 있다. 형태의 촌스러움이나 다소 거친 표현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앞으로 펼쳐나갈 ‘세계’의 증명이다. 오히려, 그런 세계는 초기 작품이 더 생생하게 나타난다.

나는 이상한 영화를 만들다가 경험을 쌓고 성장해서 갑자기 멋진 영화를 만든 감독을 본 적이 별로 없다. (반대의 경우는 종종 있지만) 물론 내가 영화를 많이 보는 건 아닌지라, 그냥 철저한 나만의 편식성 통계치일 뿐이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의 영화는 처음부터 다 ‘그들’의 영화였다. 코헨은 < 블러드 심플>부터 딱 그냥 씨네필 영화쟁이였고, 우디 알렌은 < 돈을 갖고 튀어라>같은 데서부터 자학피학 인간 코메디였고, 알모도바르는 < 페피, 루시, 봄>에서부터 미친 열정이었다. 막 시작된 ‘한 세계’가 숙성되고, 세련되어지고, 깊어져 또 다른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본다는 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거장이 된 후에 접해서 거꾸로 그의 초기 작품을 다시 거슬러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인 것 같다. 내가 열광하게 될 세계의 ‘어린 싹’을 발견하는 즐거움.

<39계단>에서도 내가 거장이 된 후 히감독님 영화에서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다 느낄 수 있었다. 어떨 땐, 그냥 나란 사람을 분석해서 나 재미있으라고 만든 영화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히감독님의 영화가 가장 아름다운가? 가장 화려한가? 가장 감동적인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히감독님은 가장 영화같은 영화를 만드셨던 감독님이었던 것 같다. 문학도 연극도 아닌, 영화라는 방식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씬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영화든 문학이든 언론이든 뭐가 됐든 한 분야의 가장 깊은 정수를 다다른 이들이 멋있어 보인다^^

어쨌든 기대 많이 했던 특집이었는데, 어느덧 7월도 다 가고 ….이제 히감독님 특집도 한 주 남았다. < 싸이코> ㅋㅋ 문제적 작품!

[체험담] 나의 공돌이 관찰기

어쩌다 보니 공돌이들에 둘러쌓여 살고 있다. 꽤 오랜 시간동안 이렇게 보냈고, 그들을 좋아하지만,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나로선 참 싱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아래 쓴 내용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그냥 순수한 내 일상의 ‘관찰기’이다. G+이나 트위터를 해 보니, 그들과 나의 간극은 더욱 극명하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

모든 대화는 컴퓨터를 향한다.

*개발자의 생일 : 생일축가 → 오늘 뭐하니? 길드원들과 파티하니? → 테라 → 컴퓨터 교체 → 컴퓨터 수리 → 팬과 컴퓨터 수명의 상관관계
* 발렌타인 데이 : 초콜렛 이야기 → 선물 → 램 → SDD → i7 → 최근 CPU 동향

워크샵 가서 하고 싶은 게임 : 16진수 게임, n진수 게임

워크샵에서 받고 싶은 선물 : i7

컴퓨터와의 일체감이 매우 높다.

아침에 출근해 보니, 우리팀 막내 개발자 꼬맹이(여자)가 파티션에 기대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너무 놀래서 “우대리, 왜 그래??” 그랬더니…흑흑 거리며 하는 말 “CPU가…CPU가…” 알고보니 컴퓨터 수리 맡겼다 CPU 사기 당했단 얘기. 한참 울더니 하는 말 “그런 허접한 CPU를 끼워놓는 건 제 메인보드에 대한 모욕이예요.”

개발자가 기쁠 때

오후가 되니 아침에 울던 팀 막내가 환하게 웃으며 돌아다닌다. “왜 뭐 좋은 일 있어?”
수석님~~~ 하면 반갑게 달려와 아파치 서버모듈 셋팅이 어쩌구 저쩌구 상세한 설명….내가 알아듣건 말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곤. “응~ 고쳐서 다행이네^ ^”

택배 받으러 갔다오는데 팀 개발자 나를 보더니 손을 막 흔든다~~ 평소에 볼 수 없는 환한 미소를 띄고.
“수석님 이거 돼요!!” 버그하나 잡은 것에 이렇게 기뻐하는 순수한 우리 개발자들. ㅠ

무엇인가를 되게 만드는 순간이 그들에게는 가장 기쁜 순간이다.

새로운 뭔가가 나왔을 때 대부분 개발자이 맨 처음 하는 말

“이거 어떻게 한 거지?”

구현한 방식에 감동이 없으면, 그들은 아무리 화제가 되는 서비스라도 새롭다고 인정하기 힘들어 한다.

점점 컴퓨터와 닮아간다. 0과 1이다.

당신이 공돌이와 함께 생활한다면, 공돌이들이 당신을 싫어한다거나 무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순간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들에게 당신은 그저 0일 뿐이다.

그들은 0과 1이 아닌 상황을 몹시 힘들어 한다. 그리고, 0과 1외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짜증난다. 따라서, 당신이 상사나 동료과 공돌이라면 가급적 그들에게 0과 1의 옵션을 가급적 짧게 제공해야,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 문과생에게 모든 것은 그라데이션이다. 0과 1사이에 우주가 존재한다. 세상을 0과 1로 정리하면 화가 난다. “넌 어쩜 그렇게 단순할 수가 있니!!”

공돌이의 사회성

단체 모임에 아는 IT업체 공돌이 이사님 한 분이 끼어있었다. 뒷풀이 가서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죄다 노래방 무대에 올라가 어깨 걸고 ‘사노라면’ 부르는 질펀한 술자리에 적응 못 하고 당황스러워 하심. 생판 남이 한 순간에 형님 아우 되는 지나치게 소셜한 대한민국 집단 뒷풀이 술문화 적응 못함. 눈치 챈 내가 “힘드시죠?” 그러니까…소심하게 옆에 있는 술집 냉장고를 가리키며 이러신다. “이거도 우리가 만든 거고, (노래방 기계를 가리키며) 저것도 우리가 만든건데…” ㅠㅠ 세상 사람들 먹고 놀게 할 수 있는 거 다 만들어 놓고, 정작 자신들은 즐기지 못하는 슬픈 운명.

언어의 오차범위가 매우 좁다.

점심 때 율동공원 밥먹으러 가는데, 호수 둘레길 드라이브 넘 좋아서 “이런 데서 살고 싶다~” 그랬더니 차에 같이 탔던 개발자 3명이 동시다발로 외친다 “여기(호수)서요?” 그들에게 ‘여기’는 바로 여기(반경 <1m), 내가 말하는 여기는 그냥 이런 호수가 근처(반경<5km).

어떤 공돌이의 미투데이 포스팅

두 아주머니의 대화.. >도곡은 얼마나 남았어요?? >많~이요 많이 오후 8시 47분
이 포스트에 달린 태그 : 응?? 많이가 얼만큼인데요? ㅜㅠ?? 두분은 완전 이해하신듯 ㅡㅜ
수치화되지 않은 개념은 이해할 수 없는 공돌이

팀 막내 공돌이와의 훈훈한 대화

막내 : 전 수석님이 좋아요! (참고로, 유진이 회사 호칭 정수석)
유진 : 나두나두!
막내 :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수석님도 수석님이 좋으세요?
유진 : 아니…그게 아니라…=.=

그래도 일단 설명을 해 주고 의미를 깨닫게 해 주면, 다음부터는 참 잘 기억해 놓는다.

(며칠 후)
막내 : 저는 수석님이 좋아요.
나 : 나두나두!. …흠 근데 이게 무슨 뜻인지 알지?
막내 : 네! 알아요….두 개 다 바꾸는 거.
나 : 구~~뜨!!!

팩트만 존재할 뿐. 화자의 의도나 맥락은 아웃오브안중.

백만 년만에 회사에 미니스커트 입고, 완전 이쁘게 하고 왔음. 점심먹으러 갈 때까지, 심지어 지하식당에 내려가서까지 7~8명의 팀원들(나빼고 죄다 공돌, 공순)이 아무도, 아무런 멘트도 안 함. 어떻게 이럴수가. 참다참다 급기야 밥 수저 내려놓으며 한 마디.

나 : 야~ 근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나 이러고 온거 안 보여? 내가 진짜 입사이래 처음으로 치마 입었는데, 어떻게 아무도 한 마디를 안 하냐? 버럭버럭…

이 때 끼어드는 공돌이 후배

공 : 어, 아닌데. 지난 번에도 한 번 치마 입고 오셨는데. 지난 달 말인가 언제.
다른 공 : 맞아요. 저도 봤는데. 그때 입고 오셨었어요. (공돌이들의 웅성웅성..)
나 : (아니…지금 그 얘기가 아니라;;;; ) 쿵~

타이머 얘기를 하자는 거였나?

맞벌이 하고 있는 여자 분 토로. 자기 남편이 “집에 먼저 좀 와 있으라고. 집에 와서 컴컴한 데 불 켜기 싫다고 했다”고 한다. 심지어 남편이 맨날 집에 먼저 와 있으라는 했다고. 집에 와서 컴컴한 데 현관불 켜기 싫다고.
몇몇 개발자들 : (동시다발적으로) 어, 그거 타이머 있는데.
다른 개발자 : 맞아요. 그거 타이머가 어쩌구 저쩌구…이야기는 알 수 없는 가정용 타이머 스펙으로 넘어가고…

검증 안 된 얘기로 농담 따먹는 것은 어색할 뿐이다.

처음 팀 발령받아, 첫 티타임에서 아이스 브레이킹용으로 회심의 혈액형 얘기를 꺼냈다. 다들 당황해하며 분위기 싸아- 이야기는 곧바로 심도있는 DNA와 혈액형의 상관관계…관련 최근 논문 동향으로…=.=

공돌이의 영화 관람

나 : 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블랙스완이 탔더라~ 우와
개발자 : 수석님, 블랙스완 보셨어요? 난 도저히 몬 말인지 모르겠던데. 옛날에 밀양 봤는데, 처음에는 과부얘긴 줄알았다가, 그 다음엔 ..불륜얘기준 알았는데. 다 보고 났더니 친구가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라고 해서 ‘아~~’그랬는데.

밀양 지못미 ㅠ

공돌이들의 문서 작성

공돌이들의 ppt 문서 공통점. 대부분의 공돌이들이 서식, 레이아웃, 글꼴을 변경을 하지 않은 채 파일을 열면 나오는 디폴트 템플릿을 그대로 쓴다.

우리 회사에서는 사내 공통 서식 문서가 제공된다. 디자이너가 심혈을 기울여 표지, 목차, 내용, 마무리 장 등을 구분하여 하나의 멋드러진 ppt 템플릿 파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공통 서식 문서를 이용한 대부분의 공돌이들의 문서 전체가 검은 배경에 옅은 꽃무늬가 그려진 표지 템플릿으로 작성된다는 슬픈 현실을 발견해야만 했다.

개발자 남친/남편에게 무언가 요구하는 법

잘못된 방법 : 사랑하니까 알아서 잘 할 거라고 기대한다/ 운다/ 크게 소리지른다

좋은 방법

(1) 피처리스트 Due Date를 전달한다.
감정을 싣지 말고, to-do만 간명하게 전달한다. 서술형보다는 불릿 포인트의 개조식이 효과적이다.

※ 문과계 뺀돌이들은 이와 같은 타이트한 reqirement로 운신의 폭이 한계 지어지는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대충 해 놓고도, 엄청 잘 했다고 확대 해석하여 우길 여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 입력

화이트데이 즈음-

나 : 화이트데이에 남친한테 사탕받았니?
여자 개발자 : 아니요~ ㅠ
다른 개발자 : 입력은 했어?
여자 개발자 : 아니요
다른 개발자 : 입력을 안했으면, 못 받지~~ 왜 입력을 안했어. (ㅋㅋㅋ)

하지만, 개발자들은 한 번 입력이 되면, 이후론 편해짐. 할 것만 명확해 지면 개발자들보다 더 잘 implement하는 종족도 많지 않다. 물론, 정해진 스펙 이상의 것을 하는 센스는 기대하지 말 것.

공돌이의 기념일 챙기기

내가 아는 모 조직장님. 화이트데이 챙기셨냐고 여쭈어 보니, 그게 뭐냐며. 이미 본인은 1년에 5일 이상 챙기신단다. 생일, 결혼기념일, 처음 만난 날, 100일 된 날 등등. 40대 중반이 되셨는데도ㅠ 한 번 입력되면 삭제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성실하게 무한루프.

공돌이와의 골프 라운딩

동갑 공돌이 세 명과의 라운딩. 누가 티샷을 해도 하거나 말거나 티박스에서 각자 연습 스윙하고, 유일한 레이디인 내가 아무리 드라이버를 멀리 날려도 굿샷 한 번 안 외치고, 멀뚱하니 서 있는다. 보다못한 나의 외침! “자, 다음 홀부터 제가 티샷한 볼이 떠서 날라가면 박수를 치면서 ‘굿샷~~’이라고 외칩니다.”

다음 홀, 드라이버가 날라가자~ 기계적인 박수와 어색한 굿샷 외침. “자, 이제 굿샷을 외칠 때 한 명에 3초씩 딜레이를 주세요~” ㅋㅋ 한 홀도 빠지지 않고 가르쳐 준대로 열심히 외치는 공돌이들.

전문 용어의 구사에 능하다.

한 개발자가 라섹수술을 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출근. 유진이가 “북에서 온 사나이냐? 푸하하” 하는 사이 다른 개발자의 질문

다른 개발자 : UV되는 거야? 라섹하면 그게 중요한데.
라섹 개발자 : 응.
다른 개발자 : 그거 몇 옹스트롬인데?
라섹 개발자 : 400나노미터.
유진 : -_-;;;

옹스트롬 …옹스트롬…대체 언제적 옹스트롬??!!

공돌이의 나무 관찰

신록이 깊어가는 초여름, 점심 먹고 들어오다 회사 근처에서 무성한 나무 한 그루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후배 발견

유진 : 야, 너 뭘 그렇게 보고 있어?
후배 : 네! 옹이의 분포 비율을 보고 있어요. 2:1…2:1…2:1…이네요.
유진 : (읭????)

반면, 일상생활에서의 어휘구사력, 특히 감정 표현능력은 몹시 제한적이다.

너무 들어서 CD 다 닳아 3번이나 다시 산 CD가 있다는 모 센터장님. 그 CD가 뭐냐고 여쭈어보니, 내가 최고로 꼽는 키스자렛 Solo Concert !! 알고 보니, 고딩때부터 30년 광팬. (참고로 나도 광팬) 나도 수 십번은 들었지만, CD가 닳지는 않던데. 너무 신기하고도 반가워 이어진 질문.

나 : 센터장님, 근데 왜 키스 자렛이 좋으세요?
센 : (급 당황) 엇….(주저주저)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30년 덕질했던 연주자가 왜 좋은지조차 표현할 수 없는 공돌이의 슬픔.

※ 참고로 문과생 출신. 키스자렛 음악 한 번도 안 들어 봤어도, 최소 15분 이상 떠들 수 있음. “아, 키스 자렛. 내가 아는 사람이 키스 자렛 좋아하는데 말이야. 그 사람이 재즈매니아인데, 예전에 빠를 하다 망했거든…그 빠에도 키스자렛 CD가 많았는데 말이야…” 거침없는 무작위 전우주적 하이퍼링크.

※ 참고 링크 : [개념글] 공대생들이 공대 힘들다고 징징되는거 구라임

코엑스에서 열렸던 월드 IT쇼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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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걸까? 인터넷으로 동영상 보게 된지 15년 넘은 거 같은데…
뭔가 좋은 거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전달이 안되는 슬픈 어휘 구사력 ㅋ

공돌이들의 박람회 부스 접대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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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 관람객들이 들이닥치거나 말거나 다들 마이웨이~ 특정 집단 비하아님. 내 눈엔 넘 귀여워서~ ^^

더 욱긴 거. 이 사진 보여주니 우리팀 꼬맹이 하는 말. “아, 참 편안~한 분위기네요. 전 이런 분위기 너무 조아효”

브로크백 마운틴 : I swear…

어떤 때는 남이 나보다 더 잘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다. 이런 글을 볼 때 그렇다.

A great love story: Brokeback Mountain

항상 숙제처럼 < 브로크백 마운틴>에 대해서 뭔가 남겨놔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몇 줄…그러니까 한 세 줄 정도 끄적거리기도 했다. 첫 문장은 영화 속 애니스의 마지막 대사였다. “I swear…” 덧붙일 이미지는 겹쳐진 셔츠 두 장. 그 후로 몇 년 동안, 그 세 줄에서 진도를 빼지 못했다. 논리로 분석하기 이전에, 감정적으로 압도되어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는 느낌이었다. 매 번 그랬다. 히스 레저가 죽었다는 뉴스를 들은 날에도. 하지만, 마음에서 지울 수도 없었다. 겹쳐진 셔츠 두 장의 이미지를. 그 의미를.

오늘 아침, 마닐라에서 보내왔고, 로저 에버트가 업로드했다는 저 리뷰를 읽으며 가슴이 저며오는 아픔을 느꼈다. 뻔한 표현이지만,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 세상에 몹시도 치열하게 아픈 일들이 많다는데, 그런 일들을 껄껄껄 웃어 넘겨야 멋지다는데. 나는 겨우 이런 영화 얘기에 슬퍼하고 있구나. 하지만, 난 역시 이게 아프다. 그리고 누군가도 그렇지 않을까. 세상 모두가 알아줄 수 없는 이면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있는 것이다.

tan

하루에 고작 몇 분 주어지는 직딩의 점심 시간. 밖으로 뛰어나가 비오는 탄천을 걸었다. 아아..비가 온다. 그토록 지긋지긋해했던 비가 정말로, 여전히 내리고 있다. 아늑했다. 에어컨 바람이 부족함없이 쿨링하는 19층 높은 데에서 통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비와는 전혀 달랐다. 우산을 팽개치고 자전거를 타고 빗속을 달리고 싶었다. 흠뻑 비에 젖어 한없이 달려나가고 싶었다. 이대로 영원히 365일 비만 오는 나라가 된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It cares much less about promoting gay rights than about telling the sad tale of two people who have discovered each other, that they’re not alone, and that they can’t live without each other. They just happen to be men. If that isn’t star-crossed, I don’t know what is.

두 번째 책을 쓰면서…폭주하는 일상의 업무 속에서, 출퇴근 빼고 남는 얼마 안돼는 시간을 온통 책상머리 앞에 헌납해야 했던 2년 여의 시간 속에서 영화라고는 딱 세 편을 봤다. 홍상수 < 해변의 여인> 알모도바르 < 귀향> 그리고…이 영화 < 브로크백 마운틴> 매일매일 바들바들 조여오는 강박관념에 술 마실 시간조차도 죽여야 했던 나날이었지만 < 브로크백 마운틴>을 본 날 밤엔, 좋아하는 후배를 불러 소주를 실컷 마시고 뻗어버렸다. 그 2년 중에, 딱 하루였다. 하지만, 난 그 날도 이 영화의 비극성을 오롯이 체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말로 깨닫게 된 건 그로부터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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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결론적으로는, 정해진 회의 시간에 맞춰 우산을 든 채로 보송보송하게 회사로 무사 귀환. 업무 보고도 하고, 리포트도 쓰고, 틈날 때 각종 흰소리도 살포하며 낄낄거리는 등등.

이 영화는 두 번 보지 못했다. 다시 볼 용기를 오늘에서야 내 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언제나 그래왔듯 ‘빛’. 그리고 오늘, 내 맘에 가장 아픈 단어를 발견했다. ‘Dis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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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길에선 눈길 닿는 곳마다 꽃이다. 절로 피어나 자라는 꽃들이 아니라, 꺾여서 장식으로 쓰이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꽃. 이 거리 걷는 동안만이라도, 삶의 고단함 잠시 잊으시라고 집집마다 부적처럼 걸어놓은 꽃들. 여전히 희미한 생명의 숨을 뿜어낸다. 혹시 저 아이들이 땅과 물을 만나면, 다시 생명을 찾고 뿌리를 내릴까. 그럴 수 있을까…

목덜미를 타고 맑은 땀이 흘러내리는 도심의 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맥주 안주삼아 농담을 따먹으며, 꽃을 생각했다. 꽃들이 만발한 들판. 거친 흙바닥 아래로 뒤엉켜 퍼져가는 억센 뿌리를 생각했다. 누군가 걸려있는 꽃을 가져다 땅에 심고 물을 주었다. 꽃이 살아났다. 그리고, 꽃을 가져다 심고 물을 준 사람도 어느새 꽃이 되어 있었다.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란…꽃으로 만들어 주는 것 뿐. 꽃처럼 바라봐 주다가, 꽃이 되어 버리는 것… 꽃으로 가득한 가로수길에서, 밤의 더운 열기가 실어다 주는 진한 꽃향기 속에서 그렇게 난 내내 꽃 생각을 하고 있었다.

히치콕 ‘새(The Birds)’ – 갑툭튀의 공격

birds

EBS 대박기획! 7월 세계의명화 여름특집 < 히치콕감독 HD걸작선>
2/새, 9/이창, 16/현기증, 23/39계단 30/싸이코 (Thanks to @aeravera)

초딩 여름방학을 종종 목포 외할버지 댁에서 보냈다. 목포 다운타운 한 복판에서 수퍼를 하셨던 외할버지 가게에는 작은 흑백 TV가 놓여있었다. 그 밤도 어느 날과 같이 소시적 동네 훈장 선생님이셨던 외할아버지의 데일리 한자 퀴즈를 패스하고, 상으로 받은 하드를 베어먹으며 본 영화, 바로 마봉춘님이 틀어주신 영화 ‘새(The Birds)’였다.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무더운 여름 밤, 어린 마음에도 조여오는 서스펜스에 심장이 쿵.쿵. 뛰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람들 많이 오가는 가게였는데도 왠지 고립된 기분에 아악- 소리도 못지르고 벌벌 떨었지만, 한 시도 그 조그만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정신없이 봤었다. 오늘의 나처럼.

지금 생각해 보면, 본격적인 새들의 공격이 시작되긴 전 영화의 2/3에 해당하는 저 女3: 男1 신경분열직전의 위태로운 여초 로맨스를 당시의 쬐끄만 꼬맹이가 어떻게 받아넘겼을지 의아하다. 기억나는 것은 오로지 공포스러운 새들의 공격 뿐. 대학교 때 ‘새’를 봤을 때는 냉전 직후의 The others 위협이니 뭐니 하는 ‘새’나 영화 상징을 해석하는 부분에 몰두했었다. 졸업 후 동네 비디오 방에 구색맞추기 식으로 끼워져 있는 히치콕 영화를 하나씩 빌려다 봤을 때는 < 마니>에 홀딱 빠져 있었고 모든 영화가 최고였기기 때문에 ‘새’가 특별하지 않았다. 오늘 난, 새들의 공격을 전 후로, 영화 속 네 인물이 주고받는 대담한 대사들과 거기서 교차되는 감정이 화면에 표현되는 방식에 열광한다. 갑툭튀의 공격…그 속의 인간…이걸 바라보는 히치콕의 눈.

여자

한 남자를 중심에 둔 세 여자가 있다. 이들의 감정은 아스팔트 위의 열기처럼 강렬하지만, 밤인지 낮인지 실체를 분간하기 힘들다. 그 미묘한 속내는 오직 폭로를 두려워하지 않는 상대방 여자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한 남자를 중심에 둔 이 여자들이 쏘아대는 팽팽한 성적 긴장감은 새의 공격을 받고서야 깨져 나간다.

첫 번째 여자, New face.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굽이 굽이 해변 도로를 운전해, 앵무새(love bird) 두 마리 들고 보 데가 만에 도착한 속물적인 부자집 딸래미. 고급 차에 꽉 죄는 하이힐, 모피코트를 걸치고 금발머리를 한 치의 틈도 없이 우아하게 틀어올린 다니엘스(티피 헤들렌)다. 하지만, 이 여자가 주인공인 이유는 예뻐서가 아니다. 상황을 맞닥뜨리면 두 팔 걷어부치고 당면한 상황 속으로 돌진해 해야 할 일을 다하는 대담함 때문이다. 그러니까, 블라우스 버튼을 목까지 채워 올리지만, 엘레베이터에 둘이 남겨지만 남자의 지퍼를 내리는 데 주저함이 없는 여자 – 히치콕이 사랑해 마지않는 영국식 여주인공의 전형이다.

‘새’에서의 다니엘스도 그렇다. 그녀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가볍기 짝이 없다. 새 가게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에게 뻑이 가, 다음 날 그 남자에게 장난 하나를 치기 위해서. 로마의 분수에 알몸으로 뛰어들어 신문의 가십면을 오르내리는 천방지축 신문사 사장 딸래미의 가벼운 작업질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녀는 신문사 사장 딸의 직위를 이용해 남자의 신상을 털고, 그 먼 길을 운전해 오는 것도 모자라, 대여한 보트의 자가 운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지만, ‘유주얼 서스펙트’의 케빈 스페이시처럼 매서운 눈썰미로 캐치한 팩트를 백분 활용해 치밀하게 남자에게 다가간다. 이러한 그녀의 ‘총명한 열심’은 치기어린 작업질에 충실함을 부여하며, ‘내 남자에게 최선까지 다하는 미녀’로 남자의 로망을 업글한다. 못생긴 여자가 열심이다, 라는 숫컷의 통념을 뒤엎는는 히치콕식 반전.

다이엘스로 분한 티피 헤들렌. 장만옥, 까르멘 마우라, 그리고 헐리웃 이전의 페네로페 크루즈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그녀는 유난히 동물과 친하다. < 새>에서는 새 < 마니>에서는 말. 위대한 영화를 줄줄이 비엔나처럼 뽑아내셨지만, 히감독님 영화 중 퍼스널 베스트는 누가 뭐래도 ‘마니’다.

두 번째 여자, Ex. 언뜻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다니엘스의 의도를 한 눈에 꿰뚫어 보고 있는 여자가 바로 옛날 애인다. 그녀가 뉴 페이스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자신의 이전 모습이기 때문이다. 뉴페이스가 아무리 포장을 해도, ex에게는 환하게 읽힌다. 남자와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도 오직 그 남자를 친구로라도 옆에 두기 위해 황량한 이방에 정착해 평생을 사는 여자. 감히 뉴 페이스가 이런 여자를 속일 수 있을까. 심지어 그녀는 남자가 사랑하는 동생을 구하고 대신 죽어 버린다. 누가 이 여자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말 이길 수 없는 여자는 세 번째 여자다. Mother. 기댔던 남편을 잃은 그녀는 대신할 아들에게 집착한다. 돌아선 아들의 등에 넌 정말 니가 원하는 게 뭔지 몰라, 라고 독백하는 그녀는 영화에서 동물적 모성을 가진 ‘마더’라기보다는 보호받고픈 집착을 감춘 ‘여자’로 그려진다. 아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에게 다른 여자의 틈을 빼앗는 그녀가 여타 동종의 마더와 차별화 되는 건 다음과 같은 Ex의 촌철살인 분석 때문이다. 엄마는 이기적인가? “그녀는 그를 원하는 게 아니예요. 다만, 버림받고 싶지 않을 뿐.” 아들의 선택인가? “아니, 그녀가 그를 놓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고 생각해요.”

이런 Ex의 분석은 자연스럽게 ‘싸이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난 오늘 그녀에게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를 본다. 기대야 하는 여자. 남자없이 자립할 수 없는 존재. 그래서 결국 돌아버린 채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는 금발 미녀. ‘새’의 마더는 스탠리와 맺어진 50년 후의 블랑쉬같다. 기대는 대상이 근육질의 애인에서 아들로 바뀐 것 뿐. 마더로 분한 제시카 탠디의 얼굴은 놀랍도록 티피 헤들렌과 닮았다. 그래서 마더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나과 비슷하지만 나 보다 우열한 존재에게 느끼는 본능적 불안감.

영화는 새들의 공격에 다니엘스의 얼굴이 점점 질려가고, 결국 공포 이외의 모든 표정을 잃는 과정을 보여준다. 블랑쉬는 정신병원으로 끌려가고, 다니엘스는 불길한 탈출길에 오른다. 하지만, 영혼이 빠져나가 버린 듯한 두 여자의 마지막 표정은 비슷하다. 당돌하고 자신감 넘쳤던 두 미녀가 닥친 상황과 싸우다 맞는 비슷한 결말.

재미있는 건, ‘새’에서 마더에 분한 제시카 탠디가 연극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 역으로 47년 토니상을 탔다는 사실이다. (보고 싶다!) 금발 미녀의 얼굴로 당의을 씌우고 그 아래 동동 감싸놓은 히치콕의 비틀린 여성관이 읽힌다. 이 맛이 히치콕이다. :-)

남자

세 여자의 너무 많은 사랑을 받는 남자는 능글맞게 여자의 마음을 뺏을 줄은 알지만, 정작 선택을 할 줄 모른다. 엄마를 떠나지 못하는 건 그의 선택인가? 영화에서는 ex가 지적했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조차 불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불분명한 사각 관계는 생존을 위협하는 새들의 공격 앞에서야, 비로소 명쾌해진다. 영화의 끝에서 남자는 선택을 하고, 남자의 선택은 여자들의 감정에 교통정리를 하고 평화를 가져온다. 비록 그 평화가 맞서 싸울 방법이 없는 적들에게 둘러쌓인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평화가 오기까지, 한 여자는 죽었고, 또 한 여자는 영혼을 잃었고, 또 한 여자는 버림받았다. 진정 이 남자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겐지.

남자는 클리쉐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게 그려지기에,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여자들의 연대다. 영화의 중반을 지나 남자의 출연 빈도가 급격히 뜸해지면서 부각되는. Ex와 뉴 페이스는 학교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손을 잡고, 같은 집을 지키려는 마더와 뉴 페이스는 어쩐지 화해 모드다. 한 남자를 바라보는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으면서도, 영화에서 부각되는 건 질투라는 감정보다는 함께 힘을 합쳐 외부의 적에 맞서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계열로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실재 사례를 매일 목격 중이라. 김진숙과 김여진.

구경꾼들

누구 하나 허투루 그려지지 않는다. 조연이든 주연이든 엑스트라든 상관없다. 몇 초, 몇 분을 나와도 나온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고 들어가는 인간들로 인해 영화는 빽빽하고 모든 장면이 흥미만점이다. 고작 몇 분 등장하는 소소한 인물들에게조차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 악마적 디테일이 영화를 살아있게 만든다. 왜 이런 영화의 미덕이 요즘 영화들에서는 점점 사라져가는 것일까…영화의 캐릭터들도 점점 부익부 빈익빈.

‘왜 새들이 공격하는가?’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지만,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질문이다. 사람들은 새라는 존재를 분석하고, 나름의 이유를 따지고, 사태에 대한 개똥철학을 펼치지만 아무도 답하지 못한다. 시조새 이후 1억 4천만년 동안 잠잠히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공격을 퍼붓는 존재의 의도를 무슨 수로 파악한단 말인가. 원인이 없기에 원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없을 때, 인간의 논리는 무력해진다. 게다가 물리적 싸움도 안된다. 아니, 새랑 어떻게 싸워-_-;; 길가에 비둘기 한 마리랑 싸운다는 것도 이상한데, 수 천억 마리나 된다는 새들이랑 어떻게 싸워.

결국 불똥은 엉뚱하게 다니엘스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튄다. 치밀한 논리와 철학을 펼치던 인간들이 비이성적 본능으로 대동단결하는 와중에도, 새는 아무 힌트없이 나타나서 공격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유없이 나타나 뜬금없이 사라지는 갑툭튀의 공격. ‘새’에서 표현되는 공포의 근원은 ‘갑툭튀의 불가해함’이다. 고속도로의 미치광이. 동기없는 연쇄살인. 죄없는 어린 존재를 고통 속에 빠뜨리는 페스트.

인간을 딱 그 깊이만큼 들여다보고, 들여다 본 딱 그만큼을 아무 군더더기 없이 최단거리로, 더 이상 명쾌할 수 없게 쇼트로 살려내신 히감독님. 너무 오래 놓고 있었다. 추억 속 열광의 ‘기록’만이 남아있을 만큼. 오늘 다시 히감독님을 이렇게 뵙자오니, 감동의 눈물만이 흘러 내린다. 스쿨씬이나 공중부스씬, 다락방씬, 이웃집 방문씬 등 대표 명장면들도 좋았지만, 그 외의 모든 장면이 다 너무 좋았다. 단, 한 장면도 뻔하지 않다. 어떻게 영화가 이래. 아니, 영화가 원래 이런 거였지…영화가…영화라는게.

미스트(전체 스토리와 결말), 신체강탈자의 침입(Invasion), 악마의 씨(쫓기는 여자와 전화부스씬), 봉준호 감독님 마더(마더! 제시카 탠디…특히 이웃집 방문하고 돌아오는 전경씬) 등등의 영화가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음. 정말 행복한 여름 밤이었다. EBS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