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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 B급 걸작의 대국민 낚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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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Thirst, 2009)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인류에 도움되는 일 해보고 싶었던 좋은 남자의 이야기다. 항상 그렇듯 의도는 빗나가고, 때마침 등장하는 나쁜 여자의 유혹에 상황은 더더욱 엉망이 된다. 결국 선택한 거창한 순교의 결과는 고작해야 사태를 원점으로 돌리는 정도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죽어야 했던 남자의 선택에는 숭고함에 깃든다.

박찬욱의 죽여주는 스타일과 국민 배우 송강호라는 간판, 영화의 핵심을 잘라내고 적절히 호기심만 자극한 마케팅의 3박자가 어울려 다시 한 번 초특급 A급 대접 받는 B급 무비를 탄생시켰다. 친절한 장금씨와 싸이보그라도 괜츈해에 이어. A급 영화에 밀리지도 않고, 적지 않은 예산에 다들 탐내는 A급 배우들을 써 오래 공들여 찍고 전국 개봉관에서 일제히 상영하는 고품격(?!) B급 무비. 그래도 인간의 내장을 후벼내 늘어놓은 것 같은 불편한 감정들과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질주하는 유혈낭자 살색만발 비주얼은 여전히 자신이 타협하지 않는 B임을 주장한다. 몇몇 사람들은 견디지 못해 중간에 극장을 나가 버리게 만들 만큼의 강력한 파워로.

인상적인 것은 뱀파이어 영화답지 않은 일상성이다. 순교집단이 모인 프랑스의 병원에서는 다들 모여 배구를 하고, 불치병을 고친 신부는 초딩 동창이며, 동네 한복집 주인여자는 보드카를 마시며 마작을 한다. 이런 낯선 것과 익숙한 것과의 이종교배가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느낌은 송강호에 이르러 극에 달한다. 평범한 우리를 대표하는 캐릭터였던 송강호가 전혀 해 본적 없는 이상한 뱀파이어가 되었는데 고작 한다는 말이 …“뱀파이어가 뭐 별건가. 이건 뭐 식성이나 생활 습관 같은 문제라구요.” 이 송강호는 뱀파이어라는 기괴한 존재가 아니라 마치 밀양이나 우아한 세계의 한 장면에 등장할 법한 송강호다. 이 영화 속에서 송강호의 뱀파이어 스토리는 정말 그렇게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그렇지…저런 게 고민이 되겠지. 특별히 분류되는 뱀파이어 영화 속의 뱀파이어가 아니라 오늘 내가 정말 뱀파이어가 됐다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하루를 보냈을까를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가끔은 키득키득 블랙한 실소를 자아내지만, 사실은 그래서 더 큰 충격을 주는 것이다.

그의 최후가 피빛을 넘어서 진한 황금빛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부분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인데 두 번씩 죽어야 한다는 것은 참 X같은 일일 것이다. 게다가 마침 이전엔 몰랐던 삶의 꿀맛도 알게 되어버렸거늘. 너무 좋은 나머지 이게 죄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걸 알아버리고 나서도 선택한 두 번째 죽음이야 말로 진짜 순교이며 더욱 거룩하다. 삶을 초월한 종교인이 아니라 삶에 연연하는 한 평범한 인간…아니 뱀파이어로서 내린 선택이니까. 역시나 지옥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일까……..

그런 저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려했으나, 역시나 나를 압도하는 건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다. 이런 걸 느끼기 위해 아름다운 5월의 황금연휴에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이런 순간 순간을 다 견디고 싶지 않다. 영화에게 빨대 꼽힌 느낌이랄까? 보고나니 기운이 쪽 빠지고 어지럽고 멍때린다. 잘 가지도 않는 스타벅스가 눈에 띄길래 차가운 망고 슬러시를 사 벌컥벌컥 마셔댄다. 극장 밖 밤공기가 이렇게 시원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어디선가 박찬욱 감독은 이런 풍경을 망원경으로 훔쳐 보며 혼자서 ㅋㅋ 거리고 있는 거 아닐까? ㅋㅋ

주류의 피를 수혈받은 B급 무비는 그 자체로 변종 뱀파이어다. 사람들의 지갑에 링겔을 꽂고 쪽쪽 돈을 뽑아마신다. 물론 인터넷으로 자살단을 모집하는 영화 속 송강호처럼, 관객들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 이것은 그저 그런 인생에서 위대한 혹은 강력한 뭔가를 갈구하는 관객과 자신의 세계를 고집하는 거장 감독의 의기투합이 이루어낸 괴상한 타협점일까? 아무래도 난 영화보다는 제법 차려입고 서로의 팔장을 낀 채 극장에 들어선 이 수많은 사람들이 스크린 앞에서 이 영화를 만나고 있는 장면이 더 재미있다. 대체 저들은 뭘 보러 왔던 걸까? 또 난? ㅋㅋ 네이버 영화평을 찾아보니 아주 난리가 났다. 확실히 박찬욱 감독은 한 방 제대로 날린 것이다. 그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남을지 몹시 궁금하다. 거장의 브랜드를 내세워 관객과 아슬아슬하게 유지해온 이 흡혈 관계의 전개가.

라울 미동 내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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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에게 시력을 바치고 대신 재능을 얻었나보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가 내 눈 속에 비친 네 모습을 보라고 한다. 그 안에 영원이 펼쳐져 있다고 한다. 그가 보는 것은 어둠이 아니라 무한한 우주인가보다. 세션도 하나 없이 기타 하나 들고 혼자서 2시간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이 넘치고 풍요롭다. 대충 봐도 백만 년만에 이벤트에 당첨되어 다녀왔는데, 너무 멋진 공연이었다. 간만에 문화생활로 잠시나마 마음이 싱그러워진다. 그러고 보니 5월이네…

⊙ Waited All My Life
http://blog.naver.com/hirokun83/110007768413
무명시절, 그는 앞이 보지 않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 줄게 없었고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녀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 주는 것 뿐이었다고 한다. 클럽에서 그녀에게 이 노래를 불러줬고, 그녀가 지금 현재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 State of Mind
http://music.naver.com/today.nhn?startdate=20080422
이거 보고 뿅가서 이벤트 신청했었다. 감성이나 분위기 등등의 장식에 기대지 않는 압도적 재능. 기타가 타악기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