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닷컴 » 2012 » October

Archive for October, 2012

책정리

아주 오랫만에, 딱히 몇 년만이라고 꼽을 순 없지만, 방출의 규모로 따지자며 거의 처음인 대규모 책정리를 했다. 가끔씩 책장을 비운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책을 한 번에 솎아낸 적은 없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수 백권의 책을 집 앞에 버렸고, 폐지줍는 할머니는 이게 왠 횡재나며 전화를 걸어 집에 계신 할아버지까지 동원해 몇 차례에 걸쳐 책무더기를 구루마에 실어가셨다. 한 발 늦게 나오신 앞 집의 폐지 줍는 할머니는 몹시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두 노인이 합심해 책 실어 가는 광경을 지켜보셨다. 아마도 이런 껀수를 미리 알려주지 않은 앞집 처자를 원망했을지 모른다. 폐지줍기조차 치열한 경쟁인 세상…

버릴 책을 골랐다기 보다는 남길 책을 선택했다는 편이 정확한 이번 책 방출에서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버림으로 인정하게 된 사실들과 남김으로 확인하게 된 사실들이다.

난 더 이상 도스토예프스키를 범우사 구판으로 읽지 않을 것이다. < 죄와 벌> < 까라마죠프의 형제들> < 악령> < 백치> 일명 도스트예프스키 4대 장편을 이번에야 버렸다. 학생 때 밑줄긋고 사람 이름 적고, 연습장에 가계도 그려가며 탐독했다. 그래도 그때 나로선 못 미친 부분이 많아, 언젠가 나이 들어 다시 꼭 읽고 말리란 결심으로 지금까지 20년 넘게 책장을 차지해온 책들이었다. 하지만, 책을 버리면서도 다시 한 번 읽어보리란 결심까지 버리진 못했다. 새로운 양장본으로 도전해…보게 될까?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도전 중에 도스토예프스키를 넣어줄 수 있을까.

내가 접한 시의 세계는 대학교때 결빙되어,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책 한 칸을 차지한 시집은 죄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시대의 화석들이었다. 남긴 것은 이성복, 최승자, 기형도, 이문재, 구광본, 황지우의 몇 권. 2000년산 시는 문태준의 < 가자미> 그리고 정양 <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만 남았다. 내 책꽂이에서 펼쳐진 문지와 민음의 대결에서는 민음의 압승이다. 시집 자체가 몇 권 안 남아, 시가 이겼다고 할 수 없지만…시인이 아니면서도 최근 나에게 가장 많은 시를 읽어준 신형철 < 느낌의 공동체>가 위안이 된다.

쿤데라의 구판 소설들은 아웃됐다. < 농담> < 웃음과 망각의 책> < 생은 다른 곳에> < 불멸> 등등. 난 쿤데라의 블랙한 맛에 몹씨도 열광했고, 여러 번 다시 읽으며 음미했고, 쿤데라팬은 내편이라는 은밀한 공식을 품고 살아왔지만 다시 쿤데라를 읽겠다면 신판을 사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어떤 판으로 읽건 그 내용물은 매우 흡족하리라는 확신은 변함없지만, 지금 버리지 않으면 오히려 쿤데라를 더욱 낡은 과거에 밀어넣고 외면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단, 재생지 하드커버 버전의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패키징 차원에서 레어템으로 분류해 남겼다. 쿤데라는 오히려 시집과 수필집들이 살아남았다. 최근 발행된 < 커튼>은 이번에 새로 구매하기도 했다. 지금 나에게 쿤데라의 소설은 현재형이 아니지만, 쿤데라의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좋은 책이라도 너무 낡았으면(그래서 그 버전으로 읽지 않게 될 것이 확실하다면) 버리자’는 제 1규칙에서 예외가 되어 살아남은 작가들이 있다.

하루키는 소설도 소설이지만, 무수한 버전의 잡다구리 에세이집들이 있다. 겹치는 것도 많고, 출판사도 제각각이다. 저작권 문제은 해결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울만큼 허접하게 나온 책들도 많다. 모두 다 남겼다. 하루키니까.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과 수필집 모두 단 한 권도 버릴 수 없다. 다시 읽건 안 읽건이라는 조건까지도 붙는다. 2000년 대 작품은 없지만, 나름 레어한 초기작 컬렉션에서 정작 가장 좋아하는 < 물의 가족>만 빈다. 누구에게인가 읽어보라고 주고 나서 다시 받지 못했다. 채워넣어야 겠다. 요즘 새로나온 표지의 밝은 물색보다 옛날 버전의 청록과 남색이 섞인 짙은 물색이 훨씬 소설의 분위기와 맞다고 생각되지만. 그래서, < 물의 가족>만은 구판을 구하고 싶다.

까뮈도 남았다. 15권인데, 시지프의 신화 구판과 이방인, 안과겉의 원서는 버렸다. 책 고르는 데는 고민이 없다. 책세상 + 김화영 선생께서 종결해 주신 덕분에. 난 그저 따를 뿐.

하라켄야와 쿠마켄고는 지금 내 책꽂이의 가장 핫한 아이템이다. 다시 읽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고, 이미 여러 번 다시 읽은 책들도 있다. 틈나는 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하고 있다. 전문 작가가 아니면서 그 어떤 작가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 아마도 ‘책’으로서가 아니라 내 삶의 어떤 이상적 ‘지향’으로 남게 될 세계. 그 세계로의 지향이 끝나면 이 책들을 처분할 거고, 그건 정말 지금은 상상하기 싫은 어떤 한 시대의 끝이 될 것이다.

연암 박지원의 책과 관련된 모든 책을, 그리고 서경석, 김혜리의 책들 모두 남았다. 천재의 글과 따라하고 싶은 잘 쓰는 글을 쓰는 사람들의 책이 남았다. 박상륭과 이문열, 김훈은 남지 않았다. 무겁거나 어렵거나 장대한 세상을 더 이상 나의 책꽂이가 담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문열의 초상(?)이 책 표지 가득 실려있는 < 젊은날의 초상> 앞에서는 잠시 멈칫했다. 청춘의 당연한 모습이 저런 것일 때가 있었나…라는 소회때문이었다.

기형도와 김수영의 산문전집, 김승옥 전집은 남았다. 나란히 꽂아 놓고 가끔씩 그 앞에 서 아무 거나 집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 봐도 전혀 다른 클래스의 미문이 쏟아진다. 한국말로 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쓴 세 사람은 버릴 수 없다. 나의 좁은 말세상에서의 기준일 뿐이지만.

자기계발서류들. 모두 버렸다. 남은 건 < 웰빙으로 나를 경영하라>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책. 그리고 <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58> 아주 나이가 많이 먹지 않았을 때 원서로 읽고는 마음에 쏙 들어, 번역본으로 사 두 개 다 소장 중. 이 두 책은 자기계발서로서가 아니라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도중에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에 대비한 비상용 구급약으로 꽂혀있다.

스페인어를 배우고자 했을 때 모았던 각종 교재와 사전, 레퍼런스들 앞에서 진지하게 앞으로 내가 스페인어를 배우게 될 것인지 물었다. 확실히, 배우고 싶다!라는 대답 뒤에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뒤따랐다. 이만큼 나이를 먹고 나니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더욱 잘 구분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은 애매하다. 그래서, 스페인류는 일단 방 한 구석에 일괄 박싱. 유보한 꿈들은 이루게 될까 버리게 될까. 저 박스의 운명이 궁금하다. 아니, 궁금해야 한다. 아직은.

IT니 기획자용 책들은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레퍼런스로 볼 것들 몇 개를 남겼다. 모바일에 관한 책들이 주로 남았고, 내가 번역한 책과 쓴 책들…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걸 실감했다.

어렸을 때 탐독했던 퀴즈책을 버리지 못했다. 여기서 ‘어릴 때’란 초딩 입학 전이다. 아마도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고서에 해당할 책이다. 삼촌 댁에서 가져온 이 책을 보며 매일매일 퀴즈를 풀었고, 달달 외우게 되었지만 그래도 새로 풀면 또 재미있었다. 책 표지는 사라진지 오래고 모든 페이지가 다 헐었고, 이상한 냄새마저 풀풀 풍기는 이 책을 왜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어쨌든 결론은,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퀴즈를 풀지 않더라도.

기타 등등 살아남은 것들과 아웃된 것들 사이. 나는 순간순간 많은 결정들을 했다. 그것은 지금 내가 누구인지, 혹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선택이기도 했다. 어쨌든 끝났다. 책장의 2/3를 비우고 나니 섭섭함보다는 후련함이 앞선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느낌. 그리고 남은 책들이 더 소중해졌다. 그래봤자, 진짜로 손이 가게 될 책은 몇 안되리라.

고상하게 책꽂이에 꽂혀있다, 어느 하루 밤 갑자기 무게를 달아 그램당 얼마로 쳐서, 그래봤자 다 합쳐 고작 몇 천원에 팔려갈 폐지로 바뀐 책들…하지만, 그 책들의 영혼은 내 어딘가에 녹아들어, 나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주머니가 든든해진 할머니에게 기쁜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 나르느라 피곤하셨을 텐게 곤히 주무시길. 나도 잘 자고, 내 안에 담긴 떠나간 책들의 영혼도 평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