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
Opening Sequence from Incendies from Dirk Roth on Vimeo.
시나리오를 처음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라디오헤드의 노래들을 염두에 뒀다. 오프닝 시퀀스에 사용할 우울하면서도 몽환적인 음악을 찾던 중 곧바로 ‘You and Whose Army?’가 떠올랐다. 다른 곡은 아예 생각도 안 했다. 비슷한 분위기의 고전음악을 사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라디오헤드의 이 곡에는 다른 어떤 음악에서도 찾기 힘든 낯설고 소외된 풍경의 느낌이 있다. 내게 멜랑콜리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내 인성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멜랑콜리는 물론 즉각적으로 위안을 필요로 한다. < 그을린 사랑>의 주된 정서적 목표는 위안이다. 씨네 21 – 감독 드니 빌뇌브 서면 인터뷰 중
절대로 스포일러에 당하지 말야할 영화라는 경고를 듣고 서둘러 봤다. 증오가 먹구름처럼 몰려들고, 소나기처럼 총알이 쏟아지는 풍경 속을 한 여자가 뚫고 지나간다. 그녀는 ‘더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싸그리 긁다못해 바닥을 칸칸히 무너뜨려가는 가혹한 생의 채찍질은 그 생각이 상상력의 한계였다는 사실을 각성시킨다. 하지만, 그런 모진 시간조차 노래부르며 견뎌낸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게 한 건 가혹한 고문이나 15년간의 독방 수감이 아니라 우연처럼 혹은 숙명처럼 맞닥뜨린 ‘진실’이었다. 그 모든 것을 시작하게 만든 사랑에 관한 진실.
소문난 ‘충격과 전율’의 반전보다 더 놀라웠던 건, 오히려 ‘용서’였다. 죽음을 앞두고 쓴 세 통의 편지. 편지의 주제는 그저 ‘사랑’이다. 이로써, 분노의 끈을 끊었단다. 함께 하는 것 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어. 기나긴 고통의 여정 끝에 다다른 결론은 뫼비우스의 띄처럼 다시 사랑으로 되돌아간다. 동트긴 전 새벽, 아무도 몰래 계단을 뛰어내려가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던 삶을 버리고 영원반복의 연옥같은 ‘생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게 한 맨 처음 눈부신 사랑의 약속으로. 영화는 점점 하강하며 바닥을 쳤다 다시 처음으로 상승해 돌아가는 원의 궤적으로, ‘사랑’이라는 결론이자 시작점에 닿는다.
나에겐 오히려 이게 반전같다. 가혹한 고통의 끝에서 사랑으로 점프하는 가장 극적이고 성스러운 반전. 누구도 증오하지 않고, 더 이상 분노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나로선 머리나 분석으로는 알겠지만, 마음이나 육체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태. 헥, 저기서 어떻게 저렇게. 영화에 대한 딴지가 아니라, 그저 그러한 상태가 무엇인지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서 그런다. 애가 없어서 그런 건지ㅠ
Rien n’est plus beau que d’être ensemble.
함께 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단다.
너무나 기괴한 결론이지 않은가. 그녀가 그토록 찾아헤맸던 아들과 함께 했던 *순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고통은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비명으로 그려지고, 잔인한 순간은 최소한의 표현으로 추상화된다. 처참한 고통의 순간조차 우아하기 짝이 없어 감독의 취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스너프 필름식의 고통의 관음 대신, 한 여자가 사지를 부딪혀 밀고 가는 고통스러운 생의 도저한 흐름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필연적 부산물일 증오와 분노는 관객들의 상상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더 먹먹하다. 방문 뒤에서 소리만 들려오는 상상 속의 애로함이 더 빠르게 심장을 뛰게 하는 것과 똑같은 메카니즘으로.
고통받는 여자들. 몇 년 전 읽었던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떠올랐다. 그리고 예전에, 15년 전 쯤에 몹시 좋아했던 < 비포더레인>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레바논과 마케도니아. 풍광과 벌어지는 일들이 꼭 닮아있다. 끔찍한 현실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스크린 가득한 시적인 표현들도 그렇다.
남는 질문이 있었다.
‘하지만, 왜 그녀는 자식들에게 그토록 가혹한 사실을 찾아나서게 했을까?’
‘왜, 그 사실을 사랑하는 그에게 알려야만 했을까.’
분노의 끈을 끊기 위함이라는 나왈의 부연 설명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그러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뜯어본 한 통의 우편물을 통해서 찾았다.
진실의 힘
오늘, < 진실의 힘> 재단에서 보내온 마이데이 맘풀이 자료집을 받았다. < 진실의 힘>은 군사독재정권시절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고문당하신 분들을 위한 법인이다. 재판을 통해 무죄를 밝히기도 하고, 국가의 손해배상을 묻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행정 절차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분들이 함께 모여 자신의 고문 경험을 나누며, 마음을 치유하는 집단 상담을 가지신다. 오늘 받아본 자료집은 그 집단 상담을 녹취한 기록이다. 고작 180 페이지. 무게는 가볍지만 내용은 천근만근이다. 한 세월에 짓이겨진 영혼들의 무게…

“내가 옷을 안 벗을려구 뻗댔더니 막 두들겨 패고 홀딱 벗기는 거여. 빨리 안 벗으면 두드려팽께. 사정없이 죽어라 팽께, 옷을 빨리빨리 벗는데 내복 소매가 안 빠져. 손이 부서(부어) 갖고, 어거지로 뺀께, 난 죽지. 안빠진께 그 놈이 칼 갖다가 모가지를 한쪽을 찢어갖고 내복을 벗었어요. 무르팍 꼬부려서 허벅지 밑에 파이프 넣고, 손 양짝 발 앞으로 묶고, 파이프를 번쩍 들어버리니….빨개벗겨져서 통닭구이식으로. 그렇게 맞아서 탱탱 부은 몸을 거꾸로…물 한 바가지씩 갖다가 쭉쭉 찌그리면 말이여. 방망이로 몇 대 맞고 말지. 하아~ 물에다 물 한 바가지씩 찌그리면 막 벼락 불이 번쩍 하는 것 같어.” – 임봉택
“(그러다) 찐득찐득한 수건을 얼굴에 뒤집어 씌우더라구. 거꾸로 있는데, 좀 있으니까, 물을 갖다 콧구녁에다가 붓는 것이여. 계속 붓고 있으니까 콧구녁에 물이 안 들어갈려고, 숨이 한도가 있지. 그래가지고 그 놈을 숨을 마실려니까, 수건이 딱 달라붙어. 공기가 안 들어올 뿐 아니라 같이 물이 들어오더라구. 금방 죽게 생기니까 “야 안 내놔. 너죽어.” 그러고 있는 순간에는 진짜 ‘내가 그 책을 얼마나 좀 받어봤으면, 이북 책을 내가 받어봤으면 얼매나 좋을까!’ 이런 생각 뿐이지.” – 임봉택
“소문이 개야도에 봉택이는 반공법으로 징역을 산다드라, 간첩이 돼갖고 징역을 산다드라, 소문이 떠돌았대. 그때부터 밥도 안 드시고 기죽어 계시고 그랬대. 술이나 드시고 밥도 안 드시고 하시다가 어느날 갑자기 목 매 자살을 하셨대. 우리 막내가 자다 일어나 보니까 그러고 계시더래…이렇게 앉았다가도 아버지 말만 나오면 아, 맘이 울컥하고 저녁에 자다가도 아버지하면 아무도 모르게 눈물이 콱콱 흘립니다. 하아, 오죽했으면 자결하셨겠습니까.” – 임봉택
“남들은 통닭구이라고 하는데 저는 꽁꽁 묶여 매달린 돼지새끼, 도살 직전의 돼지새끼를 더 연상해요…그 치욕스러운 거,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벗을 수 없는 치욕. 하지도 않은 짓을 했다고 하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 이준호
“목이 타서 물 좀 달라고 했는데 교도관이 “참아, 내일 먹어” 그래요. 보안법은 뭐 하나 꺾어져도 아무렇지 않단 얘기죠. 그때 고무신짝으로 그(변기의) 물을 먹으면서, 아, 참, 변기도 더럽잖아요. 그 물을 먹으면서. 아, 그 물을 먹으면서 내가….아! 그러니까 내가 세상을 살아가겠어요?” – 이준호
“괴로움이 때려서 아픈 것 이외에도 잠 안 재운다던지, 뭐 그냥 손톱 밑을 찌른다던지 그건 참 보통 고통이 아니예요…그 고통은 좋게 말해서 고통인데, 그 괴로움이라는 것은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를 못하실 겁니다.(침묵)” – 김성규
“무죄를 받았을 때, 무죄를 두 번 받았는데 어리벙벙, 변호사님이 무죄됐다고 해서 듣고 그랬는데 그 때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다가, 다시 어깨 무거운 건 마찬가지예요. 왜 그런지 그게 안 없어지네요. 괴로웠던 그게 안 없어진다 이 말이예요.” – 김성규
“허리가 구부러져가고 육 십이 지나고 젊음이 없어져가고 옛날 사람들이 말하듯 일장춘몽이라고, 지금 나한테 판결물 당신 무죄야, 그 판결문 몇 자 그리고 진실위원회 몇 장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어요. 이십 몇 년을 싸우고 이를 악물고 싸운 결과물이 종이 몇 장에 끝나는 거더라구. 그럼 내 인생은 어디로 갔는가? 내 젊음은 어디로 갔는가? 나도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권리가 나도 있을 껀데, 기쁘고 웃고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거 한 번 느껴보지도 못하고…” – 박춘환
“허~말을 못하고, 계속 술만 먹었지요. 아직까지 안 풀링당께, 안 풀린당께, 내가 그 놈을 죽여야 풀리는디 정말로…그 사진이라도 있으면 막 그냥 불이라도 지르고 응어리가 풀렸으면 좋겠어요.” – 박춘한
현실은 상상을 압도한다. 영화 속 나왈의 인생이 믿기지 않지만, 자료집에는 나왈 못지 않은 사연들이 180페이지에 가득했다. 내용의 의도적 가감이나 표현적 포장도 없다. 그저 본인들이 겪어온 일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뿐이다. 통닭구이처럼 매달려 매질과 물질을 당하고, 목이 말라 변기 물을 떠먹고, 살기 위해 고향 친구를 허위로 고발한다. 고발하는 쪽이나 고발당하는 쪽이나 지옥이다. 그들이 우연히 같은 눈병에 걸려, 같은 감옥에 수용된다. 용서가 되겠나. 하지만, 용서한다. 그냥 영화다…
억울함만큼 사람을 돌게하는 감정이 또 있을까. 동료의 사소한 오해나 진심을 곡해하는 이웃의 한 마디에도 울컥하고 잠 못 들며 머리가 빙빙 도는 게 인간인데, 열심히 살던 와중에 아무 이유없이 끌려가 허위 자백을 요구받으며 잔인한 고문을 받고, 그것도 모라자 오랜 생활 수감에 나와보니 가족은 망가지고 이웃은 외면하고 간첩으로 낙인찍혀 관찰 속에서 평생을 살아간다라… 억울한 게…억울하다는 게, 그 억하심정이란 게…대체 어떤걸까. 얼마만큼인걸까.
4년 전부터 급속도로 괴로워졌지만, 그래도 이만큼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윗 세대에 빚진 마음이 있었다. 그 빚을 조금이나마 이 분들을 통해 돌려드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깃발들고 앞장선 투사들도 아니셨다. 하지만, 이 분들의 문제는 지금 이 사회의 공동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을 누리는 우리들이 오늘을 만든 과거에 대해 져야하는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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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의 제목은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들어줘서 감사합니다.”이다. 말하고 듣는다는 것, 그렇게 어려운 일이고 또 중요한 일인가보다. 가족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 품고 왔던 과거의 기억을 말하고 난 뒤, 큰 짐을 내려놓은 듯한 한결 홀가분해진 톤을 텍스트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같은 고생을 한 사람끼리 풀어놓는 것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진실의 힘이란, 진실을 마주하는 힘. 진실을 말하는 힘. 진실을 들어주는 힘이 아닐까. < 그을린 사랑>의 나왈도 결국 진실의 힘을 믿었던 것 아닐까. 진실은 위태롭게 버텼던 그녀의 등을 떠밀어 사지로 밀어넣었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진실을 버틸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랬다 하더라도 아이들만은 진실의 힘으로 살아주기를 바랬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란 없으므로.
이틀 간격으로 두고 나에게 온 한 편의 영화와 한 편의 책이 전혀 다르게 같은 말을 던지는 것 같았다. 난, 일단 가만히 있어본다. 열심히 던져진 말들을 프로세싱하면서. 여전히 홀이 너무 많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할 수 있을까. 고통의 진행형 속에서 고통을 제공한 대상을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고통스러운 것일까. 용서의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일까. 어렵다. 머리로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다. 뭔가가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