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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August, 2011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

어제 아주 간만에 마음에 드는, 아니 마음이 가는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작품성을 따질 수준은 전혀 아니지만 왠지 내 마음은 간다. 게다가 애정하는 탄천. 자꾸만 열어보게 된다. 마음이 간다는 건, 그런거다. 역으로, 안 그런 건 마음이 안 가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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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油彩炭川 (심지어 제목도 지었다!…내가 사진에 붙인 첫 번째 제목이지 싶다. 얼마나 맘에 들었으면)

간만의 하늘에 감격해 야심차게 찍으러 나갔는데, 호기롭게 들고 나간 카메라는 배러리 아웃이었고. 아쉬움에 쩝쩝거리며 한바퀴 돌고 오는 길에, 물웅덩이에 비친 그림자가 예뻐 주머니에 있던 아이폰3GS로 찰칵~인스타그램에서 필터 먹이고 반 바퀴 돌려주니…짠-!

사진이라고 찍었는데 그림같아진 것이 신기했다.

일본에서 본 모네전이 떠올랐다. 빛이 풍겨져 나왔고, 물결의 작은 흔들림이 캔버스에 붓질같았다. 말도 안되는 비교지만서도^^;; …그래도 조금은 뭉개진 모네같다고 생각했다. 허접한 디바이스 성능과 센스있는 서비스와 몇 가지 우연들이 겹쳐 만들어낸 결과물. 이런 거 좋다. 한계에서 시작해서 날개 돋치는 거.
작고 허접한 날개라도, 파닥파닥하는 거.

여하튼 요즘은 포토 라이프도 하이브리드다. 폰에서 찍은 사진을 웹에 올리다 못해, 이젠 DSLR로 찍은 사진을 굳이 인스타그램에 올려 필터주고, 앱을 통해 모바일로 공유한다. 휴대성을 앞세운 폰이 생산 경쟁력만 가지는 게 아니다. 이젠 그나마 PC 웹의 영역이었던 가공과 유통 경쟁력마저 장악해가고 있다. 게다가 이 유통 과정에 약간의 게임 레이어만 얹어도, 폰의 인터랙티비티와 결합해 재미있는 시너지를 낸다. Gamification이란 게 따로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끝없이 주물럭대고 만지작거리는 애로하기 짝이 없는 폰 사용 방식에 약간의 방향을 주고 구체화하는 것일 뿐.

어쩐지 DSLR로 곧장 받은 사진보다, 인스타그램에 올려 폰 액정으로 보는 사진이 더 있어 뵌다. 있어 보여서 또 뭐할 거냐만은. 그래도 맘에 드는 거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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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 올려놓고 보니, 역시 인스타그램 사진은 폰 액정으로 봐야 산다. 폰의 이미지 유통 경쟁력이란 액정 경쟁력과 일맥상통.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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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 Meninas – Diego Velázquez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어제밤 꿈에 실리콘밸리에서 길을 잃었다. 손수건에 칼을 숨긴 강도를, 만나 가진 돈을 다 내놓으라 협박을 받았고, 한 치 혀를 나불거리며 살아남을 방도를 강구하던 나는 매우 개꿈스럽게도 그분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추남이었다. 외모는 필리핀과 쿠바를 뒤죽박죽 뭉쳐놓은 것 같았고, 굵고 검은 머리카락은 근본없이 곱슬거리고, 키는 나보다 조금 크고 배도 불툭 튀어나왔다. 싱긋이 웃을 때면, 떼워넣은 금니 조각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하지만, 그 대단한 사랑이라니…말하자면,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인 이득’을 얻은 듯한 그런 사랑. 처음으로, 실리콘밸리에 가고 싶어졌다.

이 모든 건 어제 밤,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고 잠에 든 탓이다. 잠재의식의 작동이란 때로 이렇게 단순하다.

소설도 그래. 412 페이지까지 필요한 이야기였을까. 고도 성장을 기록했다던 눈부신 80년대가 드리웠던 그늘에서 만나 짧은 한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80년대하면 떠오르는 그 흔한 운동권 후일담이나, 지지리 궁상맞은 달동네 스토리라면 오히려 할 말은 많았겠지만…’못생긴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라면, 굳이 80년대일 필요는 뭐였지. 알고보니 백화점 회장 핏줄이었다는 제 3의 주인공 요한이 캐릭터는 오히려 요즘 막장 드라마에 더 어울리는 것 같고.

140자로 충분히 요약가능한 이야기. 층층이 복잡다단한 시대상이나 놀라운 반전같은 것도 없다. 그래도 이 두꺼운 412 페이지가 전혀 과하지 않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사랑’이라는 화두 하나를 잡고 이 단순한 이야기를 있는 데까지 펼쳐놓는 박민규의 필력 때문이다. ‘오케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한 번 지껄여봐. 이런 거라면…’ 이런 기분이었다. 앞뒤없이 푹 젖어들게 만드는 10대…잘 쳐봐줘야 20대 초반에나 어울릴 감수성의 폭풍이 그렇게 유치하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모두가 살고 싶어하는, 사랑이란 걸 하며 살고 싶어하는 시절이다.

시와 산문의 경계에 있는 듯, 툭툭 부러 끊어놓은 문장들. 때로는 시처럼, 때로는 고승의 중얼거림처럼 이어지다 끊어지고 그러다 다시 이어지는.

논리로 보면, 가장 핵심적인 왜 이 여자와 사랑에 빠졌는지의 이유조차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도저히 모르겠다. 그 앞에 길게 늘어놓은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봐서는 유독 추녀에 끌리는 DNA의 영향이나 혹은 되풀이 되는 숙명의 댓구같은 걸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하지만, 굳이 앞뒤를 따지고픈 기분은 들지 않는다. 머리야, 너 좀 저기 구석에 가 있을래? 나 지금 얘랑 사랑해야 되니까. 돌이켜보면, 항상 그럴 때였다.

상관이 있든 없든, 또 누가 이익을 보았든…퇴근 무렵의 주차장이나 옥외의 광장…들소 떼가 지난간 벌판처럼 휑한 느낌의…그래서 홀로 어느 고원에 선 것 같은 기분으로…고원의 저편에선 개발을 하든 뭘 하든…들소 같은 여자들과 백화점, 설사 모두가 이익을 봤다 쳐도…역시나 결국 여당 독재자들에게 그 이익이 돌아간다 해도…그해 가을을 살았던 사람들 중 누구보다 큰 이익을 본 사람은 <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큰 이익이었다. 천문학적 이익이란 아마도 이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156p)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야. 이쁘지도 않은 서로를, 잘난 것도 없는 서로를…평생을 가도 신문에 기사 한 줄 실릴 일 없는 사랑을…그런데도 불구하고 해 나가는 거지. 왜, 도대체 그런 일을 하느냐 이 얘기야. 기적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224p)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228p)

그런 저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당신에게 도망친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당신을 보고 싶어하는 나라는 여자에게서 도망을 친 것입니다. (265p)

샤워를 하다 문득, 이별이 인간을 힘들게 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고통보다도, 잠시나마 느껴본 삶의 느낌… 생활이 아닌 그 느낌… 비로소 살아 있다는 그 느낌과 헤어진 사실이 실은 괴로운 게 아닐까… 생각이 든 것이었다. (300p)

한 가닥, 그 사건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 러브 어페어>를 떠올리게 했다. 아네트 베닝…병신이 되어도, 다들 결국엔 찾아간다. 인상적으로 몰아친 첫 챕터. 아주 오랫만에 하루키의 < 상실의 시대>를 펼쳐보고 싶게 만들었다. 시간과 공간을 가늠하기 힘든 남자와 여자의 대화…그리고 마드리드의 Las Meninas. 언젠가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썬데이 라이딩! – 아직은 여름이다…

좀 뛰어볼랬더만 바로 허리를 다쳐 침맞으러 다니며 근신 중.

하지만, ‘비’쳐버릴 것 같았던 ‘비긋비긋’한 우기의 끝에서 반짝 얼굴을 내민 파란 하늘을 보니
방구석을 굴러다닐 수 만은 없었다! 출동~~~ 그냥 하늘만 봐도 좋았다 ㅠㅠ

# 잔차

신림 – 안양천 합수부 – 성산대교 – 여의도 물빛광장

대략 마포대교까지 왕복 35km? 지난 번 보다 5km 더 뛴 것 같다. 사진 찍어가며, 쉬엄쉬엄 돌았더니 힘이 덜 들었다.

결정적으로 오는 길에 안양천에서 아저씨 밴드 공연보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지나가면서 “앞바퀴가 빠졌어~ 그렇게 타단 죽어.” 그러고 가시는 거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보더니 허걱하시며 진짜로 바퀴가 빠졌다며, 어떻게 이렇게 탔냐고 즉석에서 바퀴를 고정해 주셨다. 그렇고 났더니, 왠지 잔차 타기가 훨 편해진 것 같았다?? 음…


신림 – 안양천까지는 이렇게 지하도(?)로 달리게 된다.
갈 때는 휙 가지만, 올 때는 좀 지겹고 힘들다. 정취도 없고. 뭔가 본격 라이딩을 하기 전 시범 구간같은 느낌?
가끔 갈 곳 없으신 어려운 분들이 간이 살림을 차리고 살고 계신다 -_-;;


그래도 안양천 가는 길에, 그래피티 라인이 위로가 된다.


기둥마다 개성있는 그래피티가 빼곡~ 재미없는 길이 재미있어진다.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


안양천 합수부 – 여기서부턴 제법 라이딩 기분 난다.


성산대교 가는 길 – 하늘을 품고 달린다!


제법 더웠다. 저녁마다 부는 서늘한 바람에 “비만오다 가을”이라며 투덜거렸는데
정작 나가보니 쨍쨍한 여름볕.


점점 햇빛 속에 까맣게 익어갔다. 물도 많이 먹히고…
여름에 못 가본, 여름 속으로 –

# 한강

서울시장이란 인간이 신파 코메디를 찍든 말든, 한강은 아름다웠다.

역시 라이딩의 백미는 한강이다. 쏙 빼서 한강만 돌고 싶지.
나에게 한강은 아이스크림 위에 얹힌 체리 한 알. 맛있다, 잉잉. 너무 조금이다, 잉잉.


하늘


하늘 하늘…구름


얼마만이니, 너!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있어~ 그리고 내곁에는 니가 …없어! 없어..ㅠㅠ” ♪


요트도 떠 다니고…


여의도 수영장은 작렬하는 태양아래 알몸을 드러내고 태닝하는 국내외 물좋은 바디~ 들로 가득.
뭔가에 홀린 듯 한참 멍하니 앉아 구경했다는;; 사진은 슬프게도 할아버지들만 찍혔다 ㅠ


물빛 공원에서 뛰노는 여름의 아이들~

# 부에나비스타 도림천 클럽

찍어둔 사진이 꽤 되는데…영화 하나 나올 듯~

# 친구들

친구가 있으면, 그냥 앉아만 있어도 좋은가 보다. 그늘에 앉아서 낮술 한 잔?


커플! 니네들은 항상 이런 식이지…엉??? ㅋㅋ

# 가을

그래도 살금살금 가을은 오고 있다는 거.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 라이딩 인증샷…유후~

그을린 사랑/ 진실의 힘

그을린 사랑

Opening Sequence from Incendies from Dirk Roth on Vimeo.

시나리오를 처음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라디오헤드의 노래들을 염두에 뒀다. 오프닝 시퀀스에 사용할 우울하면서도 몽환적인 음악을 찾던 중 곧바로 ‘You and Whose Army?’가 떠올랐다. 다른 곡은 아예 생각도 안 했다. 비슷한 분위기의 고전음악을 사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라디오헤드의 이 곡에는 다른 어떤 음악에서도 찾기 힘든 낯설고 소외된 풍경의 느낌이 있다. 내게 멜랑콜리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내 인성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멜랑콜리는 물론 즉각적으로 위안을 필요로 한다. < 그을린 사랑>의 주된 정서적 목표는 위안이다. 씨네 21 – 감독 드니 빌뇌브 서면 인터뷰 중

절대로 스포일러에 당하지 말야할 영화라는 경고를 듣고 서둘러 봤다. 증오가 먹구름처럼 몰려들고, 소나기처럼 총알이 쏟아지는 풍경 속을 한 여자가 뚫고 지나간다. 그녀는 ‘더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싸그리 긁다못해 바닥을 칸칸히 무너뜨려가는 가혹한 생의 채찍질은 그 생각이 상상력의 한계였다는 사실을 각성시킨다. 하지만, 그런 모진 시간조차 노래부르며 견뎌낸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게 한 건 가혹한 고문이나 15년간의 독방 수감이 아니라 우연처럼 혹은 숙명처럼 맞닥뜨린 ‘진실’이었다. 그 모든 것을 시작하게 만든 사랑에 관한 진실.

소문난 ‘충격과 전율’의 반전보다 더 놀라웠던 건, 오히려 ‘용서’였다. 죽음을 앞두고 쓴 세 통의 편지. 편지의 주제는 그저 ‘사랑’이다. 이로써, 분노의 끈을 끊었단다. 함께 하는 것 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어. 기나긴 고통의 여정 끝에 다다른 결론은 뫼비우스의 띄처럼 다시 사랑으로 되돌아간다. 동트긴 전 새벽, 아무도 몰래 계단을 뛰어내려가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던 삶을 버리고 영원반복의 연옥같은 ‘생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게 한 맨 처음 눈부신 사랑의 약속으로. 영화는 점점 하강하며 바닥을 쳤다 다시 처음으로 상승해 돌아가는 원의 궤적으로, ‘사랑’이라는 결론이자 시작점에 닿는다.

나에겐 오히려 이게 반전같다. 가혹한 고통의 끝에서 사랑으로 점프하는 가장 극적이고 성스러운 반전. 누구도 증오하지 않고, 더 이상 분노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나로선 머리나 분석으로는 알겠지만, 마음이나 육체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태. 헥, 저기서 어떻게 저렇게. 영화에 대한 딴지가 아니라, 그저 그러한 상태가 무엇인지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서 그런다. 애가 없어서 그런 건지ㅠ

Rien n’est plus beau que d’être ensemble.
함께 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단다.

너무나 기괴한 결론이지 않은가. 그녀가 그토록 찾아헤맸던 아들과 함께 했던 *순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고통은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비명으로 그려지고, 잔인한 순간은 최소한의 표현으로 추상화된다. 처참한 고통의 순간조차 우아하기 짝이 없어 감독의 취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스너프 필름식의 고통의 관음 대신, 한 여자가 사지를 부딪혀 밀고 가는 고통스러운 생의 도저한 흐름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필연적 부산물일 증오와 분노는 관객들의 상상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더 먹먹하다. 방문 뒤에서 소리만 들려오는 상상 속의 애로함이 더 빠르게 심장을 뛰게 하는 것과 똑같은 메카니즘으로.

고통받는 여자들. 몇 년 전 읽었던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떠올랐다. 그리고 예전에, 15년 전 쯤에 몹시 좋아했던 < 비포더레인>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레바논과 마케도니아. 풍광과 벌어지는 일들이 꼭 닮아있다. 끔찍한 현실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스크린 가득한 시적인 표현들도 그렇다.

남는 질문이 있었다.

‘하지만, 왜 그녀는 자식들에게 그토록 가혹한 사실을 찾아나서게 했을까?’
‘왜, 그 사실을 사랑하는 그에게 알려야만 했을까.’

분노의 끈을 끊기 위함이라는 나왈의 부연 설명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그러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뜯어본 한 통의 우편물을 통해서 찾았다.

진실의 힘

오늘, < 진실의 힘> 재단에서 보내온 마이데이 맘풀이 자료집을 받았다. < 진실의 힘>은 군사독재정권시절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고문당하신 분들을 위한 법인이다. 재판을 통해 무죄를 밝히기도 하고, 국가의 손해배상을 묻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행정 절차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분들이 함께 모여 자신의 고문 경험을 나누며, 마음을 치유하는 집단 상담을 가지신다. 오늘 받아본 자료집은 그 집단 상담을 녹취한 기록이다. 고작 180 페이지. 무게는 가볍지만 내용은 천근만근이다. 한 세월에 짓이겨진 영혼들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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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옷을 안 벗을려구 뻗댔더니 막 두들겨 패고 홀딱 벗기는 거여. 빨리 안 벗으면 두드려팽께. 사정없이 죽어라 팽께, 옷을 빨리빨리 벗는데 내복 소매가 안 빠져. 손이 부서(부어) 갖고, 어거지로 뺀께, 난 죽지. 안빠진께 그 놈이 칼 갖다가 모가지를 한쪽을 찢어갖고 내복을 벗었어요. 무르팍 꼬부려서 허벅지 밑에 파이프 넣고, 손 양짝 발 앞으로 묶고, 파이프를 번쩍 들어버리니….빨개벗겨져서 통닭구이식으로. 그렇게 맞아서 탱탱 부은 몸을 거꾸로…물 한 바가지씩 갖다가 쭉쭉 찌그리면 말이여. 방망이로 몇 대 맞고 말지. 하아~ 물에다 물 한 바가지씩 찌그리면 막 벼락 불이 번쩍 하는 것 같어.” – 임봉택

“(그러다) 찐득찐득한 수건을 얼굴에 뒤집어 씌우더라구. 거꾸로 있는데, 좀 있으니까, 물을 갖다 콧구녁에다가 붓는 것이여. 계속 붓고 있으니까 콧구녁에 물이 안 들어갈려고, 숨이 한도가 있지. 그래가지고 그 놈을 숨을 마실려니까, 수건이 딱 달라붙어. 공기가 안 들어올 뿐 아니라 같이 물이 들어오더라구. 금방 죽게 생기니까 “야 안 내놔. 너죽어.” 그러고 있는 순간에는 진짜 ‘내가 그 책을 얼마나 좀 받어봤으면, 이북 책을 내가 받어봤으면 얼매나 좋을까!’ 이런 생각 뿐이지.” – 임봉택

“소문이 개야도에 봉택이는 반공법으로 징역을 산다드라, 간첩이 돼갖고 징역을 산다드라, 소문이 떠돌았대. 그때부터 밥도 안 드시고 기죽어 계시고 그랬대. 술이나 드시고 밥도 안 드시고 하시다가 어느날 갑자기 목 매 자살을 하셨대. 우리 막내가 자다 일어나 보니까 그러고 계시더래…이렇게 앉았다가도 아버지 말만 나오면 아, 맘이 울컥하고 저녁에 자다가도 아버지하면 아무도 모르게 눈물이 콱콱 흘립니다. 하아, 오죽했으면 자결하셨겠습니까.” – 임봉택

“남들은 통닭구이라고 하는데 저는 꽁꽁 묶여 매달린 돼지새끼, 도살 직전의 돼지새끼를 더 연상해요…그 치욕스러운 거,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벗을 수 없는 치욕. 하지도 않은 짓을 했다고 하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 이준호

“목이 타서 물 좀 달라고 했는데 교도관이 “참아, 내일 먹어” 그래요. 보안법은 뭐 하나 꺾어져도 아무렇지 않단 얘기죠. 그때 고무신짝으로 그(변기의) 물을 먹으면서, 아, 참, 변기도 더럽잖아요. 그 물을 먹으면서. 아, 그 물을 먹으면서 내가….아! 그러니까 내가 세상을 살아가겠어요?” – 이준호

“괴로움이 때려서 아픈 것 이외에도 잠 안 재운다던지, 뭐 그냥 손톱 밑을 찌른다던지 그건 참 보통 고통이 아니예요…그 고통은 좋게 말해서 고통인데, 그 괴로움이라는 것은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를 못하실 겁니다.(침묵)” – 김성규

“무죄를 받았을 때, 무죄를 두 번 받았는데 어리벙벙, 변호사님이 무죄됐다고 해서 듣고 그랬는데 그 때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다가, 다시 어깨 무거운 건 마찬가지예요. 왜 그런지 그게 안 없어지네요. 괴로웠던 그게 안 없어진다 이 말이예요.” – 김성규

“허리가 구부러져가고 육 십이 지나고 젊음이 없어져가고 옛날 사람들이 말하듯 일장춘몽이라고, 지금 나한테 판결물 당신 무죄야, 그 판결문 몇 자 그리고 진실위원회 몇 장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어요. 이십 몇 년을 싸우고 이를 악물고 싸운 결과물이 종이 몇 장에 끝나는 거더라구. 그럼 내 인생은 어디로 갔는가? 내 젊음은 어디로 갔는가? 나도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권리가 나도 있을 껀데, 기쁘고 웃고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거 한 번 느껴보지도 못하고…” – 박춘환

“허~말을 못하고, 계속 술만 먹었지요. 아직까지 안 풀링당께, 안 풀린당께, 내가 그 놈을 죽여야 풀리는디 정말로…그 사진이라도 있으면 막 그냥 불이라도 지르고 응어리가 풀렸으면 좋겠어요.” – 박춘한

현실은 상상을 압도한다. 영화 속 나왈의 인생이 믿기지 않지만, 자료집에는 나왈 못지 않은 사연들이 180페이지에 가득했다. 내용의 의도적 가감이나 표현적 포장도 없다. 그저 본인들이 겪어온 일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뿐이다. 통닭구이처럼 매달려 매질과 물질을 당하고, 목이 말라 변기 물을 떠먹고, 살기 위해 고향 친구를 허위로 고발한다. 고발하는 쪽이나 고발당하는 쪽이나 지옥이다. 그들이 우연히 같은 눈병에 걸려, 같은 감옥에 수용된다. 용서가 되겠나. 하지만, 용서한다. 그냥 영화다…

억울함만큼 사람을 돌게하는 감정이 또 있을까. 동료의 사소한 오해나 진심을 곡해하는 이웃의 한 마디에도 울컥하고 잠 못 들며 머리가 빙빙 도는 게 인간인데, 열심히 살던 와중에 아무 이유없이 끌려가 허위 자백을 요구받으며 잔인한 고문을 받고, 그것도 모라자 오랜 생활 수감에 나와보니 가족은 망가지고 이웃은 외면하고 간첩으로 낙인찍혀 관찰 속에서 평생을 살아간다라… 억울한 게…억울하다는 게, 그 억하심정이란 게…대체 어떤걸까. 얼마만큼인걸까.

4년 전부터 급속도로 괴로워졌지만, 그래도 이만큼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윗 세대에 빚진 마음이 있었다. 그 빚을 조금이나마 이 분들을 통해 돌려드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깃발들고 앞장선 투사들도 아니셨다. 하지만, 이 분들의 문제는 지금 이 사회의 공동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을 누리는 우리들이 오늘을 만든 과거에 대해 져야하는 책임.

진실의 힘 재단 홈페이지> 후원하기

자료집의 제목은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들어줘서 감사합니다.”이다. 말하고 듣는다는 것, 그렇게 어려운 일이고 또 중요한 일인가보다. 가족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 품고 왔던 과거의 기억을 말하고 난 뒤, 큰 짐을 내려놓은 듯한 한결 홀가분해진 톤을 텍스트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같은 고생을 한 사람끼리 풀어놓는 것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진실의 힘이란, 진실을 마주하는 힘. 진실을 말하는 힘. 진실을 들어주는 힘이 아닐까. < 그을린 사랑>의 나왈도 결국 진실의 힘을 믿었던 것 아닐까. 진실은 위태롭게 버텼던 그녀의 등을 떠밀어 사지로 밀어넣었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진실을 버틸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랬다 하더라도 아이들만은 진실의 힘으로 살아주기를 바랬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란 없으므로.

이틀 간격으로 두고 나에게 온 한 편의 영화와 한 편의 책이 전혀 다르게 같은 말을 던지는 것 같았다. 난, 일단 가만히 있어본다. 열심히 던져진 말들을 프로세싱하면서. 여전히 홀이 너무 많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할 수 있을까. 고통의 진행형 속에서 고통을 제공한 대상을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고통스러운 것일까. 용서의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일까. 어렵다. 머리로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다. 뭔가가 빠져있다.

7월의 끝, 싸이코 (Pscycho)

토요일 밤 10:40분. 차들이 줄줄이 늘어선 여의도를 위태로이 칼질하는 사브 한 대. 그녀를 11시 정각까지 집으로 돌려보니, TV 앞에 앉히기 위한 질주였다. 물론, 서울 최후의 병목으로 꼽히는 신림 4거리의 교통 상황은 그녀의 정시 귀환을 허락치 않았다. 하지만, 하늘이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버리지 않으셨던 것일까. 집에 도착한 그녀가 황급히 리모콘을 켜고, EBS를 틀었을 때 < 싸이코>는 그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된 첫 번째 여관방 시퀀스를 전개시키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모범적인 여자와 이혼 수당의 부담 때문에 그 여자를 허락하지 않는 남자가 한낮의 정사 후 나누는 괴로운 대화를. 오후 2시 45분. 그녀는 그 시간대에만 연인과 침실에 들 수 있다.

당시 TV 한 편 제작비에 불과했다는 80만 달러(약 9억) 들여 만든 영화 < 싸이코>는 현재 IMDB에서 Top 25를 기록 중이다. 히감독님 영화 중에서는 21위를 기록하는 < 이창>에 이어 2위. 검증된 영화이고, 영화 역사 사상 가장 많은 분석된 영화 중 하나가 아닐까 예상해본다. 그런데, 난 분석이나 열광은 커녕 보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심지어 그 유명한 샤워씬이 끝나고 나자 쿨쿨 잠에 들어버렸다. 이 영화 꼭 봐야 한다는 징징댄 것도, 그 압박에 못 이긴 사브의 질주도 모두 무색하게시리 말이다. 물론, 몹씨도 몰아부친 24시간이기도 했지만…

다시 깨어난 것은 사립탐정 아보가스트가 살해되는 씬에서였다. 고조에 달한 버나드 허먼의 싸이코표 BGM이 잠든 나를 깨웠다. 이후 반쯤 정신이 나가서 영화를 끝까지 보긴 봤다. 이상한 영화다. 이토록 웃음기 없는 히감독님 영화라니. 여자 주인공은 나오자마다 1/3도 못되서 갑작스레 퇴장하고, 뒤는 질질 늘어지며 기나긴 설명을 늘어놓는다. 노먼 베이츠가 잡히고 난 후, 정신분석학자의 설명은 아예 영화가 말하는 영화 속 캐릭터 분석이다. 이런 마무리는 < 이창>의 느닷없는 엔딩씬과 대척점을 이룬다.

하도 졸면서 정신없이 봐서 감흥이 없다. 뭐 사는 게 이런 거지. 기대했던 게 별볼 일 없을 수도. 그게 대상 탓이 아니라 내 컨디션 탓일 수, 충분히 있는 거지. 그리고, 난 역시 장난치고 뺀질거리는 터무니없는 캐릭터들이 좋다. 나중에 망가지고 변질되고 비극에 빠진다 할지라도. 인형같은 마리온에도, 박제같은 노먼 베이츠에도 닿지 못해 그냥 그렇게 < 싸이코>가 흘러갔다. 어쩌면, 하이 앵글이 빈번히 등장하는 이 영화는 이입의 대상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게임의 대상일지도 모르겠다. 이럴까? 저렇겠지? 관객과 감독이 벌이는 한 판의 두뇌 게임. 결국 관객이 지는 것으로 각본이 짜여져 있는. “나는 관객들을 통제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마치 오르간을 연주하듯이 관객들을 연출했다고 말입니다.”(‘히치콕과의 대화’ 중) 요런 스탠스로 봐야 하는 영화에 내가 크게 관심이 없는 중이기도 하다.

어쨌든 7월도, 7월의 EBS 히감독님 특집도 이렇게 끝이 났다. 무더운 여름밤과 어울리는 히감독님 영화를 내내 공포스런 장마비와 함께 해야 했지만, 오랫만에 ‘영화보는 즐거움’…좋아하는 영화에 열광하는 순수한 관객으로서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집을 다 보고, 남는 질문은 하나다. ‘지금 히감독님이 계셨다면, 어떤 영화를 만드셨을까?’ 어쩌면 우리는 지금과 전혀 다른 걸작 트랜스포머나 해리포터를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히감독님은 상업 감독이었고, 흥행시켰고, 당대를 등지지 않으셨으니까. 천재성을 가지고, 상업적으로 생존했으며, 영화 밖에 몰랐다. 이 희귀한 미덕의 조합이 내 눈앞에서 펼쳐질 때, 난 그저 흐뭇할 뿐. 비록 내 방안 작은 TV 모니터를 통해서 일지라도.

< 싸이코>를 안 봤더라도 누구나 한 번 쯤을 봤을 샤워씬. 빠듯한 촬영 일정이었지만, 이 45초를 찍기 위해 1주일이 걸렸고, 카메라 위치를 70번 넘게 바꾸었다고 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놀라거나 공포를 느낄 수도, 혹은 그냥 정신없이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잊을 수는 없다.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 그것을 통해 당신과 내가 교감한다는 것. 8월, 깊어질 당신과 나의 여름을 위해 건배- 샤워 커튼 뒤에서 서서히 다가올 검은 그림자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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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이 히감독님 ㅎㅎㅎ ♥ ♡ ♥ ♡ ♥ ♡ ♥ ♡….라부라부 ,..싸/랑/해/요! 히감독님 우유빛깔 희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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