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정보 없이 봤고, 당연히 괴물 영화라고 생각하며 보기 시작했는데
이 영화가 무엇에 무엇에 관한 영화인지 알게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대략 영화의 반이자 상하의 분기점이 되는 3편까지…
대체적으로 영화 시작에 괴물이 나와서 인간을 괴롭히면, 당연히 그 영화는 주인공이 괴물과 싸우고 미스테를 밝히고 쳐부수는 과정이 될거라 예상하니까.
그런 오해를 벗어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더라구.
정작 이 영화에서, 최소한 이번 시즌에서는 괴물은 전혀 중요하지도 않아. 괴물의 정체라든가 괴물의 의도라든가 괴물을 타도하는 기발한 과정같은 건. 그냥 그건 하나의 영화적 설정이 뿐.
영화의 프레임은 그 초자연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서로 다른 입장, 그 입장 간의 대결에 관한 영화였어.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돈냄새를 맡고 달려든 사이비들은 사람을 홀릴 그럴싸한 입장을 셋팅하고 비즈니스 모델화해. 초자연적 현상에 빨대 꼽으며, 그 입장을 주입시킬 메카니즘의 설계하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킬링 포인트에 또 미디어가 한 몫했지만.
VJ와 네티즌들은 광적으로 이 입장을 지지하고, 네티즌 특유의 편향적 대동단결로 똘똘 뭉쳐 스스로를 세력화해 온라인을 넘어서 실세계의 폭력 집단이 되어가지.
갈증을 채워줄 피를 갈구하는 좀비들이야. 타인의 피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코로나보다 더 큰 전파력을 가진 존재들.
하지만 그 내부는 너무나 허술하고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지. 종교인들은 복덕방 아줌마 아저씨들이고, 과장된 메이크업을 하고 네티즌을 선동하는 대장 VJ란 놈은 알고보면 찌질이 방구석1열.
뭐야, c발. 이건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잖아. 그것이 종교든, 정치든, 대단한 업적으로 추앙받는 어떤 인물이든, 무슨 무슨 프레임이라고 지멋대로 설계하고 정리해서 유튜브로 떠들어대는 누구든.
이 까발림에 큰 카타르시스가 있었지. 그 적나라함이 영화의 백미고, 소도인들의 투쟁 과정은 딱히 그냥 그랬어.
그저 인상깊었던 건 박정민과 김현주의 태도 그 자체. 무엇에도 현혹되지 않고, 겁도 기대도 희망도 없이 주어진 상황에 충실한 그 태도가 좋았지.
그리고 마지막에 엄빠의 사랑은 그 무엇도 초월한다는 거지. 뭐, 그런거겠지.
흥미로운 지점은 사이비와 네티즌과 미디어의 결탁인데 이 삼대장 시너지가 어마어마했음에도, 결국 지가 더 잘났다고 혹은 살아남겠다고 지들끼리 치고박고 싸우는 코미디가 참 통쾌하더라. 무슨 절대악의 파멸보다 난 이런 게 더 통쾌했어.
영화적 설정이기에 현실에서 불가한 초자연의 극단적인 설정으로 나왔지만, 사실 나의 좁디 좁은 이해의 폭을 넘어서는 크고 작은 일들을 우리는 의미를 붙이잖아.
이런 일이 생긴건 돌아가신 아버지의 선물일거야.
이번에 다친건 그만 놀고 정신차리라는 하늘에 뜻일거야.
내가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신을 받아들이지 않아서야.
사실은 전혀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는 일인데도. 유튜브 채널을 보면 이런 신비한 체험을 간증하고 퍼뜨리는 유튜버들도 많더라. 특히 친숙한 연예인들의 간증을 나도 홀린듯 듣고 있더라고.
절망에 빠져있을 때 홀린 듯 걸어갔더니 거기에 십자가가 보이더라. 이건 괴수같은 완전한 초자연은 아니지. 그래서 무엇보다, 난 괴수라는 영화적 설정에 만점을 보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통해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상징했어. 절대 트랩을 걸어놓고, 입장이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가 발생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초자연적 현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유아인이라는 존재. 연기는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 영화의 근간이 되는 그 존재와 역할은 너무나 유니크하더군.
양익준의 입을 막게 하는 구조가 특히 절묘했고. 세븐 마지막 장면 보는 줄. 과거의 사건과 딸의 등장으로 뭔가 이런 모순에 빠지게 될 인물같은 냄새를 이미 풍겼지만.
자기가 그토록 밝히고자 했던 모든 비밀을 알게 되고, 그 비밀을 영원히 묻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으로 빠져들어 울게 되는 남자. 내가 누군가의 입을 막아야 한다면, 이런 식으로 하고 싶다.
시즌 2에서는 이 괴물이라는 트랩의 정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솔직히는 이런 예측을 어떻게 비껴갈지가 시즌2에 대한 설렘 포인트야.
영화를 보고 다시 한 번 다짐하건데,
깃발을 따르지 않는 인간이 되자.
나 역시 수많은 깃발의 실상에 발등찍혀보고 나서야 얻은 결론이지만.
그리고 나의, 이 생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