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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January, 2011

구정맞이 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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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 랄라라~ 랄라~라라라라라라

Sound of silence

눈 치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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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2주 쉬었다고, 눈이 반갑네~ 좀 있으면 내 눈에도 똥가루로 뵈겠지만! ㅎㅎ

선생님 리영희

오늘 선생님 49제. 오늘은 꼭 가야지…이번 주 내내 다짐했으면서도 결국 못 가고 말았다. 언제 가실지 몰라,,, 빨리 그래도 한 번은 더 생전에 인사드리러 가야지 했으면서도. 결국 못 가고 말았던 것 처럼. 사람 사는 게 짧은데,,,이런 거 놓치면 안되는데. 그래도, 놓치는 게 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존경하는 사상의 은사였을지 모르지만, 저에겐 단 한 번의 만남만으로도 너무 따뜻하셨던 그냥 너무 좋았던 선생님. 그 거대한 이름 앞에 벌벌벌 떨면서 갔는데, 너무도 해맑았던 웃음에 마음이 탁 풀어져서 말도 안되는 이거 저거 막 던졌었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사모님이 되게 안절부절 걱정하셨지. 그래도, “짧게 한다 해도 막상 오면 다들 그리 된다”시며 먼저 맘놓으라 안심시켜 주셨던 사모님. 그 날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A4 용지 10장, 몸 불편하신 선생님, 세 시간이나 붙잡아 놓고 미친 듯이 받아쓰기 한 거, 가공없이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그대로 옮겨봅니다. 옮기며, 다시 읽어 봅니다. 틈틈히 읽어보고, 다잡으려고 이 긴 거 날 것 그대로 포스팅합니다.

지금도 그때처럼 따뜻하게 웃고 계실 것 같아요. 선생님, 잘 가셔요. 편히 가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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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선생님, 솔직히 저 너무 무식해요. 선생님 책도 다 못 읽어고요. 한국 근현대사도 잘 몰라요. 근데 선생님 인터뷰 해야 되요.
A : 괜찮아, 괜찮아. 다 그렇지. 나의 모르는 독자가 궁금한 거 얘기하듯이 그러면 되는 거라.

Q. 책을 쓰시게 된 동기가 궁금해요.
A. 사실 회고록이라도 좋고, 자서전이라도 좋고 난 그런 걸 쓰려고 생각해 본 일이 없어요. 내가 무엇을 했길래,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남길 것이 뭐 있는가. 그냥 내가 연구하고 세상에 내놓은 책들은 그래도 나가 있으니까 그것으로 충분하지 자서전을 쓸 위인도 못 되고. 참, 정말로 큰 일을 한 어른들, 지도자들, 선각자들도 이런 거 안 남기고 그냥 갔다고. 그런 것을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인간이 그런 걸 쓰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간적인 오만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런데,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제 3자가 또는 많은 애독자들, 출판사가 나를 생각하는 것이 조금은 다른 모양이더라고. 그러면서 자서전을 꼭 내놓아야 한다고 해서. 내가 살아온 길, 생각한 했던 일, 한 일 못한 일. 인간의 총체적인 결산을 남겨두는 게 좋습니다…하고 많은 출판사들이 요구했어요. 그런데 그걸 쓸 나이가 됐을 때 뇌일혈로 손을 못 쓰게 됐잖아요. 오로지 평생을, 60년의 세월을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써 왔단 말이야. 그렇게 많은 글을 써 왔지만…중풍으로 신경이 마비 되었기 때문에 완전히 지식과는 끝을 맺었다 생각했던 거야. 그런데 특히, 한길사 김원호 사장이 열성적으로 방법을 제시하면서 기어이 일을 꾸몄어요. 대담한 임헌영씨를 골라서 대담을 시킨단 말야. 난 이젠 내 책이 10여권이 되니까 다 기억을 못하지. 한 5,60년에 걸친 수많은 사건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국가가 들썩거리는 엄청난 이론, 연구를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다 기억을 못한단 말이예요. 그걸 임헌영씨가 대담자로서 쭉 내 글과 살아온 과정 역정을 더듬어 기록해서 나에게 묻는 형식으로 만든 거예요.

Q. 임헌영씨가 하신 일이 크셨을 것 같은데요.
A. 뛰어난 문학비평가이면서 해방후 한국 현대사를 굉장히 연구하고 있어요. 내가 살아온 기간보다는 훨씬 짧지만, 대개 내가 문제로서 취급했던 일들을 잘 꿰뚫고 있는 사람이예요. 문제제시가 아주 좋았지. 답변하기가. 그러면서 대담만 가지고는 부족한 것이 있어요. 구술한 것 중에 문장이 안되거나 빠진 내용들, 문장이 안 되는 것들이 있단 말이지. 문장 고치고 빠진 부분들을 질문과 관계없이 집어넣는데…그게 1년이 걸리더라구. 아주 고생을 했지. 쓰지 못하는 손가지고. 우리 집사람은 그만 두자고 했어. 내가 대학에서 한 강의 원고를 대학 학보에 싣는다고 빨리 고쳐달라고 해서 하다가 뇌출혈이 왔는데. 또 이걸 하니까, 집사람이 집어 치우라고 했지. 수정하는데만 1년이 걸렸어. 처음에 임헌영씨하고 문제제기에 대해 답변을 한 것이 1년, 수정한 것이 1년. 다음 내가 생각해서 필요한 것을 전부 고쳐서 충실하게 만드는 데 1년이 걸렸어.

써지지 않는 손을 가지고 보충해 넣어야 하니까, 작업이 얼마나 힘들겠어. 하루에 내가 하루 종일 해도 200자 원고지에 한 10장. 하루 종일 해야. 그러니까 오래 걸렸어. 구술한 거나 남이 해 준 것 보다 수정하고 고쳐넣은 것이 훨씬 많았어.

Q. 그냥 대화해서 나온 책이 나온 책이 아니네요
A. 아니야. 그건 강조해야 돼. 절대 아니야. 구술만 해서 되는 책은 아니더라고. 특히, 구술을 했는데, 그걸 옮겨쓰는 사람이 젊은 사람들 아니야. 이승만 시대도 모르고, 해방 때도 모르고 4.19도 모르고…모르는거야. 그러니까 엉뚱한 글들이 많이 나오더라구. 전체 수정을 4번 했을 거야. 4번을 교정을 다 본거야. 한길사에 교정 본 원고지가 다 있어. 나처럼 자기가 생각해서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을 종이에다가 머리와 내 손을 통해서 나온 그 사상과 의식과 지식을 직접 쓰는 것 하고, 남을 거쳐서 문장을 만드는 것 하고는 아주…우린 안되겠더라구.

나는 문장의 아름다움, 문장의 미를 굉장히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문장의 미라는 것은 고치고 또 고치고 하면서 만들어지는 건데, 기계로 타다닥 쳐버리니까 안돼겠더라구. 얼마나 다듬었는지 모르고, 성격상 그냥 넘어가는 것이 전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세월이 그렇게 많이 걸렸지. 대담에서 나온 제기는 줄거리는 있지. 하지만 문장은 전적으로 내가 만들고 쓴 문장이야. 내용과 문장은 다 새로했어. 그러니까 도중하차 할라고 했다니까.

2쇄를 고쳐서 보내고 오면 또 고쳐서 보내고 그렇게 4번을 했다고. 한길사의 편집부 편집실에 가면 그게 다 있어요. 말로 한 것을 쉽게 마치 정말로 대화로 한 것처럼 문장을 만든거야. 내가 읽는 독자를 상상을 하면서 읽기 편하게 대화를 하는 것처럼 만들어야 돼요. 나는 과거에 그런 문장을 많이 써왔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이럴 때 어떻게 가볍게, 즐겁게 읽을 수 있을까, 그렇게 문장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그냥 대담으로 누가 책을 만들더라도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전혀 이렇게 쉽게 느껴지는 책이 되지 않아요. 본인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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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부터 2004년까지 걸치는 얘기다 보니까, 70년에 걸친 이야기지. 그런데, 받아쓰는 사람들이 다 젊은 사람들이니까. 다섯 사람을 바꿨어요. 엉뚱한 걸 쳐 나오니까. 마지막에는 우리집에서 한 달 반을 자면서 아예 숙식을 하면서 고친 거라고. 왔다갔다 하면 시간 들이니까 아예 우리 집에 재웠지. 마지막 그 친구는 서울대학 대학신문 편집국장 하던 친구야.

Q. 제일 어려웠던 부분은 어디였나요?
A. 시사문제. 일제 시대 것은 일일이 다 써 주거나 해야했고. 해방 후의 내용도 다 모르니까 하나하나 설명을 하면서.

Q. 원하는 내용은 다 넣으셨나요? 책을 쓰면서 포인트 빠진 거 없이.
A. 대체로 다 넣었어. 90%이상은 다 넣었어.

Q. 그래서 책이 두꺼워졌어요.
A. 그래서 내가 쓰다 보니까 500페이지가 나왔는데, 200페이지 분만큼은 써 넣은거야. 내가 손 못 쓰거든 원고지에서 두 세장 쓰면 손가락이 다 구부러져.

Q. 손이 아프신 것이 선생님의 정신을 제한하거나 하지 않았나요?
A. 뇌출혈로 뇌신경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기억력이 상실됐어. 그건 임헌영씨가 많이 도와줬어요. 그 다음에는 사람의 이름이나 문제의 내용에서 자상한 디테일이 영 생각안나. 그건 전부 그때마다 그에 관한 책을 다 찾아서 고증을 한 거라. 대화만 대담할 때는 머리에 있는 것이 그렇게 정확할 수 있겠어요? 숫자도 그렇고, 날짜도 그렇고. 그건 전부 또 전문 서적, 문헌을 찾아서 내가 일일이 전부 고쳐넣은거라.

그런게 기억으로 나올 리가 없는 거거든., 그런데 나는 한 50년간 실증적인 논문을 써 왔기 때문에 난 그런게 정확하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거든요. 이론적으로 추상적으로 쓰는 식은 나는 아주 안 좋아하니까.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그러니까 힘들지. 전부 문헌에서 찾아 넣었으니까.

재미난 건, 사람이 늙으면서 말이요. 과거의 어렸을 때 것은 기억이 너무 선명하게 되살아나. 오히려 작년, 재작년 한달 전 것은 생각이 안나는데, 유치원 소학교 것은 너무 선명하게. 거 신기해요 사람의 뇌작용이라는게.

나는 운동가가 아니야. 나는 이론가야. 내가 쓴 논문들이 그렇게 대한민국이거나 남북한이거나. 세계 문제거나. 한국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문제. 전혀, 반대로 알고 있는 문제, 순전히 왜곡된, 조작된, 거짓된 문제. 이런 것들을 내가 이론적으로 전부 파헤친 거지. 그러니까 나는 학구적인 학자지, 그런 것을 알리겠다는 의미로 한 때는 언론인이기도 했지. 그렇지만 나는 운동가는 아니라고. 첫째는 내 이론으로서 대한민국과 남북한 통틀은 거짓된 이론, 거꾸로 된 이론들을 밝혀내고 바로잡는 공로가 제일 크지. 누구도 그 당시에 감히 그 어떤 학자들도 교수들도 몰랐던 문제들을 밝혔으니까. 알아도 미처 글을 쓰지 못한 것을 정확하게 철저하게 종합적으로 논문화해서 발표했거든.

나는 그 글 때문에 나는 형무소를 밤낮갔지. 그렇지 않은 시기라는 것은, 말하자면 김대중 대통령 시대 정도 였을까? 그때는 경찰과 중앙정보부가 오지 않았지. 그 전에는 언제나 경찰, 대공반들이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으니까. 그 세월이 40년이었으니까. 지금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 그 당시의 지식이라는 것이.

Q. 어떻게 글 몇 줄이 그런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나요?
A. 예를 들자면, 대한민국은 UN총회가 승인한 한반도에서의 유일 합법 정부이다. 그래서, 북한은 괴뢰고 대한민국의 영토다. 이런 주장이 여지껏 대한민국의 합법성을 주장한 거야. 그건 전혀 아니거든. 대한민국은 남한에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거야. 북한은 별도의 정권이라. 그걸 한 사람도 몰랐어. 한 사람도. 국제법 학자나 외교문제 전문가거나 정치전문가거나 한 사람도 몰랐어. 그걸 썼으니 내가 어떻게 돼. 지금은 상식이 되어있는거야. 이북이 그렇다는게. 한국에서 유일합법정부론 이걸 가지고 북한 책을 봤다는 거는 반공법으로 때려잡고 국가보안법으로…해방에서 오늘날까지 거짓된 공포분위기와 남북국가의 위상, 이런 것을 조작했던 거라구. 아직도 그걸 믿고 있는 극우 보수적 인간들이 많잖아.

Q. 그런 걸 어떻게 아셨나요?
A. 난 연구하는거지. 난 뭐든지 진실을 아주 뿌리까지 밝혀내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는 성격, 학문적 태도였다고. 소위 북방 한계선이란 거 있고, 북한의 애들이 거기 침범한다구 하지. 북방한계선이 불법이야. 남한이 그렇게 주장할 근거가 없는 거라구. 그걸 또 엄청난 연구끝에 밝혀서 논문으로 냈잖아. 그런데, 내 그러한 논문이 여러 가지 많지만 서해 북방한계선이 불법이라는 게 나간 후에 뒤집힌 거야. 경찰도, 대공반도, 나한테 한 마디도 못해. 전화 한 번 걸어오질 못해. 미국 정부가 그 후에 그렇다고 인정해 버렸거든.

그것 뿐 아니지. 주한 미군의 지위에 관한 한미 방위 조약의 본질이 어떤 거냐. 거의 식민지적인 조약의 내용이라는 것. 또, 그리고 그 지난 날 남북한 관계에서 북한이 맨날 휴전선 침범한다고. 하지만, 남한이 더 그랬거든. 거기에 1만 4천명이 올라갔어. 7천명이 행불이거나 죽고, 6천명이 살아서 내려와. 그 숫자까지 전부 밝힌거야. 내가. 휴정협정 위반은 92년까지 북한과 남한이 46만건 씩이야. 휴전감시 위원단의 등기된 남북한의 휴전 협정 위반 수가 대체로 36만 건이었는데, 남한이 더 많아.

이런 숫자들. 진실들. 그런 문헌을 찾으려면 미국 국회의 의사록을 3천 페이지씩 읽어. 그래야 뭐가 나온다고. 그래야 베트남 전쟁이 어떤 전쟁이냐 하는거. 순전히 침략 전쟁이거든. 그 사실 밝혀내는데, 68부터 74년까지 쓴 글들을 모은 베트남 전쟁이라는 책이 있어. 이것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비로소 처음으로 알게 된 거야. 우리는 용병이지. 그건 반공의 선전도 아니고, 침략의 방어전쟁이 아니라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이었던 거라고. 그래서 미국의 청년과 대학생들 37만명이 징병 기피를 했어. 그런 숫자같은 것을 내가 다 제시하는 거야. 37만명. 미국이 자기 국가가 전쟁하는데, 37만명이 베트남 전쟁 반대해서 기피했다고. 거기에 클린턴 미 전 대통령도 들어가 있고.

그런 사실들. 그런 물증과 증거 서류와 문헌. 미국 정부의 탑 시크릿 문서들을 찾아 내서 내 논문을 만들거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나의 글이 그렇게 강했던 것은 철저하게 근거에 입각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글은 나는 안 쓰니까. 실증적 연구를 한 거야. 전부 인용을 그렇게 하니까. 누가 반론을 감히 제시하지 못할 확고한 증거,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 나의 연구 논문의 강점이었죠.

최고의 결정자가 인정한 사실. 최고 권위자들이 사용한 통계 수치에 우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어. 자기 자신들이 사실이라고 하는 건데. 베트남 전쟁 같은 것은 순전히 미국 자료만 가지고서 그런 게 나오는 거야. 미국, 불란서, 드골, 영국 종전을 가져온 국제 회의 의사록. 이런 걸 바탕으로 하는 거지. 중국거 북한 거 이런 거 쓰는 것이 아니거든.

Q.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실 것 같아요.
A. 난 준비하는 노력이 7할이예요. 70%. 그리고 구상하는 것이 10%고. 쓰는 것은 20프로밖에 안돼. 그러니까 남하고 다른 것은 문헌과 자료, 밑바닥에 있는 모든 재료를 찾아내는 것이 70%였어. 김신조 같은 것을 1만 4천명 보냈던 거야. 북한에서는 맨날 신문나고 그러는데, 우리는 안 보는거지. 실미도 같은거..그런 거 만 사천명이나 올라갔어. 대한민국 국민들은 반공사상, 반공 정권 때문에 진실을 전혀 모르는거야. 완전히. 진실을 캐낸 역할을 했기 때문에 7,80년대 세대들이 비로소 세상을 올바로 보게 된거지.

나는 대학에서는 신문방송학과에 소속되어 있었어. 신문사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대학으로 갔거든. 16년간 국제 부장을 했기 때문에, 국제 관계에 훤한거야. 소속은 신문방송학과지만 내 글과 연구는 그런 국제문제, 한반도의 한미 관계에 집중해서 썼지. 난, 386이라는 건 몰라. 나보고 386세대의 사상적 지주다 그러는데, 나는 386이 뭔가 물어봤어. 난 그런 거 몰라. 난 1960년대 부터 1980년대 말까지 전 세대를 통해서 영향을 끼친거지. 386인지 584인지 전혀 모른다고.

Q. 가장 보람을 느끼시는 저작은 무엇인가요?
A. 역시 사회적 지식 사회의 충격이 가장 컸던 책이 맨 처음이 나온 것 < 전환시대의 논리> 내용으로 말하면 그 뒤에 나온 책들도 다 거기서 시작된거지. 우리 지식인, 청년, 학생, 노동자 전체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세계 정세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논리로 바꾸어 놓은 것은 전환시대의 논리지. 쉽게 말하면, 내 책들은 우리 한국에서 사실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 허위라는 것을 증명해 냈고, 거짓이라고 가르친 것이 전부 허위다라는 것으로 뒤집어 버린거야. 그러니 그 시대 사람들은 다 기절을 했어. 편지가 이만큼 오는데 다 태워버렸지. 잡혀 가니까. 집사람이 구공탄 아구니에 넣고서…..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지. 교과서에서 받은 지식이라는 게 전부 뒤집혀나가. 사람들이 벌벌벌 떨고, 밤새 담요를 뒤집어 쓰고 너무 겁이 나서. 밤을 지새기도 하고, 땀이 났다고도 하고. 누가 잡으러 오지 않나 ..그랬다고 하고. 내 책을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헌병이나 경찰이 가방을 뒤지면 내 책이 으레 나와. 내 책은 일단 판매금지가 됐었지. 그 당시의 지적 분위기, 생전의 지식인들의 생존의 분위기 같은 그 어마어마한 속에서도 진실 한 가지를 알았을 때, 그 기쁨, 진실을 알은 까닭으로 해서 엄습해 오는 두려움 …그걸 5,60대 세대가 다 경험한 거라고.

Q. 쓰시는 과정에서는 이런 충격을 주리라고 예상하셨나요?
A. 난 그만큼 엄청난 충격을 주리라고 예상하거나 계산하고 논문을 쓴 건 아니라고. 난 그저 진실을 가르쳐야겠다. 거짓에 입각한 통치, 사회..난 거짓을 증오하는 마음 때문에 진실을 밝혀야 겠다. 어둠 속에 빛을 줘야 사람들이 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고 할 거아냐. 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썼는데, 그런 큰 엄청난 충격을 주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어.

그래서 난 자연히 내 책을 읽고 형무소도 가고, 고문도 당하고 그런 젊은이들이 많지 않겠어. 내가 주례를 꽤 많이 섰는데, 나에게 주례를 부탁하러 온 젊은이들은 내가 재직했던 한양대학 학생들은 몇이 없어. 전부 서울대, 연대, 고대 ..지방의 대학들. 그 시기를 치열하게 산 젊은이들이라고. 지금도 주례 동창 모임이라고 있어. 한양대학에 22년 있었지만, 난 연금의 자격을 박탁당한 거야. 왜냐면 박정희 때 4년 쫓겨나고 복직했다 다시 전두환 정권에서 4년을 쫓겨났거든. 연금 자격이 최저 20년 근속인데. 그런 희생없이 되는 것이 아니예요. 지금 난 생활이 상당히 어렵다고.

겨울에도 방 온도도 20도 21도로 조절하고, 필요한 방에 필요한 시간에 데우고 나가.

Q. 평소 말씀하시는 것도 아주 구체적이신 것 같아요. ^^;;
A. 한 50년 동안 글 쓴 내용이 실증적 내용이기 때문에, 아주 구체적인 증거를 찾고 그 증거로서 고증하지 않으면. 막연한 이론으로 하는 이런 식은…(별로) 평소 생활에도 그렇게 되지. 가족생활에서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과학적으로 정확성을 기해야 한다 말이야. 집에서는 안 그러려고 그러지.

Q. 그래도 그게 가끔 나오시죠.
A. 그게 사실이야. 내가 직장에서 4번 쫓겨나지 않았나. 신문사에서 국제부장으로 두 군데서 쫓겨나서, 그래서 한양대학에서 다시 정권 바뀔 때마다 쫓겨나고.

Q. 그럴 때 기분이 어떠세요?
A. 참담하지. 우선 가족이 있는데 어떻게 먹고 사느냐. 우리 집사람이야 고생 말할 수 없었지. 애들도 물론 그렇고. 지금 참 미안한 마음이 많지. 그때는 내가 아니면 진실이 이 세상에서 밝혀질 수 없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어서, 굴하지 않았지.

Q. 보람이 느껴지시죠?
A. 보람이랄까…이만큼 사회가 개혁이 되고, 밝아지고, 열리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 다 아무런 희생없이 된 건 아닌 거라는 걸 생각하면, 내가 공헌한 것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보람을 느끼지.

Q. 왜 젊은 사람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 잘 모를까요?
A. 그것이 몰역사적 생활, 몰역사적 태도라고 하는 것이죠. 왜 민족에게 역사가 있느냐 하면, 지난 날을 알아야 오늘을 올바르게 살 수 있고. 오늘 올바르게 살아야 내일을 그 연장에서 바르게 살 수 있는데.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가 젊은 사람들의 몰역사성. 그저 돈 벌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이런 찰나주의. 이런 것이 문제죠. 물론 지금은 지난 세대들이 체험한 것을 다 체험할 필요도 없고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좋아요. 그러나 큰 틀에서 어떤 역사를 이어왔다는 것. 그 속에서 이 민족이, 우리 앞 세대들이 어떻게 고생을 했길래 우리가 이 정도로 편안하게 아무 걱정없이 살 수 있게 되었느냐는 알아야 하는데.

우리 시대는 책으로 밖에 안돼니까. 우린 인터넷 이런 거 없으니까. 책밖에 의존할 수 없지. 그리고 그 시대에는 지금처럼 물질주의 지상숭배 시대가 아니었거든. 도덕적인 정신적인 생활에서의 충실함 같은…쉽게 말하면 다소 가난해도 정서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좀 고매한 이런 것을 존중하는 시대였단 말이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를 많이 한 것이지.

Q. 젊은이들에게 추천하시는 책이 있나요?
A. 너무 사고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나는 이제는 일체 이런 얘기를 안 하고 살려고 하는 거예요. 나는 낡은 덕목을 가지고 살고. 얘기가 상통하지 않으니까. 물질 만능주의로 살아가는 세대에게 책을 권하거나 한다는 것이 오히려 우스운 것 같애. 바로 그런 얘기를 전부 찾아다니면서 하는 것이지.

한국 사회 포럼 2006이라는 지식인들의 발표회가 있었더라구. 현재와 장래에 있어서의 지식인의 역할같은 거 얘기하는데, 진중권이라는 젊은 사람이 바로 그런 식의 디지털 시대의 활자에 대해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는거냐. 역사가 바뀌었고, 전혀 낡은 세대들이 발언할 지식이나 경험이 도움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고 했더라구. 한심하다는 거지 나는. 지난 역사와 공동체가 살아온 집단적 기억에…그 속에 지식인의 역할이라던가. 도덕을 논하고, 변화하는 현실에 미래화하고…

Q. 지식인이란 무엇일까요?
A. 인터넷과 컴퓨터가 다 해주는 거니까. 지식인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그런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애.
시대는 역사적인 변천을 한단 말이예요. 그런데 지금은 컴퓨터를 가지고 하고 낡은 데서는 써먹을 데가 없는 것처럼 흐르고 있어. 그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것. 변천많은 긴 인류의 생존을 멀리 볼 때, 컴퓨터나 물질적인 것이 얼마나 앞으로 인류를 파멸로 끌고 가는 엄청난 무서운 작용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걱정하면서 그렇지 않은 보다 정신적인 사회의 공동체가 보다 행복하게 정신적으로 협동하면서 살아가는 사회를 지향해서,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지식인이죠.

현실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현실의 변화를 최고로, 이것이 영원토록 지속되는 불가항력의 시대적 힘이다 라고 해서 그 물결을 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반인간적 요소들, 그것들이 거기에 매몰되어서 그대로 끌고 가면, 어떤 인간의 생존환경과 조건이 만들어질까 하는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걱정하면서, 뭔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

Q. 지식인이라면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A. 아니아니…전혀 아니지. 대학나온거, 대학원 나온 거 지식인 아니예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이면 농부라도 지식인일 수 있어요.

그건 지식이 아니라 정보란 말이예요. 인포메이션의 시대에는 인포메이션만 많이 가지면 승리한다. 승자와 패자의 개념으로 인간의 생활을 보는 거야. 그것이 위험하다는 거야. 승자하고 패자로 인간을 갈라놓고 …미국식 자유주의의 아주 가장 위험한 소위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무한 승자, 패자로 인간의 가치와 행위를 판정하는 그런 사고. 그것은 반드시 인류사회의 파멸을 가져올 거야. 인류의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얄팍한 것이 아니라고. 정보의 많고 적고로 결정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Q. 뭐가 필요할까요?
A. 가치관이지. 가치관. 정보와 지식을 가진 것은 도구이지, 어떤 인생을 어떤 인류의 생활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가치관이 중요한거지. 무한승자, 무한경쟁 이것은 경제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절대주의적 사고…이런 것이 인류 전체를 약한 자와 강한자의 싸움으로만 규정해버려. 이기는 자와 지는 자. 요새 얼마나 살벌한 사회야. 군사력으로 쳐버리는 …컴퓨터나 인터넷 정보의 강점에서 나온거야. 그런 것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쓰느냐. 인류의 공동의 행복을 위해서 쓰느냐, 전쟁을 위해서 군사력을 위해 쓰느냐. 이것은 인포메이션이나 지식이 아니라 가치관, 철학의 문제야.

Q. 네이버는 그런 정보를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A. 이용하는 사람들의 철학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전쟁이 아니라 무한경쟁에서 승자와 약자의 보다 더 평등한 나눔의 인생, 생존, 같이 어울려 쓰는 정보가 되어야 하는 거지. 어떤 인생을 구축해야 할 것인가, 그런 걸 위해서 그런 걸 이용하는 거야.

Q. 요즘 같으면 더 편하게 공부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A. 편해졌지. 하지만, 권력이 숨기고 있는 것, 조작하는 것, 이런 것들이 반드시 이런 걸로 밝혀진다고 생각하면 안되는거야. 어떤 독재체제하에서는 소수의 인간들이 권력을 쥐고, 그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정보를 악용할 때, 그 거짓을 찾아내고 공개적으로 체계화해서 논문으로 알리고 하는 것은 그런 도구가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우선 그런 정신과 사상을 가져야 하는 거지. 작업 자체는 쉬울 지 모르지만 그런 사상과 철학과 의식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개개인이 어떤 의식과 사상과 철학을 지니느냐가 중요한 거지.

Q. 어떤 태도로 정보를 봐야 할까요.
A. 나 개인적으로는 과학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정보화된다는, 편리하고 이익이 된다는 생각에 반대하지. 지금 이렇게 전달되는 정보 총량의 1/10, 1/2만 있어도 하나도 불편함이 없을거야. 실제로는 보다 고상한 목표를 위해서 쓰임새가 없는 잡다한 것들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거야. 정보가 많으냐 적으냐는 중요하지 않아.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정보만이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거지.

Q. (‘대화’에) 원하시는 내용의 90퍼센트 들어갔으니 만족하시죠?
A. 본래 들어갈 것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만큼 들어갔으면 많이 들어간거지. 원래 그런 책을 낼 생각이 없었으니까. 많은 분들의 요청때문에, 모아서 내게 된 것만도 다행이죠. 그저 다만 지금 젊은 세대들이…일제 시대에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고, 해방 후에 우리 나라와 사회가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 모르고 그 속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는 세대들에게 그저 어렴풋이나마,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아…대충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지식을 줄 수 있다면 나로서는 이 책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식민지 시대를 어떻게 살았으며, 해방 후의 시대가 어떤 시대였느냐. 추경험을 읽는 사람들이 그 시대를 살고 체험은 안 했어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추경험을 할 수 있으면 나로서는 만족합니다.

Q. 왜 그 시대를 추경험해야 할까요?
A. 사람은 한 개인으로서도 그렇고 민족으로서도 그렇고, 어떤 부족이라는 집단으로서도 그렇고. 하나의 기억의 연속체예요. 그걸 다 역사책 외우듯이 기억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크게 지난 살아온 길에서 어떤 잘못이 있었고, 어떤 우여곡절이 있음으로 해서 그것이 전체 집단의 생존에 어떻게 영향으로 작용을 했느냐. 말하자면, 이조말기에 그 한심한 당파싸움과 지배층에 의해 식민지가 되었던 그런 사실을 지금에 비추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거란 말이야. 그것이 지금 당장에 내가 컴퓨터를 두드려서 작업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는 개체가 활동하는 전체 구조의 오늘과 내일을 영향을 주니까. 그래서 적어도 추경험이라는 별로 시간들이지 않고 대충…마치 경험한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책 한 권 읽는 하루나 이틀, 혹은 몇 시간으로서도 그것을 안 가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아주 유명한 얘기가 있어요. 독일에 197,80년대 바이제카라는 대통령이 있었어요. 2차 대전이 끝난 5월 9일이 히틀러 나치가 일으킨 전쟁,,,구라파 전쟁이 끝난 2차대전이 끝난 85년이 40주년 이었어요. 일본의 미국과의 40년 기념이었지. 그 때 그 사람이 그랬어.

우리 독일인들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그 수 백만의 유태인, 노동자,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집시, 심지어 불구자까지 다 죽여버렸다. 순수 민족을 만든다는 슬로건으로. 인류가 태어난 이후 역사상 과학의 힘을 빌려가지고 가장 잔인한 수 백만의 인간을 통시적으로 살해해 버린 이 사실을 전 세계에 인류사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지금 우리 독일 국민이 과거에 우리 조상이 한 역사지 우리가 무슨 관계 있느냐…독일 민족이라고 해도, 과거 할아버지들이 한 얘기지 우리란 무슨 상관이냐. 만약 독일인들이 지금 그렇게 생각한다면, 독일 민족은 다시 히틀러가 저지른 것과 같은 천인공로할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민족의 역사를 모르면, 역사를 잊어버렸거나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내일의 다시 범죄와 자기 파멸의 행위를 되풀이 할 것이다. 그랬어.

그래서 전 세계가 바이제카 대통령의 그 연설에 대해 전 인류가 박수를 보낸 거야. 그것이 바로 우리가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개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야. 젊은 날의 나쁜 행위를 잊어버린다면, 지금도 할거고 내일도 또 되풀이 할거야. 그래서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거야.

일본은 독일이 패망한 지 석 달 후에 패망했어요. 2차대전의 패망의 날짜가 달라요.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은 8월 15일 저쪽은 5월 9일에 전쟁이 끝났거든. 그런데, 8월 15일에 일본의 나까소네 수상은 이런 얘기를 했어. 종전 기념사에서 일본은 이제 빛을 다 갚았다. 우리 이제 과거 전쟁에 관해 반성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떳떳하다 그런 뜻의 연설을 했어요. 과거의 역사를 전혀 기억 못하거나 부정한 거야. 그 후 지금 일본이 되어가는 꼴 보세요. 다시 과거같은 침략국가가 되려고 하지 않아요.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느냐…잘못 인식하느냐..역사를 기억하느냐 망각하느냐…이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 자신의 오늘 이 순간의 문제이고 내일의 문제라고.

Q. 역사책을 많이 읽어야겠네요!
A. 아니, 역사책을 많이 읽을 필요는 없어. 내가 말하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세종대왕 때 무슨 일이 있었고….몇 년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런 게 아니야. 큰 줄거리로서 지난 온 역사의 의미를 이해하면 되는 거지 교과서에 나오는 그런 뜻의 역사가 아니라고.

Q. 그런 걸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그런 의식을 가져야지. 조금은 좋은 책을 봐야 하지만은.

일본의 경우는 천황이라는 황당무계한 인간을 신으로 모시고 군부 독재가 전쟁을 일삼아서 국민을 그 불쌍한 국민들을 소수의 군부의 이해를 위해서 거대한 미국을 깔보고 전쟁을 했단 말이야. 거기서 우리는 소수의 지배자들이 나쁜 자기 이익을 위해서 국민을 희생시키고 수 백 만씩 죽여가면서 전쟁을 하는 것은 나쁜 행위였다. 이것을 알으면 되는 거야. 그러면 그와 같은 행위를 다시 안 하게 되는 거야. 몇 월 며칠 날에 전쟁이 일어나고 비행기 221대로 했다 225대로 했다 군함이 서른 척 가라앉았다 서른 한 척이다. 진주만 공격. 이런 자질구레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예요. 이 전쟁이 어떤 전쟁이었냐.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

지금 우리 과거 청산 운동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게 바로 과거 들춰서 뭐하냐. 요새 젊은이들이 지난 날 알아서 뭐하냐 하는 거야. 우리가 다시 그런 꼴이 안된다고 장담을 할 수 없어. 미국에게 완전히 식민지 될지. 군국주의 일본이 될지… 아 그때 이러이러해서 우리가 그렇게 됐다. 그런 세력들이 있었고, 무엇을 잘못했기에, 정신 못차렸기에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큰 우리의 건전한 집단적 생존을 위한 문제들을 의식하면 되는거야. 교과서의 역사를 말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야.

Q. 그런 면에서 오히려 ‘대화’는 자서전이 아니라 역사책 같아요.
A. 그렇지. 이런 것이 있었구나 이런걸 조금 더 알게 되는 그런 의미로서 대화라는 책의 역할은 다 한 거예요.

우리 세대는 자기의 사상이나 감정이나 생각을 글로써, 99% 글로써 전달했단 말이예요. 편지도 다 써서 종이에 써서 편지로 상호통신 교환하고. 지금 손을 놀리고 있는 인터넷의 역할을 전부 편지가 했단 말이예요. 더구나 나처럼 글을 50년 동안 써오면서도 문장의 심리학적 분석을 많이 해요. 즉, 내가 이렇게 쓸 때 읽는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읽는 사람의 마음에 어떤 식으로 정서가 일어날 것인가 50년 동안 많이 연구해 왔어요.

왜냐면 요새는 자기 생각하는 대로만 써 놓으면 자기 생각대로 읽는 사람의 정서나 심리에 재생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안 그렇거든. 전혀 안 그래. 우리나라에 아와 어가 다르다는 말이 아주 적절한 것인데, 문장의 토씨 하나. 한 센텐스의 길이. 이런 것이 수 백가지의 요인으로서 훈련을 해야 돼. 지금 고등학교 논술이라고 하는데, 죽 쓴 게 문장이 아니라 정서적인 글은 어떻게 써야 하고, 글의 장르에 따라서 다 쓰는 것이 다르다고. 읽는 사람의 심중에, 머리에 다시 내가 얘기한 그 상황이나 모습이나 아이디어가 100프로 그대로 떠올라야 한단 말이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러한 고려를 문장에 다 해야해.

가령 나는 삼각형을 설명해서 글에 썼는데 읽는 사람은 그것이 오각형으로 생각이 떠오를지도 몰라요. 극단적인 예지만. 우리가 왜 어디서 이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은 듣는 사람의 경험대로 엉뚱한 대로 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왜 그렇게 언어의 조형에 치밀할 수 있는가 하면, 내가 치밀한 사고…내가 이공계통의 사고를 했기 때문에. 그리고 글을 쓰는 직업으로서 적용하니까. 그냥 막연하게 전달하면 된다는 식이 아니라,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99프로까지 전달을 할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 문장 구성, 문장 기법을 늘 생각하지. 나는 지난 날 짧은 원고지 한 10매 짜리 써 놓고 있다가, 밤에 누워서 쭉 그걸 내 머리 속에 재생해서 가령 같은 낱말이 같은 페이지에 두 번 들어오지 않게 또는 한 문장의 길이가 같지 않게, 호흡을 하면서 음악적인 리듬을 주기를. 두 문장은 길게 했다. 한 문장은 짧게 해서. 그 길이를 조절해 나가는. 뭐 그런 걸 전부 고려해. 자다 말고 일어나서 가서 고치는 거야.

산문이라는 것은 하나의 시처럼 흘러야 해. 숨, 편하게 호흡을 하게끔. 문장 구성이…글자의 숫자나 끝맺음이나 늘 변화가 있어야 해. 변화를 줘야 지루하지 않고, 호흡이 잘 이어지지. 어떤 문장이 길어서 몇 줄씩, 원고지 한 장씩 두 장씩 가는 글들은 호흡이 가쁘고..문장이 길어지지 . 길이를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중요해요.

짧은 글이건 긴 글이건 내 이름으로 나가잖아. 그런데 리영희라는 글 쓰는 사람의 사람됨, 지식, 정서가 충실하게 반영되어 나가려면 고생을 해야지.

Q. 다른 질문 좀 드려볼께요. ^^ 굳이 ‘리’영희라고 하시는 이유는?
A. 공식 문서는 다 이영희예요. 물론, 그 이유는 몇 가지 있어요. 첫째는 내가 태어나서 자란 평안북도는 이북은, 이남에서 쓰는 두음법칙을 안 따릅니다. 음가를 그대로 발음하는 거야. 리자나 려자나 끝에 오건 중간에 오건 관계없이 끝까지 리는 리고, 려는 려고, 녀는 녀고. 음가를 그대로 발음하는 거야. 북한에서는. 난 그렇게 어렸을 때 그런 언어 환경에서 살아왔거든. 둘째는 나이가 드니까, 역시 귀소 본능이랄까. 고향살던 옛 인생같은 것이 그리워지고, 이보다는 리영희라고 불렸던 그 시대,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 거야. 셋째는, 아주 실용적인 이유이지만은 이가가 남한의 총 인구의 1/4, 한 천만 정도예요. 전화번호거나 뭐거나 이는 너무도 많아. 김가는 더 많지. 그러니까 이영희하면은 예를 들어, 전화번호부 하나 보면 이가 몇 장이나 돼. 난 그렇게 섞여서 그러고 싶지 않아. 누가 찾기도 좋고…그래서 리영희로 하는 거죠.

난 조금은 항상, 남과 다른 개성, 개별적인 것, 개성을 강하게 생각해.

들어오면서 문패 봤죠? 아파트가 수 백만 호 있겠지만, 문패를 달고 있는 게 없을 지 모르지. 난 번호로서 불려지는 걸 제일 싫어해 내가. 개체로서 개성이 있어야지. 난 군대에서 7년동안을 군번이라는 번호로 불렸단 말이야. 형무소를 몇 번씩 드나들면서 군부독재에서. 나라는 리영희는 없고 번호로만 불려. 가슴에 달고.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생활이야. 그래서 굳이 단독주택에 살다가 굳이 이사왔기 때문에 문패를 옮겨 달아놨지.

Q. 그래도, 책 추천 해주세요~~ (난 네이버 책 담당자!)
A. 난 많은 사람들에게 노신 작품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 우선, 일생을 관통한 정신. 그리고 그 문장. 그리고 중국 사회의 타락하고 나태하고 일그러진 인간상, 중국인들의 못난 그 시대의 못난 중국인들을 작품으로 철저히 비판함으로써 정신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공로. 아큐정전이 바로 그 대표적인 작품이지. 그렇게 해서 중국사회를 어마어마한 폭력 정권 체제를 수 천년의 무게를 가지는 봉건 제도와 신분제도를 타파해 나가기 위해서 많은 글을 썼고. 젊은이들의 사상 개조를 하기 위한 많은 글을 통해서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 전환시대의 논리> 이후 흔히 사람들이 노신에 비유도 하지. 노신은 문학인이지만, 나는 관계없고 사회적인 역할. 지식인의 생활 철학. 인생에서의 자기 표현. 엄청난 탄압과 사회의 지배계급들이 가하는 핍박과 박해를 물리치고 젊은이들의 정신적, 문화적, 사상적 지도자가 됐어요. 그걸로 일관했다는 것. 그러면서 문장이 아주 평이하게, 읽기 쉽게 써 나간 문장이지.

그런 뜻을 알면서 아큐정전을 읽어야지 그것이 대단히 훌륭한 문학작품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 시대 중국의 썩은 흉악한 지배자들이 인민 대중을 완전히 정신을 다 혼란시켜놓고 빼버린 한심한 중국인 4억 5억이라는 중국인들을 스스로 자기 모습에 대해 자기가 인식하게 되고 분연히 자기 부정을 하면서 일어서게 한 역할을 한 역사적인 사실을 이해하면서 읽어야지. 그냥 문학작품 하나로 떼어다가 읽으면 뭐 이따우가 있나…모든 건 시대적인 배경이 있는 거예요. 문학뿐만 아니라.

Q. 끝으로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한 마디 부탁드려요!
A. 사실 나이들면 이게 제일 어려운 질문이라고.

내 삶에 일관되게 살아온 준칙이랄까 그것이 심플라이프, 하이씽킹이라는 거야. 생활은 검소하게, 물질적 생활은 검소하게. 정신적 생활은 고매하게. 요새는 순전히 반대지. 하이라이프, 푸어 씽킹. 요새는 생각을 거부하는 시대니까. 그저 한 10여년 전에 전철에서 우연히 여학생이 지갑을 꺼내서 얘기하는데, 지갑에 카드가 열 너댓장 들어있고 그렇더라구. 난 깜짝 놀랬어. 난 카드란 거 한 장도 없이 살 때야. 왜 그렇게 많은 물질적인 것을 지녀야 해. 사기 당할 까봐., 잊어버릴까봐 걱정하면서. 그런 물질 생활을 하지 말라는 거야. 검소하고 소박하게.

왜 아직 몇 년을 쓸 수 있는 물건이나, 옷들을 그냥 몇 달나 하면 새로운 거 유행을 정신없이 허덕거리면서 따라가구. 코높이고..물질적인 생활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하면 자연히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아주 가난해진다고 할까. 아무리 많이 가져도 가난한거야. 그러니까, 난 돈을 많이 번다든가 그런 거 다 좋아. 큰 사업을 벌인다던가…그러면서 더 본인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공헌해야 하는 거지. 안 그러면 개인 생활은 어떻게 되는거지? 700만원 짜리 위스키를 먹어야 하고, 골프 안 치면 안 되고…이런 식의 생활에 빠질 수록 정신적인 정서적인 도덕적인 인간적인 존재는 타락과 내면적 인간의 공허, 빔, 속은 비고 겉 밖에 남지 않는 인간이 되는 거지. 모두가 다 부자가 되는 것을 원하고 사회 전체가 부해지기를 원하는데도, 난 그런 생활을 권장하고 싶은 거야.

왜 도덕이라는 것이 그래도 있고, 종교가 왜 승하냐. 역시 그런 것이 보다 더 인간의 가치와 생존을 고매하게 하니가 종교와 도덕이 그대로 변치 않는 거지.

하와이 : In the storm …in the rain …in the wind.

하와이 3일차, 담소(?) 나누던 월마트 총각이 문득 그런다.
“You speak good english!” “Ah..Thank you!”

영어가 유창해서 그런 건 아니었을 거다. 어라, 난 웃고 있었다. 코메디에 반응하는 터져나오는 폭소 말고, 분위기 맞추려 억지로 쳐진 입가 들어올리는 그런 거 말고. 그냥, 애써 아무 표정을 짓지 않아도 입꼬리가 올라가고, 긴장했던 눈가의 근육이 풀려 편안해진 맑은 눈으로 무장 해제되었을 때만이 비로소 번지는 표정. 아주 오랫만에 내가 좋아하는 내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서 기분좋게 떠들고 있었다. 아마도 굿이었다면 그거였겠지. 이게 대체 얼마만이었더라…진창에 빠진 듯…한 발 한 발. 찾아도 시원치 않을 길을 오히려 잃기 위해서 애써야 했던 시간들. 목표를 눈에 그리면서도, 반대 방향으로 진격해가야 하는 괴로움.

유래없는 태풍이 몰아닥친 호놀룰루, 난 34층 내 방 베란다에 나와 탄탈루스 언덕을 바라보며 몬다비를 마셨다. 샤워를 마친 맨 몸으로 난간에 기대어.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 물기어린 몸 여기저기에 맑은 빗방울이 톡톡 …2년 전 이맘 때가 생각났다. 북해도에 있었고, 하코다테 유노가와 프린스. 방에 붙은 자그만 로텐브로에 앉아, 몸을 반쯤 온천수에 담그고 한 밤에 내리는 눈을 맞고 있었다. 어두운 저 먼 곳에서부터 반짝이는 하얀 결정체들이 내려와 내 몸에 닿아 작은 물방울로 변하던 순간, 잠깐의 차가움과 이어지는 따뜻함. 눈 한 송이가 내게 와 닿을 때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상상했다. 그 종착지가 내가 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순수한 마음이었고, 행복했었다. 가슴 졸이게 그리운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2년, 이번엔 그만큼 멀리서 온 하와이의 비가 나에게 속삭인다. 이제 그만 내려놓으면 어떻겠니? 내 마음이 답한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내려놓을 수가 있겠니? 이건 내 짐인데… 버리려 한다 해서 버려지는 것도 아닌 것들. 애초에 얻으려 해서 얻은 것도 아니었듯이 말야. 언덕 경사를 따라 높이 이어진 집들의 불빛이 검은 하늘의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내가 좋아하는, 아름답고 조용한 풍경이었다. 돌아가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과 같은 높이로 펼쳐진 작은 은하 앞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들 속에서 난 그렇게 하염없이 하와이의 ‘치유적 비’를 맞고 있었다.

여행이란 무엇을 하는 것의 연속이다. 하지만, 뭔가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여행은 어떻게 되는걸까? 그럴 때 자기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은 코스같다. 지도에는 없는 길이지만, 어떻게든 가 보면 결과적 감동이 크다. 하와이에 가서 하와이 보다 나를 더 봤고….하루하루 지날 수록 영어 발음이 대폭 향상되서, 깜놀했다! 영어 놓은지 백만 년이구만, 이 발음…이 유창한 거. 대체 어디 숨어 있었던 거니? ㅋㅋㅋ (그래봤자 콩글)


그 유명한 와이키키 해변!


말로만 듣던 와이키키 해변…다들 널부러져 있는 게 참 므흣~ 하다.
따뜻한 해변인데도 동남아와는 달리 습기가 전혀 없어, 꿉꿉하지 않고 참 쾌적했다.

비가 와도 상쾌, 바람 불어도 상쾌, 더워도 상쾌.

하와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르고, 출장 5일 전에 충동적으로 스탑오버 결정했는데
하와이의 킬러 컨텐츠는 다름아닌 ‘날씨’였다.


그냥,,, 너무 좋은 거다. ㅠ


이런 애들이 막~ 벗고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와이키키.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벅차서, 수영복에 물 한 번 안 적시고 바라만 보았소.
정줄은 달나라로 눈에선 별 하트 뿅뿅… ㅋㅋ


와이키키 동쪽에 위치한 하와이 카이 – 호수 주변에 고급 빌라들과 요트 선박장이 보인다.
부자들 많다는 오하우에서도 손꼽는 부촌인데, 여기 사시는 분들은 날 좋으면 집 앞에서 바로 요트 끌고 나가 와이키키 한 바퀴씩 마실 돌고 오신다 한다. 참, 그럴 듯한 삶이다.


저 멀리 코코 헤드 배경으로 한 컷
왼쪽에 코코 헤드 올라가는 가느다란 길이 보이는가? 완전 가파른 죽음의 코스란다. 담 번에 도전해 보리~


한 여름의 귀여운 크리스마스~


A View from my room …왼쪽은 알라와이 GC고 오른쪽 네모난 나무 울타리 쳐진 곳은 알라와이 드라이빙 레인지.
저 멀리 탄탈루스 언덕


야경. 드라이빙 레이지의 불이 밤늦도록 환하게 켜져 있다.
연습장을 12시까지 여는데, 베란다에 앉아 와인 한 잔 하고 있으면, 조용한 가운에 딱~딱~ 공맞는 기분좋은 소리가 들려온다.

호텔서 10분거리, 나도 암 때나 백 메고 나가서 한 박스씩 치고 왔다. 연습장에선 왜 이리 잘 쳐지는지. 천국이 아닌가 싶다.


알라와이 GC 앞을 흐르는 알라와이 강.

하와이에는 유난히 조깅족들이 많다. 공기가 워낙 좋으니 차도, 해변, 강변 아무데나 막 달린다.
그 중에서도 알라와이 강변은 조깅, 산책 족에게 최고의 인프라를 제공한다.
난 와이키키보다 알라와이 강이 더 좋았다니까~


커피 한 잔의 여유


알라와이 강변을 걷다 보면, 모든 게 편안~하게 제 자리를 찾는 느낌이다.


알라와이GC 드라이빙 레인지
큰 박스는 6불, 작은 박스는 4불. 시간 제한도 없이 탁 트인 경치를 바라보며 공을 칠 수 있다.
아쉬운 건 잔디가 아니라 매트라는 거. 호놀룰루 중심지가 아닌 외곽의 골프장들은 천연잔디 드라이빙 레인지가 꽤 많댄다.
게다가 숏게임, 퍼팅 연습장은 완전 무료 개방이고. 진짜 천국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여기는 완전 중심가 한 가운데 인지라 이 정도의 편의 시설만 해도 고마운거다.


하와이에서 란딩했던 와이켈레 CC. 후기는 담에~ 와이켈레 아웃렛이 바로 앞이라 조카 옷 좀 질러줬다.


너무 준비없이 간 여행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여행 방식.
그냥 버스 잡아타고 아무 데나 가 보기. 마음에 드는 데서 내려서 그냥 돌아다니기.
의외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왜냐? 하와이는 아무 데나 다 좋거든.
유명한 관광지도 좋지만, 그냥 사람 사는 데들도 참 좋았다. 자연과 어우러진 색감과 동남아와는 다른 단정함.
어딘지도 잘 몰랐지만, 난 관광객위해 만들어진 데보다 그런 데 막 돌아댕기는 게 더 좋았다.

이번에도 와이키키에서 사람들 많이 타는 34번 버스타고 무작정 간다…
한 20~30분 가다보니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풍경이 펼쳐져 후다닥 버스를 내리는데….바로 여기가 Ka’Iwi.


마침 같은 버스를 탄 배낭족 아가씨들도 내린다. 앗싸~ 니들 어디가? 등대 가~ 나도 같이 가! 즉석 조인 완료.
나중에 찾아보니, 그 등대가 경치 좋기로 유명한 마카푸 등대였다. 우연이 만들어 준 감동의 스팟이다.

근데 정말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모자가 벗겨져 도로 위로 떼굴떼굴 굴러 날아가고….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쎈 바람. 우산 켜면 메리 포핀즈 처럼 날라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저 멀리 해변 보고 한 컷…저 쪽으로 더 가면 서쪽 해변을 돌 수 있다.


산호빛 바다…와 파도.


씩씩한 발걸음의 아가씨들. 스페인에서온 루시아와 독일에서 온 한나.
루시아? 그거 영화이름이잖아. 그랬더니 ‘루시아 이 섹소’하면서 딱 알아맞춘다.
하기야 지네 나라 영화니까. 재밌게 봤던 영화라고 했더니, 놀랜다. 태국 애들이 김기덕 감독 좋아한다고 하면 그런 느낌일까.

둘이 친구는 아니고 여기서 만났는데 루시아는 5개월, 한나는 10개월 째 배낭여행 중…으아…(좋겠다!)


마카푸 가는 길 ~ 내 눈앞에 펼쳐졌던 놀라운 풍광을 사진으로는 담을 수가 없구랴.


내 기억의 ‘play’ 버튼 정도로 남겨둔다.


조거이 바로 마카푸. 평화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 비바람이 몰아쳐 …아무 준비도 없이 갔던 나는
비상 우산 하나 받쳐들고 고군분투 해야 했다.
우산살 금방 다 뿌러지고… <127시간>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만…


우여곡절 사투끝에 마카푸 포인트 도착! 눈 앞에 펼쳐졌던 태평양이 렌즈 화각에는 다 담기지 않는구랴.


초점은 어디로..T_T 그래도 제일 기억나는 시간이다. 비바람 부는 날 마카푸 포인트 강추! ㅋㅋ


딴 덴 몰라도 탄탈루스 언덕에는 가보고 싶었다. 대체 저 높은 곳에 누가, 어떤 집들을 짓고 사는 지 보고 싶었다.


여기도 또한 감동이었다. 우거진 원시의 자연 속에 빼곰히 숨어있는 집들.
차로 가서 찬찬히 돌아보며 담아오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탄탄루스 언덕에서 바라본 와이키키~ 내가 호텔에서 늘 바라보면 곳에 올라 거꾸로 바라본 풍경.
보고 싶었다 ^^


앗싸~


거침없는 해변 도로질주~ 기분 완전 내다가 미국 경찰한테 잡혀가지고.

게다가 마침 그 차가 번호판이 나오기 전의 차라, 한참을 붙잡혀 있어야 했다.
그 말로만 보던 미국 경찰. 썬글라스 끼고, 차에서 나오지 말라며 공포 분위기 조성. 덕분에 미국 경찰 체험도 했다.
역시나, 별로였다고나 해야 할까.

하와이에서 가장 좋았던 건 공기와 물이다. 공기가 얼마나 맛있을 수 있는지, 물이 얼마나 맛있을 수 있는지 새로운 세계를 접했다. 정말 물에 ‘맛’이 있었다. 그 공기에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어떤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혹은 기분나쁘게 만드는 어떤 성분이 배제되어 있거나. 그래서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그 어떤 것보다 물과 공기가 좋았다.

하와이는 자연에 기대어 사는 곳이다. 그래서 다이내믹이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엔 좋을지 모르지만, ‘하와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국적 느낌에 혹할지 모르지만, 부푼 꿈을 가지고 뭔가 해 보고 싶은 젊은 피에게 이 곳은 답답하기 그지 없는 단조로운 동네일 것이다. 하지만, 나이들수록 자연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중년 이후의 삶에 하와이는 거의 정답같았다. 단, 그 정답에 돈이 아주 많이 든다는 장벽이 있다.

그렇담 난 어느 쪽일까? 딱 그 중간에서 난, 하와이에 다시 오고 싶다. 아무 것도 몰라 이번에 오로지 골프칠 궁리만 했는데, 담번엔 골프백 두고 와서 여기 구석구석 ridge들 따라 트레킹 하고 싶다. 얼핏 아바타를 떠올리게 했던, 원시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그리고, 열심히 엔진 보강해 탄탈루스를 잔차로 돌아보고 싶다. 마카푸 갔을 때 느꼈던 이국적인 대자연의 감동을 더 진하게 느껴보고 싶다. 그때까지, 하와이…안녕!

처음 만난 미국 – 라스베가스

# 질문

첫 날, 버스 옆자리에 앉은 LA에서 사업 한다는 미국 아저씨가 묻는다. “Do you like it, Las Vegas?” ”

“I don’t know it yet. I just got here.” 내 어조는 흥분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묻고 싶었는지, 떠보는 듯한 미묘한 말투에 어떤 뜻이 담겨있었는지 여기서 5일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사업차 라스베가스에 수도 없이 왔다는, 그래서 이 각종 휘황한 테마와 쇼들도 치장된 이 도시에서 트럼프 호텔이 그나마 있을만 하다고 한 그 사람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역시, 5일 후의 나처럼 이 도시를 지긋지긋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견딜수 없는 living las vegas, 그래서 leaving las vegas.

# 미국

미국에 처음 왔다. 대사관에서 가서 긴 줄을 서고 얼마 안되는 자산과 신분의 안정성을 증명할 수 있는 각종 서류들을 제출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영어 인터뷰를 보고서야 비로소 받을 수 있었던 미국 비자를 받은지 꼬박 6년 후. LA도 아니고 뉴욕도 아니고 샌프란시스코나 실리콘 밸리도 아니고 라스베가스로. 떠오르는 것은 카지노, 그리고 영화 < 벅시> 아넷트 베닝에게 열렬하게 외치던 워렌비티. 바로 여기에, 이 사막에 최고의 호텔을 세울거라던.

그리고 내가 아는 미국 사람들…사라 제시카 파커, 안젤리나 졸리, 마이클 잭슨, 오프라 윈프리, 케네디…

# 양극화

CES는 세계적인 행사다. 그런데, 행사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안내원들은 많다. 친절하게도 ‘Ask Me’ 뱃지를 붙이고 서성이는 사람은 너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일처리는 어딘디 굼뜨고, 일관성이 없고, 내가 궁금한 것들을 답해주지 못한다. 컨퍼런스 장을 들어갈 때도 누군가는 바코드를 찍자 하고, 누군가는 카드를 보여달라고 하고, 누구는 스티커를 보자한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제법 엄격한 채를 하고 있지만, 표준이 없는 그들의 행동은 ‘척’일 뿐이었다.

실제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도, 행사장 위치 가이드 이상을 답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몸집은 비대하고, 눈빛은 유리알을 박아놓은 듯 틈이 없고, 인텔리전스의 레이어는 얇아 보인다. 어쩐지 사람이라기 보다는 가축들 같다,,,

반면, 컨퍼런스의 발표자들은 전형적인 그들이다. 데이빗 레터맨쇼에서 봤던 것 같은, 조지 클루니가 대표하는 특징(미남이라는 것을 제외하고)을 가진 수많은 변형들…교육이 가치재가 아닌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극단적 양극화일까? 미국에서는, 아니 라스베가스에서는 피부색만큼이나 분명하게 계급의 차이가 보였다. 하기야, 울나라는 아닌가 모. 내가 요즘 여러가지로 가장 많이 실감하고 있는 것.

# 민폐

라스베가스로 가기 위해 하와이 경유하면 가장 놀랬던 것. 대한항공에서 스탑오버해 탄 하와이안 에어라인에서부터는 분리수거가 없다. 쓰레기같은 기내식을 주고서는, 차마 내 입으로 넘기지 못해 다 남긴 음식을 패키지와 함께 그냥 쓰레기 봉투에 담으라고 승무원들이 쓰레기 봉투 입구를 열고 돌아다닌가. 경악스러웠다. 라스베가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엄청나게 쳐묵쳐묵하고선 그냥 갖다가 통으로 쓰레기 통에 넣는다. 음식물 조차도 분리하지 않는다. 땅덩어리 좀 넓다고 이걸 다 그냥 가져다 묻는단 말이지. 이 보다 더 무개념일 수 없다. 갑자기 난 마이클 무어의 눈으로 미국을 보게 되었다. 하기야, 무어는 미국에서의 삶에 대한 미국의 무개념에 대해 말했지. 이 땅의 이방인인 나는 지구에 대한 미국의 무개념을 본다. Enviromentally Incorrect. 지구에 대한 민폐의 종결자.

# 벳팅

바로 옆 카지노에 붙어있는 피아노 바에서는 그나마 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피아노 바’ 서로 마주 보고 붙어있는 두 대의 피아노에 두 명이 마주보고 연주를 한다. 자리에 앉더니 아주 멋진 빌리조엘의 ..를 때려준다. 하지만, 이 바의 본론은 멋드러진 첫 번째 연주가 끝난 후에 시작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주자들은 토크를 시작하는데, 이 토크란 것이 ‘멋진 미국’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는 Born In the USA를 짧게 연주한다. 그리고선, 다 듣고 싶으면 돈을 내라고 부추킨다. 애국심에 충만한 뜨내기 손님 중 하나가 피아노 위에 놓인 병에 지폐를 넣는다. “5 dallas?” 연주자는 짧게 두 소절 정도를 연주한다. 유머있게 거들먹거리는 그 태도는 토크쇼에서 많이 본 스타일. 그 다음은 돈 잔치다. 라스베가스로 와 뜬금없이 미국의 멋짐이 사로잡인 관광객들은 다투어 병에 지폐 다발을 넣는다. 그리고 연주와 함께, 열심히 합창한다. 이것으로 자신이 이 멋진 미국의 일원임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어 하듯이.

시작은 이제부터다. 마주 본 연주자는 이번에는 살짝 눈치를 보더니 풋볼보다 하키가 더 훌륭한 스포츠가 아니냐며 캐나다 인들의 성정을 자극한다. 그리고 나로선 알 수 없는 하키 노래를 연주한다. 물론, 누군가 그의 병에 지폐 다발을 넣지 않으면 연주는 완성되지 않는다. 하키 찬가가 연주되는 동안 미국애들은 우우 거리며, 다시 미국 찬양곡을 리퀘한다. 연주자들은 얼마의 돈이 걸렸는지 떠들어댄다. 당연히, 더 많은 돈을 거는 쪽이 연주를 얻는다. 어메리컨 vs 캐너디언의 자존심 배틀로 바뀐다. 이 미친 돈 배틀은 피아노 위에 놓인 돈 병이 가득찰 때까지 계속 되고, 연주자들은 병에 가득 찬 돈을 퍼담고 유유히 이 도시의 어둠 속으로, 불빛 속으로 사라진다.

술집의 라이브 연주마저 카지노에서와 다를 바 없는 벳팅의 형태로 변질되는 곳. 그 정신없으면서도 싸구려 차림새…어쩌면 큰 맘 먹고 이 도시에 휴가를 보내러 왔을 루저 분위기 풀풀 나는 그들은 알량한 애국심을 자극하는 재주많은 딜러의 꼬드김에 노동의 댓가를 아낌없이 갖다 바치고 있었다…..라스베가스. 모든 것이 돈 놓고 돈을 먹는 한 판 게임으로 바뀌는 곳.

# 소음

프론트에서 주의를 받은 것처럼 방은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금요일밤엔 절정해 달했다. 호텔 밖에서 들려오는 음악? 합창? 괴성에 세시 반까지 뒤척이다, 결국 옷을 줏어입고 거리로 나갔다. 반복되는 레퍼토리였던 Time of My Life와 Crazy in Love를 한 네 번쯤 듣고 난 후였다. 소음의 정체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미친 DJ가 완전히 뻔한 visitor 타겟의 음악을 트는 동안, 인간들은 그 앞에서 열심히 몸을 흔들며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 풍경은 전혀 신나지 않았고, 지켜보는 나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이 도시의 음식들이 나를 거의 울고싶게 만들었던 것처럼.

# 카지노

카지노도 호텔마다 물이 틀리고, 잘 보면 그 안에서도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다. 딱 봐도, 라스베가스에 온 게 신나서 떼거지로 블랙잭 테이블에 둘러 앉아 환호성을 내는 그룹 투어. …기계 앞에 앉아 새가슴에 1센트 5센트를 걸고 시간을 떼우는 관광객. 토킹이 주인지 도박이 주인이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옆 자리 사람과 대화를 즐기며 곁다리로 베팅을 하는 …그래서 선수로 보이는 이들. VIP난 전문 꾼은 외부의 출입이 통제된 private room에서 따로 즐긴다고 한다.

새벽 4시, 한 반백 아저씨가 앉아있는 것조차 힘든 듯 왼쪽 손으로 머신을 잡아 몸을 지지한 채, 고개를 반쯤 숙이고 쉴새없이 슬롯 버튼을 누르고 있다. 멋을 낸 관광객의 차림도 아니고, 환호성도 없는…슬롯 머신이 세탁기나 냉장고처럼 일상의 물건이 되어 버린 사람들을 본다. 이봐요. 왜 그러고 있어요? 좀 쉬지 그래요…해가 뜨면, 당신은 어디로 가나요?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눕니까?

# 뱀파이어

이 도시는 뱀파이어 같다. 밤이 되면 밤을 낮으로 바꾸는 현란한 불빛이 사람의 넋을 놓게 만들지만, 아침이 오고 진짜 해가 뜨면 그 모든 빛나는 것들은 어둠을 빼앗긴 뱀파이어처럼 힘없이 시들고 만다. 베니스, 뉴욕, 프랑스…세상의 모든 멋진 것을 다 갖다 모아놓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몇 번 놀고 나면 질려버릴 철지는 장난감이었다는 사실을 칠이 벗겨질 듯한 허접한 외양을 통해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다. 다 있지만, 다 가짜. 최고의 가짜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돈와 아이디어와 재능을 쏟아부었겠지. 이 거대한 자본주의 거탑 앞에서 나는 수 백년 전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던 열하의 한 마디를 읊조리고 있었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천박한 가짜의 도시, 하지만 세계 최고 가짜’로서의 오리지낼리티를 주장하는 희한한 성취.

자본주의의 가능성과 아이러니에 대한 거대한 컬렉션. 무너져가는 거탑의 끝자락….건물들을 휘감은 번쩍이는 네온사인 앞에서 근거를 찾을 수도 없는 방언같은 말들이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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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서 나서 성장한 많은 사람들처럼 꽤나 미국 영화, 음악, 드라마에 빠져 살았는데. 미국에 대해서 전혀 무지했다는 것만 알고 왔다. 난 그 많은 시간을 무엇을 보고 듣고 했었던 걸까?


이색적인 컨셉과 쇼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럭셔리 테마 호텔들


베네시안 호텔 Grand Canal –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곳


Always a Happy Ending …in LV


카지노에는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 많다. 음료와 멋진 연주, 쇼까지도…
쇼를 하고 내려와서 다시 딜러보는 화끈한 1인 2역 능력자들.


파리, 베니스, 이탈리아, 뉴욕, 중동…세계의 모든 도시를 모아놓았다


불야성


지난 12월 15일 오픈했다는 코스모폴리탄 호텔. LV에서 가장 높다고.


문화적 쇼크를 느낄만한 현란한 크리스탈 인테리어.


하지만, 원 호텔 제작자(?)가 이 호텔 지으며 파산하는 바람에 현재 이 호텔은 도이치뱅크의 소유라고 한다.


스트립의 밤

착시가 현실로~

first tower CC
퍼스트타워CC – 2008.8.9

wailkiki
Ala Wai GC, Waikiki, Hawaii – 2011.1.10

방에 들어오자마자…이거슨 데자뷔.
상상했던 것과 똑같은, 아니 그 이상의 풍경. 당장 백메고 달려나가리..얏호!!!

폭염에 시달렸던 어느 여름날,
회사 화장실 창문 너머 펼쳐졌던 찰나의 백일몽이 눈앞에 살아나 펼쳐지는 곳.

인간 한계에 도전했던 살인적 라스베가스 일정 마치고, 하와이 요이~~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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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8시 뉴스] 돼지 살처분 인근 농가 수도에서 침출수가 섞여나옴. 1일부터 수도 호스에서 핏빛물. 살처분 돼지에서 나온 핏물이 계곡으로 흘러들어간 듯. 원인. 처분 대상량이 너무 많아(현재까지 총 66만 마리, 이 중 돼지 58만 마리) “살처분 대상 가축은 안락사 시킨 뒤 죽은 채로 묻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기고 산채로 매장 (생매장할 경우 가축들이 발버둥치며 구덩이의 비닐을 찢어 바이러스와 피로 인한 2차 오염의 대재앙이 애초에 수차례 예견된 바 있음.)

[연합] 일부 방역 공무원은 이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겠는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고, 가끔 ‘꽥,꽥~’하는 돼지의 울음소리가 멀리 도로에까지 들려와 바라보는 이들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10여 년 넘게 구제역 관련 업무를 해왔지만, 이번처럼 사람을 절망하게 한 적은 없었다. 미안하다. 더 이상 말을 못하겠다.” 여주군 권병률 축산팀장

[뷰즈앤뉴스] 李 대통령 30일발언 “어제 우연히 자료를 보니까, 세계 정상들이 지금 이 시간에 뭘 하는지 알아보니 여러 나라 정상들은 휴가를 갔더라. 그런데 나만 업무보고를 받는다고 새벽부터 그냥 밤 10시까지 연말을 보내고 있어서 참 불공정한 사회” “지금 우리가 희생 안 하면 (국민이) 연말연시에 휴가를 못 간다”며 “그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희생이 필요하다. 이것을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오마이뉴스] 소 한 마리당 2회 접종시 드는 비용은 1만2000원이다. 소만이 아니라 돼지와 기타 우제류를 다 포함하여 200만 마리에게 구제역 예방접종을 한다고 해도 240억 원이다. 그에 비해 12월 23일 현재 28만 마리 가까이 매몰하는 데 따른 비용이 4000억 원이나 된다고 한다…대한민국 땅은 지금 소와 돼지, 닭들의 거대한 무덤이다. 그 무덤 위로 흰 눈이 내려 앉은 채, 2011년이 왔다.

[프레시안] 소·돼지 엽기적인 생매장…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수의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구제역의 특징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한국식 신속정확한 살처분”은 방역의 효율과 경제성 면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구제역 발생 지역 인근 반경 500m 이내는 물론이고 적극적 방역 차원에서 반경 3㎞ 이내의 우제류 가축까지, 심지어 발생 농가를 다녀간 사람이 방문한 타 지역 축산 농가 인근의 가축까지 예방적 차원에서 모조리 살처분하는 것이 과연 항상 효율적이고 경제적인가. 그리고 인도적인가.

[서울신문] 방역공무원 ‘살처분 트라우마’ 호소. “처음엔 불쌍한 생각에 조심스럽게 몰았는데 나중엔 너무 힘이 들고, 화도 나니까 미친 듯이 닥치는 대로 몽둥이로 때리며 돼지를 몰았다.”며 참혹했던 순간을 전했다. B씨는 “‘눈이 뒤집힌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소름 끼치게 실감했다.”면서 “이후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고 있다.”

[연합] 장수군의원 및 직원 13명, 구제역 비상속 구제역 발생국으로 외유성 해외연수. 이들 의원은 귀국 후 축산·농민단체의 검역문제 제기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해당 지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대전의 찜질방 등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트위터 @naturalmonument] 구제역…말만 들어도 부모님 우십니다.. 너무도 건강한 가족같은 소들이었습니다.. 마을이 완전 외딴 섬나라입니다..

[다음 아고라]구제역 살처분 축산농가 아들. 저의 부모님은 지난 13년간 한우를 키우고 계셨습니다. 121 마리(암소, 송아지, 거세 숫소) 121 마리가 밥 달라고 울어대던 부모님 농장에 적막만 흐릅니다…..그나마 똥값의 보상비를 받으면,, 축협에서 이번 기회에 부채나 갚아달라는 독촉을 하겠죠. (12일 9마리의 출하도 축협의 사료값 독촉에 아버지가 개월수도 안된 소를 출하하는 바람에 축차량이 저의 농장에 방문,,, 예방 살처분 대상이 되었습니다)

[프레시안] “무조건 다 죽이는 축산 방역, 오로지 한국뿐” 문명의 이름으로 동물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현장에서…세계동물보건기구(OIE)로부터 청정 축산지역을 획득하고 유지하려고 7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두달 만에 쏟아버리는 이런 방역체계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중앙일보] 李대통령, 신묘년 신년사 화두는 ‘일기가성’ 16세기 중국 명나라 시인 호응린이 시평론집 ‘시수’에서 시인 두보의 작품 ‘등고’를 평하며 사용한 표현으로 ‘문장의 처음과 끝이 일관되고 빈틈없이 순리에 따라 짜여있다’는 뜻. 일을 단숨에 매끄럽게 해낸다는 의미로 좋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미루지 않고 이루어내야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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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 못내는 험한 일은 꼴도 보기 싫지? 축산농가 소돼지 비명보다 야당 의원 ‘막말’하나가 더 거슬리지? 그게 꼭 내란같지?

이 끝은 어디일까. 터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