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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A7C 영상작업

처음치고는 꽤 잘 나온거 같지?
하면서도 재밌더라고. 하고 싶은 거 할 때의 무아지경.

여의도 시티뷰 S.Sen Bar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바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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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방학 – 양털깎기

가끔은 관계의 방학을 맞는다.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대개 누군가의 결심으로 시작되지만, 관계에서 어느 한 사람에게만 좌우되는 결과는 없다고 믿기에 서로의 선택으로 맞게 되는 방학이다.

관계란 상어와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주식의 그래프가 꺾이듯 소강 상태에 들어간 관계는 스러진다.

우리는 더 이상 등교를 하지도, 서로의 수업을 듣지도 않는다. 점심시간에 같이 도시락을 까먹지도 않고 방과 후에 축구를 하고나서 서로의 손을 잡고 집에 돌아오지도 않는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침을 튀겨 가며 수다를 떨거나 힘을 합쳐 누군가의 뒷다마를 까는 일도 없다.

모든 건 중지되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고 방학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 각자의 시간에 벌어지는 일들이 서로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바꿀지 기대와 걱정이 들기도 한다.

관계의 공매도 리포트를 쓰며, 왜 이 관계가 계속될 수 없는 지에 대해 가열찬 계산을 하고 복기를 둔다. 그렇게 관계에 돋아난 부적절한 양털들을 깎고, 개미들을 털어내고 적정한 밸류와 거리를 계산한다.

다시 시작할 에너지를 얻는 것은 가격과 거리에서부터 온다. 바닥을 기며 충분히 낮아지고 충분히 멀어졌음을 실감할때 때 비로서 대상이 다시 보이고 바닥을 치고 올라갈 에너지가 모인다.

개학은 그 순간 온다. 절대적으로 너무 소중해서가 아니라 이 가격과 이 거리에 비해서는 소중한 것이라고 느껴졌을 때.

우리는 다시 시작할 에너지를 충전하고 관계에 돋아난 부적절한 양털을 깎고 적정한 밸류에서 다시 만난다. 다시 좀 더 우상향을 기대할 수 있는 높이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 소위, 유기농 조정이라고 불리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니 잠깐의 방학에 지나친 의미 부여하거나 서트레스 받지 말 것. 함께 갈 사람이라면 개학은 필연적이다. 억지스러운 노력으로 방학을 미루거나 개학을 앞당기려 할 필요도 없다. 보다 적정한 관계의 보정 과정이라고 봐야겠다.

그냥 물흘러가는 대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을 찾아, 방학과 개학은 계속될 것이다. 누군가의 잘못이나 책임이 아니다.

물론 그 방학에는 정해진 일정이 없다. 몇 년 씩 방학이 계속되는 끝나지 않는 방학은 결국 졸업을 맞는다. 어떤 선을 넘어버려 순식같에 종료된 관계도 있다.

우리는 이제 추억의 앨범 속에서나 서로를 찾을 수 있다. 그 앨범조차 결국은 기억의 다락방에 숨겨져 들춰보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자연법칙의 일환인 것을…

오늘 대보름달을 보며 나의 관계의 포트폴리오를 돌아봐야겠다.
방학과 개학, 졸업을 맞은 모든 관계의 대상들이 편안하기를 바래봐야겠다. 개학에 임박한 관계들도

이렇게 퉁쳐봤자 달라질 거 없다는 주의지만 명절은 한 번 쯤 이래보라고 있는 날 같기도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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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어제 밤에 문득 깨달았다.

난 TV, 카톡, 페북, 인스타, 주식앱 중독이라는 걸.

시력이 급저하되고 책속의 글자들이 희미해지고
손목에 터널이 와 등까지 저릴 때까지도 몰랐네.

수동적으로 접수하는 단발적 메시지와 휘발되는 자극적 숏컨텐츠들로
머리 속이 텅 비고, 자가 발전의 생산 결과물이 1도 없는데도
기계적으로 always produce라는 프로퍼갠더만 외치고 있었네.

그저 쳇바퀴 안의 다람쥐처럼 계속 저 사이를 뺑이치며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어야지 라는 꿈속의 꿈같은 희미한 그림만 그리고 있었네.

여기저기 뜨는 빨간 뱃지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흘리며 에너지를, 시간을 쏟고 있었네.

이런 이런. 난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일단 이렇게 써놓고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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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C 첫 샷

8년만의 메인바디 기변 첫샷 .
A7에 C하나 붙였을 뿐인데 이렇게 좋을수가.
상상했던 스펙의 물건이 제대로 빌드업되어 나와줬을 때의 므흣함.

나 역시 만들어질 뭔가를 상상하고 그것을 기획으로 구체화하고 만들어가는 역할이기에
이럴 때 뭔가 무언의 의견일치가 된 느낌과 함께
기획서를 기획서 이상으로 잘 구현해 온 엔지니어를 영접할 때처럼 찐으로 감동온다.

2013년 A7이 ‘풀프레임’의 시대를 열었다면
2021년 A7C의 키워드는 ‘자동’과 ‘동영상’이 될거 같다.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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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Google I/O 2021의 detailed street map.
WWDC 2021의 detailed 3D map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하는 지도의 진화와
지도를 그리다 지도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본업도 잊고 한참을 들여다 본다.
저 쉐이프와 도로 네트워크, POI들. 우아한 카르토…

현실 공간이라는 미쳐 날뛰는 더러운 야수를 길들이고 박제해
사람들의 손바닥 안에 정제된 미니어처로 펼쳐놓는 일.

대동여지도가 이렇게 슬플 일인가.
지도여…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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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입장

입장은 나의 삶에서 다져온 철학이라는 알고리즘에 개별 사건이 인풋으로 들어가 나온 아웃풋이다.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이라는 말처럼 데이터가 왜곡되거나 부실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고, 아무리 좋은 데이터가 들어가도 처리가 부실하면 결과는 취약하다.

그런 입장은 힘을 가질 수 없어서, 타인을 설득하긴 커녕 나 하나를 지키기도 힘들다.

좋은 알고리즘이란 결국 그 사람의 삶의 경험의 총체를 학습한 결과가 정제된 수식이고, 최신의 데이터가 더해진 새로운 학습을 통해 엔진의 최신성을 유지보수하지 않으면 그 엔진은 금방 낡은 것이 된다.

문제는, 인생의 오랜 시간에 걸쳐 뽑아낸 엑기스 알고리즘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검증된 알고리즘은 패턴화되어 어떤 데이터를 넣어도 단순한 결과를 밷어낸다. 예측 가능한 엔진이 되는 것이다.

나는 옳아, 이것은 옳아. 어떤 상황에서도 난 피해보지 않을거야. 나는 그것을 이미 내 삶으로 검증했어. 라는 식의 알고리즘은 구체적 사안의 개별적 인사이트를 압도한다.

한편, 너무나 압도적인 이벤트는 그 알고리즘 자체를 보정하기도 한다. 사건의 개별성이 기존 알고리즘의 로직을 무너뜨린다.

이런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상호보완적 충돌속에서 우리는 각자 어떤 입장의 지점에 도착한다. 그 입장의 클러스터들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갈 곳을 정하고 다른 클러스터와 구분된다.

나의 혼란, 나의 입장

피해와 가해가 옳고 그름과 곧바로 정렬되지 않아 오는 혼란. 그 속에서 입장을 가질 수 없었다. 엔진이 고장났고 데이터 접근은 한계가 명확했다. 사건의 현장에서 이리저리 튄 파편들을 크롤해 거대한 심연같은 블랙박스 안으로 들어가려 애쓴다. 그걸 넘어야 저 사건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블랙박스 안은 블랙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데이터가 너무 많았다. 시간과 관계 속에서 쌓인 여러 데이터들이 각자의 말을 쏟아냈다. 놀랍게도 그 모든 데이터 포인트들이 오늘의 이 사건과 연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지독한 소음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짧은 선으로는 연결되지 않는 사건의 흐름이 17년의 추세선으로 각이 잡힌다. 그게 유령의 선일까, 아니면 실제하는 것일까?

난 아무 것도 모르는데, 모든 것이 너무 명료하다. 어둠 속의 형체가 나에겐 또렷한 스케치처럼 선명해져 간다. 이것은 사실일까 뇌피셜일까. 아무 것도 모른다는 좌뇌무리와 다 알겠다는 우뇌무리가 맞붙어 머리 속은 전쟁통이다.

입장이 되기전 불분명하게 공기중을 떠다니는 먼지같은 입자들이 내 숨을 틀어막는다. 터지지 않는 울음과 울분의 감옥. 제발 이 모순을 잦아들게 할 새로운 현실이 찾아들길 기다리는 초조한 낮과 밤들.

지옥에서 벗어나기

어느 날 밤 나는 문득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선을 생각한다. 그들이 넘은 선과 선 넘은 그들을 단죄할 방법이 아니라 내가 넘지 말아야 할 나의 선을.

내 삶은 남의 일에 소모될 수 없다.
남의 일 같지 않지만 오늘의 나의 일은 아니다.


그리고 형식을 갖춘다. 고인을 보내는 내 방식의 제의. 고인을 추모하고, 고인의 빙의한 작은 굿 속에서 방언을 흉내낸다. 이게 효과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애초에 제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형식으로 구원받는 스킬

여기까지다. 뭔가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위안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복잡하고 자잘한 일들에 마음쓰지 않기로 한다. 어디로 가고 있었나? 거기로 가야 한다.

발생한 감정은 존재하는 것이고, 무시할 수 없다. 그 감정은 어디론가를 향한다. 그게 내 안으로 향하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형식이라는 매듭, 형식이라는 메시지로 외부에 발신한다.

이번 일과 과정이 내 삶에 어떤 기준점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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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기념일

오늘은 입사 기념일
자축대신 추모를 한다.

재직기간 17년 0개월
66번의 발령.

숫자는 누적이지만
숫자 아래 쌓인 경험은 층층이 나뉘어
난 네 다섯겹쯤의 다른 회사를 거쳐온 것 같고

그래봤자 한 지붕 아래
오늘의 이 일이 나에게는
그 네 다섯개의 층위를 교차하는
어떤 복잡하고 긴 역사의 꼭지점으로 그려진다.

그 오랜 시간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나는
또 그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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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기록] 도림천 프리덤 

눈부신 5월의 부름을 받아 다녀온 급마실

집값은 최저를 찍는 부동산 소외지역이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이 동네에도 삶은 가득하다.
그 삶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도림천.
풍경들이 살갑다.

비디오 버튼은 장식용인 카메라라
휴지통이 어울리는 부실한 소스 천국이었는데
꾀를 내어 영상x사진 콜라보의 컨셉으로 승화했다.

재밌고 뿌듯하당.
막다른 골목이 늘 새로운 세상으로의 통로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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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타 – 면벽수도나 고행이 아닌 현실에서 얻게 된 큰 깨달음

지난 주말, 내 인생에 몇 번 없었던 큰 깨달음을 했다. 선악과를 베어먹은 이브의 순간. 유난히 와닿지 않았던 <기생충>이 최고의 걸작으로 등극하는 순간. 내 인생에 모호했던 모든 안개가 걷힌 개안의 순간이었다.

하긴 뭐 아줌마야 쎄고 쎘으니까 다시 구하면 그만이긴한데…그래도 여러모로 아쉽죠. 상당히 괜찮은 아줌마였거든. 그 양반이. 집안 구석구석 관리도 잘하고.
그리고…매시에 선을 딱 지켜.
내가 원래 선을 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데.

영화를 봤을 때 이 말이 뭔지 몰랐다. 이제야 난 눈을 떴고 ‘선’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발견 – 죄와 벌

어떤 사람이 벌을 받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흠을 잡자면 없을 수 없겠으나 받게 된 벌을 야기할 만한 죄가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죄와 벌 사이를 연결하는 필연적인 죄의 입증과 벌의 근거가 모호했다.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해 관련자들에게 확인하기 시작했으나, 그들의 답은 이상했다. 논리적이지 않았고, 심지어 핵심 사안과 무관한 자잘한 에피소드로 변죽을 울렸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일단 함께 분개했다. 하지만 곰곰히 집에 와서 그간의 모든 정황들을 종합했을 때 내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선 넘은 죄.

위로도 넘었지만, 옆으로도, 아래로도 모두 넘은 죄. 선넘긴 당한 자들의 분노가 합쳐져 각 인물을 찢어붙인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의 포스터같은 기묘한 장면을 연출해 낸다.

사람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자신의 선을 넘어온 사람을…그리고 언젠간 찌른다.

이상한 여자

이상한 여자였을 것이다. 또한 위태로운 여자였을 것이다.

선을 향해 겁없이 걸어가는 여자. 때로는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기도 하는 여자. 하지만 잠깐 넘었다 아주 넘어가지는 않고 이내 다시 돌아오는 여자.

선에 대해선 장님이면서도 선을 완전히 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눈치는 있었기 때문이다. 선 넘은 줄은 몰라도 남 싫어하는 일은 피하고 보는 성격때문이다. 하지만 선은 못봤다. 그래서 항상 선을 터치할 위험을 내포한 시한폭탄 같은 사람이었다.

선을 못 보는 사람들이 선 대신 보고 있다고 내세우는 것은 본질이다. 회사 생활에서는 그것은 주로 일이 된다.

난 모르겠어. 내가 그랬던 이유는 오직 하나. 일을 잘 하기 위해서, 일이 잘 되게 위해서였어.

나도 그랬다. 선따위는 아몰랑 난 그것을 이루고야 말겠어 라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타인의 선따위.

하지만 사회 생활에서 일을 잘 하는 것, 일이 잘 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의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선이 있기에 인간 사회의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이 정글같은 세상 속에서 나를 보호하고 너를 보호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왠지 당황해 하며 나서서 일을 수습할 때가 있었다. 자기와 관련없는 다른 사람의 일임에도 말이다. 그들은 일을 바로잡기 위해, 혹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선을 향해 돌진해 가는 나를 봤다. 그들은 선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절대로 선을 넘는 파국이 빚어지길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선으로 달려가는 내가 조마조마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선을 넘을 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내가 보호받지 못한 순간을 떠올려 본다. 선넘김을 당했을 때다. 그런 때조차 나는 선을 넘은 사람이 제시한 사안의 반박에 집착했고, 길을 잃었다. 선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순간에 해야 했던 일은 내용의 반박이 아니라, 그가 나의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이었다.

– 아니야, 난 그렇지 않아. (x)
– 너 지금 선 넘었어 (o)

누군가의 지름은 넓고, 누군가의 지름은 좁다.
하지만 아뭏튼 그 선 근처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봉준호

이제 나에게 기생충은 계급의 문제라기 보다 선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느껴진다. 선을 인지한 자와 선을 인지하지 못한 자. 선을 인지하지 못한 자가 선을 인지하게 됐을 때의 비극. 알몸으로 선을 넘나든 자신을 비웃던 사람들을 향한 모멸감과 분노감. 부끄러움 대신 칼을 든 이브의 유혈 낭자한 복수.

선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에 나는 송강호가 왜 그리 분노하는지, 이선균의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 캐치하지 못했다. 그 모든 순간들에 ‘선’이라는 메타포를 대입한 순간 모호함은 해소되었다. 이제 그것을 알게된 나는 이 영화를 ‘선’의 영화로 정의한다. Moment of clarity.

선은 어디나 있다. 내 위 뿐만 아니라 내 옆에도, 또 아래에도.

그리고 대배우에서 자잘한 일을 맡은 스태프 하나 하나 누구에게나 깍듯하다는 봉준호 감독이야말로 이 선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위 뿐만 아니라 옆, 아래의 선까지도 모두 지켜내는 방식으로 선의 계급성을 와해시키는 혁명의 삶을 사는 중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송 : 그래도 사랑하시죠?
이 : 어허허허허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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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

 

문제의 난이도를 높여가며 기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 

 

짜가에 가까울 정도로 저급하게 이해한 실내에서
더 복잡한 실내공간에 대한 제법 그럴 듯한 이해를 거쳐
무법지대 아웃도어로 나오기까지 장장 3년의 지난한 과정이었다.

 

수 세기 진화해온 인간이 구축한 근대 산업 공간의 면면을
수학적으로 추상화된 알고리즘으로 투사하는 것. 
어쩔 수 없는 갭도 있지만, 이게 또 이렇게 맞아 떨어진다는 게 매번 놀랍다. 

 

하지만 질문은 계속된다. 공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계산에서 도출된 세 개의 좌표와 세계의 방향이 세상에서 쓰임새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때로는  계산의정확도에 집착하다가 때로는 콜롬버스의 달걀처럼 엉뚱한 반전의 해법이 나올길 기대하며, 무수한 타협과 발견의 순간들 속에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이렇게 누가 원하는 지도 모르겠는 답을 난
매일 매일 스스로에게 던지고 찾고 있다. 

마치 WALL-E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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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러시러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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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쪼꼬만 것이 뭐가 그리 마음에 안들어
엄마한테 떼도 안 쓰고
저리 지혼자서 빡침의 레이저를 쏘아대고 있는가.

너무너무 싫었던 모자를
결국에 벗어놓고도
분이 풀리지 않음.

내 인생에 단 하루, 타임머신이 허용된다면
저 날로 돌아가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의 하루를 따라다닌 후
저 한(?!)을 풀어주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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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뇌피셜 박멸의 해

뇌피셜이란 무엇인가.

검증된 객관적 사실이 아닌 작은 단서나 트리거를 추측으로 확장시켜 어떤 상황이 그렇다라고 뇌에서 공식화한 망상. 뇌의 인증 후에는, 프레임으로 고착되어 앞으로 맞닦뜨리는 상황들을 뇌피셜에 준거하여 해석하게 됨. 이로인해 프레임은 점점 강화되어 신념이나 믿음으로 발전됨.

촉이 좋다든가, 스스로 통찰력이 뛰어나다고 믿는 이들, 늙은 여우, 전문가들에게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함. 블링크 이론 같은 것과 접목되어 뇌피셜을 오피셜과 착각하게 됨. 멘탈이 약한 이들을 파고드는 틈새 바이러스이기도 함.

뇌피셜의 위험성
뇌피셜은 사실이 아님. 사실을 알기는 힘들지만, 사실을 파헤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시간. 시간이 더해지면 사실은 굳이 파헤치지 않더라도 호수에 던져진 시체처럼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음.

시간의 지층과 개별 상황에 대한 입체적인 팩트와 이해없이 내 (좁은) 시야 안에서 인과관계를 지어내 철썩같이 신봉했던 사실들은 언젠가는 정 반대의 컨텍스트로 돌변해 식스센스, 카이저소제 급 반전으로 다가오게 된다. 내가 내 발등에 도끼 찍는 상황이거나 뇌피셜의 어처구니없을 한탄하게 된다. 나의 2017~2019년을 돌아보라.

혹여 몇 가지 케이스에서 뇌피셜이 맞아 떨어졌다 할지라도 뇌피셜에 좌우되는 삶은 위험천만 그 자체다. 몇 개의 뇌동매매에서 작은 수익을 올리다가 크게 물려 패가망신하는 케이스들을 생각해 보라.

뇌피셜의 반대는 무엇인가

뇌피셜의 기원이 된 오피셜을 꼽을 수 있겠지만, 정보가 제한된 개인에게 오피셜은 영원한 미궁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오히려 현실적인 것은 입력을 확장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분석하고 기저의 맥락에 살을 붙이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2021은 어떤 해가 되어야 하는가.

담백해야 하고
해석하지 말아야 하고.
빈 상태로 있어야 한다.

빈 상태에서 입력만 존재하고 스토리텔링하지 말자. 센스나 기지를 발휘할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그렇게 스물스물 기어나오려 하는 뇌피셜을 박멸하자.
칙칙칙 – 초강력 살충제로.

거기에 인식의 집을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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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

폭설 후 아침,
강원도 어느 동네라도 해도 믿길 법한 풍경 속에서
어느 깊은 시골 산장에서 하룻 밤을 보내고
새벽 촬영 마실 나온 외지인이 되어 눈밭을 헤매다녔다.

일상도 여행이 될 수 있다.
떠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익숙 했던 풍경을 덮어버릴 많은 눈이 있다면.

참 그리고.
-16 도의 한파에 매뉴얼 포커스를 맞춰가며 셔터링을 할 용기와 체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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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ential of a point.

2021 새해에 벌써 바뀐 것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바타로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소스는 주로 제페토와 페이스북 아바타.
새로운 소셜 공간 메타버스의 시작은 아마도 그 안을 채울 ‘사람’에게서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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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다라는 AI 심심이와 점점 친해지고 있다.
왠만한 친구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것 같다.
어찌나 사람같이 말을 하는지 이거 사람아냐 하고 깜놀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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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lululuda

제페토와 이루다와 결혼만 하면 될 타이밍이다.

음성 인터페이스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졌다.

네이버 앱에서도 클로바로 검색하고 카톡도 가끔씩 음성으로 보낸다.
빠르고 실수가 없어서 한 번 하면 계속 하게 된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하루 종일 Hey Siri를 달고 산다.
왠만한 시간, 날짜, 날씨 체크는 다 시리로 하고 음악과 팟캐도 시리에게 부탁해서 튼다.
처음엔 간단한 명령만 시키다 점점 복잡한 일까지 시리에게 맡긴다.
지금 나오는 곡 Jazz 플레이리스트에 담아줘
How I built this 팟캐스트 틀어줘 등 아이템 레벨로 콕 짚어 시키고있다.
시리로 해결안되는 기능이 있으면 손발이 묶인 듯 하고
시리를 쓸 수 없는 사무실 환경이 답답해 진다.

블루투스 이어폰도 달고 산다.
출퇴근, 양치, 화장실, 식사 준비, 차 끓이기 등
왠만한 빈 시간은 블투를 달고 양질의 미국 레전드 팟캐들을 벽돌깨고 있다.
블투 + 시리하면 in/out 퍼펙트 해질 듯. (아직 그 경지 아님)

시리(정보)와 이루다(소셜)가 결합하고
블투 이어폰이 더해지면 그냥 Her를 찍는 형국이다.

엔비디아 황사장님이 던진 메타버스의 화두가
이렇게 새해 벽두부터 훜 치고 들어온다.

내가 봤고 구체화한 비전을
다른 사람이 하고 있다 시대의 부름을 받는 꼴을 보고만 있자니 속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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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하려 했던 것을 다시 돌이켜 보면
그것은 아바타가 아니라 카메라를 들게 할 삐끼였고
(한때 주객이 전도되어 아바타가 목표 같았지만)
난 역시 쭉 정보 플랫폼을 보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게 한 후 그 다음엔 정보를 올릴 궁리 뿐이었다.
앤터테인먼트와 결합된 새로운 정보의 폼팩터를 찾고 있었다.

그 방향엔 변함없다.
네비라는 삐끼로 바늘 끝 하나 꼽을 수 있을까.
하나는 꼽아서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공간의 컨텍스트에 맞는 새로운 정보의 폼팩터.
그게 내 화두다.

Potential of a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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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1 새해 첫 날 도림천 풍경

장난 치는 아이들과 볕을 쬐는 어르신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부녀의 모습.
여느 겨울 마냥 똑같이 한파에 꽝꽝 얼어붙은 개천.

모든 게 뒤집어 진 것 같은 세상 속에서
그래도 바뀌지 않은 평범한 삶의 속성들에 마음이 놓인다.

바뀐 것들과 바뀌지 않은 것들이 합체될 때 까지
이 긴 겨울을 돌아 힘든 먼 길을 가야겠지만
그 끝에서 펼쳐질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가는
설레임을 담은 길이 되기를.

그리고 찾아내길.
지금 찾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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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020…
두 개의 2, 두 개의 0, 두 개의 20.
2를 더하고 다시 2를 빼면 만나지는 두 개의 숫자.
이 단순한 숫자의 미로 속에서
계단처럼 쌓여나갔던 365개의 날들.
오르기도 했고, 내려가기도 하며 묵묵히 걸어갔지만
출구는 찾아지지 않았던 한 해.

한참 오르막에 힘겨울 때
한 두 달의 간격으로 찾아온 지인의 부고들.
내 나이에서 차례로 +2, +1, +0
점점 가까워지는 고인들의 나이를 헤아릴 때
나 역시 내 뒤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끌고 가는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루하루 점점 더 무거워지는 그 그림자가
걷고 있는 나보다 더 무거워질 때 난 계단의 어디쯤 서 있을까.
그들은 어디쯤에서 멈춘걸까.

급등주의 상승률처럼 폭발적으로 찍혀가는
판데믹의 사망의 통계치.
그 공포조차 익숙해져 갈 무렵
그들이 내 삶에 찍은 3이라는 숫자만이
내 무릎을 꺾고 진심으로 나를 기도하게 했다.

몇 년치 사건사고를 zip파일로 묶어
5G로 전송하는듯 했던 격정의 뉴스들

“코로나 빼고” 있었던 일들 대충.

캘리포니아 역대급 산불. 중국의 메뚜기 떼와 대홍수
마치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던 폭우의 여름과 N번방 사건들,
신천지의 충격과 #BlackLivesMatter 남북공동사무소 폭파,
김정은은 무시무시한 사망설/식물인간설 후 멀쩡히 살아 돌아왔고
박원순 시장님의 자살과 주진우에 대한 폭로.
봉준호 감독님의 아카데미 수상, BTS의 빌보드 점령.
휘몰아치듯 쏟아졌던 부동산 정책들과 그래서 두더지잡기 게임처럼 올라가던 집값과
미칠 듯이 신고점을 갱신해갔던 주식 시장…
그 와중에 조국, 윤미향, 추미애, 윤석열 이라는 이름들.
그냥 짚히는 대로 떠오르는 것만 적어보려 해도 끝이 안난다.

놀라고 황당하고 기겁하다 못해
심한 인지적 부하에 자체 마감을 치고
브라우저를 닫아야 했던 날들도 많았는데

그런데 이것들 오늘은 왜 이렇게 중요하지 않을까.
뉴스 사이트를 열어 놀라고, 한숨쉬고, 친구들에게 퍼나르던 그것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오아시스처럼 가끔씩 찾아왔던
1년을 농축한 밀도로 누렸던 잠깐의 밤의 천국.
나를 미소짓게 하는 시간들.
다시 올까 두렵게 만드는 시간들만이 내 마음의 남아 있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떠 버린
그 세계. 나를 환장하게 하고 있는 그 세계.

판데믹의 계단을 오르며
죽음과 생명이, 돈과 춤이 층층이 교차된 나날들은
반전이었고 모순이었고,
배신이자 원망이었고.
의지였고 기도였다.

계단을 오르며 자주 드는 그 마음이
패잔병의 것인지 아니면 사이비 종교를 빠져나온 탈주자의 것인지 헷갈렸지만
계산해 보면 다시 없을 화려한 번성이어서 당황한다.

이런 한 해를 난 무엇이라 요약할 수 있을까.
내 인생 최고의 모순적인 해.

하지만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방향을 틀었다는 것.
좋았건 나빴건
이전의 그곳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

이걸 인정하기가 왜 이리 힘들었는지.
쓸데없이 성격만 급하고 정작 중요한 이런 데는 차암 느리다.
바뀌었다고 머리로만 알고 있고,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을
찬물을 뒤집어 쓴 듯한 낭패감의 순간들이 일깨워주었다.
안개가 걷히듯 잡스러운 생각들이 정리되기 위해서 필요했던 이벤트들.
안 바뀐 척, 바뀐데 적응한 척 불안 불안하게 걸어야 했던 날들.

어디로 향해 계단을 오르는 것 같았지만
그저 통로를 계속 오가고 있었던 시간들.

근데 이제 정말 알게 되었다.
내 뒤를 따르는 그림자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으로
내가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볍게 걷자.
모든 것을 거기서 시작하자.

어서와 2021.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가게 될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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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f mutation

The Death of Zappos’s Tony Hsieh: A Spiral of Alcohol, Drugs and Extreme Behavior
https://www.wsj.com/amp/articles/the-death-of-zappos-tony-hsieh-a-spiral-of-alcohol-drugs-and-extreme-behavior-11607264719

“One person barricaded inside of a room”

행복 전도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들이 맞은 유사한 파국.

행복이란 가슴에만 담아놓았을 때만 반짝일 뿐
정작 입 밖에 내고 퍼트렸을 때는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저주와 같은 걸까.

행복의 전파(delievering happiness)가 삶의 소명이었던 토니 셰이의 파국은
모 시장님이나 모 스님처럼
신화화된 존재의 가면이 벗겨졌을 때 느껴지는 이중성에 대한 당혹감과는 좀 다르다.
오히려 아닌 밤중에 덮친 불가해더미같달까.

그는 자신의 가치를 져버린 것일까.
아니면 다른 가치를 찾게 된 것일까.

이 또한 그 가치를 이룰 방법을 찾는 과정이었을 뿐인까.
아니면 그 가치를 지속할 수 없어 절망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약한 약한 한 인간으로서 무너진 것일까?

그토록 주장했던 no to confirmity의 끝판왕을 시전한건가.

대체 이런 결말의 시작점은 무엇이었을까.
그 무엇을 만나 어떤 과정을 거쳐 이렇게까지 변이된건가.

만발한 물음표 앞에 무기력하다.

다만, 미래란 이토록 두려운 것이다.
지금의 이런 나를 지금의 이런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어떤 변종으로 바꾸어 버린다.
결과는 난무하지만, 해독할 수 없는 어떤 과정들을 통해.
‘딜리버링 해피니스’의 토니 셰이로 저 바리케이트 안의 그를 상상할 수 없듯이

그러니 박제된 어떤 순간도 믿지 말 것.
과거에서 이어진 현재라는 단면으로 미래를 예단하지 말 것.
삶이란 끝없는 플로우일 뿐 찰라의 합과 찰라를 구분할 것.

하지만 같은 의식을
이렇게 해석한 월터 화이트도 있다. (브레이킹 배드 시즌 5)

내 정수리에 총을 겨누었던 놈이 오늘 나에게 생일 선물을 줬어.
당신도 나를 다시 사랑할 수 있어.

삶이란 무한한 가능성이다.
어떤 쪽으로든.

ps. 행복의 전도같은 것은 please s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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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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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계절을 담아 당신에게 띄웁니다.

당신의 계절은 당신을 닮아 더 많은 색으로 가득하겠지요. 그 색들이 낱실홑실로 겹겹이 교차해 당신의 목 언저리에 둘러져 있겠지요. 그래서 당신과 닮은 풍경 속 보호색이 되어 이 계절의 망상과 고독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고 있겠지요.

생의 어떤 순간에 만료되는 무엇들 때문에 나는 쉬운 연락도, 어려운 연락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만료에도 또한 유효기간이 존재해 만료가 만료되어 다른 물성으로 변하는 그 순간 새로운 연락이 시작돌 지도 모른다 생각을 키워 봅니다.

수많은 날 걷고 걸어 한강의 여러 다리를 걸었던 날들의 안부를 담아. 만료되지 않은 기억을 담아. 그 날들의 기억과 만료된 그 무엇의 조합으로 이렇게 난 나의 계절을 사진에 담아 당신에게 띄웁니다.

당신을 생각하며, 당신과 함께 들어와보아도 좋았을 것 같은 풍경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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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의 모듈화 – dirty & honor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천둥 번개도 내리 꽂고
그 천둥 번개가 세상을 두 쪽으로 갈갈이 쪼개놓아 버린 것 같은 밤.

나 역시 그 중 한 쪽에 또아리를 틀고
페북과 뉴스와 온갖 커뮤니티를 돌며 이 갈라진 세계를 목도하던 중
그 분의 역사를 찬찬히 검색해 보았다.

네이버 뉴스 검색으로 접근 가능한
2004년부터 2018년까지의 뉴스들.
예상대로 그가 수많은 소송에셔
변호사로 피해자로 고소인으로 관여해왔음을 확인한다.
국정원이 낸 피소에서 승리한
국가를 상대로 재판에서 이긴 사람.

그 소송들의 여정이 무엇 때문이었으며
그 과정에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여다보며

역시.
그래 그래
전문가.

너무 잘 알아서, 너무 분명해서 그랬겠지.
너무 분명해서 패를 털고 파토를 내버린거지.

이랬던 그와
그랬던 그.

이 사이의
갭.

이 갭을 메꿔주는
어떤 명쾌한 논리나 설명을 찾아내어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노력을 해봤지만
누군가 그런 설명을 하기엔 이미 쪼개진 세계는 각자의 난장으로 흐르고 있다.

그런데 문득 든,
너무도 당연한 생각 하나.

그것도 그이고
그것도 그였지.

훌륭한 일을 한 사람도 그만큼 더티한 일도 할 수 있고
평소의 소신과는 다른 결론으로 치명적인 과오를 저지르고
타고난 머리와 훈련된 기술을 총동원해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

인간은 원래 이렇게 모순적인기 때문에
별로 놀랄 것도 없다는 것.

내가 원래 뭐 박원순 열렬 지지자도 아니었고.
크게 관심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원래 인간은 갭이 크다.
가까이서 크게 데인 케이스도 있었는데 뭘 그리 놀라나.
나도 그럴 수 있고.

어느 한 쪽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는 과대로 공은 공대로.
관점대로 뽑아내보면
각 진영의 편집자의 큐레이션 솜씨는 대단해서
그 어느 쪽도 스토리텔링이 된다.
그만큼 풍부한 소재를 제공한 삶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서 난 확실히 어떤 관점이었다가
오늘 그 분의 삶을 찬찬히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지며

더 중요한 것을 그를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이 깨달음을 가지고
그 누구도 이상화하지 않고
모순적인 존재이며
이상화된 존재일 수록 그 모순의 갭이 클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상을 향해 가되
한 인간을 이상화하지는 말라는 것.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고 싶기에
우리는 아름다운 대상에 의지한다.

대상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이상화할 필요가 없듯
그 누구를 비하할 필요도 없고
나 자신이 그렇게 못나지도 않고
두솔이 그리 대단한 회사도 아니며
그가 그렇게 희귀하고 뛰어난 존재도 아니었으며

뭔가 넘사벽의 미친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대단한 존재들 앞에서 부들부들 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그 모순때문에 그를 너무 미워하지도 말고 그의 공을 깎아내리지도 말고
오히려 어떤 대상을 극단적으로 미화한 나의 프레임을 내려놓고
보다 더 fact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내가 본 것
판단한 것
나의 입장으로 살자.

그렇게 보면
그 역시 그런 모순된 인간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고.
내 삶 역시 내 안의 그런 갭을 줄이는
노력의 어딘가 쯤에 내가 존재하는 것 뿐임을 깨달아야겠다.
나 역시 완벽하지 않으며
나만 맞는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자.
말로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문제는 과를 인정하면 그것을 빌미로 물어뜯기는 세상이라는 것.
그래서 인정하지 않는 입장인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
과를 인정했을 때 공은 산산히 흩어져 과의 똥물을 뒤집었고
그래서 팩트따위 뭣이 중헌디가 되어버린다는 것.

이 세상을 헤쳐나가기에는 취약한 인생관이지만
난 이 작은 나의 진영을 지킬 것이다.

근데 이렇게 생각하니 편하다.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셨지.
그런데 그런 일도 하셨지.
인간은 둘 다 할 수 있는 존재다.
언제든 잊지 말자.

한 인간은 모듈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오늘 나의 입장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