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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January, 2013

Night Guard

깊어가는 밤이었다. 캄캄한 밤이었다. 난 버스를 타기 위해 인적이 드문 서울 외곽의 2차선을 따라 거꾸로 걷고 있었다. 가끔씩 빠른 속도로 차들의 불빛이 다가왔다가 옆으로 지나갔다. 가끔씩 성마른 클랙션이 울리기도 했다. 불탄다는 금요일이었지만, 취해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주일의 그 어느 날보다 명료했다. 밤하늘에 빛나는 새하얀 점같은 별의 수를 세기도 했다. 누군가 크게 한 입 베어문 것 같은 달은 유난히 낮은 곳에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몇 백 미터나 남았으려나. 정류장까지는. 버스가 무거운 엉덩이를 돌려 자신이 달려온 방향으로 다시 머리를 트는 곳. 그 때였다. 주유소의 녀석을 보게 된 것은.

새카만 놈이었다.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침침한 형광등 불빛을 받으며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고 마당 너머의 어둠 속을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네 다리를 꼿꼿이 받치고 서서. 멀리서였지만, 방해하기 힘든 집중의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멀찍이서 그런 녀석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이윽고, 녀석은 뒷다리를 내리고 낮춰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한 시선은 풀지 않은 채였다. 녀석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지만, 그 끝엔 밤의 2차선을 건너온 정적만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이유를 밝히지 못한 채로, 나는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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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역할은 분명해 보였다. 재롱을 떤다든지, 외로움을 달랜다든지, 누군가의 침대맡을 차지하며 독수공방을 함께 할 반려의 목적은 아니다. 이런 인적 드문 밤의 주유소에서 녀석은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의 방어라는 명백한 필요에 의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녀석을 지켜 본 짧은 시간, 녀석은 충실하게 그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만약 네가 보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면 어떡하지. 그 침착하고 묵직한 눈빛으로 한없이 無를 스캐닝하고 있을 뿐이라면 어떡하지. 지금 너의 성실함의 결과가 고작 얼마 남아있지 않은 잔여의 에너지를 무용하게 고갈시켜 버리는 것에 불과하다면. 지금 매우 성실하게 바라보고 있는 네가 실상은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이라면.

주말 내내 녀석의 모습이 게으른 사고의 흐름 속에서 어둠 속 플래시처럼 터졌다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거기에는 나를 미쳐버리게 만드는, 기계와도 같은 고독한 성실함이 있었다. 일단 가동되면 멈추지도 의심도 하지 않는. 이런 시선의 끝에 서 본 적이 있습니까. 그건 정말 기가 막히게 멋진 느낌이죠.

1Q84 – 하루키의 대작에 임하여

1Q84

3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나도 모르게 짐승의 신음 비슷한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끄어어어….끄어어어…하루끼씨…”

정말 오랫만에 집중해서, ‘장편 소설’이란 걸 읽었다. 연말과 연초의 잉여로운 시간들을 바쳐. 한 해를 마무리할 호젓한 돌이킴의 시간도, 나름 한 해의 top 10을 뽑아보던 관례도, 지인들에게 보낼 인사 메시지도 제끼고 각기 700페이지 내외를 육박하는 세 권의 1Q84 세상에 매립되어 현실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한 해를 여는 재야의 종소리가 울리던 그 순간에도, 난 마치 우시카와라도 된 양 교차되는 덴고와 아오야메를 일거수 일투족 스토킹하며, 그들과 함께 두 개의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열광은 신년의 해가 밝아 2권이 중반을 넘기고, 신비로운 소녀를 인터페이스로한 텔레딜도닉스(달리 무어라 표현하겠는가!)의 클라이맥스가 지난 후 꺼져가는 모닥불처럼 점점 잦아들었다.

새로이 우시카와 편이 합류한 3편은 이건 아니겠지, 이건 아닐꺼야….여러 개의 설마들이 챕터의 끝마다 줄을 서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다음 챕터를 이어 받았다. 넘겨도 넘겨도 설마들은 줄은 길어져만 갔고, 난 이 소설을 어떻게 받아야들여야 하는 지에 대해 혼란에 빠진 채로, 3편 후반 대부분 페이지를 넘겨야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주 오랜만에 집중해서 읽어낸 소설의 예상했던 헛헛한 마무리에 멘탈에 금이 가버리고 만 거다. 부디, 이런 소설이 아니기를 바랬다.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바랬듯이.

1Q84라는 설정은 절묘하다. 하루키는 거대한 세계를 만들었다.

한 줄 한 줄 질 좋은 실을 뽑아, 섬세하게 잇고 겹쳐 옷감을 짜내듯 고급스런 비유들을 이어 문장을 만들고, 문장들이 모여 믿을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믿을 수 있도록 표현해 낸다. 마치 허공 속에서 실을 뽑는 소설 속 공기 번데기와 같은 문장들. 챕터 1 야냐체크의 신포니에타가 흐르는 앞뒤로 꽉 막힌 수도 고속도로에서 난 이미 1Q84행 버스에 올라타 있었다.

가장 신선했던 것은 이 새로운 세계가 현실계와 완전히 분리된 미지의 영역이 아닌, 이 세계에 교묘하게 병행하면서도 미묘하게 틀어져 있는 겹쳐진 세계라는 점이다.

1Q84는 토끼의 인도를 따라 간 앨리스가 나무 구멍으로 들어가 만난 이상한 나라, 회오리 바람에 집과 함께 휩쓸려가 도착하게 된 오즈라는 미지의 세상, 옷장을 열었을 때 펼쳐지는 판타지 나디아가 아니다. 수도 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내려갔을 때, 도쿄의 도심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똑같이 펼쳐져 있다. 너무나 똑같아서, 주인공들조차 자신이 이상한 나라로 이동되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헨젤과 그레텔에게 남겨진 작은 과자 조각처럼 던져지는 작은 단서들을 통해서 이 세계가 변질되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갈 뿐.

멋진 설정이다. 변함없는 현실 속에 있지만 현실과는 다른 또 다른 세계가 겹쳐져 있다는 것. 그 겹쳐진 세계를 정상인 세계의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세계를 헤쳐나간다는 것. 아오마메를 내려준 택시기사는 경고한다. “현실은 언제든 단 하나 밖에 없어요” 하지만, 1Q84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의 현실이 무엇인지를 직접 찾아내야 한다. 바늘로 찌르면 붉은 피가 나는지 스스로 확인해 가면서. 그리고, 하루키의 성실한 문장은 그 이상한 세계를 무리없이 납득하게 한다. 두 개의 달이 뜨고, 리틀 피플들이 날뛰며 공기 번데기를 지어내는 기묘한 세계를.

예상을 비트는 드라마틱한 전개, 하루키의 새로운 모습을 보다.

그러고 보니 하루키의 장편을 많이 읽지는 않았구나. 그래도, 그 어떤 전작에 이렇게 흥미진진한 전개가 있었을까 싶다. 재미만점의 영화 곳곳에 포진된 반전들처럼, 자극적인 상황들이 총알처럼 날라와 아드레날린 폭탄을 터트린다. 특히, 1편에서 덴고가 공기번데기의 개작에 참여하게 되기까지의 전개와 아오야메와 노부인의 은밀한 동맹의 과정. 그리고 선구의 역사와 산산조각난 다마루의 셰퍼드, 사라진 츠바사까지…숨쉴틈 없는 사건사고들이 이야기에 몰입시키며, 진행되는 상황들의 배경과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든다.

하루키하면 항상, 옅은 회색톤이 드리워져 있지만,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조용히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뭔가를 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선을 따르는 분위기 있는 전개를 떠올렸다. 극적인 반전이나 숨막히는 전개, 허를 찌르는 답변을 휘두르며 상황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을 떠올리지는 못했다. 그런데, 1Q84에서는 오히려 이런 흥미진진을 프로페셔널하게 구사하는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하루키를 봤다. 울퉁불퉁 격한 이야기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시 이어 붙여가며,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솜씨가 대단하다. 1권과 2권의 중반까지는 계속 그랬고, 후반에서는 특히 고양이 마을의 젊은 간호사가 공기 번데기의 도터를 언급하는 장면(3. 208p)의 기묘한 섬뜩함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오감을 자극하는 비유의 향연. 작가수업으로 참고해도 좋을 만한 비유의 총망라. 하지만…

한밤중의 악마처럼 뜨겁고 진한 커피가 그녀의 취향이다. (1-180p)
고마쓰는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는 열리는 일 없는 서랍의 깊숙한 곳에서 끄집어낸 듯한 웃음이었다. (1-39p)
지나치게 가까워져서 자칫 깊숙하게 엮인 참에 발밑의 사다리를 쓰윽 가져가버린다면 그건 정말 못 견딜 일이다. (1-369p)

소파에 자리를 잡고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내장이 뽑혀나간 생물의 한숨처럼 공허하게 들렸다. (2-169p)
다마루는 잠시 침묵했다. 모래주머니처럼 무거운 침묵이었다. (2-72p)
덴고는 손 안에 남겨진 죽은 수화기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았다. 농부가 해가 쨍쨍한 날에 타들어간 야채를 집어들고 바라보듯이. (2-168p)

그의 묘사력은 극에 달한 것 같다. 최고의 해상력이다. 오즈나 나디아같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라면 오히려 쉬울 것이다. 하지만, 겉모습은 현실계와 동일한데 동시에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되어 버린 세계의 미묘한 차이를 눈에 베일듯 예리하게 그려내어 믿게 한다는 것.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도전이었을 거다. 그리고, 그 도전은 성공했다.

변함없는 그의 장기. 이 샘솟는 비유들은 대체 어디서 튀어오는 것일까? 이 수 천 페이지를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이 그토록 다채롭고도 적확한 비유로 채워낼 수 있단 말인가. 하루키씨를 위한 별도의 비유 수집팀이라도 가동되는 것인가. 밤마다 비유 요정들이 나타나 낮동안 긁어모은 비유 꾸러미라도 던져주고 가는 것인가. 이 책은, 소설로서의 가치와 별개로 작가 지망생을 위한 비유법 사전, 비유법 레퍼런스로 사용되어야 할 것 같다.

거듭 감탄한다…또 감탄한다. 하지만 이윽고 무감해지고, 나중에가서는 심지어 피곤해진다. 과함때문이다. 굳이 비유를 쓰지 않고 담백하게 넘어가도 좋을 것 같은 상황까지도 굳이 장식을 달고 마는 그의 한없는 성실함? 완벽주의? 넘치는 재능? 때문이다. 때로는 몰입에 흐름이 깨지는 느낌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소설의 상황과 비유를 순환해야 하는 인지적 피곤함도 누적되었다.

예컨대, 우시카와의 이상한 생김을 이해하기 위해서, 갑자기 설탕항아리 속의 지네까지 순간 이동해 갔다와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인지의 일탈이 하루키 소설을 읽는 고유한 재미이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무뎌질 때 쏟아지는 비유는 오히려 인지의 교란이 되고 만다. 극의 전개가 덤덤해져가는 3권에서는, 마음 속으로 여러 번 *감히* 하루키씨의 빨간 펜 선생님이 되는 것을 상상했을 정도다. 이런 부분은 쫌 그냥 넘어가자구요… 응?? 자꾸 그러면 왠지 신의 물방울스러워진단 말이예요.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처럼 말한다. 그리고, 모두 다 지나치게 촉이 좋다. 아무도 틀리지 않는다.

노부인의 집을 지키는 시큐리티는 비트겐슈타인을 인용한다. “직감에 대해 나는 경의를 표하지…하지만 일단 자아가 이 세계에 태어난다면, 윤리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어.” (3-275p) 치매 아버지가 입원한 시골 병원의 담당 의사는 아버지의 증세를 이렇게 진단한다. “급격하달 건 없지만, 방금 말한 대로 생명력의 수위는 조금씩, 하지만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어요. 마치 열차가 조금씩 속도를 늦추며 정지를 향할 때처럼.” (2-536p)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간호사는 언어는 이렇다. “얼굴이 무척 편안했어. 뭐랄까. 가을 끝 무렵에 바람도 없는데 나뭇잎이 한 장 떨어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 (3-522p)

안전담당 어깨의 비트겐슈타인과 저 캐캐묵은 시골 의사와 간호사의 고급 비유라…뭔가 어색하다. 소설 속 인물들이 다들 이런 식이다. 모두들 지나치게 세련된 언어를 쓴다. 뭔가를 표현할 때는 비유를 달기 좋아하는 비유법의 달인들이다. 각자의 삶의 이력을 가지고 그 이력에서 만들어진 자신만의 언어로 발화하는 개별적 존재라기 보다는, 꼭 한 사람의 여러 버전처럼 느껴진단 말이다.

아오마메가 천신만고 끝에 조우하게 된 리더의 언어도 그렇다. 그 미스테리한 베일 뒤의 리더 마저도 등장하자마자 주저리 주저리 아오마메를 분석한다. 물론, 당연히 현란한 비유의 향연을 펼치며. “…정확히 말하자면 가톨릭 교회는 아직도 공식적으로는 지동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자네도 마찬가지야. 지금까지 오랫동안 몸에 걸쳐온 단단한 방어의 갑옷을 벗어던지는 걸 두려워하고 있어…” 지나치게 많은 말과 말 속의 깨알같은 비유들. 그렇다고 언어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리더에게 기대했던 압도적인 존재감은 희석된다. 더불어, 이야기의 핵을 단단히 붙들고 있던 리더가 자아냈던 긴장감도 함께. 최소한 리더란 사람은 저런 수도꼭지는 아니어야 하지 않아! 당최 없어보여서… ㅠ

게다가 등장 인물들 모두 촉이 어찌나들 좋은신지. 별 구체적 정황이 없음에도 아오야메와 덴고는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그가 다시 나타날 것을 믿고, 그도 1Q84에 있음을 느끼고, 그를 다시 찾게 될 것을 안다. 다마루는 우시키와를 추리해 내고, 우시키와 역시 덴고와 아오마메의 정황을 짚어낸다. 그 외에 여러 가지 것들을 여러 사람들이 다 미리 알거나 예감한다.

이들에겐 쉬운 일이다.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우연히도 그냥 그렇다는 느낌이 그냥 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해 내고, 이런 상상은 어긋나는 법이 없다. 그리고 다들 그 전제가 어긋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행동한다. 모두가 미래를 비추는 수정 구슬 하나라도 숨겨놓고 있는 듯,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야기한다. 아예 예지 능력을 사전 탑재한 후카에리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저기서 너도 나도 모두 다 같이 번득이는 오컴의 면도날은 맨밥에 들이붓는 맹물처럼 이야기를 싱겁게 만든다.

리틀 피플은 위협적이지 않다.

호이호이를 외치며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와 공기에서 실을 뽑는 리틀 피플은 여지없이 <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움파룸파족을 떠올리게 한다. 위험하다기 보다는, 귀엽고 깜찍해 보인다. 그들에게 위협과 추격을 당하는 이들의 긴장과 공포는 그토록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데, 정작 공포의 핵심인 그들은 존재감 희미하다.

하나이며 거대한 지배자인 빅 브라더의 대립항으로 우리의 일상에 물처럼 스며들어 지배하는 작은 존재들인 리틀 피플은 개념적으로는 흥미롭지만, 그들이 선구를 접수하고 그 모든 위험한 사건들의 배후라는 것은 어쩐지 연결이 안된다. 오히려 소설에 등장하기 전, 공기 번데기라는 소설의 등장 인물 상태로, 상상의 베일 뒤에 숨어있는 리틀 피플이 더 신비롭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리틀 피플은 하루키의 소설에서 잘 보지 못했던 ‘명백히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된다. 이 적을 향해 아오야메와 덴고, 후카에리 등은 자신이 가진 것을 총동원해 맞서 싸운다. 물론 그 실체가 알고 보니, 그다지 일방적으로 나무랄 수만은 없는 상대적 악이었다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악의 악성은 그려져야 하지 않은가. 리더를 움직이고, 그 많은 이들을 덜덜덜 떨게 하는 악의 발현 과정도. 나에게 리틀 피플은 선구나 그 외 어떤 사건과도 무관한, 그저 어딘가 동떨어져 공기 인형을 자아내는 동화 속 일곱 난장이처럼 느껴져서 실패였다.

운명적 첫 사랑의 신화

이게 3부에서 가장 나를 괴롭혔던 부분인데…뭐 다 그렇다 치고. 다른 건 뭐 넘어갈 수 있다 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과 접신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2천 페이지가 넘어가는 이 장대한 소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놀라운 비유의 향연도, 1Q84라는 세계의 조성도, 자신의 한계를 끌어안고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있는 인물들도 모두 모래성에 불과하다.

그것은 운명적 첫사랑, 그리고 그 사람과의 절대적 교감에 대한 믿음이다. 아오야메와 덴고. 이런 저런 사정들이 있었으나, 초딩 때 교실에서 손 한 번 잡은 것 만으로 낙인찍혀 이후의 인생이 결정되고, 다른 사랑 따윈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굳이 찾으려 하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항시 연결되어 있음을 그리고 언젠가 운명처럼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라. 1Q84는 결국 그 둘을 다시 만나게 하기 위한 거대한 장치같은 것에 불과했다는 느낌이 들만큼, 소설은 이 오그라드는 전제를 근간에 두고 있다.

근데, 이게 믿기냐? 솔직히 이거 너무 향그러운 순정만화틱하지 않냐고. 근데 이걸 안 받아들이면, 이 소설은 아무 것도 아니야. 어찌보면, 그냥 거대한 비유법 사전이야. 근데 난 못 믿겠다고… 제발 이게 아니라고 말해줘. 이런 대작의 스케일에 걸맞는 인간과 삶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이 있다고 말해줘.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니어도 좋지만, 분량으로만 치면 까라마조프에 맞먹지 않냐며 나는 울부짖는다.

그게 아니라면, 난 뭐한 거냐고. 그 귀한 연말과 연초를 바쳐 난 뭘 읽은 거냐고. 질문은 그저 책갈피 사이 언어의 계곡을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이었고, 이윽고 밀려오는 허무함에 그만 난 책장을 덮고 짐승의 신음 소리를 내게 되고야 만 것이다.

소설 속 문장처럼 하나의 사물은 하나의 시간에 하나의 장소에만 존재하는데. 그것을 심지어 아인슈타인이 증명했다는데. 나의 시간과 장소는 무엇을 위해 바쳐진 거냐며. 일본 소설 읽을 때마다 귀결되고마는 ‘펀더멘탈이 안 따르는 과도한 장식의 헛헛함’을 남도 아닌 하루키에게서 느낄 줄이야. 아휴…얼마만에 읽은 기나긴 소설인데. 물론 1권~ 2권 반까지의 오버도스만으로도 책값은 넘치게 뽑았다지만.

하루키씨 4권을 쓰고 있다는 썰이 있던데, 읽게 될지 모르겠다. 읽게 되겠지. ㅠㅠ난 하루키 호갱님이니깐요! …라고 하기엔 지난 날 하루끼 서비스는 참으로 훌륭했다. 1Q84도 이상한 소설은 아니고. 하루키의 대작이라는 점에 너무 기대가 높았던 거지. 1권 456p 노부인의 DNA론같은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간간히 이런 사고를 접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보석같은 시간이었는데. 여하간 나이든 여자란 뭘 갖다 바쳐도 피곤하게 구는 법이다. 내가 날 서빙해도, 내 비위는 못 맞추겠다…라는 요상한 결론으로 ㅋㅋㅋ

잊혀지지 않는 문장이 있다. 2권에 나오는 치매 아버지의 대사. 비유법 같은 것 없는 직구여서 더욱 깊게 꽂힌다. “설명을 안 해주면 그걸 모른다는 건, 말하자면 아무리 설명해줘도 모른다는 거야.” 알겠니? 이 빙신아. < - 단 일곱 자를 덧붙여, 이 멋진 문장을 이토록 저질스럽게 승화시킬 수도 있다는 거. 하루키상, 스미마셍! ㅎㅎㅎㅎㅎㅎㅎ

물론, 나에게 하루키씨의 가장 매력적인 컨텐츠는 하루키씨 그 자체다. 그래서, 나에겐 거대한 1Q84보다는 잡스러운 < 하루키 잡문집>이 여전히 가장 좋다.

잊지 못할 첫사랑 따위,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달을 보며 그리워 하고 있다는 것 따위! 그 달이 하나든 두 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