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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September, 2011

해진다

SUNSET

가만히 앉아서 찬찬히 해가 지는 걸 보고 있었다.

날씨는 꼭, 지리한 순례와도 같았던 우기를 버텨낸 걸 축하하는 선물같았다. 습기라고는 한 점 머금지 않은 서늘한 바람 속에, 청명 열매를 잔뜩 뿌려놓은 것 같았다. 숨을 쉴 때마다 가볍고 투명한 공기가 폐안으로 불어와, 천천히 스며드는 마취제처럼 복잡한 마음을 결국 잠재우고 말았다.

그리고 가을이 펼쳐져 있었다.

몇 주만 더 토요일 오후에 여기에 와서 이 자리에서 해가 지는 걸 보게 된다면 말이다. 앞으로 토요일 저녁이라면 그 좋은 어디에서 누구와 있는 것 보다, 이 자리가 더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저 빛깔과 말없이 소멸하는 풍경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돌려막기하려는 거다. 너만 아니면 좋겠다. 자전거를 타고 1시간든 몇 시간이든 달려가면, 바라볼 수라도 있는 대상이었으면 좋겠다. 눈으로 보지 못하더라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기만 해도 좋겠다.

해진다. 해가.진다. 해가 졌다,,, 환지통은 가을의 고질병이다.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exit

누군가 이 영화를 ‘뱅크시 영화’로 찾기에, ‘아니예요. 뱅크시가 나오긴 하지만, 뱅크시 영화는 아니라구요. 뱅크시보다 더한 놈이 나오긴 하죠. 반전이 아주 오묘해요’라는 요지로 답변했다. 물론, 감독 크레딧에 뱅크시가 올라가지만…

한 마디로, as-is 내 올해의 영화다. 너무 재미있게 봤다. ‘Funny As Hell’ 뉴요커의 평가가 무색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전개도 결론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막판 반전 쎄게 한 방- 아,,,이거였구나.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가 있는 거였구나. 알쏭달쏭한 제목을 확 꽂아준다.

백남준 선생이 봤다면 아주 좋아했을 것 같은 영화다. 다큐멘터리가 증거나 자료를 이야기화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84년 백남준이 고국에 와서 선언한 “예술은 사기다”에 대한 빼도박도 못할 그리고 빼어난 증거를 제시하고 있으니까. 예술이 사기가 되는 실제 과정을 매우 희귀하고도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정밀 포착하여. 백선생의 또 다른 선언. “나에게 예술이란 돈이 벌리는 것” 그런 것이다. 조금 특이한 무늬의 500달러짜리 아디다스 운동화를 4,000달러에 튀겨 파는 것과 그리 다를 바 없는 ‘예술적 수완’이 바로 ‘예술’ 그 자체다. 심지어 회사에서도 흔히 쓰이는 Value-add 능력이다. 티몬의 ‘사업적 판단’이 업계에서 오래 사업하신 분들에게 남긴 상대적 박탈감의 실체이기도 하다.


선배 사무실에 걸려있던 데미안 허스트 Opium 가격을 듣고, 깜짝 놀랬었다. 그저 색깔 물방울 몇 개 찍어놓은 것일 뿐인데…저 가격을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저 그림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예술이란 이해의 깊이에 가격표를 매겨놓은 것일까. 저 그림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 준 사물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의 단면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나아가, 모든 ‘가격표’의 세계에 대해서도. 그리고, 소위 ‘진성’주의자들이 가격표를 높게 붙여 팔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에 대해 가지는 불편함과 부러움의 양가감정을 멋드러지게 표현해냄으로써, 역으로 ‘진짜 예술’이란 것에 대해서조차 대놓고 편들지 않는 오묘한 입장을 견지한다.

난, 명백한 가짜 예술의 폭로같은 촌스러운 주장보다는 이런 ‘경계선의 스탠스’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띠에리. 오덕의 끝을 달리는 캐릭터들은 늘 흥미롭다. 그들은 자신의 집착과 열정으로 범인의 상식을 뛰어넘음으로써, 선과 악의 경계까지도 허물어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띠에리의 변신을 끝까지 애정을 가지고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그는 ‘진짜’의 편이므로…거의 영화의 결말에 다다르기 전까지.

그는 희대의 오덕질로 ‘진성’ 뱃지를 획득했지만, 예술을 통해 ‘사이비’ 뱃지를 새로 달았다. 더할 수 없이 진성이자 동시에 막장 사이비인 띠에리라는 오묘한 캐릭터는 영화의 화룡점정이다.

끝으로 직업병일까? ‘촬영주의’라는 기상천외한 컨셉트의 산물인 방 가득 제멋대로 쌓여있는 비디오 테이프들을 볼 때, 왠지 마음이 무거워지며 ‘구글’…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여기서 구글은 정리 안됀 빅데이터를 눈뜨고 못 볼 뿐만 아니라, 금광묻힌 신천지를 발견한 듯 마음 한 구석에 환호성을 울리며 온갖 기술력을 동원해 미친 데이터를 더욱 광적으로 정리하고야 마는 이들을 대표한다. 이미지 매칭, 보이스 딕테이션, 얼굴 인식, 사물인식, OCR 총동원해 메타 데이터를 뽑고 유의미하게 정리해 내는 과정을 아주 잠깐 상상했다. 쩝.

유명산 1박 2일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냐고 엄청 핀잔받으며 강행한 유명산 1박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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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 정도 해 줘야 될 것 같은 규모.
올라가 보니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런거 왜 가져가?” 했던 접이식 의자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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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산 올라가는 길. 평이 평범 무난…저질 체력에 걸맞는 저난이도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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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힘들다고 헥헥대는 보리 토리.
나도 헥헥- 저질! 내 체력…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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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떨어지고..정상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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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까지 동원된 최첨단 N스크린 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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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제일 좋다고 주장*당했던* 텐트~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텐트의 밤은 포근하고 아늑했다.

구워라 마셔라~ 달랑 렌턴 켜놓고 술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오늘의 BGM은 제임스 테일러. Don’t Let Me Be Lonely Tonight…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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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각대 롱셔텨 놀이도. 30초 동안 숨죽이며 찍은 달~ 역시 모든 놀이는 술먹고 해야 제맛. ㅎㅎ
정취를 느낄 틈도 없이, 술 취하자마자 바로 쓰러져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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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아침 부옇게 밝아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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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이거나 말거나 전날 퍼마신 술이 덜 깨 퉁퉁 부은 얼굴로 비몽사몽하는 여인.

비박이 뭔지 궁금했는데. 쳐등쳐등 산에 올라, 쳐묵쳐묵하다가 쓰러져 자고,
일어나자 마자 얼굴 붓기도 안 빠진 채로 고기 구워먹고 쳐챙쳐챙 짐챙겨서 내려오는 거였다. 물론 씻지도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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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장엄하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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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 저리 가~내 모닝 커휘를 방해하지 말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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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랄라. 가을산 많이 찍어오려구 했는데
정작 별 찍을 게 없어서, 영양가없는 선배들만 열라 찍어주고 왔다. 이게 모냐며, 울부짖고 투덜투덜했지만, 언젠가 사진 속 그들의 미소가 그 어떤 멋진 풍경보다 소중한 추억이 되겠지.

소주마시다 문득 “자연을 느끼고 싶다…”는 한 마디에 바로 스케줄링부터 코스 선정, 장비 및 장보기에 각종 설치 및 수거까지지 일사천리. 난 빈 손에 달랑 발렌타인 17년산 한 병 들고 갔다. 되게 고마워야 될 것 같은데, 그런 말은 주로 생략하고 마음에 넣어둔다. 적당한 빈티지가 되었을 때 조금 더 깊어진 관계의 향기로 음미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 때는 나 역시 ‘그 너머의 마음’이란 것에 이르러 있기를…미처 가을이 오지 못한 가을산이 내게 던진 숙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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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가로수길

태풍 머금은 바람 가르며 가로수길 마실. 구떼 언니가 케이크도 챙겨주고. 와웅.
깨알같이 골목골목 예뻤던 것들. 파랬던 하늘. 비현실적인 프로포션의 기럭지들. 잎새들 틈으로 불어왔던 가을 내음.

쓸쓸해 지지 않기 위해 쥐었던 주먹. 머물지 않기 위해 옮겼던 발걸음. 바람이 부는 쪽으로 애써 지어보였던 미소.
모든 것들이 다 일요일 오후, 저미는 노을 속으로 스며들어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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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사는 정신혼미…쩌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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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 & Dom

라스베가스에서 SM(Sado-Majekism) 클럽을 운영하는 신비스런 여인 레이디 헤더는 뛰어난 외모와 독특한 분위기, 놀라운 통찰력으로 저 돌부처같은 그리썸 반장님마저 흔들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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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더 : 난 저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의 마음과 욕망을 읽을 수 있어요. 때론 그들 스스로가 깨닫기도 전에. 내가 왜 이런 도자기와 테이블 린넨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죠?

그리썸 반장 : 당신은 좋은 물건들을 좋아하니까.

레이디 헤더 : 혹은 당신이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지 알았기 때문인지도. 같은 방식으로 난 당신이 문명의 표면에 드러난 덫을 즐긴다는 걸 알고 있죠.

그리썸 반장 : 내가 그렇게 잘 읽히던가요?

레이디 헤더 : 당신이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애쓰기 때문이죠. 당신은 문명화된 것들과 용인된 행동의 표면 아래에 있는 것들을 밝혀내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어요. 그러니 이런 고급 차(tea)와 같은 것에 매혹됨으로써 해방감을 느끼죠. 그리고 아주 잠시동안이라도, 당신에겐 그럴 때만이 세상이 정말로 문명화된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CSI 시즌 2 에피소드 8 [Slaves of Las Vegas (라스베가스의 노예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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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계는 Dom(Dominatrix) 와 Sub(Submissive)으로 규정된다. Dom은 지배자지만, 강한 건 서브라고 했다. Stop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서브의 권한이므로.

난 약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Stop이라고 말하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