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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June, 2014

6월의 끝, 줄리언 반스

굶주린 상태가 되어 허겁지겁 줄리언 반스를 두 권 연거푸 읽어치웠다. 소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에세이라 분류될 수 있을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주린 배에 제대로 씹지도 않은 쌀밥을 우겨넣듯, 음미보다는 정신줄 놓은 폭식이었다. 예상치 못한 허기가 치솟아 의자에 박혀있는 쇠못이라도 뽑아 씹어먹을 지경이었다.

<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 내 말 좀 들어봐> 을 까마득히 오래 전에 책장에 꼽아놓고도, 결국 펼치지 못했던 줄리언 반스와 2014년 6월의 끝자락에 마침내 이렇게 급만남했다. 다 읽고 나서는 묘한 당혹감이 드리운다. 이런 날 책을 읽다니…이 좋은 날을. 놀러나 가지. 차라리 쌓인 일을 치우던가.

반스가 나빴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그보다는 날이 너무 좋았다. 1년 중 해질 무렵이 이렇게까지 좋은 때는 얼마 되지 않는다. 누리지 않음이 무책임이라고 해야 할 정도의 날이었다. 그런데도 기아는 그 어떤 조건에서도 생존을 최우선한다. 정서의 기아도 마찬가지다.

줄리언 반스.

영국 소설이 썩 맞지 않는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역시….부커상 수상에 대단한 반전 소설 베스트 셀러로 꼽히나보다. 그런데 나에겐 묘하게 코드가 맞지 않았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까지 왜 이리 저 멀리 에둘러야 하는 것인가. 나의 지적 능력도 심하게 의심받는 느낌이었다.

결정적으로 난 반전이라는 장치가 대체로 참 별로다. 한 방의 역전을 위한 기나긴 설정들? 왜??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거길래. 기억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 뭐 그건 기본 상식 아니였어. 췟.

한편으론 번역체. 정서가 고팠던 나에게 이 번역체는 쥐약이었다. 아름답게 쓰여진 모국어가 그리워졌다. 번역 작가는 자기가 무슨 말을 옮기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했던걸까.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책을 펼치고 첫 장부터 이건 완전한 사기라고 생각했다. 저 제목말이다. 기구 매니아들의 무용담을 펼쳐놓는 도입부에선 사랑은 커녕 사랑의 냄새도 맡을 수가 없다. 원제는 Levels of LIfe. 그것 또한 모르겠다.

책을 던져버릴까 계속 읽을까 무지 고심하며 꾸역꾸역 책장을 넘겨갔는데.

100페이지쯤…제 3부 부터, 내가 읽고 싶었던 바로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 난 이게 읽고 싶었다. 근데, 이 책 돈 주고 사서 읽은 사람들은 다 이거 읽고 싶었던 거 아니겠음??? 아내를 잃은 줄리언 반스의 비통한 고백.

이건 마치 전혀 상관없는 두 개의 책을 붙여놓은 것처럼. 솔직히 앞의 100페이지는 읽을 맘도 없고, 읽을 수도 없었다. 무지막지한 정보량도 그렇거니와 대체 이 정보들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가늠도 안되고…그저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었는데.

100페이지 3부. 그로부터 약 100 페이지를 읽는 동안 점점 난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내가 사랑하는 그 곳으로. 오늘 같은 날 가고 싶었던 곳이다.

그래서 정말 오랫만에 술도 한 병 딸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술을 딸까도 고민도 많이했는데, 결국은 와인으로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차디찬 와인은 뒷향따윈 전혀 없어 목으로 바로 넘어가는 도수 낮은 소주같았다. 왜 땄니…ㅎㅎㅎ

그래 이거지.

매우 집중해서 읽었고, 읽는 내내 조앤 디디온의 < 상실(The Year of Magical Thinking)> 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포인트가 조앤 디디온과 정확히 조응했다. “이것은 극복할 수 없다”

사람이 이래. 고통에서조차 순도를 바라지. 소비의 대상이 가짜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단히 말해서, 본전 생각. 책값, 시간, 들인 내 마음보다는 더 값나가는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그들의 결론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줄리언 반스는 이 책을 아내를 잃은 지 꼭 5년만에 냈다. 5년이라니…세상에. 말도 안돼. 그리고 그게 앞으로 10년, 20년이 될 수도 있다니. 그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세상에 있을까. 하지만, 완벽한 상실의 지옥도 못가는 좀비의 연옥은 누가 어떻게 풀어내 줄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지상과 지옥 사이를 떠돌며 아직도 지가 죽은 줄 모르고 지상의 해피엔딩을 꿈꾸는 원혼은.

책을 덮고 나니 세상은 다시 어둠이었다. 낮게 날던 비행기 소리도, 실용음악학원의 뚱땅거리던 피아노 소리도, 놀이터 아이들의 깔깔거림도 모두 잦아들었다. 나를 조기퇴근시키고야 만 그 아름다웠던 해질녘의 풍경도…

Me2day 미투데이 백업

2007년 4월부터 6월까지 한 석달.
하루도 안 빠지고 술을 먹었던 적이 있다.

그 앞 뒤로도 좀 심각한 음주가무의 나날이었지만, 그 때는 정말 단 하루도 안 빠졌다. 만취도 종종이었고, 몇 번인가 필름도 끊겼다. 술 먹다 아침해 보며 집에 돌아와 셔틀에서 기절하기를 반복하는 나날이었다.

회사에선 서비스에서 기술 조직으로 이직 수준의 전배를 해, 무진장 일을 해치우던 중이었다. 그땐 기술 조직에 이렇게 오래 있게 될 줄 몰랐다. 잠깐 왔다 기술 배우고 다시 돌아가 서비스의 문익점 선생이 되어보리란 어이없으리만치 얄팍한 요량이었다.

소주 한 병에 정신을 잃고 친구에게 들쳐 업혀온 날. 그날이 아버지 제사인 걸 오후 늦게 정신차려서야 알고 그 때부터 술을 끊지는 못해도 줄이기 시작했다.

그 기억들이 미투데이에 조각조각 남아있다. 내게 필요한 사람들이 모두 내 인생 안에 있었던 날들. 스샷을 뜨고, 백업을 한다. 모니터 앞에 펼쳐놓고 냄새라도 맡아볼 수 있을까 싶어…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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