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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Jarrett – Gary Peacock – Jack DeJohnette : 30 – 3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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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5.19(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30년을 함께 했다는 3명의 남자를 3번째 만났다. 해가 진 뒤에도 아직 하늘에 남아 있는, 어스름한 빛의 잔영 같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골라 주신 음악도 한결같이 곱고 편안했다. Pt2의 두 번째 곡 “Ballad of the Sad Young Men” 예의 Pt2의 붉은 셔츠를 입으시고, 너무나 익숙한 쾰른 앨범 자켓의 그 포즈 …피아노 앞에 고개를, 온 몸을, 온 마음을 숙이고 있는 대로 웅크려, 깊은 어딘가를 홀로 들어가 끌어올린 첫 음을 건반 위에 짚어내셨을 때 온 몸에 흐르는 전율. 그리고 천천히 자렛 옹의 흔들리는 등짝을 따라 흐르던 선율은 슬픔이기도 했고, 기도이기도 했다. Shenandoah를 처음 들었을 때와 같은 느낌. 진심으로 이 공연에 감사한다. 이 한 곡 만으로도.

생각해 보니, 늘 그랬네. 티켓 값이 싼 것도 아닌데, 항상 고맙다는 기분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무슨 망언인가 싶지만. 그 분들의 공연에선 늘 내가 을 내지는 병, 정, 무가 된 듯한 기분. 돈 내도 안 팔면 못 사는 독점적 공급자이므로. 뭐든 갖다 바칠테니, 그냥 살아만 계셔다오 그리고 계속 가끔 들러서 연주 들려주세요 굽신굽신 이런 식이 되어 버린다.

Pt1의 마지막 곡. 세 영감님들에게서 들어보지 못했던 스타일이었다. 엇박자로 뚱따뚱따, 음의 전개도 이국적이고…스탠다드 넘버가 아니라, 어느 남미에서 온 선율처럼 같았는데, 셋리스트 보니 I didn’t know what time it was란다. 참 좋았다. 오래된 우물에서 전에 맛보지 못했던 차고 신선한 물이 흘러나와 익숙했던 풍경에 새롭게 눈뜨게 해 주는 것 같은.

4번째 앵콜곡, Straight, No Chaser. 옛다 이거 먹고 떨어져라??? 안 가고 보채는 아이에게 줄까 말까 감춰놓은 제일 맛있는 초코바를 던져주시듯(ㅠ), 맨 끝에서 있는대로 실력 발휘를 해 주셨다. 네네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맛나요 맛나. 이제 집에 갈께요. 아는 곡이 거의 없었는데, 따다다다~ 따다다다~따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와 몹씨 반가웠다. 운전하며 오는 길 내내 흥얼흥얼~

언제나 앵콜로 빠뜨리시지 않는 When I Fall in Love. 수 없이 들었는데도, 집중 복습 기간이었던 지난 주에만도 Whisper Not과 Blue Note 버전을 번갈아가며 4~5번은 들은 것 같은데도, 그래도 이번의 연주는 같지않고 또 새롭다는 것에 놀란다. 익숙한 선율 속에서, 음들이 여기 저기 예측할 수 없이 일탈했다 자리잡기를 반복하는 몇 분을 귀로 따라가며 그것이 마치 지나온 삶의 궤적같다는 생각을 했고, 이 음악과 함께 한 시간들이 떠올라 뭉클뭉클했다.

솔로까지 네 번의 공연을 봤는데, 그 중에서 이번이 자렛옹의 손가락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였다. 사실 나에게 오늘의 최고의 볼거리는 자렛옹의 손가락 그 자체였다. 우주를 떠돌던 그 많은 음악에 최종적으로 음이라는 물리적 형체를 부여한 그 손가락들.

그 오른손의 손가락이 건반이라는 우주를 날아다니는 경이로운 모습을 목격했다. 자렛 옹의 손가락이 건반에 닿을 때 마다 내 귀에 자렛 옹이 선택한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망치로 내리쳐 정확히 겨냥한 그 자리에 말뚝을 박듯이 손가락으로 건반을 찍어 누르는 것도 모자라, 내리친 지점을 다시 한 번 힘주어 좌우로 흔드는 타건에 압도되었다. 마치 음악이라는 지평에 어렵사리 내린 음을 다시 한 번 단단히 고정이라도 하려는 듯이. 이렇게 만들어진 음은 곧바로 휘발되지 않고, 제 역할을 한 후에도 길고 긴 잔음으로 남아 뒤이은 음들과 겹치고 공명하며 소리의 입체감과 깊이를 만들어 낸다.

피아니시모로 들리는 여린 음들을 치실 때 오히려 등근육을 잔뜩 긴장시켜 손가락 끝까지 힘을 전한 채, 한 치의 더함도 덜함도 없는 정량의 소리를 내기 위해, 알을 품은 어미새처럼 너무나 조심스레 건반을 아래로 밀어내는 손가락의 움직임. 작고 여리지만 그토록 소중한 음 하나가 태어나는 경이로운 생명 탄생의 순간을 지켜보는 듯한 순간들이었다.

때로는 손등을 피아노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때로는 둥그렇게 말아 세우기도 하시고, 때로는 깃털처럼 가볍게 쓸어내리시기도 하고, 고개를 최대한 오른쪽으로 돌려 몸을 비비 꼬아 스핀을 먹이듯 건반을 두드리시기도 하고, 머리부터 허리까지 대각선을 만든 후 어깨선에서 잔뜩 팔을 뻗쳐 그 끝에서 건반을 두드리시기도 하고, 오른발 왼발로 번갈아 장단을 맞추시고 그것도 모자라 엉덩이를 들어 흔들거리는 몸의 리듬을 건반에 실어내시기도 하고…

지난 네 번의 공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느 한 순간도 그냥 지나쳐 보내는 음은 없었다. 모든 행동은 한 음 한 음에 모두 생명을 부여하려는 한 인간의 몸짓이었다. 오늘 자렛 옹은 몇 개의 음을 치셨을까? 몇 천 개? 몇 만 개? 어쨌든 자렛 옹은 그 수 만큼의 음에 진실한 생명을 불어넣으셨다.

연주의 행태 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에 있어서도 자렛 옹의 연주는 피아노와의 섹스가 맞다. 인정, 땅땅땅. 정확히는, 피아노를 매개로 한 음악과의 접신이겠지만. 그래서일까? 아무리 봐도, 이렇게 가까이서 HD급으로 봐도 자렛 옹 나이 대비 넘 심하게 섹시하심. 누가 섹시함과 생산 능력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논문 좀 써봐…자렛 옹을 샘플로 해서.

참, 또 하나의 대박!!! 중간에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피아노 현을 두드리시거나 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조율에??) 자렛 옹이 어수선하게 무대 뒤를 왔다갔다 하시고 했는데, 그러다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지 연주 시작 전 선글래스를 벗어서 피아노에 올려 놓으셨다. 덕분에 선글래스로 가려지지 않은 자렛 옹의 오르가즘 쌩얼을 눈 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초레어템. 한 마디로, 색계에서 양조위의 그 표정에 못지 않다. 돌이켜 보는 것 만으로도, 심박수 급상승*.*;; 광클질에 비싼 표 앞자리 득템한 보람이 팍팍팍-

좌석 덕분에 작정하고 자렛 옹에 집중한 덕에 나머지 두 옹께는 대놓고 소홀했다. 어쩐지 연주 구성에서도 자렛옹의 비중은 더 높아진 것 같다. 드럼, 베이스 솔로가 이렇게 드물었나 싶었다. 원래 그랬나? 특히, 잭 디조넷의 드럼에서 뭔가 빠진 것 같다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다 아니고, 그저 내가 이제서야 트리오의 연주를 제대로 듣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트리오에서 *표정*을 담당하고 계신 피콕 옹. 얼굴에 간간히 떠오르던 미소가 푸근했다. 드럼 셋트에 가려 디조넷 옹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자렛 옹은 워낙 나홀로 심취가 취미이신지라, 피콕 옹의 미소가 양 쪽을 접착제처럼 이어 주어, 트리오를 완성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처음 (사진으로) 뵐 때와도 비교도 안 돼게 쪼그라드셨지만….그러고 보니, 피콕 옹에게 푸근하다는 표현이 자연스러운 날이 왔네. 예전에 사진으로만 접할 때는 독수리처럼 매섭고 날카로운 눈매로만 기억했는데. 다시금, 세월이란.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장면. 베이스 독주에서 피콕 옹이 음을 좀 다르게 비틀어 연주하자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우~”하는 탄성으로 화답했던 자렛옹. 관객 대다수가 놓쳐버렸을 미묘한 변화를 30년 지기 협연자는 간파했고, 80대 노연주자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사심없는 찬사를 날린 것이다.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서로를 감탄시킬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 놀라웠다. 내가 기억하는 이번 연주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순간이다. 첫 번째는 마지막 커튼콜 때 세 분이 부둥켜 안으시던 모습. 30년을 같이 보내고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분들이 벅차게 서로를 얼싸 안는 모습은 그저 감동이었고, 우리의 박수와 환호성이 그 트리거가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일본에서는 이제 더 이상 트리오 활동을 하지 않으신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고 했다. 앵콜이 죄송스러울 정도로 연로하신 두 분을 보며 (자렛 옹은 열외~) 그럴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아니, 이미 지났다는 것을 알겠는데도 여전히 이 트리오에게 안녕을 고하기가 아쉽기만 하다.

자렛 옹의 연주를 실제로 보는 것이 오랜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은 풀었고…오늘 공연 보다가 그만 새로운 소원이 생겨버렸다. 이 소원은 못 이룰 것이 백퍼 확실하다. 그래도 이미 소원이란 것이 되어 마음 속에 자리잡아 버렸으니 어떡하지? 자렛 옹이 푹 숙인 쾰른 포즈로 연주할 때 자렛 옹 귀에 들리는 소리로 연주를 듣고 싶어져 버린 것이다. 거기서 자렛 옹이 듣는 음악은 어떤 것일까. 어쩜 나는 반밖에 혹은 반의 반밖에 못 듣고 있는 지도 모른다. 거기 가야 다 들을 수 있을 것 같단 말이다. 어찌하면 이 소원을 풀 수 있을까. 구마모토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시속 260km의 신칸센 상-하행 열차가 스쳐지나가는 광경이라도 지켜봐야 하려나.

아름다운 꿈에서 깬 것 같은 느낌. 그날처럼 달빛이 쏟아지는 광화문을 하염없이 걷고 싶었다. 봄밤 속으로 걸어들어가, 간만에 선선해진 봄바람에 치마도 날리고, 자렛옹 만나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싶었지만, 현실은 네비 언니의 말씀에 복종하며 최적이 아닌 듯한 의심스러운 경로를 따라 얌전히 귀가. 간만에 블로그 쓰며, Tribute의 Ballad of the Sad Young Men과 이어지는 All the Things We are, Blue Note의 Lament 등 오늘 연주곡들 무진장 리피트. 지난 세월 참 많이도 들었는데, 그런데도 이제서야 비로소 이 트리오에 조금은 귀가 트이게 된 것 같다.

하지만, 2013년 한국의 5월. 희망이 소진되어 힐링으로 떡칠한 가면극같은 현실 속에서 이런 순수의 결정체를 듣고 있다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 그간의 자렛 옹 공연 감상기

2011.6.2 Keith Jarrett Solo Concert in Seoul
http://youzin.com/blog/?p=2956
꿈에 그리던 솔로 공연!!! 이 날의 한 줄 요약 ‘소용돌이치는 까만 하늘에서 고흐의 별들이 마구 떨어지는 것만 같은 황홀한 밤’.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에 무진장 고생했지만…5번이나 앵콜 받아주신 자렛 옹과의 교감도 너무 좋았고, 자렛 옹도 한국 팬들의 광적인 반응에 매우 즐거워하셨다는 후문.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공연 끝나고 많이 많이 걸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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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8 Keith Jarrett – Gary Peacock – Jack DeJohnette 첫 내한 공연
http://youzin.com/blog/?p=2045
눈물 콧물 질질 짜며 봤던 감동적인 무대. 그들의 등장에 왜 이리 시큰해 지던지. 광적인 한국 팬들의 반응에 즐거워하시던 세 할배…공연장에서 우연히 아는 얼굴을 많이 만나서, 더욱 즐거웠고…끝나고 을지로에 진출해 마신 한 잔의 술과 함께 했던 이들과의 열혈 간증 타임이 기억에 남는 날.

2007.5.6 Keith Jarrett – Gary Peacock – Jack DeJohnette 일본 도쿄 우에노 동경 문화센터 공연
http://www.youzin.com/photo/?p=26
한국에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일본으로 날라가 본 첫 번째 트리오 공연. 인터미션때 와인까지 한 잔 마시고 알딸딸해 져서~ 두 배로 꿈결같았던 시간. 술기운에 동영상 촬영까 감행. 지금 생각해 보면,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지대로 민폐. 부끄부끄…그래도 영상에 찍힌 God Bless the Child의 도입부를 지금도 간간히 들으며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