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密陽 vs 新林 : 굳이 굳이

밀양 (Secret Sunshine, 2007)

‘잠시’라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인생에는 참 어처구니없는 면이 많다. 이런 걸 조금 고상하게는 ‘불가해하다’고 표현하는 지 모르겠지만. 이런 어처구니없음이 주는 불편함은 결코 생각만으로는 풀리지 않더라.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일들에 부딪치고 마음쓰면서, 걍 피곤하고 귀찮고 또 어떻게 몸으로 부딪치다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는 면들도 삶에는 있어서 스르륵 덮어두게 되는 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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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그런 징한 걸 굳이 굳이 그 깊은 아오지까지 가서, 술과 과로와 불운과 피곤함에 쩔은 만신창이 내장을 보물인 양 끄집어 내서 내보이냐면 그건 상을 타기 위함도 아니고, 멋있는 걸 해 보여주고 싶음도 아니며, 걍 심심해서만이라고 하기도 섭한…그럼 멀까? 공익광고 협의회에서 담배를 20년간 피운 폐는 이렇습니다~ 라며 경종을 울리기 위한 건전한 선동도 아니겠건만. 굳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 쓰지 않아도 될 책, 마시지 않아도 될 술 허나 굳이 굳이 만들고 쓰고 마시는 이유는 멀까? 그건 결국 지가 지를 못 이겨서 하는 짓들인거라. 해서 그것은 행운이나 재능이라기 보다는 지 생겨먹은 값이며 치루어야 할 업인게지. 그렇게 지가 지를 못 이기는 인간 셋이 만나 지독한 먼가 하나를 만들고, 그래봤자 머가 달라지냐면 그래도 그렇게 하고 나면 남들보다 조금은 누릴 수 있는 게 많아지긴 하나봐. 하다못해 좋은 술 마실 찬스라도. 그게 어디야? 쉽게 말하길 개찐도찐이라고 하지만 개와 도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던거지.

하지만 인생의 묘미는 한 발짝 더 차고 나간다는 이유로 항상 도보다 개가 좋은 건 아니라는 거. 그래서 난 송강호에 한 표.

“앗, 추워~”
자, 그럼 심야 영화 보고 난 뒤 뎀비와 나의 대화 . (am 1: 30)
종종종 프리머스 앞 지하도를 건너고. 종종종 프리머스 앞 지하도 건너 순대타운을 거쳐…복개천 다리 지나 집으로 오는 길이다. 5월의 황사는 까끌까끌, 신림동의 간판들은 초현실적으로 번쩍번쩍.

나 : 아,,,음…꼭 여기가 밀양같다.
뎀 : 그렇지, 신림(新林). 신림은 어때? 여기도 이상해.
나 : 영화 하나 나오지~ 기럼. 난 저널리스트가 되어 신림동을 쓰는게 꿈이야.
뎀 : 신림동도 정말 이상해. 여긴 그냥 서울과는 달라. ..뭔가 달라. 여기엔 이야기가 있어. (신림극장 허문 터를 가리키며) 이것 좀 봐. 공사하다 내팽개쳐두고 10년 동안 그대로야.
나 : 그런데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그렇거니 하구 지나가구. 뭘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도 없고.
뎀 : 신림동에서 돈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 : 여관해야지. 신림동에서 여관차려 망하고 나간 사람은 없대. 글구 신림동의 상징은 순대.
뎀 : 여관과 순대?? 진짜 이상하다.
나 : 친구들이 여기 태워다 주러 오면, 진짜 여긴 서울 같지가 않대. 무슨 허접가게 막 개발한 경기도 신도시 분위기….아, 그래! 밀양을 패러디한 영화를 만드는 거야. 누가 망해서 여길 찾아오는데…”신림은 어떤 곳이예요?”
뎀 : “걍 사람사는 데죠. 뭐”
나 : “아세요? 신림은 새로울 新. 수풀 林. 신림은 새로운 숲이란 뜻이예요.”
뎀 : 영어로 하면 뉴 포레스트(New Forest)??? 진짜 이상해…………………………………………………….
나 : (집 앞에 신장개업한 번쩍번쩍 광계토 숯불 바베큐를 보며) 대체 저런 게 생겨야 하는 걸까? 저런 거 요새 다 망하는 추세 아니야? 이상하게 동네가 발전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과거로 가는 거 같어.
뎀 : 게다가 광개토도 아니고 광계토… -_-;;;

징한 것은 창동감독님이 아니시다. 오늘도 우리들 개개인이 부딪쳐 살고 있는 삶이 본좌시더라. 그러니 일단은 내일을 잘 보내고 보자. 그렇게 하루하루 런닝타임도 없는 나만의 ‘신림(New Forrest)’을 찍는 거지. 열심히 찍다보면 깐느는 아니더라도, 관악구 영화제에서 상이라도 하나 탈 지 누가 알아. 대본에 캐스팅에 ‘레디 고~’까지 불러주는 명감독 없이도, 살다보면 다들 한 번쯤은 깐느에서 여우주연상 받았다는 영화 속 전도연 보다 훨씬 더 실감나는 표정으로 하염없이 걷고 있을 때가 있다. 끝.

옛날에 쓴 거.
내가 사는 이쌍한 신림동 이야기 -화기(火氣)와 양아의 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