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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나머지 반쪽을 셀프 리뷰함

나의 동료들의 한 해의 업무 성과를 리뷰해서 점수까지 달아 회사에 제출했다. 인센티브를 목전에 두고 돌파해야 할 셀프 밥값 정산, 직딩의 최고 레벨 미생의 순간이다. 하지만, 이것저것 모임을 하고 와서 늦은 시간 사무실에 홀로 앉아 스탠드 불빛 아래 돌이켜 보는 한 해. 예기치 않게 발휘되는 밤의 매직은 소소한 미생이 한 순간이나마 성찰 가득한 전인격적 완생으로 변신한 듯 착각하게 하고, 매 년 반복되는 가혹한 평가 프로세스를 ‘진실의 순간’으로 승화시킨다.

재밌는 아니 당연한 사실은 업무에 투여한 시간에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밤들을 머리를 싸매고 사무실에서 죽때리며 아둥바둥 했음에도 불구하고 올 해 내 업무에서는 감동적이라거나 아웃스탠딩한 성취를 꼽기 힘들다. 작년에 자신있게 내놓았던 성취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고, 더 빨리 버리고 새로운 영역으로 과감히 뛰쳐나갔어야 하는 타이밍을 늦췄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쨌든 이렇게 업무 정리를 했고 교훈이 있었고 내년의 작전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제출하고 나니 뭔가 아쉽다. 이게 전부인가. 이 평가는 반쪽짜리다. 사무실과 업무 시간으로 제한하지 않고, 내 삶을 360도 전면적 총체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내 지난 1년의 의미를 바로 정리할 수 있다.

한 단계를 뛰어 넘은, 큰 변곡점들을 그린 한 해였다. 나 자신과 수없이 싸웠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운동 – 4점

지난 2월 생전 처음으로 근력 운동을 시작했고, 12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새로운 세상에 침투해 들어가기 위한 집중 물량공세로 한 주에 4~5번을 할 때도 있었고, 다사다난한 일정에 한 주에 한 번을 겨우 할 때도 있었고, 여행가서 아예 휴업을 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잠시 쉬긴 했을망정 아예 멈추지는 않았다. TBD, TBD…

안정이 된거라고?? 설마. 아직도 운동을 하러 가야 하면, 땅이 꺼지도록 한숨 푹~ 어디론가 도망가고만 싶다. 그럴 땐 “성공의 9할은 출석”이라고 했던 우디 알렌의 말을 읊조리며 일단 간다. 똑바로 서서 살포시 정신줄을 내려 놓고, 프로그래밍된 로봇처럼 내가 정한 단계들의 첫번째 세트를 수행한다. 끝나면 또 그 다음 단계의 횟수와 시간을 채우는 거다. 쓰러지거나 내려놓고 싶은 마음과 싸우며. 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 할까. 종종 끝이 없는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가 된한 기분으로.

“죽지 않은려고” 정말로 그 이유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각종 맨몸 운동을 꽤나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닥 스쿼트 2~300개 정도는 그냥 부담없이 ㅎㅎ 아직도 제일 힘든 건 플랭크다. “인생이 짧다고 느껴진다면, 플랭크를 해보라”라는 말이 있다. 30초, 1분이라는 시간을 영원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악마의 운동. 하지만, 아무 도구도 움직임도 없이 내 힘으로 내 몸을 지탱하는 단순한 자세의 유지만으로 전신의 근력을 키우는 이 운동의 원리와 결과가 더할 수 없이 우아하다.

허벅지는 근육이 붙어 탄탄해졌고, 체력에 자신감도 생겼으며, 일상생활의 여러 움직임들이 훨씬 편해졌다. 반면, 작년에 재미를 붙였던 유산소 운동(뜀박질)을 거의 못한 것, 그리고 커피와 달다구리 홀릭 지수가 극에 달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식이 (식단 조절이 아니라)를 곁들이지 못한 것이 아쉬운 포인트다.

드라마틱한 감량이나 꿀복근같은 건 못 했지지만, 큰 숙제처럼 미뤄뒀던 분야에 마침내 뛰어들어 개척을 실행한 점과 그 과정에서의 눈물겨운 노력을 인정해 기꺼이 4점을 준다. 내년엔 더 뛰고, 가능한 몸에 좋은 것들을 골라 먹어 보는 걸로. 지금 하는 건 그대로 다 해야 한다는 건 함정;

사진 – 4점

작년 DEVIEW를 기점으로 취미로 끼적였던 사진이 업무와 연결되는 경험을 했고, 전시는 아니지만 내가 만드는 서비스의 컨텐츠로 기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경험을 했다. 올해는 그 기조가 더욱 이어졌다. 랩스와 D2 마케팅이 본격화되며, 각종 행사에서 불려가 더 많은 곳에서 찍사로 활약하게 되었다. SNS 마케팅 뿐만 아니라, 홈페이지 이미지컷으로도 쓰이고, 비록 분야에 특화된 학회지지만 지면 광고에도 쓰이게 되었다. ‘쓰임새가 있는 사진’을 찍게 되었다.

NAVER LABS 광고

naverlabs

naverlabs2

하지만 라오스. 라오스에서 드디어 나는 내가 정말로 찍고 싶었던 피사체를 만나는 행운을 경험했다. 부족함 없이 넘치는 광량과 튀어나올 듯한 동남아풍의 색채, 그리고 사람들. 문화나 예의범절 같은 것으로 가리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 카메라를 들이댄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 이 3종 셋트의 결합은 찍사에게는 천국을 선사했고, 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셔터링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새로 산 카메라에 적응 못 해 부들부들 떨었던 순간들도 있다. 옹고집인지 사서 고생인지 모를, 하지마 어떤 결과물들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MF의 한계.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지는 순간들을 눈 앞에 두고, 어찌해도 흐릿하기만 한 뷰파를 초집중으로 들여다보며 제발 내가 이 장면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까지 해 가며. 절박한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통했던가. 그 결과물로 난 작은 사진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진전 보다 더 하고 싶은건, 이 사진 속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 찍었던 사진을 모두 사람 숫자대로 뽑아서 가져가 이 사람들을 찾아서 다시 그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돌려주고 싶다. 그리고 스쳐지나간 그들의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보여주고 쥐어주고 싶다. 액정만 보여줘도 가득히 환해지던 그들의 표정을 다시 보고 싶다. 그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여행자로서 열린 마음과 찍사로서의 절실했던 마음이 콜라보해 잡아냈던 살아있는 순간들. 기꺼이 4점을 준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눈 앞에 스쳐지나가는 순간 포착을 넘어선 피사체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다. 눈에 띈다거나 신기해서가 아니라 아니라 그 관심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셔터를 누르게 되기를 바란다. 눈에 띄는 피사체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 유일무이한 고유함을 가진 대상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그래야 진짜 순간을 잡을 수 있을 것이고, 그 순간에 스토리가 더해질 것이고, 그 스토리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5점의 조건이다.

4점과 5점의 간극은 결정적이다. 3점과 4점의 간극보다 훨씬 더.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다른 과정으로 찍어야 한다. 그렇게 찍고 싶다. 2015년에는.

유흥 – 4점

올해서야 비로소 고기 맛을 봤다고나 할까. 한 단계 이상 레벨 업한 것이 분명하다. 왠만한 패턴은 모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벽에 부딪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척 무척 놀랍고 황홀하고 뜨거운 순간들이 있었다. 잊지 못할 것이다. 그냥 막연한 가능성을 꿈꾸며 억지로 끌려가는 심정이었던 작년과는 많이 달랐다. 주저없는 4점. 내년에는 나만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조금은 가져보고 싶다. 그 전에 기존의 스타일부터 습득해야겠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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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했던 세 분야에 얼마나 노력했나. 일주일을 쪼개 쪼개 하루씩을 간신히 돌려 막기하며 보냈던 한 해. 하지만 포기한 것들도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난 보다 확실하게 거의 모든 연락수단을 확인하지 않게 되었다. 카톡은 아예 안 보고, 안 읽은 SMS도 수 백개가 쌓여있다. 지메일은 오피셜리 쓰레기통을 선언했다. 웃긴 건 실험 결과 그래도 아무 문제 안 생긴다는 것이다. 그게 진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가까웠던 사람들을 자주 못 보는 것은 아쉽다. 다들 잘 살고 있으리라 믿을 뿐이다. 자랑질쟁이 페북이 전해주는 딱 그만큼씩은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월호와 신해철과 이런 세상과 기타 등등 때문에 슬퍼하면서도, 점점 더 미쳐가는 나라에 울분을 토하면서도 어떻게든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 이상 이런 일들에도 더 많이 관심을 보내고 행동할 수 없게 되었다. 깊은 패배감과 무력감을 인정한다. 그 전의 5년에 너무나 지쳐버렸음을 인정한다. 빛이 보이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 반대급부로 방향을 틀어 ‘개인’의 삶 속으로 더욱 깊숙히 코쿠닝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나이. 올해 본격적으로 내 나이를 인정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의연하기란 각오나 예상보다 힘들다. 닥치지 않고 알 수 있는 게 없음을 다시금 실감한다. 하지만 여전히 삶은 무수한 가능성의 연속이다.

다시 봐도 일이 좀 아쉬웠네…그렇게 일에 매달렸는데도 ㅠ 점프 업 해야 했는데. 아니면 한없이 뒷걸음질 하게 되는 나이다. 한 해 한 해 나이값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

어쨌든 꽤 멋진 순간들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평가해보면 초아님은 승진 요건에 부합합니다. 한 살 더 먹어도 좋습니다!!! 인정 ^^ (대충 마무리 ㅎㅎㅎㅎ )

레퀴엠 포 어 꼬리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이규리 시인 < 특별한 일> 중에서 앞 부분

처음 차 안에서 신형철의 목소리로 이 시를 들었을 때, 가슴에 전압이 확 오르고 아주 잠깐이지만 숨이 멈추어졌어. 몇 번인가 다시 돌려들었는데, 그래도 그때는 감전의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어.

그러다 한참 지난 오늘 그 시를 다시 찾아 읽다가 갑자기 꽤 납득할 만한 이유가 떠올라서 이렇게 기록해 두려고 해.

아마 나도 그런 식의 최선을 했던 적이 있었
던가봐. 내 꼬리를 내가 자르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던 때가. 뛰기 시작하기 바로 전, 부디 출발을 포기할 만큼 정신을 잃은 건 아니기를 기도했던 것이 기억나. 참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지. 돌이켜보면 아찔했고, 결과적으론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생물학 교과서에 써 있는 것 처럼 잘려나간 꼬리가 다시 돋아나진 않았어. 잘라낸 부위에 아물어가긴 했지만, 새 꼬리가 나진 않았어. 꼬리 따위 없는 채로 살아가면 어때. 살았으면 됐지! 그렇게 안도의 숨을 쉬며 살아왔지.

그런데 그 날 시인이 알려 준거야. 근데 그 때 니 꼬리는 어땠는 지 아느냐고. 네가 뒤도 못 돌아보고, 아픈 줄도 모르고 그저 살기 위해 죽자고 도망가는 동안 꼬리는 발버둥 치며 이미 끝나버린 생의 마지막 투혼을 펼쳤노라고.

그러니, 최선을 다한 것은 살기 죽기로 달음질을 한 니가 아니라, 끝까지 꿈틀대며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 꼬리였다고. “힘들었나요? 하지만, 최선은 그런 게 아니예요.” 라고 시인이 정정해 준거야.

그 때 잘려나간 채로 나를 위해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던 꼬리는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았던 그 꼬리는
대체 무엇을 감당하고 있었던 걸까.

또 나는 무슨 작정으로 꼬리까지 단숨에 도려내고 그리 뒤도 안 돌아보고 내뺐던 것일까.

그리하여, 남은 몸은 떠나지 않는 애닲음을 짊어지고 가는 거구나. 이미 몸을 떠난 몸이 감당했던 생의 무게가 여전히 떠나지 않은 몸에 전이 중인 거로구나. 깊이가 재어지지 않는 우물같은 꼬리의 마음이.

생존의 본능이란 참 무자비한 것이다.
감전의 실체는 이 라쇼몽적 깨달음이었오.

꼬리여 꼬리여.
나에게 있었던, 나에게는 없을 꼬리여.

나는
기어이
그 강을
건넜습니다.

그녀가 필요하다.

그녀가 필요하다. 그녀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아무 정보도 없이 서울 김서방 찾듯 카메라 하나 둘러 메고, 이리 저리 그녀가 있을 만한 곳을 다녀보았다. 그녀를 찾지 못했다. 대신, 곳곳에서 꽃을 만났다. 봄이 오지 못한 이 땅에,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필 보라빛 꽃들이었다.

kwanak1
kwanak2

거리에서, 집회에서 그녀를 만났다. FTA가 억지 표결되었던 날에도, 그녀는 현장에 있었다. 최루탄이 아니라 물대포가 아니라 진짜 대포를 쏴서라도 막아야 했던 끔찍한 표결이었지만, 의회 표결의 무거움 앞에 희망의 색은 바래져 있었다.

바보같이 분당서 여의도까지, 때론 광화문까지 매일매일 출근부를 찍으며 집회란 것이 그 미친 인간들을 멈추게 해 줄 수 있을 거라 믿을 수 없었지만, 믿기로 했다. 믿는 것 외엔 아무런 방법이 없어서. 하지만, 말이 되든 안되든 의회 표결의 무게를 모를 만큼 순진하지도 않은 나이였다.

믿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의회에서 표결을 했다는데, 그걸 엎다니. 이젠 끝났다. 그래도, 나는 잘 살아야지. 살아 남아야지. 하지만, 어김없이 발걸음은 광화문을 향했다. 그저 관성이었겠지.

하지만, 그 날. 마이크를 잡은 이정희 “여러분, 우리들이 이렇게 함께 하면 바꿀 수 있다는 거 아시죠?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저 사람들 밤잠 못 자게, 간담 서늘하게 해야 한다는 거 아시죠? 그래서 싸인 못 하게 할 수 있다는 거 믿으시죠?”

믿지 못했다. 하지만, 이정희가 나에게 묻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네~~~~” 네… 믿지 못하는데, 믿게 만드는 당신을 믿습니다.

집회에서 수시로 봤던 이정희 의원을 정작 관악구에서는 한 번도 못 만났다…관악구는 관악구를 발전시킬 그 어떤 분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4년 희망을 박탈당한 대한민국엔 이정희가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그 누구보다 이정희가 필요하다.

까치 선생

ka

눈 펑펑 아침, 탄천의 기품있는 까치 선생.
홀로 딛고 설경 내려다 보시는 계신 모습이, 어쩌나 고아하시던지.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