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별

갑작스런 이별 통보를 받았다.
’8월 31일까지만 영업’

1주 일의 살벌했던 강행군동안 가장 많이 떠올랐던 숯느님을 마침내 영접하러 청계산에 갔는데, 입구에 붙어 있던 안내문.

그래도 찜복을 입고 서성이는 몇 분이 계시기에 카운터에 물어보니 다행히 오늘까지는 불와 꽃탕을 빼고 저,중,고온 가마로만 마지막 운영을 한다고 한다. 메르스 때문에 운영이 많이 힘들었고, 그 후로도 회복이 아니 되어 불은 화목토일만 나오고 12시까지만 운영하는 특단의 조치까지 나왔지만, 설마 문을 닫을 줄이야. 상상초월의 사태. 제대로 맞은 뒷통수였다.

10년은 안되도 족히 다니시 시작한 걸로 따지면 7,8년은 될 것이다. 특히 지난 몇 년간 매주 한 번의 숯느님 영접은 고정 스케줄이었고, 기나긴 한 주를 끊어내는 힐링의 분기점이었다.

벌써 찜을 마치고 떠나는 사람들은 삼삼 오오 모여서 이별의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어디선가 다시 보겠지요. 그래 여기는 이런 곳이었다.

내가 이 사업을 하면서도 여기 오는 손님들이 그렇게 싫었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어. 야간 취로 알바생으로 생각했던 그 분이 바로 숯가마 사장님이셨다. 머리는 하얬지만 제법 깔끔한 외모에 잔잔한 근육으로 흰 난닝구 바람으로 열쇠를 내어주곤하셨다. 이별의 말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장님은 저렇게 말씀하셨다. 아주 지긋지긋했다는 듯이. 나도 그 중에 하나였을까.

나는 샤워를 하고 뜨거운 탕에 들어가 몸을 덥힌 후,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찜질을 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고온 가마에 들어가서 숯느님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가마에 들어가 타월을 뒤집어 쓰고 있는 일이 그렇게 애로틱한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송글송글 솟아나는 땀에는 분명 내 몸에 침투한 숯느님의 에너지와 내 속에 있던 무언가가 진하게 결합되고 뒤섞여 나온 에로틱한 결과였다.

뜨거운 열기에 가마 천장에 발라놓은 흙더미 몇 개가 후드득 떨어졌다. 마치 마지막 날의 맞춤형 세러모니이기라도 한 양.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계곡 위에 펼쳐진 평상에 타월을 펼쳐놓고 대자로 눕는다. 평상 옆 나무에 두 발을 올려놓기도 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드리워진 나뭇가지 사이로 밤하늘을 보면서, 밤의 공기로 내 몸에 가득한 숯의 열기를 식히는 시간. 아무도 없고, 가끔씩 저 편 도로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에도 무심해진다. 난 여기서 듣는 계곡의 물소리를 또 사랑했다.

고루고루 속까지 익혀진 내 몸에서 뜨거운 김이 솟아오른다. 토해내는 숨으로는 내 몸의 나쁜 것들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 특히, 공기가 차가워지는 10월 이후에는 급격한 온도차에 나만의 무아지경은 더 깊어진다.

언제가 무척 힘이 들었을 때, 여기에와 대자로 누워 뜨거운 몸을 눕히고 검은 하늘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 무슨 일이 생겨도 여기에 와서 이럴 수만 있다면, 난 괜찮을 거야.

실제로 그렇다. 숯을 쬔 다음 날은 나쁜 기운은 쏙 빠지고 뭔가 다른 에너지로 꽉 채워진 맑은 느낌. 그게 하루 이틀은 갔다. 아픈 목도, 배탈도, 감기도 다 숯가마에 가서 나았다. 그래서 아무리 피곤해도 힘들어도 숯가마를 믿고 있었다.

업무도 참 많이 했다. 그렇게 텅 빈 마음으로 어둠 속에 누어있으면 어느새 복잡했던 문제들이 단순하고 또렷하게 다가왔다. 생각하고자 하지 않았던 아이디어들, 그려볼 기획들, 써 볼 특허들, 연결하면 좋을 사람들, 시도해 보고 싶은 일들이 몽글몽글 솟아나서 여기 청계산에서 난 참 많은 메모를 해가서 실행했다. 메모는 오타투성이였지만, 여기서 시작된 아이디어는 허튼 것이 없었다.

숯을 쬐며 이어폰을 꼽고 신형철의 문학 이야기 팟캐스팅을 듣는 시작도 사랑했다. 열기와 땀과 몽롱한 졸음 사이를 가로지르는 신형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 명징한 논리를 그렇게 나른한 상태로 듣고 있는 게 좋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를 한 꺼번에 누리는 보석같은 시간이었다. 이제는 신형철도 팟캐스팅을 멈췄고, 청계산 숯가마도 문을 닫는다.

차가 없었을 때는 복잡하게 분당서 신분당선을 타고 계단이 유난히도 높은 청계산역에 내려 잘 오지도 않는 버스를 갈아타고 또 한 참을 걸어서도 꼭 왔다. 갈 때는 더 문제였다. 아슬아슬하게 몇 대 안 남은 버스를 잡기 위해 뛰어가곤했다. 갑자기 폭설이 내렸던 어떤 금요일밤이 기억이 난다. 그런 날에 왜 집에 안가고 또 숯가마에 왔을까. 눈이 내리는 조용한 풍경을 뚫고 버스에서 내려 소복소복 눈을 맞으며 간 숯가마.

근데 그 날 유난히 불이 좋았다. 불의 상태가 말이다. 아주 빨갛고 세차게 활활 타올랐다. 게다가 사람은 세 네명이 될까 말까. 아줌마들 틈에서 매번 자리 확보 신경전을 해가며 전투찜질을 하던 나로선 그 날의 기억은 천국이다. 밖에서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난 조용히 뜨거운 숯을 쬐고 앉아있다. 그리고 가끔씩 밖에 나가 내리는 밤눈을 바라보며 몸의 열을 식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떠올리면서.

반대로 촐촐히 봄비 내렸던 지난 어느 봄날엔 나무 바닥에 누워 그대로 내리는 비를 맞고 누워있기도 했다. 해방의 클리쉐한 비주얼. 근데 클리쉐건 뭐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톡톡톡 살갗을 두드리는 봄비가.

물론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내놓은 안경이 없어져서 주인을 대동하고 난리치고 다 숯가마를 다 뒤집어 엎은 적도 있다. 30분 쯤 후에 어떤 아줌마가 와서 다른 안경을 가져갔다며 바꿔줬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 날, 너무 잘 된 일이라며 기쁨을 나누는 그 분들 사이에 끼어있는 게 무척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조용히 앉아서 끝까지 숯느님 영접을 마쳤다. 그 후 몇 달은 그 분들 대화가 들려오는 것이 계속 힘들었다.

숯의 효능에 대한 간증은 지난 몇 년간의 에버그린 토픽이었다. 숯으로 암치료하신 분, 갱년기를 이겨낸 분, 교통사고 후유증을 고치신 분 등등. 실제로 빡빡 머리 민 깡마른 암환자분들도 꽤 뵈었다.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숯가마로 출퇴근하시는 분들.

숯의 최고의 경지는 이런 거다. 숯을 많이 쬐면 피부가 다 타고 일그러는데 그래도 계속 쬐면 거기서 새살이 돋고 아픈게 싹 낫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픈게 없으면 그렇게 까맣게 올라오지 않는단다. 숯은 이걸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으로 나뉜다. 난 그 경지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다 타서 새까매진 다리며 등에 불 쪼이시는 고수 분들은 꽤 많이 봤다. 그 분들 새살은 다 올라오셨을까. 아픈 것도 싹 다 낫고. 여하튼 이건 숯가마에선 사순설과 부활절과 비슷한 바이블 프로세스다.

특히나 힘들었던 건 자리싸움이었다. 골수 아줌마들이 서로 패를 지어 자리를 맡아주고 나같은 독립군에게는 좋은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 분들과 싸울 엄두따위는 내지도 못하는 나는 항상 가마 끝자락에 행여나 남의 자리 침범할까 쭈그리고 앉아서 간신히 불을 쬐었다. 그러고 있으면 가끔씩 인심쓰듯 가면서 자기 자리를 내 주는 분들도 있었고, 좋은 자리가 나서 앉으려고 하면 쫓아내는 분들도 있었다. 기가 약한 나로선 당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 일이다. 작년 부터는 사람들이 줄기 시작하더니, 메르스때는 나도 발을 끊었고 다시 가기 시작할 때는 사람이 확 줄어 있었다. 난 쾌재를 불렀지만, 불 나오는 요일이 따로 생기고 영업시간이 줄고 그러니 사람들이 더 빠지는 걸 매주 체감하다 보니 호황이라 자리 싸움했던 때가 그립기도 했었다. 그러다 이제는 문을 닫는다니…

마지막 날이라 그런가. 사람들은 거의 다 빠지고, 사장님은 대자로 누워 핸드폰에서 음악을 트셨다. 그런데 이게 왠걸. 플레이리스트가 예술이다. 씨네마 파라디소 느낌의 귀에 익지만 이름 모를 고급진 감성 팝들이 이어진다. 가을에 딱 이런 음악이 어울리지 않아? 사장님 말씀. 네네 맘 속으로만 대답. 왜 여기 오는 손님들이 그렇게 싫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숯을 떠나기가 더더욱 싫어졌다. 나도 대자로 누워 하염없이 음악을 들었다. 다 말로 할 수 없는 무수한 추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시간들. 와이파이도 전화 안되는 고립의 순간. 추억의 모서리가 조금 무너진 느낌이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리운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문득 들려오는 …Oh thinking about our younger years. There’s only you and me. We’re young, wild and free….브라이언 아담스는 아니었지만.

그 풍경을 담았다. 사장님이 나즈막히 노래를 따라 부르신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액정 속의 풍경은 어디 살벌한 러시아 수용소 분위기다. 이런 곳에 나는 수 년을 묻었다. 조금 전까지는 몰랐는데, 아마 정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떠날 줄을 몰라서 정든 줄로 몰랐던 것일 뿐.

평소와 같이 11시가 조금 넘어 난 짐을 싸서 나왔다. 평소와 같이 신발장 열쇠를 내어주는 사장님의 얼굴을 외면하고 돌아서는 나에게 사장님이 말했다.

오늘 여기 마지막인 거 아시죠?

갑자기 마음이 확 풀어졌다.
네, 너무 …너무 아쉬워요. 저 여기 정말 몇 년을 다녔어요. 여기서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저 여기 정말 좋아했어요.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렇게 난 청계산 숯가마의 맨 마지막 손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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