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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August, 2014

홍상수스러운 여름, 토요일 밤.

광화문 – 종3 – 인사동. 이 동네만 오면 종종 홍상수의 영화 한 장면같은 상황들이 연출된다. 2014년 8월 9일(토) 한 여름의 꿈같았던 저녁도 그러했다.

# 광화문

야만의 시대에 ‘당연’은 지난한 투쟁의 대상이 된다. 그동안 문명은 무엇을 쌓아왔던건가. 우리가 쌓아온 것이 아무리 보잘 것 없다해도, 최소한의 당연은 공유해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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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 사람들이 저래야 해요? 선배는 무거운 얼굴로 광화문의 하늘을 올려다 본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는 귀척을 했고, 선배는 폼을 잡았다.

# 종3 횟집

아줌마가 연하 아저씨 홀리는 스킬이 정말 대단했다. 배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한 점 거침없고 명쾌한 대시였다. 명화 아래의 중년의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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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욱겨 죽겠단다… 이렇게라도 웃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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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웃음과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야외 테이블로 이동…
하자마자 바르셀로나에서 왔다는 남자 넷이 치렁치렁한 복장을 하고 마술처럼 등장해 기타 연주와 함께 떼창을 시작한다. 야외 테이블이 늘어선 허름한 종3 뒷골목을 알람브라 어디메쯤으로 돌연 변신시킨다. 음악의 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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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낙원상가 뒷골목이 황홀하게 물이 좋아서, 선배에게 내가 너무 강북을 무시했다며. 지나치게 강남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속죄한 순간 …패턴이 보이고, 패턴이 보이니 이유가 보인다. 태어나서 남자 쌍쌍이 지나가는 모습을 가장 많이 목격한 날~ 버스 몇 대에서 내린 분위기로 끝도 없이 쏟아져 내려간다. 스타일들은 죄다 청담동 코어 1%. 몸관리들도 어찌나 훌륭하신지 다들 봉긋봉긋. 안구 정화의 희열과 소수자(?!)의 비애가 교차했던 토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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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커피빈도 죄다 남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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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귀퉁이엔 아직 내가 기억하는 낙원상가 뒷골목의 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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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

인사동의 야심한 밤은 버스킹 아해들이 접수했다. 홍대에서나 보던 애들을 가게들이 문닫은 늦은 인사동 메인 스트릿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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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취기가 올라 맥주 한 잔을 더 하자던 선배는 길을 잃고 헤맨다. 골목 골목을 헤매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마치 동화처럼 술집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던 그룹이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반갑게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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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에 대한 걱정과 무기력한 현 상황에 대한 북받침. 그래도 조크하고 웃고 진저엘을 마신다. 집회 복장으로 요넥스 배드민터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오신 분을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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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안해룡 감독님
부디 감독님의 벨이 큰 소리로 울리기를….두 번 울리기를. 우리 모두에게 들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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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광화문으로

다시 종로까지 걸어왔다. 12시가 넘은 시간에 광화문 이순신 장군상 앞을 삼 천배 신도들의 검은 그림자가 줄지어 걷고 있었다. 맨 앞에 사람이 두드리는 목탁소리가 어둠에 잠긴 광화문 광장에 낭창하게 울려퍼졌다. “이건 정말 홍상수스러워요.”

선배는 유족들이 밤을 지새울 텐트로 넘어가고 난 세종로 주차장에 맡겨 놓았던 차를 몰고 그제서야 겨우 나의 밤 속으로 진입했다. 밤은 계속해서 깊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