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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December, 2011

한 해를 보내며

잠과 싸운 한 해 였다. 그리고 길이 꺾이는 곳마다 쉼없이 NO를 외쳐야 했던 한 해였다. 촛불을 들었고, 촛불처럼 흔들렸다.

1. 불면

1주일에 15시간 정도를 자고 나서도, 내 몸은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별로 살아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사고는 극으로 치닫고, 머리 속은 몽롱하고, 머리로 해야지라고 생각한 것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내일 당장 회사를 그만 두고, 어디 어두운 곳에 쳐박혀 수면제를 먹고 쓰러져버리자. 검은 벽천장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생각하다, 또 기계적으로 셔틀을 타고 회사를 가서 일을 했다. 술을 먹으면 필름이 끊기고, 눈을 떠 보면 엉뚱한 곳에 와 있기도 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미련하게 버티다 몇 달이 지나서야 겨우 병원을 찾아 수면제를 처방받고, 조금씩 정상의 사이클을 찾는 동안, 난 몸과 나의 관계를 생각했다. 더 이상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식으로 연명할 수 없다는 걸 겨우 깨닫게 되었다. 슬프고도 아쉬운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친숙해져버렸고 내 삶의 중요한 것들을 만들게 해 준 패턴을 -그것이 비록 모범적이지 않은 것일지라도- 놓아야 한다는 것. 불면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내 몸이 달게 받아야 했던 힘든 벌이었다. 그래, 난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다. 그리고, 젊었을 때 해냈던 것과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어려운 질문이 남았다. 2012년의 숙제다.

2. No

아니야. 안돼. 못해. 가지마. 만나지 마. 끊어, 짤러. 그래서일까? 올해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NO일 것이다. 그 무엇, 누구에게보다 우선 나 자신에게. 왜 그렇게 NO만 해야 했을까? 나는 대체 어떤 가능성을, 어떤 희망을, 어떤 미래에 등을 돌린 것일까. 가장 무서운 가정은 ‘그저 적당히 편히 머무르고자 함’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최소한 그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나는 내가 외쳐야 했던 NO의 의미를 해석하고 또 해석했다. 분명히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NO가 풍기는 부정의 기운에 후달렸다.

그러다, NO라고 하는 사람은 지키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에게도 소중한 것이 생겼구나. 그거였어. 그 단순한 거였어. 심하게 YES를 외치며, 지옥 끝까지라도 내려가던 때가 있었다. 잃을 게 없던 시절이었고, 그 시간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웃음이 나왔다. 겨우 이제서야? NO라고 했을 때,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맑고 푸르고 조용한 바다를. 2012년에는 그것을 지키기 위한 더 많은 YES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3. 촛불

MB 1년차의 *극도의* 스트레스는 무기력과 외면으로 이어졌고, 그것을 깨운 것이 트위터와 나꼼수였다.

처음엔 트위터가 너무너무 싫었다. 그러다, 알아야 한다는 업자의 불안감과 의무감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뭘 써야 될지도 모르겠고, 어색하기만 했지만, 닥치고 쓰다보니 뭐 또 쓸만도 하고 재미가 있기도 했다. 세상 돌아가는 다른 축이 보여, 신기하기도 부담스럽기도 했다. 여전히 그렇지만, 트위터가 없었다면 올해 그 무수한 분노의 순간들…나와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그렇게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을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심지어 분노를 창작력으로 승화시켜, 바쁜 나를 위해140자로 요약해 주기까지 하니.

나꼼수를 한 번도 방송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저 사람들은 싸우고 있는 거잖아. 자기꺼 다 내놓고 계란으로 바위치고 있는 거잖아. 최전선에서 죽여버리고 싶은 작자들에 맞서 맨몸으로 싸워는 이들이 웃겨주기까지 하니 고맙지 않을 도리가 없다. 뭉클한 순간이 많았지만, 그럴 때 감상적이 되면 꼼수스럽지 않은 것 같아 대신 거리로 나갔다.

나꼼수보다 더 웃긴 건 정치였다. 개콘보다 더 웃겼고, 썩은 내가 풀풀 났다. 속이 끓고 머리가 아파서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고 소리라도 치고 오면 그래도 그런 날은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바꾸고 싶었나? 그냥 지극히 개인적인 속풀이였다. 저렴한 테라피 세션이었다. 하지만, 분명 2012년의 촛불은 다른 의미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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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운전이 제법 익숙해졌고, 영화와 책을 거의 보지 않았고, 뭘 해도 안착이 되지 않는 어수선한 한 해였다. 이런 해를 보내고 나면, 이 시점에 드는 기분은 한 해의 지나감에 대한 안도감 뿐이다. 의지와 무관하게 슬금슬금 희망이란 것도 피어오르게 된다. 마침 다가온 새해는 실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믿고 싶은 시간의 리셋 주문. RESET.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가득 충전시키고, 새로 시동 걸어본다. 부릉부릉~

2011 a few photos

정말 중요했던 순간은 찍을 수도 말할 수도 없구나. 그래도…내게 와 잠시 머물렀던 시간들.

1월

Vegas/Hawaii

처음 가 본 미국. 끔찍했던 라스베가스라는 도시.

아무 생각없이 스탑오버했다 로망으로 남은 하와이. 오감으로 느껴보지 못했던 천상의 ‘날씨’와 미지의 원시림.

2월

Long Long Winter

롱롱 윈터. 길었던 2월의 밤들.

3월

Days of cookies and cakes

나날이 빛을 발했던 뎀비의 케이크와 쿠키 신공. 뎀비 어시로 사진만 찍었다.

4월

Illumination

세상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5월

Air

술집 창을 열고, 하늘을 보며 마시기 좋았던 날들.
잔차 골프 연애 그 무엇에도 좋았던 날들.

6월

Keith & Rose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던 계절,
내 평생 소원이었던 키스자렛의 솔로 콘서트

7월

Rainy Days

지리한 우기, 빗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치고 싶었다.

rain

8월

Summertime

멍하니 여름이 갔다. 기억 나지 않는 시간.

그런데, 어디선가 꼼지락꼼지락 소리가 들렸다.

9월

Riding

비가 그치고, 자주 한강으로 나갔다. 가만히 앉아 해가 지는 걸 보고 돌아왔던 날들.

10월

Bye bye

블룸앤구떼가 문을 닫고, A스토리도… 한 시절의 끝

11월

Bangkok

8번째 태국 여행.

12월

Candle

촛불을 들었다. 촛불처럼 흔들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