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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타 – 면벽수도나 고행이 아닌 현실에서 얻게 된 큰 깨달음

지난 주말, 내 인생에 몇 번 없었던 큰 깨달음을 했다. 선악과를 베어먹은 이브의 순간. 유난히 와닿지 않았던 <기생충>이 최고의 걸작으로 등극하는 순간. 내 인생에 모호했던 모든 안개가 걷힌 개안의 순간이었다.

하긴 뭐 아줌마야 쎄고 쎘으니까 다시 구하면 그만이긴한데…그래도 여러모로 아쉽죠. 상당히 괜찮은 아줌마였거든. 그 양반이. 집안 구석구석 관리도 잘하고.
그리고…매시에 선을 딱 지켜.
내가 원래 선을 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데.

영화를 봤을 때 이 말이 뭔지 몰랐다. 이제야 난 눈을 떴고 ‘선’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발견 – 죄와 벌

어떤 사람이 벌을 받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흠을 잡자면 없을 수 없겠으나 받게 된 벌을 야기할 만한 죄가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죄와 벌 사이를 연결하는 필연적인 죄의 입증과 벌의 근거가 모호했다.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해 관련자들에게 확인하기 시작했으나, 그들의 답은 이상했다. 논리적이지 않았고, 심지어 핵심 사안과 무관한 자잘한 에피소드로 변죽을 울렸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일단 함께 분개했다. 하지만 곰곰히 집에 와서 그간의 모든 정황들을 종합했을 때 내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선 넘은 죄.

위로도 넘었지만, 옆으로도, 아래로도 모두 넘은 죄. 선넘긴 당한 자들의 분노가 합쳐져 각 인물을 찢어붙인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의 포스터같은 기묘한 장면을 연출해 낸다.

사람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자신의 선을 넘어온 사람을…그리고 언젠간 찌른다.

이상한 여자

이상한 여자였을 것이다. 또한 위태로운 여자였을 것이다.

선을 향해 겁없이 걸어가는 여자. 때로는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기도 하는 여자. 하지만 잠깐 넘었다 아주 넘어가지는 않고 이내 다시 돌아오는 여자.

선에 대해선 장님이면서도 선을 완전히 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눈치는 있었기 때문이다. 선 넘은 줄은 몰라도 남 싫어하는 일은 피하고 보는 성격때문이다. 하지만 선은 못봤다. 그래서 항상 선을 터치할 위험을 내포한 시한폭탄 같은 사람이었다.

선을 못 보는 사람들이 선 대신 보고 있다고 내세우는 것은 본질이다. 회사 생활에서는 그것은 주로 일이 된다.

난 모르겠어. 내가 그랬던 이유는 오직 하나. 일을 잘 하기 위해서, 일이 잘 되게 위해서였어.

나도 그랬다. 선따위는 아몰랑 난 그것을 이루고야 말겠어 라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타인의 선따위.

하지만 사회 생활에서 일을 잘 하는 것, 일이 잘 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의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선이 있기에 인간 사회의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이 정글같은 세상 속에서 나를 보호하고 너를 보호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왠지 당황해 하며 나서서 일을 수습할 때가 있었다. 자기와 관련없는 다른 사람의 일임에도 말이다. 그들은 일을 바로잡기 위해, 혹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선을 향해 돌진해 가는 나를 봤다. 그들은 선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절대로 선을 넘는 파국이 빚어지길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선으로 달려가는 내가 조마조마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선을 넘을 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내가 보호받지 못한 순간을 떠올려 본다. 선넘김을 당했을 때다. 그런 때조차 나는 선을 넘은 사람이 제시한 사안의 반박에 집착했고, 길을 잃었다. 선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순간에 해야 했던 일은 내용의 반박이 아니라, 그가 나의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이었다.

– 아니야, 난 그렇지 않아. (x)
– 너 지금 선 넘었어 (o)

누군가의 지름은 넓고, 누군가의 지름은 좁다.
하지만 아뭏튼 그 선 근처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봉준호

이제 나에게 기생충은 계급의 문제라기 보다 선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느껴진다. 선을 인지한 자와 선을 인지하지 못한 자. 선을 인지하지 못한 자가 선을 인지하게 됐을 때의 비극. 알몸으로 선을 넘나든 자신을 비웃던 사람들을 향한 모멸감과 분노감. 부끄러움 대신 칼을 든 이브의 유혈 낭자한 복수.

선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에 나는 송강호가 왜 그리 분노하는지, 이선균의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 캐치하지 못했다. 그 모든 순간들에 ‘선’이라는 메타포를 대입한 순간 모호함은 해소되었다. 이제 그것을 알게된 나는 이 영화를 ‘선’의 영화로 정의한다. Moment of clarity.

선은 어디나 있다. 내 위 뿐만 아니라 내 옆에도, 또 아래에도.

그리고 대배우에서 자잘한 일을 맡은 스태프 하나 하나 누구에게나 깍듯하다는 봉준호 감독이야말로 이 선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위 뿐만 아니라 옆, 아래의 선까지도 모두 지켜내는 방식으로 선의 계급성을 와해시키는 혁명의 삶을 사는 중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송 : 그래도 사랑하시죠?
이 : 어허허허허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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