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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마마 : 아줌마, 태양을 향해 쪼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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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첫 장면부터 너무너무 웃겼다.

테녹과 훌리오
멕시코의 아이들.

1주일의 시간 따위, 아무 것도 안 하고 보내도 문제될 일 없고
여자친구랑 섹스나 하고
여자친구가 떠나니 수영장의 점프대에 나란히 누워 마스터베이션이나 하고
잠수 시합 따위나 하며 방학을 떼우는 태초의 낙원 속 아담들.

세상은 가볍고, 현실이란 진부한 거고, 자기들만의 규칙을 만들어가며, 지들이 다 큰 남잔 줄 안다.

이 아이들에게 많은 건 ‘시간’이다.
그 시간에 포함되지 않은 건 ‘무게’다.

그래서 나이 먹고 남편의 그늘 속에서 주저주저하는 줄리아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농을 걸며
‘천국의 입’이라는 있지도 않은 해변으로의 여행을 제안할 수도 있다.

몸매가 듀금이라 눈에 띈 어리버리 아줌마를
잠깐 장난끼가 발동해 심심풀이 땅콩으로 가지고 논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가벼움.

그랬기 때문에, 영화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은
두 아이와 한 아줌마가 펼치는 Threesome 섹스신이 아니라

한없이 수줍기만 하던 이 아줌마의 진짜 내공이 드러나면서
이 건들건들 사내 흉내를 내는 아이들이 허걱~ 한걸음 주춤 물러나게 되고
이들의 역학관계가 180도 뒤집어지는 과정이었다.

아무리 팔팔하더라도 치기 정도론 맞장뜨기 난해한.

“너희들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봤니?”

주도권은 아줌마에게 넘어가고,
아줌마의 규칙을 만들어 이들에게 선포한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에너지에 넘쳐서
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른 줄리아의 눈에는 한없이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줄리아가 정말로 매력적인 캐릭터인 이유는
그 무거움 속에서
그 무거움을 모두 떠안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한없이 가벼웠다는 점이다.

인생은 파도타기
바다에 그냥 몸을 맡기렴

가족이니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니 싸그리 빼앗겨 고아같은 존재로 버려지고
말기암이어서 살 날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남편이란 인간은 딴 여자랑 바람이나 피우는데도

그녀는 두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고
털털거리는 차 안에서 인생을 이야기하고
그런 와중에도 전화를 걸어 남편의 식사와 세탁물을 챙긴다.

그렇게 다 하고 나선

벌거벗은 채로
천국의 입에 혼자 남아
한없이 푸른 바다에 몸을 맡기고
태양을 향해 생에 대한 원망이라곤 한 톨도 섞이지 않은 해맑은 웃음을 웃는다.

그녀에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데도
오히려 점점 더 첫부분의 두 아이처럼 한없이 시간 흘리는 방만 모드가 되어갈 뿐
쫓기는 구석이 없다.

영화 첫 부분의 아이들의 모습과 줄리아의 모습이
영화 마지막에선 서로 교차되는 느낌이랄까.

이 여행 이후로 삶은 두 아이에겐 더 이상 가볍지 않아졌고
그 지점에서 그들은 다시 어른으로 커나간다.

한없는 가벼움으로 부정했던 그 무거움의 세계 속으로-

무엇과 무엇을 바꾸어가며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여기도 질량 보존의 법칙이어서
잃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때론 잃기 싫은 것을 반납해 가며 얻고 싶지 않은 것을 떠안기도 해야 하지만
거기에도 무슨 뜻이 있을거고
몇 년 더 지나고 열심히 열심히 자라나다 보면
그들도 줄리아의 ‘무거움을 딛고 선 가벼움’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겠지.

나도 앞으로 며칠간은 마음 속에 줄리아를 담아봐야겠다.

가볍게 가볍게
첨벙첨벙

이렇게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태양을 향해 씨익-

  • 멕시코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해
    이렇게 활기찬 삶을 살고 있잖아.

  • 셋이 같이 술 먹는 장면
    바다가 멀지 않으며 나무들이 제멋대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야외 술집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데낄라 원샷~! 또 샷, 샷, 샷

    시큼한 레몬에 커피가루와 설탕을 으깨듯 부벼 빨아먹는 그 맛이란 이이이이이……

    와인이니 칵테일이니에 빠져서리 데낄라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런…
    잊고 있었던 옛 애인에 대한 상념이 치밀어 오르듯 데낄라에 대한 그리움
    안돼겠다. 아무리 일이 넘치더라도 조만간 데낄라 먹을 수 있는 술자리를 섭외해야지.

  • 루이자 : 넌 클리토리스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해
    테녹 : 무슨 놈의 친구가 늘 그렇게 숨어만 있죠?

  • 그래도 가끔은 줄리아처럼
    빈 방에 혼자 남겨져 꺼억꺽 숨죽인 울음을 울어야 할 지도.

    때론 대책없이 까발겨지는 줄리아의 고독, 8월의 크리스마스 보다는 현실적이다.

  • 아모레스 페로스에서 형수와 사랑에 빠지는 옥타비오는 한 눈에도 매력적인 멕시코 남자였다.
    푹 패여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이 특히 그랬다.
    그런데 훌리오는 …아, 진정 그가 그 옥타비오란 말인가. 이렇게 키가 작았나? 이리 어렸나? (와르르..-_-;;)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DNA에 남미의 뜨거운 태양과 쾌락이 새겨진 매력남이다.
    알모도바르도 그를 알아봤나보다. 차기작 La Mala educación(Bad Education)에서 주인공 발탁
    언제 찍어, 언제 개봉하나…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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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메멘토 : 메멘토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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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N : 2004.1.17 10:00 pm
4번째 본다. 가이 피어스는 아주아주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왜 메멘토에 그토록 끌렸던 것일까?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어느 심심하고 괴롭던 날 아무 기대없이 시간 떼우기용으로 빌려왔다가 앉은 자리에서 꼬박 밤을 지새우며 연속 2번을 더 돌려봤던 그 때부터. 영화가 내게 던진 질문은 그토록 강렬했다. 인간의 한계……..그 한계를 부숴보려는 한 눈 먼 인간의 집요하지만 헛된 발버둥…그 행위의 위험성…그 행위의 불가해한 가치…..

처음엔 ‘기억상실’이라는 모티브 때문이었다. 기억을 잃은 세미와 레너드는 알 것 같은 사람에겐 텅 빈 블랭크의 상태에서도 미소를 던진다. 전우주적 어둠 속에서 애쓰는 존재의 무의미한 손짓. 그 미소가 가린 것은 두려움이며 어떤 따스한 손도 건져낼 수 없는 지독한 고립이다. 망각은 주변으로부터 또 스스로의 생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 끝도 시작도 없는 시간의 블랙홀 속에 홀로 던져진 존재. 기억에 대한 콤플렉스에, 존재의 한계에 집착하는 이는 결국 거기에 닿을 수 밖에 없다.

존재의 영속성…….

어렸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 앞에도 삶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내가 죽은 후에도 무언가로 다시 태어날지 모른다고. 윤회 뭐 그런 이야기. 그건 내게 참 이상한 이야기였다. 내가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무엇이 될까가 궁금해지기보다는 이 전의 내가, 이 후의 내가 과연 나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하는.

결론은 그건 내가 아니라는 거였다. 이 이전의 삶이 지금 나의 삶 속에 망각되었듯 앞으로의 삶도, 그런 것이 있다해도 지금 유진이란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이렇게 살아온 나는, 이런 기억을 가진 나는, 결국 나는 이 생 이후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건 나라도 내가 아닐테며, 신의 섭리에 의해 나와 어떤 끈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나로선 결국엔 나와는 상관없는 존재라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어. 그 사실은 극복할 수 없는 거라구…아무리 이렇게 뭔가를 끄적이고 남기고 돌이키며…영속하려 애써봤자.

나의 생은 여기에서 끝난다. 영혼이 있다해도 후세가 있다 해도 여기서 끝이다. 이.것.밖.엔.없.다. 레너드가 내게 준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기억을 왜곡시키면서까지도 그 한계를 벗어나보려 한 레너드의 집요함이야 말로 인간이 인생에서 자신의 한계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의미있는 인간적인 행위가 아닐까. 집중 집중 집중…펜을 찾아 메모를 해 침착해라 블라디미르 넌 아직 모든 것을 해 본게 아냐…

존재의 한계로 심장이 죄어오는 신경쇠약직전의 존재들이여 ……어떻게 이 생을 뛰어넘을래. 그냥 그렇게 있을래. 갖가지 종류의 마약을 섭취하며 그렇게 무심하게 받아들일래. 그걸 현명함이라고 부를래?

내가 좋아하는 장면

기껏 창녀를 불러다가 시킨다는 일이 와이프의 물건을 흩뜨려 놓아 달라는 것. 그는 최소한 자신의 this condition을 인지하고 있으며 (실은 모순이지만), 자신의 condition을 역이용해 찰나의 행복감을 붙잡아 보려 한다. 그의 와이프가 살아있을 때의 그 따스한 느낌을….헛된 발버둥. 하지만 착각마저 가공할 수 밖에 없는 절실함은, 그녀의 느낌을 다시 찾고 싶다는 그 마음은………

그리고 레너드는 그녀의 책, 그녀의 속옷, 그녀의 빗을 태운다. 스쳐가듯 끼어드는 기억의 플래쉬. 수증기 송골송골 맺힌 투명 비닐 속에서 후욱-하고 숨을 밷어내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 나 역시 태운 적이 있어. 하지만, 오해하지마. 레너드처럼 나또한 무언가가 부끄럽거나 쪽팔려서가 아니었어. 끝내고 싶었던 거야. 잔혹한 기억의 도돌이표 속에서 고통받는 그녀를 영원의 저 너머로 보내고 싶었던 거야. 너도 그런 적이 있니? 그만큼 절실하지 않다면 그러지 마. 웃기잖아.

그리고 나탈리, 캐리앤모스와 함께 밤을 보내는 그의 독백.

I don’t even know how long she’s been gone. It’s like I’ve woken up in bed and she’s not here because she’s gone to the bathroom or something. But somehow I just know that she’ll never come back to bed. I lie here, not knowing how long I’ve been alone. If I could just reach out and touch her side of the bed I could know that it was cold, but I can’t. I have no idea when she left.

나는 그녀가 얼마나 오래 전에 떠났는 지 조차 모른다. 그건 마치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그녀가 화장실 같은 곳에 있기 때문에 내 옆에 없는 것 같다는 느낌. 하지만 어떻게 난 또 그녀가 다시는 이 침대로 되돌아오지 않을 거란걸 알게 돼. 나는 여기 누워있지. 내가 얼마나 여기에 혼자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로. 내가 손을 뻗어 그녀가 있던 자리에 손을 댈 수 있다면 그 차가움을 느낄 수 있을거야. 하지만 난 할 수 없다. 난 그녀가 언제 떠났는지 알 수 없어.

I know I can’t have her back, but I want to be able to let her go. I don’t want to wake up every morning thinking she’s still here then realizing that she’s not.I want time to pass, but it won’t. How can I heal if I can’t feel time?

난 그녀가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아. 하지만 난 그녀를 보낼 수 있길 바래. 나는 매일 아침 그녀가 여전히 여기에 있다고 느끼고 그 다음 그녀가 여기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일어나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나는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래. 하지만 시간은 흐르지 않아. 내가 시간을 느낄 수 없다면 이런 나를 누가 치유해 줄 수 있지?

누가 이런 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아무리봐도 레너드는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를 닮았다. 이름부터가 그렇지만, 데커드 역시 4년이란 시간의 감옥 속에 갇힌 레플리컨트. 막판에 그걸 깨닫고 도망치지만 그의 결말은 영화에 나오지 않아도 예견할 수 있다. 뛰어넘을 수 없다. 뛰어넘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그녀, 바비인형처럼 아름답고 이제 곧 부서져버릴 숀 영의 손을 잡고 뛰쳐나간다.

레너드는 위대한 인간인가 어리석은 인간인가. 진실마저 왜곡하며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자 하는 그의 행위는 타당한가. 모랄이 재단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인간의 강함, 약한 존재의 위대한 행위가 펼쳐진다. 난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으로 레너드를 지켜본다. 그는 진다. 우리는 모두 진다. 하지만 아름답지 않아? 그의 몸에 새겨진 괴상한 문신들이야말로 인간의..인간이 남길 수 있는 진저리날 정도로 숙명적인 생의 기록이다.

10분과 60년의 차이일 뿐, 영원의 기억을 가진 자는 누구인가.
이 생이 끝나면 우리는 레너드처럼, 모두 잊는다.

이 영화는 내가 생에 대해 가지는 근본적인 두려움, 망각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나에게 죽음이란 망각이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하지만 죽음은 그 죽음에 대한 기억마저 삼켜버린다. 좋은 영화다. 잊을 수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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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연분,,,5살 차이도 가능해?

와앗 이거 정말 대박이다

황신혜, 안재욱 주연의 ‘천생연분’

어쩐지 삼실 친구들이 금요일날 떼로 몰려와서 “언니 이거 꼭 보세요” “언니를 위한 드라마예요~~” 읍소를 하더만
케이블에서 틀어주는 재방송 보면서 거의 섹스앤더시리 시즌 4 도입때만큼이나
자지러지고 뒤집어졌답니다.

찔리고 웃기고 얼굴 빨개지고 시껍하고 씁쓸하고
어찌 이리 나이 든 노처녀 심사를 잘 표현해 내냐고요….

예를 들어, 나보다 어린 여자 후배들이 잘난 ‘사’짜 남친들 자랑을 해대니 황신혜 속으로

‘저것들을 그냥 죽여 버려?’

ㅋㅋㅋ

골때리는 노처녀의 5살 연하 잡기 해프닝,,, 천생연분.
잘 벤치마킹해서 하나 건져봐? ^^;;;

재욱 : 누나는 어떤 남자를 기다리느라구 여지까지 결혼을 안했어요?

신혜 : 왜 걱정돼냐?

재욱 : 그러니까 콧대좀 낮춰요

신혜 : 그건 싫어!

재욱 : 그럼 혼자 그렇게 사는거지 모..

신혜 : 난 이젠 나만 사랑해주면 됀다…나만 사랑하믄돼

재욱 : 그게 다에요?

신혜 : 진짜, 진짜야!

재욱 : 말은 그렇게 해도 정작 만나면 집도 있어야 하구, 차도 있어야 하구

신혜 : 집은 내가 모은 돈으로 사면 되는거구 차는 내가 있구 돈은 둘이 살면서 벌면 돼지!

재욱 : 난 왜 누나같은 여자를 못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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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nch Drunk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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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도로 몇 바퀴 심하게 굴러
그러고도 끄떡없이 집 앞을 지나쳐 가는 차에서
문득
떨어뜨려 놓고 간
풍금을 주어오는 것 만큼이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이벤트

사랑에 빠진다는 건
그런 일이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그래도 결국엔 일어나고야 말아
우리를 모두 황망한 도로의 먼지 구덩이 속에서
풍금을 들고 뛰게 하거나
끊어진 전화기를 들고 몇 백마일을 넘어와 깡패 두목 앞에서 큰 소리 치게 만드는 것일까?

접속이 될 듯 말 듯 하다 결국 비껴가고야 만 영화
하기야 부기나이트, 매그놀리아도 그랬으니.

잘 만든 영화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리스트엔 올릴 수가 없다.
뭐 그런가부다…하는거지.

그래도 폴 토마스 앤더슨의 다음 영화는 또 찾아보게 될 것 같고.

별 느낌없던 아담 샌들러의 놀라운 캐릭터 해상력을 감상할 수 있어 즐거웠다.

무엇보다 하와이

목에 알록달록한 꽃목걸이를 걸고 알로하~를 부르며….
한 점의 내일도, 무게도 없는 그 음악들에 취해
어스름 해변의 긴 모래사장을 오래오래 맨발로 걷고 싶어졌음.

버팔로 66이 다시 보고 싶어졌고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신화를
다시 한 번
진심으로 믿고 싶어졌다.

또라이에게나, 미친년에게도,
세상 천지 오갈 데 없는 슬픈 영혼에게도
사랑은 이루어진다고.

이 영화에서 사랑은
솔직해지는 거고, 비밀을 지켜주는 것이고
그리고 우스꽝스러움과 결핍을 사랑스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따뜻하게 웃을 수 있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 마법은.

그게 왜 그리도 어려운 걸까?

솔직해지기도, 비밀을 말하기도, 사랑스럽게 바라보기도, 웃을 수 있기도
…이럴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들이거나 연결불가능의 절대 친구들뿐이다.

성(性)을 전환하거나, 근친상간 수준의 모랄 해저드를 접수하거나.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길이란!

-_-;;;;

ps.
베리 이건의 대사
I have a love in my life. It makes me stronger than anything you can imagine

→언젠가 꼭 써먹고 말테닷!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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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

우연히 고석원의 영화 뒤집기라는 블로그에서 하재영이란 배우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여름 향기도 겨울 연가도 애마부인도 애견부인 안 본 나로선 그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분석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이 배우 딱 한 번 어린 시절 나를 떨리도록 감동시킨 적이 있었기에, 잊을 수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
언젠지 기억도 안나는 시절 MBC의 베스트 극장.

시골에서 벌을 치는 처녀치고는 꽤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과시하며 김혜수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드라마의 도입부엔 아무런 대사가 없었고, 대신 당시 TV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자막이 그녀의 신산한 삶에 대하여 감상적인 몇 줄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그들을 사랑했다’ etc., etc., 그런데, 거기서부터 뻑이 갔던 것 갔다. 실은 그 이후에도 TV 드라마에선 좀 파격적으로 드라마 내내 거의 대사가 없다.

줄거린 역시 신파. 공부도 잘하고 글쓰는 재주도 출중한 시골의 한 여자아이가 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공부도 글도 더 못하고 그냥 벌치는 처녀로 고향에 주저앉는다. 한편 재주도 떨어지고 공부도 떨어지는 부자집 친구는 서울로 유학가 십 몇년 후 이쁜 공주가 되어 그녀(김혜수)와 어린 시절 서로 애틋하게 좋아했던 남자를 데리고 나타나 결혼한답시고 고향에 컴백한다.

성장한 남자애가 김진만 이 아니라 조민기였고. 공주도 누군지 이름을 몰라도 기억난다. 김진만과 같이 호랑이 선생님에 나온 앤데. 으..고리짝에 본 건데 한 장면 한 장면 잘도 기억이 나는군. 결혼한다고 잔치 준비하는 쓸데없는 장면까지 생생히 기억이 난다. 비가 오방 내리던 날, 서울로 이사 가는 그 남자애가 어린 시절의 김혜수를 애타게 찾아오던 장면도 기억난다. 유진아 이런 건 좀 치우고, 좀 더 쓸모있는 것들을 담아 두면 어떨까?…

Anyway, 하이라이트는 어디냐면…
중간에 그가 차사고로 강물에 빠지는데, 김혜수가 첨벙 하고 강물에 뛰어들어 그의 생명을 구한다. 그런데, 어찌저찌하여 결국 그 남자는 그 공주가 구한 걸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 사건이 둘이 결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명백한 인어공주의 모티브인데, 탁한 물 속을 휘젓는 김혜수의 몸매가 멋졌다. 그 표정의 진지함은 김혜수 연기의 새로운 차원을 입증했다.

여기서 하재영은 몇 번 등장하지도 않는 신비의 사나이로 개를 끌고 딱 한 번 나타났다 사라진다. 구체적으로, 김혜수가 동네 아낙들과 냇가에서 빨래를 할 때 아주 잠깐 스쳐지나간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선 그에 대한 나쁜 소문이 흉흉했고,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다지 삐리리한 분위기는 없었는데.

그런데, 저 인어공주 사건과 서글프디 서글픈 결혼식 장면 후 드라마도 후반을 향해 치달아갈 즈음, 뜬금없이 저 두 사람이 무슨 헛간 (혹은 클리쉐스럽게 어디 물레방아??) 같은 데서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때 김혜수가 이 아저씨(하재영)에게 안겨있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지독히도 고독하고 세상과는 동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별 말도 없이 그렇게 서로의 육체에 의지하고 있는 풍경이라니.

맨 마지막엔 그 사람마저 도둑으로 몰려 잡혀간다. 사람들은 다들 모여 웅성웅성 그를 욕한다. 그럴 줄 알았지…물론 그는 범인이 아니었고 그의 알리바이가 되어 줄 수도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조차 못하고 그렇게 무기력하게 그를 저 멀리로 보낸다. 드라마는 그녀의 빈 손에 쥔 지푸라기마저 빼앗고 잔인하게 끝을 맺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던 엔딩이었다. 왜, 왜, 왜…………………저것마저 앗아가는거지. 저 아무 것도 아닌 허무하고 쓸쓸한 것 마저. 그녀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떠나보내야 한다. 꿈이고 친구고 애인이고 지푸라기고.

그렇게 만든 나쁜 PD가 바로 황인뢰라는 사람이다.

베티블루를 책으로 보면 (정확친 않지만) 이런 내용의 대사가 나온다.
“당신은 생이 나에게 등돌린 것을 알잖아요. 내가 원하는 건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는 걸 알잖아요. 그래서 내가 그걸 확인하려면, 그냥 뭔가를 바래 보기만 하면 된다는 걸 알잖아요.”

지금껏 한 번도 그 드라마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 한 기억이 없다. 이상하게도 내 주위엔 이걸 본 사람이 없어서…
아 그런데 하재영은 거기서는 아빠는 아니었지만, 역시나 말없고 미스테리한 연인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고석원님이 분석하신 하재영이란 이 묘한 배우의 스테레오타입은 거의 정확한 것 같다. 어쨌든 저런 우렁서방같은 남자에게 여자는 드라마 속에서나마 조금은 끌리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늘 저런 캐릭터가 어디에선간 필요해서 저 배우도 근근히 배우로 먹고 사는 것일까?

다행히도 그 이후로 이 배우가 연기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난 여전히 그 미스테리한 (‘아빠’가 아닌) ‘연인’으로 그 사람을 머리 속에 집어넣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는 슬프도록 분명한데, 사랑할 수가 없다. 다 빼앗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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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매(靈媒),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mudang.jpg22살에 죽은 아들이 영매의 몸을 빌어 꺼이꺼이 통곡으로 세상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다.

“내가 혼이란 말여…내가 혼이라는 게 말이여…어쩌다가 나 날아가야돼…
보고 싶은 것도 많고…하고 싶은 것도 많고… 너희는 살았으니까만은
난 억울해요..섭섭해요..
내 아버지 나하고 같이 묻어놔줘요…내 아버지하고…”

이승을 떠나는 서러움은 저토록 깊은가. 정말로 그런가?
…나도 저렇게 서러울까?

다큐멘터리를 보는 이유. 소재가 새롭든가 기존의 소재를 해석하는 시각이 새롭든가.

영화는 두 가지 점에서 모두 흡족하지 않다. 소재면에서 보면 그나마 ‘영매’라고 했으니까 조금이나마 매력이 있었지, 포스터의 영문 표기 그대로 ‘Mudang’이라고 했다면 아마 관객이 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그만큼 무당은 많이 봐온 소재다. 영화는 작가의 주관이나 시선을 가급적 배제하고 “~ 했다고 한다”는 식의 문장을 반복하며, 이 진부한 소재의 언저리를 빙빙 돈다. 너무 fact를 따라가기만 한다는 느낌이다. ‘기록’이라는 측면의 사료적 가치로서 인정하기엔 드라마가 너무 많이 개입되었고, 드라마를 이어가며 보기엔 각각의 내용들 간 일관성이 떨어진다. 너무 오래 찍었고, 너무 많은 것을 찍었고, 결정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영매는 의외의 지점에서 대박을 터트린다. 죽은 아들이 영매의 몸을 빌어 가족과 이별하는 장면같은 것.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슬픔과 해 보고 싶은 많은 것을 놔두고 이승을 떠나야 하는 어린 영혼의 서러움이 곡소리와 함께 스크린을 가득 메울 때, 전혀 가공, 연출되지 않은 다큐의 호소력은 정점에 이르러 관객들의 감정을 영화의 저 상황 속에 함께하게 한다. 이 때 머리는 완전히 판단 중지다. 다큐적 완성도야 어떻건 말건간에 나 역시 숨이 가쁘도록 헉헉헉 흐느끼며 무진장 눈물을 빼고 나왔다.

이렇듯 영화는 치열한 문제 의식이나 논리적/드라마적 완결성 대신, 그 소재에 깊이 천착한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몇몇 빛나는 수확들을 보여준다. 참 감독이 수고 및 고생 많이 한 것 같다. 박기복이란 분. 잘은 모르지만, 아주 순수하거나 고집 센 사람일 것 같다는…써니 언니한테 자문을 구했더라면 훨씬 더 결과가 나아졌을텐데… (언니라면 아주 잔인하게 그리고 세련되게 몇몇 포인트들을 잘라냈을 거야) 나오면서 그런 생각 쬐끔 해봤다. ^______^

언제나, ‘죽어 있다’라는 상태가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그 상태란 상상 속에서조차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나라는 존재의 무화일지도 모르고 이승의 업을 벗어던진 가벼운 영혼으로서의 나일지도 모른다. 뭔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쪽이든 한 가지, 그 상태는 아주 편안할 거라고 믿어왔다.

두려움은 언제나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넘어가는 변화 과정, transformation 에 대한 것이었다.

손목을 끊는다든지,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린다든지, 교통사고나 암이 개입한다든지, 여튼 괴로운 건 여기서 저기로 가는 데 끼어있는 거추장스러운 중간 과정이다. 몸 어딘가에 붙은 버튼 하나를 클릭하는 것 정도만으로 저 쪽으로 갈 수 있다면, 죽음이 이만큼 인간을 압박하진 않으리라. 그리고 그 버튼이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었다…

그런데 저 22살짜리 영혼의 서러움은….아무리 편해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그는 죽는 과정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가 서러워 울고 있다. 이승을 떠나기 싫어 발버둥치고 있다. 그게 새삼스런 충격이었다.

어떻게 내 주변에는 죽음은 두렵지 않으며, 이 생에 아무런 미련 없다는 인간들 투성이다. 정작 살고 싶다고, 살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노라고, 살아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애원했던 이들은 무력하게 이 생을 뜨는데, 생에 미련없단 인간들은 여전히 눈부실 듯 푸른 하늘 아래서 오늘 하루를 잘~~ 누리고 있다. 두고 보라고? 에잇, 꿀밤 부터 먼저 한 대 맞아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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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승 (Bulletproof Monk)

재밌는 제목. 방탄복을 입은 스님이란 뜻인가?
법복 아래 방탄복을 받쳐입은 주윤발 스님의 활약상?
그렇게 잠정 결론 내리고, 영화 내내 방탄복이 어디에 어떻게 등장하는지 기대했다.
제목에까지 쓰일 정도면 중요한 소재아니냐고..

그런데 내가 틀렸다.
방탄승이란 방탄복을 입은 스님이 아니라 방탄이 ‘되는’ 스님이라는 뜻이었다.
그걸 마지막 장면에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엄한 주황색 조끼만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완전 헛다리. 후후…

윤발옵을 보기 위해 영화를 선택했던 것은 아니다. 무수한 주위의 친구들이 중, 고교 시절 윤발옵의 칼있수마에 빠져 정신 못차렸지만, 이상하게도 난 한번도 윤발옵에 뿅가본 적이 없다. 나의 애정은 늘 섬약한 꺼거(국영)에게 바쳐져 있었다. 그저 심정적으로 조금은 헝클어진 한 주를 보내, 머리 속을 텅 비워버릴 수 있는 화끈하고 이색적인 무언가를 바랬을 뿐이다. 게다가 조폭마누라2, 캐러비안의 해적들, 오 브라더스를 선택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요새 진짜 볼 영화 없다) 그렇다면 방탄승으로 변신한 윤발옵의 느끼 카리스마에 잠시 취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리라.

..라는 것은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마치 세 번째에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아사코처럼, 이 영화 속의 주윤발은 안 보는 편이 나았다. 전혀 맥락을 찾을 수 없는 웃음에 되도 않는 영어 대사를 애써 주워넘기며 스승 앞에 굽실굽실하는 첫 장면부터 왜 이리도 껄렁한 것인지. 꼭 바람 든 나이트 삐끼 같다. 주윤발은 그때 그 주윤발이건만, 운명적인 허무함을 내뿜던 그의 웃음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빠져있었다. 후까시에도 진정성이란 게 있는 법인데, 그저 기계적으로 과거에 통했던 것을 우려내며 지탱할 수 밖에 없는 나이먹음에 대한 상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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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적도 있었다.. ㅠ.ㅠ

주윤발이 쌀은 나에겐 식구라고 읊어대며 엎어진 볶음밥을 모아 우걱우걱 줏어먹었을 때, 세상 모든 게 다 우습다는 듯이 성냥 개비를 씹어댔을 때, 그 눈빛엔 거친 비아냥거림과 함께 상대방을 압도하는 심연이 있었다. 후까시건 칼있수마건 사람의 가슴을 쿵~하고 내려앉게 만드는 것은 그 심연의 깊이다. 흉내내기는 원숭이의 몫이건만, 윤발옵. 왜 그렇게 망가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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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밀 – 우린 표오빠를 만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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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亮代表我的心 (월량대표아적심 :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
by 등려군 (鄧麗君) (Teresa Teng)

첨밀밀(甛密密)을 다시 봤다. 여전한 감동..

혹자는 이 영활 홍콩과 중국의 근대사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질곡의 역사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첨밀밀은 순도 100프로의 멜로물이다.

아니, 두번째 봤던 이번이 더더욱 그랬다.
멜로리스한 삶을 사는 내게 이 멜로야 말로 특별한 발견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고, 유행가 가사 같은 데서 들으면 심지어 짜증나거나 경기를 일으키기도 하는
그것이 애초엔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는 거였다는 걸…

사랑.

# Scene 1 : 파티장에서 먹는 장면

표오빠와 함께 사는 이교와 결혼한 여소군이 파티장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의 앞접시에 든 음식을 먹으며 엄한 얘기들 하는 장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어디로도 향할 수 없는 마음을 애써 감추어야 하고.
소세지가 끼워진 꼬치를 우걱우걱 집어삼키는 이교의 모습에서 가눌 길 없는 안타까움이 뚝뚝 흘러내린다.
편집 내지는 각본에선 짤렸겠지만, 다음 순간 분명히 그녀는 체했을 것이고.

이 영화에서는 인상적인 장면이 그토록 많은데
영화를 다시 본다고 했을 때, 내 머리 속에 떠올랐던 첫 번째 장면.
난 왜 이 장면이 가장, 그토록 다시 보고 싶었을까?

혹시 나도 언젠가 이래 본 적이 있었던 것일까? 설마…

# Scene 2 : “우린 실패했어”

돌아서서 가는 여소군의 뒷모습을 차안에서 바라보다 핸들 앞에서 푹 고꾸라지는 이교.
빵- 하고 울리는 클랙숀 소리에 여소군은 문득 꿈에서 깬 듯, 뒤돌아서 이교에게 다가오고…
긴 시간 참아왔던 키스에서 늘 함께 했던 327까지..
그리고 고백한다. “우린 실패했어”

“으아아…저런 실패 좀 한 번 해봤으면!!”

정말이지 저런 멋들어진 실패의 모멘트를 내 인생에 가질 수 있다면.

그런데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저 한순간을 위해 그 많은 안타까움을 견뎌야 한단 말야?
옷. 그건 좀 곤란한데요. (뺀질뺀질)

그러면 끝까지 뺀질거리기라도 하든가….

# Scene 3 : 표오빠와 배타고 떠나는 장면

영화를 같이 보던 룰루 언냐의 단발적인 외침이 가슴에 와서 팍 꽂힌다.
“우린 표오빠를 만나야 해!!”
아..절대 공감.

바로 그 다음 장면, 자신의 부인을 떠나는 여소군 동지의 편지는
더더욱 표오빠의 태도와 비교되며 우리를 가증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요지는 “잘 살기 바래. 그런데 내가 해 줄 건 없어. 나도 힘들어”
에라 이 자식아.
차라리 딴 여자가 좋아서, 널 사랑하지 않아서 떠난다고 스트레이트하게 얘기할 것이지.
말이야 여소군 같은 남자는 백날 만나봤자 아무런 영양가 없어.

표오빤 거리엔 여자가 널렸다고 빨리 나를 떠나라고 하지 않는가.
오..표오빠. 어찌 오빠를 떠날 수 있겠어요.
우린 표오빨 만나야 해.

# Scene 4 : 미키마우스

등을 돌려주세요.

그녀를 웃게 해 주기 위해 새겼던 미키마우스.
그녀는 웃고…어느새 그 웃음은 흐느낌으로 바뀌어, 아름다운 장만옥의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장만옥의 얼굴이 주는 느낌은 정말 특별하다.
한 때를 풍미했던 다른 매력의 수많은 홍콩 여배우들이 있었지만, 끝까지 서바이벌한 것은 오직 장만옥 뿐이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를 장만옥의 표정은 보여준다.

# Comrades: Almost a Love Story (1996)

IMDB의 첨밀밀 영문 제목

여소군 동지. 당신은 내 사랑만은 아니었어요. 그 험난한 세월을 함께 한 동지였어요.
우수한과 사우리, 멀더와 스컬리, 히치콕과 앨머, 여소군과 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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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 편 {폰부쓰, 25시, 추억}

phonebooth.jpg두 개의 아주 스타일리시하면서도 나랑은 전혀 안 맞는 영화와
한 개의 구식이지만 여전히 흥미로웠던 영화를 봤다.

그리고 내가 느낀 그대로를 편집하지 않고 써보려고 한다.
블로그는 unedited voice of a person 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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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 – 쿨하디 쿨하여라

baram.jpg
“마음편히 구려지느니 차라리 쿨한 고독을 선택하겠소.”
이건 배부른 돼지가 되느니 차라리 배고픈 소크라테스 되겠다는 선언의 21세기형 버전일까?

쿨한 척 하다가 결국 어떤 꼴 나는지 잘 보여준다.

고독하지만 끝까지 쿨하며 그 고독을 껴안고 살다 갈테냐
너무 시간이 흐르면 무너지고 싶어도 무너지는 방법을 잊어버려.
갈 길이 막혀 그냥 고 하게 되고,

아무리 못나도 자기 살아온 방법 합리화 할 논리 하나 정도는 만들어 내는 게
또 인간이려니.

우리의 쿨함은 멋이 아니라 방패로 쓰이는구나.
뭐가 무서워서..구려지는게?

늘 주장하는 바
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빼면 구리다가 되고
구리다는 글자에 점 하나만 붙이면 쿨이 되는 것이란다.

구림과 쿨함의 경계를 어떻게 알 수 있겠니.

상처받음을 내색치 않기 위해 애써 몸을 곧추세우는 모습이 안쓰럽긴 해도
그건 삶에 지불하는 값비싼 체면 유지비.

아득바득 먹고 사는 문제가 없으니 저럴 수도 있는 것이다.

화면은 들고 찍다, 내려 놓고 찍다..
사실적 시선과 잘 만들어진 화면이 공존한다.

끝까지 이어지지는 않지만 잠깐이나마 흥미로웠던 패치워크.

대사들 듣는 맛이 있었고, 나야 문소리 벗은 가슴 보다는 황정민 엉덩이에 더 뿅갔지만

일방적인 문제 제기에 한 90분 시달리다 보니

내내 주변을 서성이다가도 결정적 순간이 되면 단칼에 본질로 비약하는
거장의 비전이 목말라지는 뒷끝이다.

어쨌든 남편이 아닌 애인이 필요해, 아내 말고 여자가 필요해
이런 얘기는 아니었음.

황정민. 피아노 치는 게 예사롭지 않더라.
힘이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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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정격 연주에의 도전 – <파 프롬 헤븐(Far From Heaven)>

farfromheaven.jpg이 영화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이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화면을 가득 채우는 고색 창연한 타이틀 폰트부터 배우들의 대사의 톤과 배경음악, 토막 토막 끊어지는 장면들까지 모두 나에겐 ‘옛날 영화’같기만 했다. 심지어 줄리안 무어가 운전을 하는 장면에서는 안 그래도 되는데 일부러 블루 스크린을 써서 촬영한 듯한 느낌까지 주려고 한 듯 하다. 분명 의도적으로 50년대 스타일을 따라한 것인데, 왜 그랬을까? 도저히 알 수가 없고 궁금하기만 했다.

굳이 헐리웃의 정형화된 표현법이 싫었다 해도, 21세기에 적합한 새로운 스타일과 언어를 찾을 수도 있었으려만…’과거로의 회귀’ 혹은 ‘구식 스타일의 재현’ 또한 하나의 위대한 영화적 도전일까? 바로크 음악을 그 때 그 악기와 방식 그대로 연주하는 정격 연주처럼? 가다 보면 결국 여기까지도 가게 되겠지만, 나같은 초심자들에게 정격 연주는 약간은 사치한 영역이다. (아닌가?) 하기야 그게 또 아주 우연히도 취향에 맞아 준다면 처음부터라도 열광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란 게 워낙 사회적, 문화적 동물이라 흔히 접했 왔던 바운더리를 벗어난 전혀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특히나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거, 예전에 알던 거랑 관계 있는 것들만 좋아하게 되고.

해서리, 미국의 50년대 멜로드라마를 향유했던 이들에게는 이 영화가 노스탤지어든, 문제적 작품이든 어떤 이슈를 던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시대의 영화적 베이스가 없는 나로선 뜬금없기만 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특히 <24>에서 대통령 후보였던 정원사의 변신이 흥미로웠다.), 촬영이나 화면도 좋고, 플롯도 틈이 없이 깔끔했다. 메세지는…뭐 내가 워낙 달통한 분야라 그다지 새로울 건 없어도 절대 싫어할 수는 없는 종류. 그런데 결정적으로 그 모든 것의 합이 나에겐 너무 낯설었던 것이다. 아무리 미국 문화에 젖어산다 해도, 미국이라고는 발도 들여놔 본 적이 없는 애가 미국의 50년대 멜로 드라마의 감성까지 접수하기는 난해하지 않은가?

모르겠다. 한 50년 후에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장르와 스타일의 TV 시트콤들이 판을 칠 때, 앨리맥빌이나 섹스앤더시티의 정서를 그대로 살린 시트콤이 재현된다면 감동이 밀려올지도. 아니 지금이라도 누군가 신동엽의 ‘안녕하시렵니까’로 시작되는 횡수 개그를 그 스타일 그대로 재현해 내면서 플러스 알파로 세련됨과 시대에 대한 풍자적 성격까지 띈다면 기립 박수를 치면서 올해의 개그상이라도 하나 주고 싶어질지도. 뭐 그런걸까?

거의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토드 헤인즈’라는 감독 이름만 보고 비디오를 들고 왔는데, 영화를 보면서 예전에 너무너무 재미있게 봤던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와 하나도 비슷하지 않아서 내내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 사람은 참 영화마다 스타일이 팍팍 바뀌는구만. 허허….집에 있던 뎀비에게 다시 확인까지 했다. “이 사람 토드 헤인즈 맞지? (근데 왜 이러지?…)” IMDB에서 찾아 보니 인형의 집 감독은 ‘토드 헤인즈’가 아니라 ‘토드 솔론즈’였더군. (그 인간은 지금 뭐하나 … -_-;;)

토드 헤인즈는 썩 재미있게까지는 보지 않았지만 남자 둘이 겁나게 멋져부러서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영화 ‘벨벳 골드마인’을 만든 감독이었다. (클클..) 여기에 속속들이 드러나는 <파 프롬 헤븐>의 후광은 대단히 화려하다. 전주 국제 영화제 폐막작이었을 뿐만 아니라, 베니스 영화제 여우 주연상을 비롯한 굵직한 상들을 탔고, 이미 평단의 무수한 이구동성의 찬사를 받고 있었다. 줄리안 무어의 연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내가 본 줄리안 무어 연기 중에서는 최고다. 그녀는 속은 다 부서져 버린 채 관성에 지탱한 마지막 힘으로 겨우 일상을 붙잡고 있는 고장난 태엽 인형 그 자체였다.

하지만 정말 50년대 멜로물에 대한 별다른 사전 체험이나 레퍼런스 없이 전주에서 처음 이 영화를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좀 황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기야 그 나라는 한국의 전주가 아닌 무색무취의 ‘국제’를 지향하는 ‘영화’라는 또 하나의 독립 자치 구역일테니 낯설든 익숙하든 이 영화를 본다는 건 자기 나라 역사를 기념하고 또 공부하는 그 연장에 있는 것이겠지.

:: 씨네 21에서 베니스 영화제에서 토드 헤인즈 인터뷰

질문 : 어떻게 이 영화를 시작했나?
토드 헤인즈: <파 프롬 헤븐>의 스타일은 크나큰 애정의 산물이다. 50년대 위대한 멜로드라마에 대한 나의 사랑에서 나왔다.

(나에겐 이런 크나큰 애정이 없어서 이 영화가 혼란했나 보다…그냥 그려려니 하려고 넘어가련다. 내게 없는 애정의 산물에 대해 무어라 말하리…)

어쨌든 영화 나라 골수분자는 아닌 나에게 <파 프롬 헤븐>은 50년대 이야기를 50년대 식으로 하는데, 그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과 나만 21세기인 참으로 괴상한 영화였다. (사실 동성애니 인종 차별을 들먹이는 그 시각이란 것도 이런 시대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이자 특징은 50년대 스타일의 판박이 재현일 것이다.) 그래서 소외감도 좀 느꼈다. 내가 이런 영화를 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고. (그건 토드 헤인즈를 토드 솔론즈로 착각한 그 대단한 기억력 때문이잖아!) 어쨌든 앞으로 이런 영화가 다시 만들어 지기는 힘들 것 같아 희귀한 체험을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뜻하지 않게 아르농쿠르를 접했던 어느 날 처럼.

이것 저것을 떠나서 이 영화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줄창나게 나리는 빨간 낙엽들 때문이었다. 좁디 좁은 유진이 전용 스크린(=TV 모니터)이나마 온통 붉은 단풍으로 물들었고…내 방 열어둔 창으로는 더 이상 여름의 것이 아닌 찬 공기가 밀려들어 영화와 뒤섞였다. 난 눈과 살갗으로 새로운 계절을 느꼈다.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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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 삼총사2 (Charlie’s Angels: Full Throttle)

로스트 하이웨이 이후로
이렇게 스토리 따라잡기 난해한 영화는 정말 간만. :-)

30분쯤 지나 내용 파악을 딱 포기하고 볼거리에 집중하니
뭐 그다지 본전 생각까지는. 그나마 요새 패션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 -_-;;
근데 많이들..늙었다. 카미의 주름, 드류의 살 등.
세월이 뭔지. 그놈의 돈으로도 못 막는 건가?

유진이가 캐스팅한 신세대 미녀 삼총사
: 브리트니 스피어스, 제시카 알바, 비욘세 놀즈 (어째 가수 출신이 둘이네)

구세대 미녀 삼총사 : 엘리자베스 헐리, 캐터린 제타 존스, 제니퍼 로페즈

미남 삼총사?
애쉬튼 커처, 라이언 필립, 빈 디젤 (왠지 그림이 안나오네..)
다시, 져스틴 팀버레이크, 조쉬 하트넷, 토비 맥과이어
(더 안나오네..혹시 몰라. 팀버튼이면 이 캐스팅을 가지고 명작을 만들 수도)

싸가지 삼총사 : 빅토리아(베컴부인), 데미무어, 기네스 펠트로우 ..와 재밌겠다. ㅋㅋ
(이들을 개인적인 성품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냥 싸가지 삼총사라고 했을 때 딱 떠올려진 인물들)

국내판 미녀 삼총사 : 김희선, 전지현, 공효진
(환상의 캐스팅~~ 흡족 만족. 셋이서 활짝 웃으며 “하이 찰리~~~”하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면!!)

가수판 미녀 삼총사 : 효리, 김윤아, 미나 (차라리 무개념 삼총사라 불러다오)

국내판 미남 삼총사 빠질 수 없다 : 김성재, ..음 그리고 또 김성재. 갑자기 김성재가 끼니 붙여줄 다른 놈이 없군. 그럼 김성재 빼고. 원빈, 고수, 세븐 (튀는 애도 하나쯤) 아님 김남진?

유진아, ..참 잘~~도 노는구나. 이젠 일 좀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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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댑테이션(adaptation) : 올 상반기 최고의 영화

러브인맨하탄을 빌리러 갔다가, 없어서 가져왔다.
다들 재미없다고 보지 말라고 해서 안 봤는데, 이런 영화를 놓쳤다면…식은땀이 좍-

영화는, 꼭 뚜껑을 열어 제친 판도라의 상자같다.

대책없는 혼돈과 우울과 절망들이 튀어 나와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 혼란은 더해가고, 이야기는 복잡해지고, 주인공의 갈등은 금새 폭발해서 모든 걸 산산조각 내놓을 것 같다. 이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다. 해결책도 비전도 없다. 그런데 그 끝에 너무도 사랑스러운 희망이 딱 한 줄의 독백 속에 잠깐 등장해, 비탄에 젖은 마음 위로 내려앉는다. 정글의 혼탁한 늪을 뚫고 피어난 하얀 난초처럼.

이 영화는 커튼 뒤의 인생을 보여 준다. 천재로 인정받는 헐리웃 극작가가, 잘 나가는 잡지 뉴요커의 저널리스트가, 건들거리며 여자나 후리고 다니는 건달이, 이렇게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내가 간신히 감추어 놓고 사는 커텐 뒤의 삶. 난 몇 가지 인생의 그 후줄근한 풍경을 새로운 형식의 영화 한 편으로 완성시킨 용기와 재능에 감동했다.

시작부터 좋았다. 단지 대사 몇 줄일 뿐인데, 마음을 홀라당 벌거벗기고 씁쓸하게 웃게 만들어 주는 거. 뜬금없이 종의 기원에 근거해 헐리웃의 생성을 보여주는 것도 영화적 허위나 가식은 버리고 너의 내면과 영화의 내면이 일대일로 만나 진검 승부를 벌여 보자는 제안같아 유쾌했다. 존 라로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아, 바로 이거였군. 그는 이 영화에서, 그리고 최근 본 영화들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절정이다. 영화를 보면서 딱히 니콜라스 케이지의 1인 2역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학과 자기 분열에 시달리는 찰리와 대충대충 구렁이 담넘기 식으로 살면서 여자 후리기에나 능한 도날드를 마치 두 사람이 연기하는 것 같았다. 굳이 입은 옷을 보지 않고도 누가 하는 대사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만큼 완벽했다.

메릴 스트립은…그녀의 연기에 대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이나 정글에서 존 라로쉬를 바라보던 시선, 약에 취해 전화하는 장면을 보면서 연기자가 얼마만큼 화면을 압도할 수 있는 지 간만에 실감. 몇번씩 돌려봐도 멋지다. 때로는 지적이고, 때로는 사랑스럽고, 때로는 넋나간 여자 같고, 심지어 관능미까지…’디 아워스’ 때보다 훨씬 좋다. 특히나 ‘욕망과 혼란스러움을 억누르며 애써 태연자약해 하는 그 표정’이 너무도 좋다.

그리고 존 라로쉬! 세상에…이런 연기자가 대체 어디 숨어 있었던 거야. 알고보니 ‘아메리칸 뷰티’의 이웃집 사이코 아빠란다. 너무 지나친 열정은 사람을 죽게 만들지만, 존과 같은 사내는 열정의 비참한 운명마저 이겨내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 어려운 걸 표현해 낸 연기자가 바로 크리스 쿠퍼다. 앞니 다 빠지고 때에 꼬질꼬질 절어 나쁜 운명에 휘둘린 채 살아가지만, 열정때문에 위대한 사람.

열정이란 단순한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열정의 대상을 한없이 바라보고, 소유하고, 그것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키우고, 팔고, 철저하게 마스터하고, 수없이 많이 가지는 것이란다. 맞아. 열정이란 그런 거다. 그런 게 아니면 열정이라고 하지 않는 거야. 어때, 찔리지?

그런 면에서 또 다시 수잔에게 마음이 기운다. “나에게는 그런 열정이 없다. 내가 가진 열정은 그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해 보고 싶다는 것 뿐” 어땠을까? 자신에게 명백히 결핍된, 그러나 가장 갈망하는 ‘그것’을 가진 사람을 지켜본다는 거. 그가 운전하는 옆 좌석에 앉아 그가 “Done with Fish!”라고 말하는 걸 듣는다는 거. 자신이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열정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그에 대해 쓴다는 거.

무한한 열정으로 사는 남자. 열정이 없는 삶을 살면서, 그 남자를 바라보며 그에 대한 글을 쓰는 여자.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며 분열되어가는 또 한 남자.

바라봄은 균열을 만들고, 그에 대한 해석과 적응이 다시 새로운 삶을 만든다. 그 과정이 바로 어댑테이션이다. ‘각색’과 ‘적응’이라는 중의적 의미의 ‘adapt’는 이렇게 파괴와 창조의 두 가지 힘으로 기능한다. 바로 그 속에 열정과 두려움, 불안, 자기 파괴, 도취, 슬픔, 도피, 이중성, 운명의 장난 등 우리가 남들에겐 숨기는 인생의 비밀스런 것들이 모두 들어 있다.

  • 무엇이든 너무 깊이 들여다 보면 이상해 진다. 하지만 그것말고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 수잔의 대사 : 식물처럼 기억이 없다면 적응할 수 있겠지.
    ==> 동사서독에 나오는 취생몽사 한 잔 쫙-
  • 마지막 해피투게더 : 아무리 봐도 ‘해피투게더’ 오마쥬 같지 않어?
  • 찰리 : 브로드웨이를 쏴라의 데이빗, 파톤 핑크의 파톤 핑크. 무언가 다른 것을 쓰고자 시달리는 헐리웃 작가들의 고통은 그 자체가 이런 명작들을 생산해 낼 만큼 극적인가 보다.
  • 도날드라는 캐릭터의 전복은 예상할 수 있었다. ‘브로드웨이를 쏴라’의 치치잖아. 하지만 그가 주인공과 쌍동이라는 점에서 찰리의 아이러니는 심화된다.
  • 도날드의 대사 “You are what you love, not what loves you” 해석은 ‘사람은 사랑한 만큼 행복하다’로 나왔다. 번역가에겐 전혀 불만없지만, 이런 미묘한 뜻의 차이가 참 안타까운 것이다.
  • 캐서린 키너를 보면 왠지 장진영이 떠오른다.
  •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존이 꽃부리가 50cm나 되는 난에 대해 설명하면서 꽃과 곤충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 그리고 존이 수잔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 “그녀가 나타나면 내 모든 걸 이해해주고 난 외롭지 않을 거야” 이 두 장면은 정말로 아름답다. 순간 사람을 멍하게 만들고, 머리 속을 말갛게 비우는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 마치 키스 자렛의 솔로(SOLO) 앨범에서 대체 언제 어떻게 마무리 될 지 알 수 없는 비정형의 거친 즉흥 연주가 끝도 없이 계속되다가 아무런 전개의 개연성도 없이 돌연, 고도로 정제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로 바뀌는 마법의 순간과도 같다.
  • adaptation
    바로 그 장면의 시작. 존 라로쉬가 수잔에게 난초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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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린 맨슨이 레이다에 걸리다.

    Marilyn Manson

    영화 ‘볼링 포 콜롬바인(Bowling for Columbine)’에서 가장 놀라웠던 캐릭터는 매릴린 맨슨이었다.

    어린 시절 TV 드라마 <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의 고뇌에 찬 존재론적 대사들이 당황스러웠듯(‘아니 저렇게 생긴 것이 저런 멘트를!!’), 매릴린 맨슨. 저 그로테스크한 외모에서 그런 멋진 말들이 쏟아져 나오다니. 단 한 장면 짧게 등장하지만 맨슨은 그 특유의 말도 안 돼는 과장된 메이크업에 수수께끼 같은 표정을 짓고서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우아하고 지적인 멘트들을 잘 맞은 어퍼컷의 강도로 날린다.

    마이클 무어 : 만약 콜롬바인의 학생이나 주민들에게 이 자리에서 지금 당장 말할 수 있다면, 뭐라고 하겠어요?

    매릴린 맨슨 : 나는 그들에게 한 마디도 안 할 거예요.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들을 겁니다. 바로 그게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이니까요.

    →푸코나 드러커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면 별로 안 놀랬을 것이다.
    혹은 모모가 했더라도……모모와 맨슨????? -_-;;

    그렇게 맨슨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었던 오늘,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MTV에서 해 주는 Diary of Marilyn Manson를 보았다. 그 중 이 말이 압권이다.

    “신이 있다면,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을 테니 내가 하는 일들을 이해해 줄 거예요.”

    멋진 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매릴린 맨슨을 혐오스러워해 왔던 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유머감각이라. 그렇군. 그거였군. 내게 결핍되었던 것.

    모두들 남의 말을 더 듣고, 조금의 유머 감각을 지닌다면
    세상 사는 일을 복잡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문제들 중 많은 것들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겠지.

    나 역시 이젠 내 마음 속에서 화석이 되어 버린 유머 감각이란 놈을 다시 한 번 복구하는 대장정을 돌입해 보기로 한다. 그것만이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참을성이 점점 줄고 있는 이 한심한 30대를 회춘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거의 개구리나 뱀잡아 먹는 중년의 심정으로 유머 감각을 갈구하고 있군.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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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모도바르 ‘그녀에게’ ..가슴 저린 사랑 이야기??

    그녀에게 (talk to her) by Almodovar
    말(talk)이란 소통의 수단이라기 보다는, 그저 어디에도 닿지 않고 바스라져 버리는 말하는 자의 내면의 발산일 뿐인지도 모른다.

    알모도바르는 정말 경지에 이르렀나보다.
    뒤틀린 광기와 욕망은 인물 속에 천착하고 내면화 되어
    더 이상 불쾌감을 자아내지 않고 깊은 울림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변태적 취향은 진정한 사랑이라는 코드를 변주하며 대중을 감동시키기까지 한다.

    나쁘진 않다. 처음엔 눈을 *.* ←이렇게 뜨고, 이게 무슨 사랑 이야기야…라고도 생각했지만
    모든 사랑이 자기 도취적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거야 말로 사랑의 본질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One way love is just a fantasy”라 노래했던 마돈나야 말로 아주 당돌한 꿈을 꾸었는지도.
    혼자 하지 않는 사랑이란게 어디 있던가.

    하지만 알모도바르씨,
    다음 영화에서는 조금 더 말초적이고 불량해져 주세요.
    스크린에 흘러 넘칠듯한 터져나는 원색을 펼쳐 보여주세요.
    총 맞은 짐승처럼, 욕망을 못 이겨 미쳐 날뛰는 나약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말라 에쥬까씨온(bad education)…Talk to Her를 기다렸듯이 지금부터 또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