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을 수 없는 사랑 (Intolerable Cruelty) by Cohen Brothers (2003)
주연 : 캐터린 제타 존스, 조지 클루니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을 보러 가는 길은 먼 여행에서 돌아온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 만큼이나 설레고 긴장된다.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바뀌었을까? 많이 컸을까? 세월에 닳았을까? 그 사람, 아직도 나를 웃게 만들까?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가슴에 찍히는 물음표들은 심장을 뛰게 하고, 머리를 혼란하게 한다. 이번에 그를 기다린 시간은 너무 길었다. The man who wasn’t there로 찾아왔을 땐 내가 부재중이었고…대학 시절 ‘바톤핑크’로 처음 만나 ‘파고’로 I love you를 고백하게 했던 이 유머 감각 넘치는 멋드러진 연인은 긴 여행을 마치고 2003년 내 생일에 돌아왔다.
난 숙부인 정씨도 아닌 것이 그 흔한 영화평이나 IMDB 별점, 출발 비디오 여행 소개 하나에도 눈이나 귀 한 끝 허락하지 않고, 내 마음의 연인만을 그 자체로 기다리고 기대했다. 정작 약속된 개봉일, 난 결심했던 1회도 놓치고 그나마 2회도 늦어 부랴부랴 눈썹도 안 그리고, 립스틱도 생략한 채 메이크업 대신 가리개용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보라매 AC21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며 스타일 구겨야 했지만.
하지만, 그 덕에 제프리 러쉬의 Boxer로 문을 연 재회의 시작부터 한 장면도 안 놓칠 수 있었으며…영화를 보는 내내 많이 웃었고, 많이 몰입했고, 많이 행복했다. 아 역시 코헨 브라더쓰…실망은 없었다. 하한가를 치더라도 블루칩이다. 이걸 실망이라고 한다면 다른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은 모두 쓰레기통에 갖다 버려야겠지. 코헨스의 필모 리스트에 끼워넣자면 좀 아래쪽에 위치할 진 몰라도.
사람들이 코헨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풍자와 유머, 격이 틀린 비주얼, 가장 영화답고 영화스러운 연출, 복잡다단하면서도 꽉 짜인 스토리, 독특하면서도 엔터테이닝한 엽기 인물들, 가장 사소한 것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것을 표현해 내는 디테일 구사력…
그들의 영화에선 이 모든 게 다 맛있다. 하지만, 유진이가 코헨스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영화의 메시지다.
모 스포츠 신문을 찾아 보니 ‘참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해 ‘코헨의 풍자와 냉소는 여전하다’ 라고 썼더라. 하지만, 풍자와 냉소라고? 왜 그것만 말하고 마는지. 풍자에야 달인들이지만 언제나 그들 영화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냉소주의의 반대 지점에 있었건만! 그들은 정말 안 시니컬하다. 세상의 가장 더럽고 추악하고 기괴하고 폭력적인 얘기를 뒤틀고 뒤틀어 그 누구보다 기차게 그려낼 수 있는 자들이 코헨스지만, 그들은 절대로 사람사는 모습의 소박하지만 따뜻한 면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갈 수 있는 데 까지 다 가 봐도 결국 인간이 돌아올 곳은 여기,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가족은 소중한 것이며, 사랑은 좋은 거고,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짓이라고.
그들의 결론은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코헨 브라더스의 특별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앞과 뒤를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납득할 수 있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앞이 약해지면 결론이 진부해지고, 뒷쪽이 약해지면 골빈 영화가 된다. 그들의 영화는 진부하지도 골빈당도 아니다.
파고에서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사이코 킬러를 붙잡아 가면서 차안에서 뭐라고 하나. For what? Just for a little bit money?….I just don’t understand. 인생에는 돈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거고, 너는 여기 있고, 오늘은 날이 참 좋아. 그런데 왜 그랬지? 난 이해할 수 없어. 그리고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남편이 우표 디자인 대회에서 3센트 짜리 우표에 당선됐다는 얘길 듣고, 진심으로 기뻐한다. 이웃집 넘은 29센트 짜리에 당선되었다는데도 그녀는 사람들은 낡은 우표를 처리할 때 3센트짜리를 더 많이 쓴다면서 기꺼이 “I’m very proud of you”라고 말해 준다. 그리고 남편과 한 침대에서 잠이 든다. I love you라는 아주 고전적이고 진부한 대사를 주고 받으며.
위대한 레보스키에선 또? 돈과 욕망에 집착하고, 이상 종교에 몰두하는 인간들이 개입된 해괴한 플롯들이 복잡하게 꼬여있지만, Dude가 처음부터 끝까지 바랬던 건 오직 하나. 악당들이 오줌을 싸고 간 자기 카펫을 보상받아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그 밖에 다른 욕심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맥주나 마시며 볼링이나 치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오늘 하루가 해피한. 그러니까 막판에 카우보이 아저씨가 그러잖아. Dude 정말 좋은 놈 아니냐고. 저 녀석은 볼링 대회 본선도 진출할 거고,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도 잘해나갈 거라고.
그 알듯 모를 듯한 오묘한 이야기 속에서도 바톤핑크의 근본적인 갈등의 모티브는 그냥 보통 사람들의 리얼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몇몇 영화에서(허드서커 같은 것?) 풍자만으로 엔딩을 칠 수 없는 헐리웃 시스템의 압박이 개입되었는지는 어땠는진 모르겠지만, 이 브라더쓰의 가장 빛나는 작품들의 아이덴티티는 분명 해피 엔딩을 위해 짜맞추어진 가공의 설정이 아니다.
코헨스는 이런 가장 진부한 메시지를 검증함에 있어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선과도 악과도 손잡지 않고, 끝까지 간다. 그러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재미나고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고, 그걸 배배 꼬아서 한층 더 재미있게 만든 다음, 그 이야기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전달할 수 있는 비주얼을 창조해 낸다. 정말로 코헨스의 영화는 형식과 내용이 모두 탁월하고 흡족한 희귀한 보물이다.
그렇담 ‘참을 수 없는 사랑’은 어땠지? 난 코헨스럽지 않게 ‘로맨틱 코미디’로 분류된 이 영화를 보러 가면서 내내 궁금했다. 코헨이라면, 분명 그냥 로맨틱 코메디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사랑이란 주제를 가지고 이 희대의 꾼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사랑이란 걸 하기에는 최악의 땅이 되어 버린 이 의심과 회의의 가스로 꽉 찬 불모의 별에서, 사랑이란 단어는 작업 용어일 뿐 조금만 이 단어의 실체에 근접하려 해도 경기를 일으키고마는 이 영악하고 이기적인 에얼리언들에게.
“Love is good”
당연하지. 나도 알아.
봐봐 이러이러이런 거지? 사랑하는 데 이런 문제가 있는 거지? 돈, 섹스, 이기주의…이런 거 말야. 어때, 실감나지?
맞아. 이래서야 어떻게 사랑이란 걸 하겠니?근데,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닌데 말야,
그래도 결국엔 이거야. 이게 좋은 거라구.
이게 없으면, 저렇게 끝이 저렇게 딱 보이는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겠니? 맞지? 맞잖아!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참 틀려진다. 심술나면 어떤 영화한테는 참 오지게 뻐팅기기도 하는데, 오늘은 참 기분좋게 설득됐다. 다들 이 영화를 급조된 해피엔딩으로의 비약이라고 하지만, 난 그것을 코헨스가 추구하는 영화적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오염된 헐리웃 시스템에서 코헨스의 아이덴티티를 지켜주는.
그리하여 이렇게 난 오랜만에 재회한 이 연인과의 사랑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짧은 만남 후 그는 다시 먼 길을 떠났고, 난 DVD에 추억을 돌리며 한동안을 살아야겠지만 기다릴 연인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
- 이번 영화엔 그리 눈튀어나올만한 비주얼은 없었다. 배우들이 압도적인 영화였고, 코헨스 특유의 원경 풀샷으로 사물들을 무늬화하는 인서트(이걸 어케 표현해야 하지? 파고의 주차장 씬에서 차들이 일렬로 놓여있던 부감같은 것)도 많이 안 보였다. 기차놀이 하러 가기 전 드라이브 씬 정도?
- 제프리 러쉬가 나오는 오프닝씬이 극 속에서 지속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리라 생각했지만, 주연 캐릭터를 소개하는 단발성 에피소드로 끝나고 만다. 사소한 에피 하나 놓치지 않고 전혀 의외의 순간에 내러티브로 끌어들여 관객의 허를 치는 코헨의 스타일로 봤을 때, 상당히 드문 케이스라고 보인다. 제프리 러쉬가 마지막 장면에 TV 프로듀서로 등장하긴 하지만, 기대는 깨졌다.
- 엘레베이터 씬 후 캐터린 제타 존스가 걸어가던 호텔 복도의 모습은 바톤핑크에서 나오는 호텔 복도의 럭셔리 버전같다.
- 캐터린 제타 존스가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은 오션스 일레븐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붉은 원피스에…남자는 둘 다 똑같이 조지 클루니. 멋진 드레스에 멋진 남자… 우…
- “She’s too heavy…too heavy for a romantic comedy” 술만 취하면 영어로 쫑알대는 한 여인네가 내가 이 영화를 볼 거라고 했더니 내내 이렇게 중얼거렸다. 캐터린 제타 존스…과연 쎄지. 하지만, 원양. 이 영환 단순 로맨틱 코메디만은 아니었던 것이야. 원제는 ‘참을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잔인함’이었으니…이 파워넘치는 냉정함을 표현하는 데 있어 캐터린 제타 존스보다 더 나을 수 있는 헐리웃 배우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녀는 강하고, 고아하고, 눈부시게 아름답고, 차갑고, 꽃뱀스럽고, 조지 클루니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이 캐스팅엔 100점에 20점을 더 보태주고 싶다.
- April come she will은 코헨 부라더스가 내게 준 선물. 사이먼앤가펑클 노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그 다음은 Boxer. 쪽집게처럼 두 노래가 다 나왔다. 비틀즈 노래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Black Bird. 좋은 노랜 많지만 제일 좋다고 찝을 수 있어야 제일 좋은 거라고 난…그래.
- 중딩 열 댓명이 단체 관람을 왔다. (대체 왜 이런 영화를??) 재미가 없는지 내내 들락날락 웅성웅성이다. 그런데 마지막 negotiation을 위해 캐터린 제타 존스가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와~~~이쁘다~~~” 아주 극장 한 구석이 난리가 났다. 짜식들…좋은 건 알아가지구 ㅋㅋ
- 츄츄, 츄츄~! 기차 놀이 좋아하는 사람~~?? 하핫.
- 근데 이제 코헨스는 블록버스터 배우들 하고만 놀기로 한 건가? 차기작에 예약된 배우들이 톰 행크스, 짐 캐리, 카메론 디아즈…관기증 환자 빌리밥손튼 하고는 여러모로 죽이 잘 맞는지, 계속이다. (사실 나도 그가 좋다 ㅠ.ㅠ) 난 코헨 영화 속의 존 터투로가 보고 싶다. 코헨쓰는 언넝 존을 캐스팅하라..조연으로라도!!
- 점점 더 블록버스터화 되어 가고 있는 코헨스의 영화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신해 나갈지 궁금하다. 그들은 헐리웃 시스템의 서바이버이며 동시에 줄타기의 천재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사실 이 얘기가 그들의 영화보다 더 재밌을 것 같다.
- 결국 난 코헨스에게 졌다. 쪽팔린 얘기지만 …변호사 모임 연설 장면에서 이미 백기 펄럭 해버렸으니. 내공이란 건 어느만큼 수련해야 쌓일까?
- 몇 가지 버전의 영화가 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끝 부분엔 끊을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아무데나서 자기 맘 가는 대로 끊어서 결론내도 괜찮을 것 같다. 믿고 싶지 않으면 믿지 않으면 되는 거지…캐서린과 조지가 키스를 하건 말건.
- 영화에서 Love is good은 도발적 선언이며 새로운 발견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말이 선언, 발견, 농담일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린걸까. 마지막 ‘이혼 예감 비디오 ~ 딱 걸렸네!’라는 쇼는 사랑에 빠져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인간 현실을 보여준다. 사랑에 빠진 조지 클루니와 캐터린 제타 존스도 언젠가는 이 쇼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되는 것일까? Cruelly ever after…가장 잔인한 건 코헨스였고, 끝까지 해피엔딩과도 타협하지 않았다.
- 코헨? 코언?
캐서린 제타 존스 아름다우십니다.^^
옆에 벙거지 쓴 처자는 어때요? ^^
사귀고싶소!
나도 무언가에 대해 이렇게 길게 써보고 싶다.
그리고 처자! 오자 났오 ‘바톤핑크’요
룰루양,……….. 눈 높소.
대기표 받고 저~~~~~ 끝에서 기다리시오.
ink e제곱님아,
음……………………………..
참으로 독특한 반응이오. 과연 아티스트답소… ^^
“그들은 정말 안 시니컬하다”에 마구마구 동감~
파고는 제가 정말 좋아해서..극장에서 2번이나 보고 비됴까지 사서…인생이 왜 이럴까..할때 가끔씩 꺼내보는 영화거든요…음음…^^
어제 MBC 무비스에서 파고를 하더라. 후후..눈을 못 떼겠더군.
그런데 너무 황당스럽게도 난 파고를 극장에서 몬봤어.
눈발 날리는 그 첫장면을 그 음악과 함께 대형 스크린과 빵빵한 스피커 시설을 갖춘 극장에서 본다면…과연 어떤 기분일까? 아..대략 넘어갈거야.
나 역시 파고를 여전히 코헨스의 정점으로 보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영화 (파고, 라이브 프레쉬)를 모두 극장에서 몬 봤단 사실에 가끔가끔씩 부들부들…. 내가 극장을 하나 지어서 틀어야 되나…
근데 민전. 원래 미인의 인생은 기구한거여. (나 봐라…ㅋㅋ)
누가 글케 이쁘게 나래?
난 두 영화를 모두 극장서 봤어. 것도 아주 한적하게,써라운드 사운드로 빵빵빵….두 영화는 극장에서 보지않는 한 봤다고 얘기할 수 없음이야.꺅꺅…우쭐만빵!!!!
필이 오긴 한데…
덕분에 정리가 됐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