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굽은 오래된 연인이 내게 다가와 농담을 건넨다. 참 오랜만이다. 이런 옛날식 그대로의 그의 농담.
달팽이의 등에 굽이치는 나선형의 무늬처럼 긴 세월 돌고 돌아 결국 한 점으로 수렴되는 같은 패턴.
정말 내용이 참을 수 없이 신선해서인지, 이제는 예측가능한 그 익숙한 무늬가 반가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달빛같은 모니터 불빛이 환히 어둠을 비추는 초여름 밤, 나는 낄낄대며 기꺼이 폭소로 그에게 화답한다.
많이 늙었네요. 하지만 당신, 여전히 나를 웃게 하는군요. 맨 처음 “브로드웨이를 쏴라”때 처럼. 그 작은 화면 속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낯선 실험따위 하지 않아도 좋아. 맨 처음으로 돌아가기가 더 힘든 것 아닌가요. 모든 것이 그 맨 처음의 새로운 반복이 아니던가요.
신경쇠약과 열등감에 시달려도 웃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모든 인생의 비극이란 결국 한 발만 떨어져서 보면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는 한 편의 코메디라 했다. 그래서 그건 그저 웃고말 일이지 대단히 심각을 떨 별 일은 아닌 거라고. 그렇게 웃음으로써 얻게 되는 안도감과 웃을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했다. 그 세계관으로 난 여전히 모든 것에 낄낄댄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웃기라도 하지 않고 대체 무엇으로.
그랬던 그가 금발머리 여기자의 ‘아빠’를 사칭한 어리숙한 광대로 돌아왔다. 오색 고깔 모자 씌워 셰익스피어 어느 비극의 막간에 끼워넣으면 딱 좋을 그런 모양새로.
이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웃음거리의 소재로 삼고 있다. 죽음의 배를 타고 가다 사람들을 모아 마술재주를 피운다.
지난 몇 십년간 반복했던 익숙한 농담의 틀에 자신의 죽음을 대입한다. 70이 넘은 노장이 피우는 익숙한 재주를 바라보는 옅은 서글픔의 그늘 속에서 나는 또 웃는다. 폭소를 터트린다. 그것이 우디가 나에게 가르쳐준 극복의 방식. 그가 나에게 원했을 반응.
기껏 영국 찬가를 부르나 했더니 마무리는 거쉰이다. 그조차 너무 당연하게 느껴져서 한참이나 알모도바르에 빠져있던 내가 간만에 우디 알렌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깨달았다.
매치포인트, 맨하탄 미스테리, 앨리스, 범죄와 비행, 또 다른 여인을 떠올리게 하는…
나의 25번째 우디알렌.
내가 맨 처음 인터넷을 접했던 날, 사무실의 컴퓨터의 넷스케이프가 열어 준 야후닷컴에서 맨 처음 찾았던 단어 ‘Woody Allen’
< 내가 본 우디 알렌 영화들>
- 돈을 갖고 튀어라
-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
- 애니홀
- 스타더스트 메모리스
- 젤리그
- 브로드웨이 대니로즈
- 카이로의 붉은 장미
- 한나와 그 자매들
- 라디오 데이즈
- 또 다른 여인
- 뉴욕 스토리 (3/3)
- 범죄와 비행
- 앨리스
- 부부일기
- 맨하탄 살인사건
- 브로드웨이를 쏴라
- 마이티 아프로디테
- 에브리원 세즈 알러뷰
- 디스트럭팅 해리
- 셀러브리티
- 스몰타임 크룩스
- 할리우드 엔딩
- 애니씽 엘스
- 매치포인트
- 스쿠프
그리고 그가 출연한 영화 몇 편
- 결혼 기념일 (Scenes from a Mall)
- 션샤인 보이
…이것 뿐인가? 흠.

Hello from SpeedyCat, Minnesota / USA! I saw Mr Woody Allen.
That man is nu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