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유진이의 최대 즐거움은 High Fidelity였어요. 태국 서점에서 300바트라는 현지 싯가로는 꽤 거금을 들여 사온 Nick Hornby의 소설 데뷔작.
사오면서도 이거 볼 시간이 있을까 자신이 없었는데, 집에서 뒹굴링 하다가 무심코 집어들게 되었고.
그 후 머리가 핑핑 도는 바쁜 주간을 보내고, 여기저기서 일 독촉을 받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이 책만은 놓지 못했네요. 유진이가 그리 대단한 독서광이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순수하게, 이 책을 읽는 시간이 그 무엇보다 즐거웠기 때문에. 좋아서 못 놓은 거예요. 사람이 그렇잖아요.
그런데 참 신기하죠?
첫페이지였어요. 이 책에 사로잡힌 것. 당분간 이 책을 놓지 못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예감하게 된 것.
마르께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이나 마루야마 겐지 <물의 가족>때도 그랬죠. 딱 1장 읽는 동안이었어요. 이 책에 완전히 빠져들게 될거고, 이 책이 내 인생에 매우 중요한 기점이 될거고, 책을 읽은 후에도 또 다시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 헤매게 될 거라는 거. 그리고 살아있는 한 앞으로도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기다리며 살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말이죠.
우디 알렌은 <브로드웨이를 쏴라>였고, 알모도바르는 <라이브 프레쉬>였고, 코헨은 <파고>였고, 음악으로 가 보면 키스 자렛의 ‘Foundations’ 앨범에 들어있는 첫 곡 ‘Smoke gets in your eyes’
머리 속이 증발되는 것 같은 흥분과 영감을 주는 10분들. 돈과 시간…내 인생을 고스란히 갖다 바치게 만드는 첫 페이지의 마력. 인생의 두려움과 불안을 잊게 만드는 신종 마약의 발견!
드러내려 애쓰지 않아도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그 작가의 특별함이 내 영혼과 접속한 순간은 늘 그렇게 신선하고 스릴넘쳐요. 그리고 안도하게 되죠. ‘아, 이걸 모르고 살았다면..’
피차 억지나 가식을 부려 봤자 만들어 지지 않는 그 특별한 chemistry.
영화 Adaptation 이 후 닉 혼비라는 작가와의 만남에서 다시 그런 기쁨을 느꼈어요. 내용은 단순해요. 12살 때부터 늘 애인을 다른 남자에게 뺏겨 오기만 했던 주인공 Rob이 다시 새로운 연인 Laura가 떠난 후 일어나는 일들. 이렇게 요약해 놓고 나니 심심한데, 이 과정에서 인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탁월의 극치네요. 여전히 싱글로 남아있는 30대의 문제에 대해 지극히 30대적인 감수성으로 밀착한다는 점에서 원츄-
유진이의 마음 속에선 주로 다음 3가지 리액션이 있었어요.
– 아 정말 이런 인간들 본 적이 있어….크크크
– 맞아 맞아 진짜 이래……진짜진짜 푸하하하
– 남자들이란!!!!!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음이라, 그것은 관찰과 묘사의 깊이 때문일 것이고 여기에 작가의 유머감각이 더해져 대책없는 폭소를 터트리게 만들죠. 지하철에서 뭇 사람들의 째려봄을 한 몸에 받게 할 만큼.
‘(나는 평범하다 하지만)……나의 재능은 -재능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 이 모든 평범함을 하나의 깔끔한 틀 안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나같은 놈은 수없이 많이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많은 사내 녀석들이 나무랄 데 없는 음악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녀석들은 책을 안 읽는다. 많은 녀석들이 책을 읽지만, 뚱뚱하다. 많은 녀석들이 페미니즘에 공감하지만 그들을 우스꽝스러운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많은 녀석들이 우디 알렌적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우디 알렌처럼 생겼다 어떤 녀석들은 술을 너무 많이 먹고, 어떤 녀석들은 운전할 때 바보스럽게 행동하고, 어떤 녀석들은 싸움질을 하거나, 돈자랑을 하거나, 마약을 한다. 나는 사실 이런 짓들은 하지 않는다. 여자들이 나를 괜찮다고 본다면, 그건 내가 가진 장점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가지지 않은 단점들 때문일 것이다’
장례식에 참석하는 동안 나는 난생 처음으로 내가 얼마나 내가 죽는다는 사실과 다른 사람들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두려워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공포가 나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것들을 못 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담배를 끊는 것이라든지 (죽음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혹은 충분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금연이란 게 대체 뭐란 말인가?) 나의 인생, 특히나 내 직업처럼 미래에 대한 개념을 담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너무나 두렵다. 미래는 결국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등등. 하지만 주로 이 공포는 나로 하여금 어떤 관계를 지속시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어떤 관계를 지속하면 삶은 그 상대방의 삶에 의존적이 되고, 그 다음에 그들은 아주 예외적인 상황(예를 들자면, 그들이 공상 과학 소설의 주인공이라든가)이 아닌 이상 예정된 바와 같이, 죽게 되는데 그러면…당신은 아주 난처해 지지 않겠는가? 물론 내가 먼저 죽는다면 상관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먼저 죽는다는 것은 그렇게 기운 나는데 도움되는 생각은 아닌 것이다.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포지셔닝의 소설이 없을까? 그것은 없음이 아니라 유진이가 안 읽었음이겠지. 불행히도 유진이는 지나치게 심각하기만 하다거나, 내가 경험하지 않은 세대의 한풀이를 강요한다거나, 이 세상이 그 소설 속의 세상과 비슷하다면 내가 사는 여기는 온통 자폐증 환자들로만 넘쳐나야만 되는 웃음기 없는 절망적인 소설들만 접했던 나머지 한국 소설에까지 죄다 경기를 일으키다가 지금에서야 이렇게 늦게 만난 닉혼비에 열광하고 있어요. 도당체 이 땅에서의 ‘순문학’의 정체는 무엇이길래…….. (그렇다구 지금 ‘토지’나 ‘혼불’같은 것들에 대해 딴지 거는 건 아니고. 설마…헥!!)
결국 ‘그 놈은 멋있었다’를 읽을 수 밖에 없는 젊은 세대들을 이해하게 되죠. 10대에게 귀여니는 30대 유진이의 닉혼비일테니. 좋을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지만, 결국 그것밖에 없는거야. 대체 내 얘기를 좀 해 달란 말이야. 내 인생을 들여다봐줘. 나는 글재주가 없어서 못하겠으니, 니가 좀 대신 해달라구. 그 고상하고 섬세하고 예민한 인간들의 얘기는 질려버렸어. 내 욕구가 천박하지 않은 이유를, 지극히 평범한 삶의 쳇바퀴 속에서 웃음을 날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아니 힌트만이라도 좀 달라구. 때론 30대 소설가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진다니까요. “정말로 그렇게 연애를 하시나요?” 또 이걸 대책없이 웃겨달라는 주문으로 해석하진 않겠지?!
여하튼 닉 혼비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왔고, 지금 또 다시 그의 2번째 소설인 Fever Pitch를 잡고 있어요. 축구를 향한 열광에 관한 책이고, 그 중에서도 ‘아스날’에 관한 거예요. 앙리와 베르캄프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아스날!! 어찌 이 책을 건너뛸 수 있으랴.
하지만 사실 이 책은 축구를 떠나 집착(obsession)을 주제로 한 닉 혼비의 자전 소설이라고 봐야할 듯 하네요.
High Fidelity는 책으론 번역이 안 된 걸로 알고 있고, 국내에서는 2000년에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라는 영화로 들어왔었는데, 정말 제목부터가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었죠. 부담없는 로맨틱 코메디처럼 보이고 싶었던 마케팅 차원의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겠지만. 전 아이비즈넷에 계시던 viper님의 적극 추천으로 뒤늦게 비디오로 보게 되었는데, 뭔가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존 쿠색도 꽤나 열심이었는데 도당체가 기승전결 연결이 안 되는 어수선한 영화로만 기억해요.
그런데 Roger Ebert씨가 이 영화를 ‘Top 10 of 2000‘ 중 하나로 꼽았더군요. 이런..다시 보고 싶어지게스리.
[사랑은 리콜이 되나요]는 어째 영화팬보다 음악팬들이 더 사랑하는 영화 같기도 하더군요… ‘그린 데이’ 등 영화가 만들어진 당시의 음반들이 좌라라~~ 거론되던 앨범이라..킁;
아..저 역시 유진님의 책으로 내공을 쌓고자 노력중인 업보의 중생입니다. 버전 업 축하 드리구요.. :-)
책에서는 그린데이는 언급이 안 돼요. 더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여하튼 페이지들이 각종 음악들로 꽉꽉 채워지긴 하지만. 제가 알만한 건 마빈 게이 정도 였어요.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는 세 친구 정말 골때리죠? 서로의 레코드의 컬렉션이 맞지 않으면 남녀 관계도 지속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재미난 음악 지상주의자들. 한 학부모가 딸에게 선물하려 스티비 원더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사러 오니까 화내면서 쫓아내요. 저질의 음악 취향으로 자기의 하루를 망쳤다고. ㅋㅋ
high fidelity라는 제목을 보고… 동명의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였나 보죠? 아주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음악 취향 때문에 친구들끼리 티격태격 하던 것이 남 얘기 같지 않더라고요. :)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를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나네.
몇해전 라디오 음악프로 피디로 있는 후배의 소개로…
그 후배는 아마도 영화 속의 그 많고 좋은 음악들 때문에
더 괜찮게 느꼈던 모양이지만.
나는 음악에 대해선 별로 알지 못하면서도 그냥 재밌더라구.
영화제목이 하도 웃겨서 원작소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 남다른 감성(?)
같은 게 살아있다고 느꼈었거든. 이제보니 그게 원작의 힘이었구만.
그 소설 꼭 읽어보고 싶은데… 내 실력으론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릴 거 같으니까, 유진 니가 빨랑 번역해주면 어떨까?
출판사 편집장들은 다 뭐하고 있나?..난 그책 분명히 된다구본다
아아아악~~ 온뉘이~~~~!!!
언니가 내 홈피에 글을 남기다니.
가문의 영광이로세… ^^
언니가 읽겠다면, 언니만을 위하여 번역 들어가는 수도 있어 (이 오바 -_-;;) 근데 그것보다는 난 언니가 그런 멋지구리한 소설이나 드라마를 하나 써줬으면 더 좋겠어. 내가 하나 써 볼까도 생각해 봤는데, 쩜 바빠서…^^
웹사이트 링크를 따라오다보니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 왔어요^^
첨에 마빈게이 let’s get it on이란 노래를 검색했더니 high fidlity ost 가 검색되더라고요. 그래서 high fidelity를 검색했죠. 그리고 띡 이쪽으로 오게됐습니다. 덕분에 닉혼비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여러모로 제겐 좋은 자료들이 많네요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예전 언니의 멘트를 들을땐 (어이쿠…이 언니 또 주책이야~)라고 한귀로 흘렸는데 내 추천이 언니의 감성을 요동치게 했다라기 보단 내가 타인의 감성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는것을 이글을 보고 처음 느끼게 되네 그려…라기 보단 아…내 야부리가 남한테 먹힐때도 있구나..라고 느낀게 사실.
그런데 말야…도대체가 기승전결이 없다라니…올모스트 훼이머스(한글 표기 맞나? 아님 말고), 버드, 모 베터 블루스와 더불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대중음악에 대한 열정을 팍팍 느낄 수 있는데 그런 섭서구리한 말씀을…그리고 이 영화를 어바웃 어 보이, 공각기동대, 카우보이 비밥과 비교해서 봐바바라고 말하고 싶어.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할려다 마는 인간(아…쿠사나기는 사실 백프로 인간은 아니지..)들의 방황이 가슴에 팍 와닿지 않아?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음냐리~)
진짜 기승전결 없이 골 때리는 영화는 21그램이나 동사서독이라고 말하고 싶어. 시점짬뽕에 허무를 팍팍 버무린 아픔이 주는 감동을 찐하게 느낄 수 있을듯. 포스트모던하게 발광하는 요즘 세상에 딱 맞는 영화가 아닐까 함.
마지막으로 읽은지는 모르겠고 포지셔닝 소설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칼의 노래가 비스무리 하지 않을까 함. 왕과 당파와 민중사이에 샌드위치 되어서 고민하는 이순신의 정신적 방황이…흑…나 같은 독사도 읽고 나서 눈물 찔끔..T_T
마지막으로…언니네는 읽은게 많고 글도 재밌어서 좋아. 하지만 언니글은 왠지…너무 멜로디 지향적인 것 같애
난 요새 불감증이라, 영화나 음악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어졌어요. 대신 그냥 무덤덤하게 일상다반사에 보다 더 집중하려고 해요. 언제까지 이럴진 모르지만 하여간 지금은 그래요. 그래도 때론 멜로디에 빠지게 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