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아직 제대로 겨울은 아닌지라 완전 무장도 못하게 하고
축제로 쳐주기조차 민망한 빼빼로 데이 정도를 제외하면 제대로 기분낼 껀수도 없으며
불 꺼진 방구들처럼 등짝에 써늘한 기운만 불어넣으며 마음을 시리게 하는 11월.
뜨셨다 찼다, 눈오다 비오다
덩달아 마음까지 갈피를 못 잡았던 11월의 끝자락에
저 멀리 케냐에서 미녀 한 분이 날라와 색다른 종류의 온기를 전해 주셨다.

94년 11월 생 루시(Lucy Muthoni Irungu)

루시 만날 준비
뎀비도 탐내는 예쁘고 앙징맞은 것들로 가득가득~

이렇게 우체국 택배 박스에 넣어

포장지로 위에만 살짝 덮었다.
급구매한 포장지가 기럭지가 살짝 부족해서.
꽤나 신경쓴 듯 하지만
실체를 까발리자면
정작 당사자인 게으른 유진이를 제외한 주변인들이 힘을 합쳐 해 주신 준비
예리한 눈썰미로 이렇게 앙징맞고 아기자기한 종합 선물 셋트 구매 대행 해 주시고
정리해 주시고, 포장해 주시고, 데리고 내려가 주시고
언제나 그렇듯이 난 주로 돈과 마음의 준비만..T_T (부끄)
허지만 오거나이징도 능력 중 하나라 본다.
그리고 뻔뻔해져서 행복해지는 것도! ^^

트리 아래서 루시 만날 기대감에 부푼 선물꾸러미
34개의 꾸러미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자랑하며 자리를 잡고 있다.

케냐의 슬럼가에서 우여곡절끝에 만들어진 어린이 합창단 지라니 합창단
거기 서른 네 명의 아이들.
그 중 나는 루시와 매칭되었다.

어찌나 예쁘던지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영어도 쏼라쏼라…유창하니.
키는 제일 작은데
따뜻한 애정을 표현하면서도 나대지 않는 기품있는 태도에 감동이 밀려왔다.
이런 애들은 어디에나 있구나.
Class…라는 것은 존재한다.

팔 완전 길다
그래서일까 춤추는 동작도 멋지고.

미모가 딸려서 이거 원 한편으로 속상하다.
루시 옆에 계신 저 아주머니 누구셔???

시상에…13살짜리 여자애의 미모를 질투하는 나는
누가 뭐래도 분명 여자다. – -;;

꽃분홍 볼펜…보자마자 애기처럼 너무 좋아하더니
선뜻 줄을 풀어 목에 걸어본다.
좋은 안목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

노래하는 루시
쪽팔림을 무릅쓰고 루시짱을 외쳤소~
…혹시 이런 게 나를 그토록 부담스럽게만 했던 부모의 마음?? —;;
공연을 찍어봤습니다. 허접 디카 버전…언제나 그렇듯 협찬 유튜브
도라지 이색 케냐 버전
유진이의 경망스런 웃음소리와 환호성 …본인조차 당황스럽다.
하쿠나 마차차…라연킹 떠올리게 하는 케냐 노래
율동 상당 발랄하고 춤추는 애들의 리듬감이 틀리다. 이 분야에서는 월등한 DNA

짧은 감동 공연 마치고 루시는 택배박스 들고 다시 버스로~
내 부덕한 탓에 루시 손에 택배박스를 들게 했으니…
나의 이 눈 먼 탐욕에 가슴을 쳤다.
구매 대행자가 선물을 넣어갈 가방까지 제대로 골라 왔는데
그 가방이 너무 예쁜 나머지………….그만 중간에서 내가 쌥~
미친 거다. T_T 어찌나 후회되던지. 가방이 좋으면 얼마나 좋다구….
다시 사면 될 것을. 섬섬옥수 루시 손에 저 따위 허접시런 택배 박스나 들리구..
미안 루시.
다시 한 번 새겼다.
인생은 한 번 뿐이라는 것을.
후회는 다 못 가졌을 때가 아니라
다 주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것이라는 걸.

차기 미스 케냐 후보.
명함에 이메일까지 적어 손에 쥐어 주었지만
아마 몇 년 있다 보그지나 미스 유니버스 시상식에서나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예쁜 아이가
루시~루시~하고 부르자 와라락 달려와 아무 거리낌없이 품에 안길 때
무지 어색하고 이상한 기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누군가 가진 것에 대한
막연한 가상 체험.
이런 종류의 체험은 나만의 안전한 진공 세계에 파열을 일으키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을 일깨운다.
별로다.
하지만, 성장은 늘 별로인 기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닐까.
거기서 시작해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 자신만의 노하우.
그렇게 또 무언가가 시작된 느낌이다.
…전쟁?
이런 느낌과 무관하게 루시는 내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버스 타러 가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손 흔들던 모습.
내내 옆에 팔을 두르고 떨어지지 않던 그 팔의 따스함.
11월에 크리스마스는 훈훈했다.

지라니 합창단 홈페이지
12월 4일 양재 횃불회관에서 공연이 있다고 하네요.
아름다운 시간이 될 듯.
One comment on “[2007년 11월] 케냐에서 온 미녀 Lucy, Oh…Beau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