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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웰쓰 : 잡(雜)것. 이 어이없는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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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먼 웰스 (Common Wealth, La Comunidad, 2000)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어렵다..이름..

그냥 나를 열광하게 한 퍼펙트 크라임의 바로 그 감독. 그래서 비디오 가게 저 구석에 밀려 꼬깃꼬깃 구겨져 있던걸 겨우 찾아내다 먼지털고 데크에 넣어 봤는데,,,음 골때리고 참 좋다. :-)

뒤집힌 거울.

거꾸로 뒤집어 입은 옷은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다알~려온 어린이들 한자리에 모여앉아~♪ 죄다 뒤집어 입은 채 정신놓고 설쳐댈 때, 그 유희의 골때림이란 만끽할만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놀이의 합은 단순 유희 이상의 감흥을 선사한다. 뒤집었을 때만 도드라져 제대로 포착하게 되는 현실의 외진 모서리들이 눈에 들어와서일까.

히치콕 감독님의 이창과 이글레시아 감독님의 커먼웰쓰. 이 둘은 마주 본 거울같은 영화다. 그 거울의 양 편에 서 있는 건물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그 한 편에 방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한 남자가 있고, 다른 한 편엔 역시 어떤 이유로 방에 갇혀버린 한 여자가 있다. 남자는 사랑을 할 수 없고, 여자는 원하는 사랑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둘 다 고독하다. 고독? 이창이,,커먼웰쓰가 고독하다고? 어…따지고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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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이 지켜보는 자의 이야기였다면, 커먼웰쓰는 관찰당하는 자의 이야기다. 이창에서의 살인은 은밀하게 저질러지고 우연히 발견되지만, 커먼웰쓰의 살인은 공공연하게 시도되고 번번히 어긋난다. 역전된 뷰. 피핑탐과 핍트돌. 이창과 커먼웰쓰는 그렇게 미술 교과서의 데칼코마니처럼 뒤집혀 있다.

서스펜스와 공포를 밀어부치다가 급작스럽게 어이없는 코미디로 마무리되는 상황들이 이어지고, 다스베이더 가면 뒤집어쓰고 오방 지진아 짓 하던 넘이 알고 보니 제일 똑똑하고 치밀한 넘이었다는 키치(?!)한 반전과 괴할망구의 매트릭스의 패로디까지. 할튼 작가의 머리 속에서 다 만들어진 인물이라고 생각을 하고 봐도 어떻게 이런 캐릭터들을 뽑아냈을까 싶게 죄다 경이로운 쿵짝.

이 앞에서 “저게 말이돼?” 이런 질문은 무기력할 뿐이다. 영화의 리듬은 그렇게 심하게 출렁인다. 그들이 쉴새없이 내밷는, 내가 느무느무 좋아하는 스패니쉬 액센트처럼 그 격한 무규칙 이종 출렁임에 몸을 맡기고 영화의 순간순간을 즐길 뿐.

커먼웰쓰는 히치콕의 이창과 악마의 씨(로즈마리 베이비)를 모티브로 서스펜스와 코메디. 호러와 패러디까지를 몽땅 가져다 뒤집고 짬뽕한 그야말로 잡것이다. 하지만, 이 어이없음이 황당함이 아닌 유쾌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때로 복잡다단한 현실계에서 이 해괴망측한 잡것같은 것들이 오히려 위안을 주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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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알모도바르 이 후 잼난 감독을 발견했다. 퍼펙트 크라임과 이 거 두 개밖에 안 봤는데, 어째 이 감독의 영화의 주인공들은 죄다 하자 인간들이다. 욕망에 시달리고 자체의 모순으로 사건 사고를 일으키며, 영화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용서받지 못할 원죄의 낙인을 찍는다. 그 이후엔 온통 post 원죄 이후의 감당못할 좌충우돌이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죄값을 달게 받는 대신 결국 서바이버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모습으로든 생존한다는 것…그렇게 영화는 선악의 잣대를 넘는 생존 본능의 에너지로 들끓는다. 영화의 시선은 한 인간에서 인간사 전체로 줌 아웃되며, 그 결론에는 한 인간의 죄악을 보이지도 않을 작은 점으로 지워버리는 더 큰 사회의 모순과 인생의 불가해가 블랙한, 참으로 블랙한 여운으로 남는다.

끝으로, 300만 페세타 (얼마정도일까?..여튼 아주 많은)를 꽁돈으로 수중에 얻게 된 그녀의 멘트.

난 변하지 않았어. 난 예전의 나에 약간의 여유를 얹은 나일 뿐이야~

==> 귀여브당!!! 흐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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