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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라는 쾌락

신뢰와 믿음. 아주 진부한 단어들이긴 하지만 이게 깨졌을 때의 기분이란 순간적으로나마 살아가는 의욕을 모두 상실할 만큼 씁쓸하다. 오해건 사고건 사실이건 누군가 나를 의심할 때, 내가 누군가를 의심해야 할 때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애써 쾌적의 수위를 유지하고 있는 마음을 모두 흔들어 놓는다.

나는 의심하기 전에 믿고, 믿음이 깨진 뒤에야 실망하는 그런 타입이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지만 난 일단 건너가 보다 중간에 금 가면 에구머니나 하고 놀래 자빠지는 나이브하고 바보같은 천성을 지녔다. 왜냐면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태도가 불러 온 그 수많은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의심하기 보다는 믿고 싶기 때문이다. 나도 서른 해 넘게 살았으면 찐따 바보는 아닐진데, 명백히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의 문제다. 믿고 싶다는 욕망이 회의해야 한다는 논리보다 늘 더 강하게 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순수한 믿음을 바칠 수 있는 순간은 행복하고 짜릿하다.

그러고 보면 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욕망의 성취를 위해 거짓조차 눈감아 버리는 쾌락주의자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검증되지 않은 믿음이란 환상일 뿐이므로. 믿음이란 믿겠다는 결심이나 의지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아니라 믿음이라는 상태에 이르는 수많은 검증의 과정들 속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반대 급부로 그렇기에 난 내가 한 말,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최대한 책임지려고 노력한다. 내 타고난 품성이 성실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믿는 순간만큼이나, 내가 누군가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는 상태 또한 나에겐 지극한 쾌락이어서.

누군가에 대한 믿음이 깨졌을 때, 나는 나를 탓한다. 제대로 된 검증 과정 없이 먼저 믿어 버린 나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쳇바퀴 도는 나쁜 사이클) 하지만, 애써 진심을 다해 노력하는 데도 누군가가 나의 능력이나 태도, 진실성을 의심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뭘까? 설득이나 이해, 조정. 하지만 lazy communicator인 내가 하는 일이라곤 입을 닫아 버리는 것 뿐이다. (나쁜 습관)

나쁜 사이클과 나쁜 습관 속에서 난 아마존의 늪을 헤쳐 나가는 심정으로 살아나간다. 한 때는 조금 다른 태도로 훨씬 더 나이쓰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을 부러워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 그들은 내가 가진, 내가 집착하는 이 쾌락을 모른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다 보면, 지 무덤은 지가 판다는 옛 어른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그런데 그 무덤을 파는 인간은 어쩌면 사실은 그 무덤 속이 좋았던 거 아닐까? 그렇게, 쾌락과 무덤의 늪을 동시에 헤맸던 며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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