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재혼을 했다.
새엄마와 동생(동갑)과 나는 맞질 않는다.
맞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이해를 못한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관계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 관계란 게 다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관계도 갖고 싶지 않기 때문에 문제인거다.
왠지 낯간지러운 가족의 상열지사…
앗!! 나, 지금 가족이라고 생각한거야
의 11화 도입부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다
FUKAMI Rinko ‘타인의 집’
아무런 추천도 사전 정보도 없이,
테스토스테론 향취가 물씬 풍기는 100% 사내용 무협지 블록에 꽂혀있었던
제목부터가 한 눈에 꽂혀 뽑아온 녀석
그 자리, 어쩌면 이 녀석의 지극히 아웃사이더적 태도로 볼 때 오히려 당연한 위치인지도 모르겠다.
영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낑겨져 누구에겐가 빌려져 열렬히 읽혀진 흔적도 별로 없는….
(솔직히 순정만화 블록에도, 명랑만화 블록에도, 더더욱이 SF나 성인물 블록에도 이 녀석은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유진이의 선택에 결정적 뽐뿌질을 했던 목차부터 한 번 살펴보실까?
남은 남대로, 나는 나대로, 하지만 가족이란 놈은. 의 제1화
당신의 팬시는 날 불안하게 만든다고. 의 제2화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당신과 나의 둘만의 시간. 의 제3화
………(중략)
불행은 고양이처럼 쳐내면 쳐낼수록 내게 달라붙는다! 대체 왜?! 의 제9화
스스로 뿌린 씨앗이기 때문에 내 분노는 더욱 끓어오른다고. 의 제10화
→코드 맞아주시는 분들은 이미 필 받으셨으리라.
주인공은 치토세.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아빠의 재혼으로 새엄마와 아키에라는 의붓동생이 등장하고, 마르치스종의 개까지 한 마리 덤으로 들어오는데
긴 털 있는 짐승에겐 알레르기인 치토세에겐 그들이 들여온 개 뿐만 아니라
선의에 그득 찬 그들의 비굴하리만치의 모든 호의가 그저 고문일 뿐이다.
음식, 취향, 성격, 태도…모든 것이 너무나 맞지 않는 사람들과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 공간에…..
아니 ‘안 맞는다’는 단어는 너무 가볍다.
이대로 가다간 난 인격이 붕괴될 거다.
그 인간들의 선의와 자기애는 그만큼 흉악하다.
한 때 내 집이었던 나의 집이 새로운 가족 구성원에 의해 ‘타인의 집’으로 바뀌어가고
치토세는 점점 자신의 영토를 잃어 내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은 오직 자신의 조그만 방 뿐.
그래서 치토세의 방은 점점 독립자치구역처럼 변모해가고,
방에 틀여박혀 보온병 물로 라면을 끓여먹는 것이 가장 속편하며, 방에는 온갖 생필품 가제 도구들이 하나씩 늘어간다.
이 만화의 핵심 포인트는 새엄마와 동생을 바라보는 치토세의 그 더 이상 배배꼬일 수 없는 뒤틀린 시각이다.
평생 사기만 당하고 살아왔으며 비굴하고 감사해하고 친절하고 눈치보고 내내 약자인 그들을 조금은 동정할 수도 있으련만, 치토세는 애정이라고는 일원반푼어치도 없는 시선으로 그들을 혐오하며 늘 탈출 내지 단절만을 꿈꾼다.
그래도 결국 그녀는 가정사의 이런 저런 일들에 관여해 함께 문제를 공유하고 때론 원치 않는 해결사 노릇까지 해야 하는데, 거기에 골때리는 그녀의 딜레마가 있다.
그렇다고 새엄마와 아키에가 무조건 착하고 순종적인 약자로 그려지느냐 그것도 아닌 것이
약자이면서 눈치껏 자기들만의 무색유취한 언어로 치토세의 뒷담화도 까 주시고,
의도적인 것 같진 않지만 약자의 약함을 적극 활용해 어느새 원하는 것도 성취하고
싸구려 감동병과 청승과 감상주의의 극을 달리며 분위기 파악 못하고 아주 웃기지도 않은 신파를 찍어대는데, 내가 봐도 솔직히 조금은 기겁할 만 하다.
새중간에 낀 아빠란 존재도 이 상황이 교통 정리가 안 되며 될대로 되라…는 식이고.

하옇튼 이 만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니컬과 이기주의의 극단을 달리며
일말의 희망이나 화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주인공인 치토세조차 ‘뒤틀렸지만 이해되고 귀여운 구석이 있다’와 ‘정떨어지는 피해망상증 환자’의 두 극단을 오락가락하니까.
어쨌든 이런 식의 이야기는 메인스트림의 열광과 지지를 이끌어 내기는 힘들거란 생각.
그리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돼겠지.
이런 정서가 범대중적인 지지를 얻어, 이 사회에 팽배해진다면…우~~ 머리가 지끈.

하지만 이런 만화야말로 컬트 정도는 되어 주어야 하고, 소수 마이너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보는데.
인간의 어떤 극단의 비틀림에 대해 이토록 솔직하고 집요하게 그려낸 만화는 일찌기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 유진이가 섭렵한 만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지~~롱 ^^;;;)
예를 들면, 그남자 그여자(카레카노)가 아리마와 유키농의 평이한 러브스토리로 변질되기 이전의 도입부에서 보여준
그 아이디얼한 범생의 이면 까뒤집기를 피도 눈물도 없이 극단으로 밀어부친 버전이랄까.
대개 가족이란 것에 대해 끝까지 가 봤자 도달하는 데란 겨우
‘그들은 서로 가까이 있어 미워하면서도 결국 돌아갈 곳은 가족이고 서로 사랑하고 의지해야 할 존재’ 정도인데 반해
‘타인의 집’에서 보여준 그 비타협성, 특히나 ‘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걸고도 아주 가볍게 타협점을 무시해 버리는 괴팍함이
굉장히 유니크한 개성으로 다가왔다.
물론 지지할 만한 인생자세는 아니지만 ~!!
이기주의의 결정체인 치토세와 모랄이니 감상주의니 치토세의 새엄마와 아키에가 공존하고 있는
내 마음 속도 결국은 타인의 집.
초자아에 억눌린 마이너, 내 속의 치토세가 좌충우돌 속에서나마 활개치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건 아닐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그런 것도 존재하는거고 부정할 수 없어’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어서
그래서 재밌었나보다.
하옇튼!
유진이가 178%의 오바된 감상주의에 빠져 질척거릴 때, 이 만화는 -87% 촌철살인의 드라이함으로
감정의 밸런스를 맞춰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왜 늘 내 마음은 탄젠트 곡선의 평균값으로 밖에 균형을 찾을 수 없는지~!!
어짜피 똔돈일거면 쫌 무난하게 흘러주지 말이야.
평정심의 수면, 0 부근에서 찰랑찰랑……
AB형에 전갈자리, DNA를 탓하리………………………..에혀~
^^;;
#치토세 어록
-바보 같은 슬리퍼를 신기보단 바보 같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게 더 노력이 필요하다고
-결점이 없는 인간은 없다. 결점을 서로 허용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면….
우리에게는 떨어지는 것이야말로 존중해 주는 것이다.
-내가 한가로운 이상주의자라면 이집에서 썩어가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앞날이 바쁜 몸이다.
-재수없는 녀석한테 감사를 받으면 기분이 안 좋다
남이 미워할 틈을 안 주는 태도가 진짜 밥맛이란 말야
-완전히 자기들 얘기속에 빠져 있군
진실은 아무래도 상관없는거다. 재미가 없으니까
-그 인간들의 인생은 나의 관심 범위 밖의 일이고 무엇보다 얽히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인간들은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을 확대해석하는 인종들이다
이 해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학을 졸업하면 집에서 나와 혼자서 조용히 사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아빠와 양딸의 예의차리기 시합에 끼어들어봤자 근본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하지만 역시 그것도 주위가 허락하지 않았다.
-‘대단해’ ‘무서워”허무해’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한 꿀꿀함의 오라가~
밖에나 나가볼까?
-‘가족놀이’를 하는 사람이 있고, ‘남으로 지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
그건 ‘남인데 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과 ‘이미 가족인데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 건가?
(등등의 생각을 하며 가다가 아빠가 빠징코장에서 혼자 놀고 있는 걸 보며..)
제일 도망치고 싶은 사람은 어쩌면 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등등의 생각에 잠길 뻔 했지만, 난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그만뒀다. 두 번 다시 그딴 생각은 절대로 안 해!
ps.
코미디 하나
알라딘의 ‘타인의 집’ 분류

인간 드라마….가족과 일상의 소중함……… -_-;;;;
김성동 팀장님이 보고 계실지도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이건 정말 알라딘의 탓은 아닐듯.
대체 이런 만화를 어느 장르에 넣겠어?!
세일즈 포인트는 45,, 세상에 이런 개성있고 완성도 높은(그림도 열나 잘 그렸드만) 책의 포인트가 정유진의 웹기획론보다도 낮군! 아싸~!
어째 무시무시한 것이… 저같은 사람은 피해야할 것 같은 작품인 듯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요즘 저런 상태를 향해 한발짝 한발짝 내딛고 있기 때문에… 지금 저에겐 오히려 “가족은 소중한 것이여” 류의 작품이 필요하건만, 그런 것들을 봐도 시니컬해지기만 할 뿐이니… (명절이 되자 더욱 뒤틀리고 있는 나… -_-;)
유진님 글을 일고 괜시리 더 읽고 싶네요…ㅎ
이럴 수가. 제 레이더를 피한 만화가 존재할 수 있다니! 게다가 재미있을지도 모른다니! 30대 만화광으로서의 자존심의 문제입니다요.
이런 모랄 해저드성 정서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하는 건지
아니면 숨겨야 하는 건지 헷갈려요.
이렇게 살고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끌리는 거이
예전에 다자이 오사무 소설들 보면서 들었던 그런 심정 비슷??
할튼 전 두 권 구매하려구요.
아스피린이나 반창고 같은 비상 구급약 용도로.
오늘 두권 다 읽었습니다. 흥, 역시 제 레이더를 피한 이유는 “신간”이기 때문이었다고 자위해보며.
그건 그렇고 엄청 낄낄대고 웃느라 주변사람들한테 창피할 정도. 아아, 유쾌하긴 한데, 여주인공 역시 성격에 결함이 있는 듯. 뭐, 완벽하지 못한 것이 사람이니까. 게다가 안그랬으면 이야기가 재밌을리도 없고. :)
잘했어요, 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