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2009)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7701
1.
엄마의 불안한 눈동자는 필사적으로 자식의 육체를 배회하지만, 자식의 영혼은 어디론가 빠져나가 엄마가 붙잡을 수 없는 먼 곳으로 흘러간다.
자식은 여자에게 홀려 넋을 잃고 뒤를 쫓는다. 엄마는 그런 자식의 뒤를 쫓는다. 여자와 자식이 홀연히 사라지면, 쫓던 이들이 남겨진 곳은 미로.
그렇게 영화는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향한다. 강물의 흐름처럼 서서히 방향을 뒤틀어, 반대편 기슭에 숨어있던 경악스런 사실에 다다르기까지. 엄마는 이 음산한 회전의 중심축이다. 자식에게 속아야 할 모든 이유를 가진 사람, 바로 엄마다.
2.
꿈을 꾼 듯한 시간이 흐르고 천천히 눈을 뜬다. 손은 흥건히 피범벅이다. 손에 묻은 피는 닦아낼 수 있지만, 영혼이 두른 피칠갑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것은 누구의 죄일까.
다쳐서 처음 피를 본 사람은 놀래서 피를 닦지만, 피에 흥건히 젖어 있는 자는 더 이상 피를 닦지 않는다. 그는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다. 미소를 지을 수도, 다정하게 말을 걸 수도 있다. 뭐든 다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선을 넘어가면 소리가 안 나온다. 그 어떤 것도 아닌 표정을 지을 수 있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사람은 그럴 수 있다.
난 그래도 사는, 살아야 하는,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 엉망진창인 채로라도.
3
여전히 < 마더>에서는 밥 먹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아무리 잔인하고 음습한 현실 속에서도, 밥을 하고 먹여주는 한 걱정없다. 난 봉감독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그 모든 밥 먹는, 정확히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밥먹이는 장면이 너무나 살갑다. 얼어붙어 가는 지구를 달리는 < 설국열차>에서는 또 누가 누구에게 어떤 밥을 먹일까? 폐쇄된 극한의 상황에서 밥은 보다 절실한 생존의 상징이 되리라.
인식의 균열이 임계치에 이르러 단순한 한 마디의 질문으로 발화되는 것도 여전하다. “엄마 없어?” 질문인지 절규인지 모를 이 말은 < 살인의 추억>의 “밥은 먹고 다니냐?”에 필적하는 세기의 명대사다.(나에게는^^) 물론 후자는 송강호의 애들립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죽도록 뒤쫓아도 연기처럼처럼 빠져나가고 마는 징그러운 놈이지만, 그래서 억울하고 분하기 짝이없지만 그런 놈조차 밥 먹고 똥싸고 숨쉬며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모든 게 엉망징창이 되어버린 순간, 짠~하고 나타나 누명을 뒤집어쓰고 내 자식 살려주는 하늘이 내린 동앗줄처럼 반가운 희생양이지만 내 자식보다 더 덜떨어진 저 아이조차 어떤 엄마에게는 귀한 자식일 것이다.
< 괴물>에서 강두는 현서 대신 살아온 아이를 자기 자식인 양 극진히 키우지 않는가. 칼바람 부는 추운 겨울날, 뜨거운 밥을 해 먹이며. 혜자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혜자는 자기 자식 살리자고 또 한 자식을 죽여야 한다. 내 자식을 살린 기쁨과 동시에 자기 자식을 지키지 못하는 세상 모든 엄마의 고통이 혜자에게 쏟아진다. 보편성과 특수성은 뜯어내지지 않는 악귀처럼 쌍으로 들러붙어, 천국같은 지옥을 선사한다.
4.
< 박쥐>란 영화는 그냥 보면 안되는 영화같았다. 자꾸 뭔가 해석을 하게 했다. 이야기와 영화에서 중간에서 무언가를 설명하려는 해설자의 시점이 걸리적 거렸다. 그가 설명하려는 대상은 잘은 몰라도 어쩐지 대단히 심오하고 멋들어진 것일 것만 같다. 때깔도 죽여줘서, 매우 유혹적으로 지적 도전 혹은 허영을 부추긴다. 아무 생각없이 살던 와중에 뜬금없이 죄니 구원이니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신선한 경험이다. 그냥 그렇다. 멋지지만 어디 먼 나라 의상을 고쳐 입은 듯한 이질감…
< 밀양>은 거대한 세계이지만 너무 칙칙하다. 그냥 눈을 돌려 버리게 된다. < 밀양>이나 < 박하사탕>은 왠만한 영화라면 감히 시도할 수도 없는 영혼의 깊은 곳으로 인도하지만, 그 밑바닥은 너무 이상한 곳이서 다시 혹은 자주 가고 싶지는 않다.
< 마더>는 오리지널하다. 공식도 해석도 아닌 진짜배기 원형의 텍스트. 한국 사람의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 너무 사랑해서 죄를 짓는 줄도 모르는 한 사람의 이야기. 고독한 줄도 모르고 거대한 풍경 속을 홀로 헤쳐 걸어 들어가는 너무 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 .
5.
첫 장면의 물음표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느낌표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 어떤 설명도 필요없이 그 춤안에는 모든 ‘이유’가 다 들어 있었다. 꿈꾸듯 흐르는 영화 속에 푹 젖어 두 시간을 보내고 난 후, 극장 안에서 나 혼자 박수를 쳤다. 참 나, 이렇게 잘 만들 수가 있나.
생략하고 더 생략해서, 알짜배기만 남겨야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