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수영을 했다.
유진이의 기분을 업~ 시키는 세상의 몇 가지 일들 중 하나.
수영장의 물은 딱 적당할 정도로 따뜻했고,
낮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어서 한 레인을 거의 독차지 하다시피 하는 호사를 누렸다.
걸음으로 치면 게으른 산보에 해당할 정도의 느린 자유형으로 25m 레인을 스무번 왕복.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이 편안해진다.
내가 지금 꺽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건가?
발차기에 무릎이 구부러지면 안돼는데.
교육 내지 세뇌의 힘은 무섭다.
10년도 전에 들은 그 얘기들이 여전히 나의 뇌속에 메아리치다가…페이드 아웃.
숨쉬기를 위해 살짝 고개를 돌릴 때마다 천장의 불빛들이 부옇게 부서지고.
누군가가 불어제끼는 호루라기 소리, 무어라 외치는 소리,
옆 레인의 아줌마가 물살 가르는 소리들이 뒤섞여 한꺼풀의 필터를 댄 것처럼 왕왕대고.
파란 물살은 물안경 너머로 더욱 파랗다.
내 손으로 찬 물 속에서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오는 걸 그 바쁜 (발차기 손차기) 와중에도 물끄러미 보고 있다.
기묘한 아우라다.
나에게 수영장은 매우 비현실적인 판타지 공간이다.
난 여기서 플랑크톤이나 인어공주를 발견한다 해도, 놀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옛날에 너무너무 잘하고 제일 쉬웠던 배영이 전혀 안 되서, 화들짝 놀랬다.
물도 배부르게 먹고 -_-;;
그 다음 순서는 찌~~인한 싸우나. About Me에서 고백했듯이 그야말로 메저키스틱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열탕과 냉탕, 한증막을 오간다.
피부에는 울긋불긋한 반점들이 생기고, 사우나 천장은 빙빙 돈다.
이게 건강과 피부 미용에 얼마나 안 좋은지는 여성 잡지에서 무수히 읽었지만
난 이 체험을 포기할 수가 없다.
지쳐 쓰러질 만큼 열로 달구어진 몸을 이끌고 차가운 냉탕안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풍덩~하는 순간의 쾌감.
그 차디찬 물 속에서 흑백 사이키 같은 게 빙빙 돌아간다.
그렇게 조금 있다 보면, 살갗에 얇은 살얼음이 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더 있다보면 그 살얼음이 점점 단단하고 두터워져서는 뼈 있는 데 까지 닿는다.
오들오들 추워지다가 그 감각마저 상실되고, 사우나 천장은 360도로 빙글빙글 더 빠르게 돌아간다.
역시…아~~주 편안하고 따뜻해진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입이 딱 붙어 대답이 안 나온다.
흐흐흐…할배같은 웃음만 비실비실 나고 기분은 몹씨 업~!
이 얘기를 했더니 누군가는 “그게 약이야” 하던데 나야 안해봐서 모르지..
다만 이게 좋다는 것만 알 뿐.
그런 신체 학대 & 정신 고양의 시간을 갖고 나왔더니만
이거 또 날씨가 죽음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나가 놀기 참 좋은 가을 날씨..
집에 와 된장찌게에 밥을 말아 먹고나서
약간 피곤하다 싶은 몸을 이끌고, 저녁 바람에 보라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좋다…참 좋다.
나는 정말로 단순한 사람이다.
맛있는 거 먹여주면 잘 먹고 감사해 하고, 수영하면 기분 좋고
2시간의 사우나에서 인생의 절정을 누린다.
낡은 슬리퍼 질질 끌고나가 혼자 산책을 하면서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한없는 평화를 느낀다.
그러고 나서는 (실은 그러고 나서야) 일도 되게 열심히 한다.
프로젝트에서 갑자기 떨어진 숙제를 불평도 없이 끄적끄적끄적끄적…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머리를 쥐어짜내는데, 이 기분이 또 싫지가 않다.
심지어 아드레날린 같은 게 솟아날 때도 있다.
스스로에게 깜짝깜짝 놀랠 때. “앗, 어떻게 이런 정확한 관점을..!” ^^;;;;
(제발 우리 PM이 이걸 안 봐야 할텐데…봤어도 모른 척 좀 해 줘요^^ 여튼 나 열심히 했다구~~)
중간 쉬는 타임에 TV를 틀었더니,
아닌 밤중에 맨유의 챔피언스 리그 첫 번째 경기 중계. 거의 땡잡은 수준으로 기뻐 날뛴다.
일은 잠시 접고 일단 축구부터 봐버린다.
무지무지 행복한 새벽이다.
하지만 더도말고 덜도말고 오늘같기만 하기 위해, 난 참 많이 무지막지하게도 싸워야 했다.
또 싸워야 한다.
내 욕망의 팔다리를 잘라가며.
이크 이틀째 수영 빼먹고 있는데 나도 내일은 들어가야겠습니다. 일일삼성하는 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