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정말 오래 간만에 클래식 공연이라는 것을 누렸다.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부천필의 말러 교향곡 9번. 부천 필은 99년부터 장장 5년에 걸쳐 말러 전곡을 연주해 ‘말러 신드롬’을 이끌었고, 지휘자 임헌정 씨는 클래식 매니아 사이에서는 일약 ‘아이돌’로 떠올랐다…고 한다. 특히나 지난 번 8번 천인 교향곡은 합창과 어울어져 대략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던 듯 하다. (같이 본 이들이 해 준 얘기 종합)
나는 이쪽이 문외한이라, (뭔들 문내한이랴만은) 졸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공연 전 졸아도 내 인간성을 의심하지는 말라는 둥 미리 포석을 깔았지만, 예상 외로 나 졸지도 산만하지도 않게 꽤나 집중해서 연주를 즐겼다.
좋은 연주였다. 뭐가 좋았냐구? 그냥 다…이건 하나마나한 뻔한 얘기고,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예상 외로 또 그렇게 심한 감동의 물결은 아니었다. 앞 자리 앉은 사람은 연주 듣다가 감동 먹어 눈물을 흘리는데 난 생뚱생뚱 다리 꼬은 방향만 바꾸고 있었고, 보고 나서 사람들에게 가다 만 듯한 느낌이다…고 했다가 순간 싸늘해지며 왕따 당할 뻔 했다. 제 1 바이올린이 너무 약했던 거 아냐? 고 했으면 아마 한 대 맞았을 것이다.
나는 압박하는 것들이 싫다. 교향곡도 싫고 때려 부수는 락도 싫다. 클래식도 소편성. 현악 4중주나 5중주. 드보르작의 아메리카나 브람스의 퀸텟 정도가 내겐 딱이다. 말러나 베토벤의 교향곡을 내 방에서 혼자 듣고 있는다는 건 …우 피곤하다. 가뜩이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에, 남의 존재감까지 얹을려니 에너지가 딸릴 수 밖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을 들을 때에는, 그땐 음악이 아주 확실하게 나를 압도하기를 바란다. 여리여리한 내 감성을 산산히 깨부수어 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닿는 곳이 지옥이든 천국이든 올라 갈 때 까지 가서는, 내 속에 있는 일말의 잡생각 따위는 단숨에 집어 삼켜 먹어버리는 허리케인 같은 감동을 바란다. 제길..인간이 왜 이러냐.
불행히도 부천필의 연주에서 그런 걸 느낄 수 없었다. 미치겠다. 안 느껴지는 내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것도 다들 입을 모아 좋기만 하다는 이런 공연에서…그걸 또 음반이 아닌 라이브로 들으면서.
보통 오케스트라는 3번 많아야 대여섯번의 리허설을 하는데, 부천필은 20번 가까이 리허설을 하고, 관 파트는 입이 부르트도록 연습을 한단다. 그러니 애호가들과 언론들이 입을 모아 찬사에 찬사를 외칠 수 밖에. 근데 난 모냐고….이건 연주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불감증이다.
그렇기 집에 와서 또 다시 이런 저런 잡생각에 몸부림치다가, 문득 공연 보러 가기 전에 듣고 가야지 했던 말러 9번을 데크에 걸었다. 내게 말러는 딱 두 개다. 그 중 하나가 우연히도 이 9번. 브루노 발터-콜롬비아 심포니. 발터가 84세에 지휘했다는 연주. 사실 공연 전에 미리 듣고 가려고 꺼내 놨는데, 역시나 대편성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앞에 2분 정도 듣다가 제꼈었다. (그리고 곧바로 스파이시 걸스를 틀었다는 뒷얘기..)
근데 이게 뭐냐. 스피커에서 1악장이 흘러나오는데, 나 대충 반쯤 누워서 듣다가 벌떡 일어나 앉아야만 했다. 아…이건 정말…
지금도 내 귀에는 9번의 4악장 아다지오가 흐른다. 옆집 사는 사람이야 괴롭건 말건 볼륨을 이만큼 높여놓고, 쓰다가 듣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선율이 처절하게 흘러나온다. 이거야말로 내가 바랬던 그런 변태 성향 (최고의 Sub로서 Dom 앞에 굴복당하기 바라는 경향)을 확실히 충족시켜 주는 압박의 정수가 아니더냐. 난 이런 아름다움 앞에서는 자의식 따위는 조금도 남겨두지 않는다. 한 인간이 또 다른 한 인간의 행위 앞에서 99프로 감동받더라도 1프로 지켜야 할 일말의 자존심까지도 내팽개친 채, 기꺼이 무릎 꿇는다.
클래식을 오랫동안 듣지 않았다. 한 8,9년 전 쯤 아주 짧은 한 때 클래식을 ‘들어 보려고’ 했었고, 그 결과로 이런 판도 남겨두게 되었다. 앞으로도 말러는 잘 듣게 되지 않겠지만 그 공연 하나로 묵혀뒀던 CD하나도 발굴했고. 또 아마 이것이 계기가 되어 몇 개의 클래식 CD의 먼지를 더 털어내게 될 것 같다. 그래봤자 오래 가지 못할 사이클이지만. (금방 키스 자렛으로 돌아가지 않겠어?)
부천필에서 못 받은 감동을 내 방에서 받고, 공연장에서 못다한 컴플레인도 이렇게 블로그 에디트 창에 털어놓으며 난 할 일 많은 한 주를 시작한다.
전 클래식에는 영 문외한이라…ㅡ,.ㅡ 그래도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노래들은 좋던데요. 넘 무겁지 않고. 더구나 축구도 무척 사랑한다고 들어서, 더 호감이 가요.^^ 근데, 실명이 된 이유가 어릴 때 축구공에 맞았기 때문이라더군요.
보첼리라고 하면 옛날에 “결혼할까요?”인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마지막에 한강 다리에서 파트너 기다릴 때 삽입됐던 그 노래가 생각나요. 그 노래만 나오면 가슴이 두근두근…그런데 축구공이..음 그랬었군요. 그러면서도 축구를 좋아하다니 정말 더 좋아해 줘야겠네. ^^
혹시 조쉬 그로반(Josh Groban) 가수 아세요? 앨리맥빌 시즌 4의 마지막 에피에 나왔었는데, 처음에 목소리 듣고 기절하는 줄 알았답니다. 당시 앨리의 상황과 노래가 어울어져 펑펑 눈물을 흘렸다는…
앨리에 나왔던 You’re still you라는 노래도 좋은데요, Alejate라는 노래..꼭 들어보세요. (벅스 같은데서라도) 무슨 내용이길래 이리도 애절한건지…이런 비오는 날 들으면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