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부문 남우주연상수상
오프라 윈프리 쇼에 단단한 눈매에 양복을 잘 차려입은 한 중년의 백인 남자가 출연했다. 수 천명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 정도를 물고문 하는 것이 뭐가 대수냐고 한다. 이라크 공격 이유는 정당했으며, 미성년자가 낙태 수술을 받으려 할 때 시술 병원은 부모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런 말을 참 잘도 지껄인다. 이 사람은 빌 오라일리다. 폭스 뉴스에서 < 오라일리 팩터(O'Reilly Factor)>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정직, 성실, 가정, 교육, 교회, 애국심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전파하고 진보세력의 위선과 사실 왜곡을 가차없이 폭로 비판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기를 구가하는 극보수주의 언론인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미 2000년 진보 성향의 < 래리킹 라이브>의 시청률을 능가했으며 그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보랏을 봤다. 촌스런 회색 양복에 뽀글 머리, 콧수염을 기른 카자흐스탄 리포터가 등장한다. 미국 문화를 배워보겠다며 저 멀리 중앙아시의 북부에서 미대륙의 중심부로 날아온 그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저질이고, 최소한의 예의조차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뻔뻔하다. 사교 파티에 똥봉투를 들고 등장하며, 홀딱 벗고 엉덩이로 상대방의 얼굴을 짓뭉개며 침대 위 레슬링을 벌인다.남는 것은 ‘핑크 플라밍고’를 봤을 때와 비슷한 트라우마다. 구역질이 날 수도 있고, 왠지 모를 거부감과 울렁증에 극장을 나와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카메라는 이 모든 것을 별 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그야말로 다큐멘터리식으로 뒤쫒는다. 이 여정에서 보랏은 페미니즘, 중산층, 미디어, 인종차별, 종교, 유대주의, 게이문화…등 현재의 ‘미국’을 구성하는 온갖 것들을 상상초월 보랏식으로 각개격파한다.
진보적이 되는 것은 쉽다. 비판적이 되기는 쉽다. 그런 태도를 좋아하기는 더 쉽다. 다들 조금은 비딱한 것에 쉽게 마음을 끌리고, 기존의 질서를 갑갑해 하며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이 거대하고 단단한 질서와 1대 1로 맞장뜨는 건 다른 문제다. 기존의 질서를 뒷받침하는 논리와 시스템은 강력하다. 이 밑바닥도 진정성이다. 이들이 합체해 거대한 성곽을 이루어 보주주의의 헛점와 비밀을 감싸고 지킨다.
영화는 눈으로 보여주는 영상 매체다. 영화가 도전이나 투쟁이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무언가를 보여줌으로써 가능해진다. 하지만 눈으로 보여줘야 할 대상을 그들이 숨기고 있을 때, 영화는 포기하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마이클 무어는 집요하게 논리를 세우고 지독스럽게 파고들어 증거를 파헤치고 폭로하는 실증적인 방식으로 그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보랏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신 그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대낮의 뉴욕 한 복판에서 양복 바지를 내리고 자위를 한다. 대상을 스토킹하다가 경계가 허술해진 빈 틈에 닫힌 커텐을 열어 제치며 폭로쇼를 펼치는 대신, 그 커텐 뒤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일들을 난 모르쇠~ 하지만 자기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통해 바로 그것을 눈 앞에 들이대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꼭 ‘자살폭탄테러’같이 느껴진다. 왠만한 자극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질서 세계로 침투해 거의 자해수준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망가뜨림으로서 충격파를 가한다. 그래봤자 오라일리 같은 인간이 꿈쩍할 리 없지만, 그래도 극과 극에 서 있는 이 두 남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 정유진의 웹 2.0 기획론>에 나란히 찬조 출연해 주셨다는 것. 모든 것이 미적지근한 상대성의 원리로 흘러가는 요즈음, 그것이 가장 안전한 방식을 깨달은 지 꽤 되는 나이지만 때로는 이런 꼴통들이 등장해 썰만 무성한 이 무기력한 세계에서 텍사스 전기톱이라도 휘둘러 주기를 바랄 때가 있다.

anyway, thang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