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 로미오와 줄리엣> 2007.2.10(토) 세종문화회관 7:30
이것은 영국이 낳은 비극적 사랑의 위대한 원형에 대한 프랑스의 도전일까? 줄거리는 셰익스피어의 그 로미오와 줄리엣이건만, 그들이 노래하는 언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그 걸쭉한 ‘대사빨’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말하자면, 햄릿에서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가 안 나온 격이다. 그 대사를 빼고 뮤지컬 햄릿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어색한 질문에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프렌치 아티스트들은 ‘아니, 우리는 그 보다 더욱 심오한 것을 만들 수도 있다’라고 답하는 듯 하다.
그렇게 이 작품은 프랑스의 비옥하고 풍요로운 최상급 떼뚜아르에서 정수만 뽑아 모은 듯한 내공 만 단의 대사들이 서막에서부터 쿵~하고 이성과 감성에 동시 다발로 메스를 들이댄다. 이어지는 < 베로나>는 단연 압도적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니가 아는 그런 것인 줄 알았니? 오, 아마 아닐걸! 이 작품에서 가장 경이로운 부분은 공연으로서의 화려함이나 완성도가 아니라 기저의 텍스트다. ‘증오의 꼭둑각시’로 죽음의 소매 자락 아래서 애증에 발버둥 치는 가련한 인간의 운명에 대한 통찰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장미빛 농밀한 수사와 만나 활짝 꽃 피운다. 여기에 덧붙여진 음악은 또 어떤가? 셰익스피어를 완전히 재창조 해 보려는 듯한 이 야심찬 텍스트의 시도를 뒷받침 하듯, 하나같이 강렬에 강렬을 더해 에너지로 끓어 넘치고 배우들은 이 기운을 받아 절절이 노래하고 펄펄 날아다닌다.
우리의 정원에는 꽃이 만발하고
우리의 여인들은 아름답소. 이곳은 지상의 낙원과도 같지..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지옥에 있소 .
그대는 지금 그러한 베론에 머물고 있소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하며, 밤마다 잠이 드는 당신
이곳에선 누구도 믿을수 없지
베론에 오신걸 환영하오.베로나 中
그러니까 모두 다 아는 뻔한 스토리를 아름다운 음악과 현란한 무대장식을 입혀 무대에 올린 그런 뮤지컬이 아니라, 영혼이 깃든 시도라는 거. 압도적인 스케일이나 거대한 무대 장치 같은 건 없다. 오히려 난 ‘해석’에 공들인 최초의 그 시도를 음미하며 곡이 끝날 때 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어쩌면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초월해, 내가 늘 인정해 마지 않는 ‘그런’ 종류의 시도에 대해.
아쉬운 것은 시간이 갈 수록 왠지 그 처음의 감흥이 적정한 가열 시간을 초과한 부대 찌게처럼 점점 쫄아드는 이 느낌. 심각에 심각을 더하고, 강렬에 강렬을 더하니 남는 것은 그 요지부동 긴장의 틈바구니에서 애써 꼬투리 잡아 잠시나마 휴식을 갖고자 하는 불량 관람자의 헛헛한 웃음이다. 마지막 20분은 줄리엣의 죽음을 ‘어떻게 말하지?’라는 벤볼리오의 울부짖음에 옆자리 친구와 “그런건 SMS로~” “걍 단도직입적으로” 등의 장난성 리액션을 귓속말로 주고 받으며 키득거리는 나를 발견!
15세때 시작된 아동 학대(?!)를 계기로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던 티볼트의 고뇌, 친구에게 비극적 소식을 전해야 하는 벤볼리오의 고뇌, 딸은 가진 고뇌 캐퓰릿의 고뇌, 이도저도 아무 것도 모르겠는 신부님의 고뇌까지…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어. 이렇듯 절정의 클라이맥스가 되어야 할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전후좌우에도 온갖 고뇌와 비극의 오라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으니, 도당췌 핵심은 뭐냐고요. 맨 마지막 신에서 돌아가며 절창을 뽑아내는 온갖 캐릭터의 향연을 보고 있노라니, 두 주인공은 죽은 채 누워 있는 데도 무대 위에는 로미오와 줄리엣들이 각각 족히 너댓 명은 되는 듯 꽉 차서 넘친다. 일명 ‘에브리바디의 로미오와 줄리엣화’ (너도 로미오, 나도 로미오) 현상이라고, 같이 본 친구는 같은 걸 “어떤 노래든 아무 데서나 막을 내려도 말이 되는” 노래들이었다고 표현하더라.
셰익스피어는 아무리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중간 중간에 한없이 광대나 바보들의 막간극이나 소극 같은 설정을 집어 넣어, 긴긴 시간 극을 지켜봐야 하는 관객들의 긴장한 신경을 마사지 해 주고, 극의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주석과 담론을 이끌어냈으며 해석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는 그의 대사들 또한 정작 맘비우고 읽으면 그 기막힌 비유들에 남녀노소 누구나 낄낄거릴 수 있는 즐거운 텍스트일 뿐이다. 셰익스피어는 후대에 자신을 학문으로 연구할 단련된 지성들 대신 그저 오후의 구경거리를 찾아 극장에 몰려온 거의 모든 계층의 일반 관객들을 즐겁게 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뮤지컬의 노래들은 참 거대하고도 심오하다.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특히 장난과 광기 사이를 오가는 머큐쇼의 재기발랄 장광설과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 속에서 삶의 지혜와 애정을 보여주는 유모의 정감어린 대사들이 빠지니 이거 참, 왜 이리 허전한건지. 시소 저 쪽을 지켜줬어야 할 그들마저 한 패로 무거워지며, 극의 무게 중심이 심하게 휘청~하는 느낌이랄까. 죽음을 한 인물로 형상화한 설정은 신선했지만, 그녀 역시 너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듯 해서 난 부담스러웠다. 꼭둑각시 놀음을 내려다보며 제 멋대로 인형의 실을 조종하는 그녀가 이들의 비극을 좀 더 비웃거니, 낄낄대며 이 판을 좀 더 즐겨줬다면 어땠을까. 타자화된 그들의 비극이 좀 더 선명해지지는 않았을까.
‘로미오와 줄리엣’하면 떠오르는 줄리엣의 명대사들 (by 셰익스피어)
– 장미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향기는 마찬가지잖아요.
– 아, 변덕장이 달님에 두고 맹세하지 마세요.
– 그럼 당신 입술에 키스해야지. 혹시 독약이 아직도 입술에 남아 있다면 나도 당신을 따라 죽을 수 있을거야.
– 아, 반가워라. 여기 칼이 있군. 이 가슴의 너의 칼집이다.
보너스~ 말하기 싫은 상대를 대응하는 줄리엣의 귀여운 반어법 작전
패리스 : 신부님께 고해하러 오셨나요?
줄리엣 : 그렇게 대답을 하는 건 백작님께 고해를 하게 되는 셈인걸요
패리스 : 날 사랑한다는 걸 신부님께 숨기지 말아요.
줄리엣 : 백작님께 고백하지만 전 신부님을 사랑해요.
소박하지만 가슴에 와닿아 작은 미소를 짓게 하고, 쉽지만 그 안에 풍요로운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이 그리워졌다. 집에 와서 얼른 원작을 펴 보니, 역시 이 맛이 셰익스피어다. 줄리엣에 대한 들끓는 모성애를 고백하는 대신, “로미오님을 찾아 얼른 아가씨를 기쁘게 해 드릴께요”라고 말하는 유모. 우리가 세상의 왕이라고 선언하는 대신 처녀들이 누워있으면 누군가 배를 눌러도 참고 견디게 만드는 법을 배우게 해 아이를 쑥쑥 낳는 아낙네로 만든다는 맵여왕의 야설(??)을 늘어놓는 머큐쇼. 너무나 편안하고 웃기고 귀엽고…모던하다!
원형에 대한 도전이 강렬할 수록, 그 원형의 위대함은 더욱 부각된다는 것. 훌륭한 뮤지컬 한 편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그런데, 이 좋은 걸 학교 때는 왜 그리 지지리도 공부 안 한건지.

유진이가 가장 열광한 캐릭터는 ‘잘 노는~’ 머큐쇼! 원작에서도 뮤지컬에서도 단연! (제일 왼쪽)
가운데 로미오도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네. 머. 그렇다 치고.

좋은 건 좀 땡겨보자~ 끝나고 앙코르 비슷한 뒷풀이로 대표곡 두 개를 불러 주던데 이 때가 본 극보다 더 신나더라.
역시 어깨 힘 쫙 빼야만 느낄 수 있는 흥이 있다니까…큐쇼씨도 흥이 뻗쳐주시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