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like vampires. Once it’s in you, it stays…
-DAVE (by Tim Robbins)
비극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승과 저승을 떠돌며 영원히 끝나지 않는 무간지옥처럼.
*spoiler* (언제는 아니었나..그래도 그냥^^)
우아함이란 이런 것 같다. 이렇듯 처참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데도, 영화는 흔들림없이 자신의 격을 지킨다. 어줍잖은 공감이나 격한 감정의 동요를 겨냥하는 대신,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조용히 비극의 본질에 가 닿는다. 백기를 들게 하는 지독한 결말이다. 한 시기의 상처 혹은 불운이 일생에 어떤 흔적으로 남기고, 그 결과로서 어떤 인생을 살게 하는지에 대한.
비극은 단 한 순간에서 시작한다. 단 한 순간. 덜 마른 보도블록 시멘트 위에 이름 새기기 장난을 치는 세 아이 앞에 차 한대가 멈춰 선 순간. 거기서 내린 한 아저씨에게 데이브가 선택되어 끌려 들어간 순간. 그리고 한 인간의 생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리는 데 필요한 시간 단 4일.
그때 그렇지만 않았더라면, 이란 감정의 비극성 …그 사무치는 후회와 절망의 무게는 그 한 순간의 댓가로 끝없는 무간지옥을 견뎌야 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질주하는 트럭에 깔려 길가에 짓뭉게진 고양이 시체를 뒤집어 쓰고 사는 가면의 인생만이. 그들은 취생몽사란 술을 갈망하지만, 그것은 이 생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구원이다.
방법은 오직 하나. 킵온고잉…그건 데이브가 아니었어, 라는 자기 부정의 모멸감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는 것 뿐이다.
인간의 놀라운 점은, 그렇게도 계속 살 수 있다는 것 같다. 심지어 때론 웃고, 사랑도 하고, 술도 마시고, 결혼까지 해서 아들의 손을 잡고 학교도 바래다 주기도 하면서. 죄와 과거를 묻은 미스틱 리버를 가슴에 숨기고도. 그 복잡한 인간 내면의 풍경을 영화 속 배우들은 화면 위에 펼쳐보인다. 현란하지도 않고 격하지도 않고 ..부족함이란 더욱 없이, 딱 그 캐릭터만큼을.
특히, 숀 펜의 연기는 숀 펜이 아닌 다른 누구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절창이다. 대개 영화에서 한 두 사람만 연기를 잘해도 감동스럽기 마련인데, 팀 로빈스, 케빈 베이컨, 로렌스 피쉬번, 마샤 게이, 로라 리니 (이 훌륭한 배우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보고 싶었다)까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절정으로 뽑아낸 풍요로운 연기의 앙상블.
게다가 그 우아한 화면의 품격이라니. 색다른 스타일의 시도나 장르나 시간을 넘나다는 아슬아슬한 모험은 없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님은 스릴러가 가미된 스탠다드한 드라마의 틀에서 세 남자의 서로 다른 며칠을 교차시켜 매우 정통이며 격조높은 화면들을 직조해 내셨으니…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최고급 풀 셋트 코스 정식같다.
장인이란 이런 걸 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게다가 39일만에 찍었다네. 서플을 보니, 숀 펜이 그랬다더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현존하는 미국의 아이콘 중에서 직접 만나도 가장 실망스럽지 않는(the least disappointing) 사람이라고.
사실 미디어란 얼마나 사기스러운가. TV나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소박하게는 싸이월드에서 유진닷컴까지도…폼잡고 싶어하고, 조작된 이미지 속에서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걸 통해 소통한다. 사실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건데…
그런데, 진짜 봐도 미디어를 통해 비춰진 이미지와 틀리지 않는다면, 그건 경이스러운 체험이 것 같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런 경이를 자아내는 진짜인지도 모르겠다.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은 It’s like heaven. 로라 리니의 말이다.
내가 여자이기에 흥미로웠던 부분은 남편에 대한 두 여자의 다른 태도였다. 마샤 게이 vs 로라 리니. 한 여자는 남편을 의심하고, 그 의심을 이기지 못해 억울한 죽음으로 몰고간다. 또 한 여자는 남편의 살인을 알면서도, 그를 king으로 부르며 가족을 지켜가는 현대판 레이디 맥베쓰. 그녀에게는 사회적 정의보다는 가정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다.
마지막 행진장면에서 로라 리니가 보여주는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비밀이나 죄라도 감수한다’는 섬뜩하리만큼 차가운 태도는 남편을 죽게 만든 마샤 게이의 허둥지둥한 초조함과 비교되며 선/악의 경계를 구분짓기 힘들게 만든다. 나는 마샤 게이의 혼란함에 공감한다.
이 영화에 없는 것은 상처의 극복이다. 극복의 카타르시스 대신 카타스트로피를 선택했다는 점, 그러나 그 카타스트로피마저 삶 속에 대단치 않게 묻혀져 버린다는 점. 난 무엇보다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 몇 년전 씬레드라인..舊대한극장의 마지막 상영작. 숀 펜의 연기를 보며 ‘달인이 다 됐군’하고 생각했었다. 마돈나의 첫번째 남편. 마돈나가 지배할 수 없었던 남자. 대책없는 망나니…얇디 얇은 입술. 뾰족한 턱. 매부리코. 그의 연기는 입을 다물게 만든다.
- DVD에 연결된 스피커는 좁다란 내 방에는 어울리지 않는 톨보이 두짝이다. 해서, 딱 붙어있는 옆집 이웃이나 식구들 눈치보느라 이 녀석의 최대 성능을 만끽할 만한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보이스나 BGM의 톤이 전반적으로 낮아서, 처음으로 스피커의 볼륨을 높여볼 수 있었다. 위스키를 잔에 따를 때 얼음에 부딪치는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소리나…나무에 신발 밑창이 부딪치는 소리, 일상의 잡음들..이 섬세하고 미묘한 소리들을 처음으로 맛있게 즐겼다. 고마워요, 승&한
- 록뽕기 힐 극장에 붙어있던 미스틱 리버 일본판 포스터.

2004.2.21 10 :56 (pm)술을 조금 마시고 비디오 대여점에 갔는데, 너무 이상하게 지난 2월 록뽕기 힐 극장에서 아무 생각없이 디카에 찍어 온 이 영화의 포스터가 떠올려졌다. 그래서 뽑아왔다. 잠재의식이란 무섭다.
- 영화를 보면서 내내, 텐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들’을 떠올렸다. 지워지지 않는 어린 시절의 상처…살인사건을 통해 성인이 되어 재회하게 되는 세 사람. 숀처럼 영원의 아이들에서도 지라프는 사건을 파헤치는 수사반장이다. 언젠가 영원의 아이들에 대해 쓸 수 있을까. 루핀, 지라프, 모울…..
약간 무섭군.
미스틱 리버를 보고 나서 웬지… 하며 컴을 켜고, 니 블로그에 들어오니, 미스틱 리버가 있군. 내 생각도 잘 정리되어 있구, 니 생각두 잘 정리되어 있구. 하…
오래 사귀다 보니 별 일이 계속 생기는 구나…
정말 사귀어야겠군… ㅎㅎ
이 원작자의 다른 소설로 최근에 황금가지를 통해 소개된 “살인자들의 섬”도 정말 좋답니다. 제 홈피에서 리뷰한 적도 있는데 작품의 무게감은 미스틱 리버보다는 아주 조금 떨어지지만 반전은 거의 식스센스 버금가는 스릴러소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