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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Jarrett Solo in Seoul – 기침

2011.6.2 (Thu) 대단한 공연이었다! 근데 자렛옹이 인간에서 신의 경지로 넘어가는 동안, 나 역시 인간의 신체적 물리적 한계와 싸투를 벌여야 했다! 이번 주 내내 감기몸살로 기침 콜록콜록. 그렇잖아두 Radiance 북클릿에 관객이 박수를 안 치는 건 gift지만, 기침은 그렇지 않다는 자렛옹의 글을 읽고, 심장이 쪼그라는 거 같아서 물통도 가져가고, 감기약도 점심, 오후, 저녁 3회…것두 특별히 기침 가라앉히는 걸로 지어먹었는데.

왠걸. 첫 곡 시작하고 3분 지나자마자 갑자기 저 폐부 깊숙한 곳에서 한 점, 간질간질한 것이 스멀스멀 타고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가슴에서 목…마침내 입으로 튀어 나오려 한다. 터져나오는 기침을 애써 참는데, 나도 오늘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이게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참았던 작은 기침이 점점 더 눈덩이처럼 부풀어올라, 이젠 한 번 했다간 걷잡을 수 없이 커다란 소리의, 최소 30초, 최대 몇 분 정도는 지속되는 대박 기침으로 키스 자렛 공연 역사에 길이길이 새겨질 것만 같았다.

자렛옹의 피아노 소리만이 교교히 흐르는 이 조용한 공연장에. 게다가 이번 공연 실황 레코딩한다고 여기저기 마이크들이 장난 아니게 배치되어 있는 가운데…

이 와중에 나의 커다랗고 긴 기침소리가 울려펴진다고 생각하니, 머리 띵하고, 등골에 식은 땀 흐르고, 거의 공포에 가까운 기분이었다. 정말 이거 내가 15년 가까이 목놓아 기다린 공연 맞아? 도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너무나 초현실적인 기분에 휩싸이며. 신이시여, 제발 이 기침을 멈추어주소서. 기도가 절로 나오는데 결국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기침의 반격에 결국 난 내 손으로 내 입을 막은 채 등을 들썩이고 콧바람을 흥흥 거리며 입에 밴드붙인 간질 환자처럼 온 몸을 떨며 몰아치는 기침 기운을 조금씩 발산해야 했다. 비상시 대비해 가져온 물통을 만지작 거려 보지만, 물을 마셨을 때 기침이 가라앉는다고 걸 검증하고 온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머리를 스치며, 오히려 이 강력한 기침 기운에 들이킨 생수마저 시원스레 뿜어내는 아찔한 상황만이 상상되는 것이었다.

결국 물도 못 마시고, 어깨만 들썩들썩 흥흥거리며 …#1을 보내고 나니, 그제서야 간신히 기침이 잦아든다. 이후에도, 전반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6, 후반 #2에서 기침의 습격은 나로 하여금 인간 한계을 시험하게 만들었다.

기침. 키스 자렛의 천상의 연주조차도 이 사소한 기침 앞에선 맥을 못 추는 것이었다. 더 웃긴 건, 한 편 그래도 음악이 아름다운 건 느껴져 고통이 몇 배가 되었다는 사실. 한걸음 한걸음 지옥불 즈려 밟고 가는데 하늘에서는 천상의 나팔소리가 울려퍼지고. 지옥불과 나팔소리가 거의 등가로 나를 덮치는데, 고문과 애무를 동시에 받는 기분.

유난히 기침 소리 많은 공연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공연 시작 전에 ‘에라 지금 해 두자’의 식으로 너도 나도 기침을 해대는데, 거의 폐병 환자들 모아놓은 것 같았다. 이 연쇄 기침에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오고…공연 중간에도 여기 저기 작은 기침 소리들. 서울은 독감이 유행 중인가보다. 하필이면 이 때…그런데 놀라온 건 자렛옹. 그 예민하고 까칠하기로 소문난 자렛옹이 기침소리, 2번이나 울려퍼진 핸드폰 소리, 심지어 카메라 플래쉬에도 아랑곳 없이 신경질 하나 안 부리고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셨다는 것. 마치, 오늘 밤만은 그런 건 문제삼지 않으시겠다는 듯이~

공연 후기는 여러 분들의 트위터에 잘 나와 있더라. 더 붙일 말은 없고^^, 모아만 놓는다. 개인적으로 내가 뼈저리게 느낀 것. 기침의 무서움. 기침을 참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인간으로서 정말 가능하기 힘든 일 중의 하나인 듯 하다. 그래도 나 오늘, 그 대단한 일을 해냈다! ㅠㅠ 내가 요즘 이런 일, 쫌 잘 해내는 듯~ 좋은걸까?

ps.근데 Storify 임베드 왜 이리 쓸데없는 공백이 많이 생길까? 간만에 졸린 관계로 일단 냅두어둠…

그래도 사진 한 장. 할아버지가 왜 이리 멋지구리~ 숙소가 워커힐 호텔이란 썰이 있던데, 하마틈 사생택시 부를 뻔. >_< keith jarrett-1-7

One comment on “Keith Jarrett Solo in Seoul – 기침”

  1. ‘오피스아워’ 쓰레드 읽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저도 키스자렛 공연 때문에 예매 3개월 전부터 온갖 난리 법석떨다가 힘들게 봤었고, 그 이상 감동 먹어 아직까지 키스자렛만 듣고 있습니다.
    나저나 핸드폰이 2번이나 울렸었나요? 전 너무나 조용한(말씀 하신 몰아치는 기침은 저도 참기 힘들었다는…^^) 매너에 두번 감동했었는데요.
    암튼 드문 최고의 공연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뜨네기 청중보다 진정 기다려 오신분들이 많으신 거 같아서 좋았네요. 앨범으로 나오길 바랍니다. 우리들 박수소리와 님 기침 소리 함께하는 앨범이요~^^
    글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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