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콜을 청하는 열광적인 환호성에
피아노 앞에 앉으신 자렛옹, 관객을 돌아다 보며 딱 한 마디 “Yes!” 그래 칠께…친다구…
그날 밤은…그 2시간, 세종문화회관인지 천상의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그 공간 속의 모든 것은
아름답고 감동이었다.
‘아름다움’
나 정말로 우연히 신촌에서 충동구매한 키스 자렛의 첫 번째 더블 CD
‘Foundation’의 첫 곡
Smoke Gets in Your Eyes의 첫 소절이 흘러나오던 그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를 알아버렸다.
그것은 한 인간이 단독으로 어떤 세계의 끝으로 파고들어가며
다다른 독보적인 미의 세계였다.
일본 문화에서 보여주는 그 장식적 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지구 탐험대 뭐 그런 SF 영화의 설정처럼
예술의 고고하고 단단한 껍데기부터 다 해체시키고
아무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오직 한 개인의 재능과 영혼을 동원해
계속해서, 혼자서 파고 들어가는…아주 신비한 풍경의 중계였다.
그의 음악은 그랬다.
그래서, 그가 때때로 건반 앞에서 신음하고, 절규할 때
그것은 그 밑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음악’이라는 광활하고도 미지인 존재가
신비의 망또를 흘낏 펼쳐
아주 잠깐 한 인간과 닿는 것을 허락한 순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허락되는 것은 아주 소수의 인간 뿐이므로
그를 통해서나마 그 깊이에 다다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음악 뿐만 아니라 아무런 문화적 기반도 없었던 스물 몇 살적 내 감수성의 안테나가
그와 채널링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비껴나갈 수도 있었다고 가정하면 아주 무서운 기분이 드는 행운.
음…스물 다섯 쯤 전후 였던 것 같다.
그의 음악을 알게 된 다음, 나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게 되지 않았다.
내 청춘의 많은 순간, 그의 음악이 있었다.
다른 많은 음악을 탐하지도 않았으니까. 나에게 음악이란 것의 기준은 오직 키스자렛 뿐이었으니까.
참으로 고지식하게도 말이다.
(한창 춤에 미쳐있을 때, 살사 메렝게 빼고 ㅋ)
내 삐삐 웰컴 메시지에는 Foundation의 Birth란 괴상한,
최소한 삐삐 메시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곡이 녹음되어 있었고
버스가 코너를 돌아 내 눈앞에 해남의 푸른 바다가 펼쳐질 때, 기막히게 싱크되던 쾰른 #4 잊을 수 없다.
쉐난도어 들으며 기도했고
마음이 야수일 때 파리 컨서트….솔로 컨서트.
솔로 피아노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주는 선베어 컨서트.
그 옛날 명동 디아파송에서 큰 맘먹고 10만원 주고 산 블루노트 박스셋. 세종문화회관 한 켠에서 11만원에 팔더라. 15년 기다려 1만원 수익냈네~ 아 기뻐라. 그 박스셋은 내 영혼을 키운 식량이었다.
앵콜 전, 마지막 곡 I fall in love too easily의 전주가 흐를 때
20대 중반에 만나 그의 음악과 함께 한 내 인생의 순간들이 흘러갔고
내가 산 모든 키스자렛 CD 표지들과 그 속에 그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물론, 그 중에는 내 첫 번째 차사고도 포함된다.
자동차라는 것이 내 인생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거라고 믿었던 나는
난 그 첫 번째 시승에서
그 옛날 나에게 또 다른 한 세계를 열어 줬던 키스자렛의 Foundation을 꼭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더블 CD에서 판 꺼내다 어이없이 고속도로에서 사고 내고,
차는 폐차시켰어도
이 CD만은 꼭 품에 품고 와 지금 내 책장에 잘 꽂혀있다. ㅎㅎ
이 CD 표지의 키스자렛의 눈매를 정말 좋아한다.
선량하고 빛이 나는.

** 캡쳐해 놓고 보니 별로 안 그런데….사실 진짜로 보면 그렇다규. ㅋㅋ 나 눈 삔 거 아니야~~ (아, 당황시러)
30년 기다리신 분도 있다는데
고작 15년 기다린 나는 행운아다.
물론, 기다리다 못 참고 이게 끝이겠구나 하는 조바심에 3년 전에 일본 가서 만나 뵙기는 했지만.
20m 안쪽에서 서로의 연주에 웃고 반응하는 그들의 호흡 하나까지 모두 느낄 수 있었던 만남은 또 다르더라.
그냥 최고급 기술자가 타자치듯 절정에 다다른 재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음악 앞에 자신의 영혼을 다 내어놓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내 뚝뚝 흘려보내는 듯한 음 하나 하나의 진한 농도.
그래, CD 한 장 사는 것도 주저주저해야 했던…
그렇게 사들고 온 CD를 핥듯이 듣고 들었던 15년 전의 가난했던 나는,
영혼으로도 돈으로도 궁핍하기만했던 나는
20만원 짜리 표 한 장, 기꺼이 질러줄 수 있는 형편이 되어
우아하게 VIP 석에 앉아 박수를 치고 있다.
아니, 사실 별로 우아하진 않았을 거다.
손수건도 없이 눈물콧물 질질 흘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ㅋㅋ
또 오셨으면 좋겠다.
이번엔 혼자서.
가능할까…
Yes! …이번에도 그렇게 대답해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