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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그림

추웠지만, 한 점의 빌미도 주지 않은 칼날 같은 냉혈의 혹한은 아니었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어쩐지 겨울스럽지 않아 어색하기까지 한 따스한 기운이 내리쬐어…탄천을 걷는 나는 어느새 봄을 그릴 수 있었다.

오색의 수건을 둘러쓴 자전거‘떼’들이 세력행사라도 하듯 줄지어 다니고, 트레이닝복 차림 고운 처자들이 옅은 숨을 뿜어내며 재빨리 칼로리를 소비하는 동안, 어르신들은 천천히 걸음을 떼어 아예 이 계절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리신다.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을 따스함 머금은 초록의 생기가 몇 퍼센트쯤 생기있게 만들어 주는 그런 날.

그 날엔 지난 늦가을 어느 날 느닷없이 들이닥친 예초기 부대의 등장에 딱 하루만에 어이없이 민둥이가 되어 버린 계단이며, 둔덕의 풀들도 빼곰히 고개를 내미리라. 몇 계절 정들인 친구들의 무기력한 초토화에 어쩌지도 못하고 분하고 또 분해 그저 눈물만 쏙 뺐던 그 날의 쓰라림이 불과 한 계절 앞을 내다보지 못한 약한 마음의 소치임을 야단치기라도 하듯. 준엄한 생명의 법칙은 나불거리는 세 치 혀가 아닌 꽝꽝 얼어붙은 어두운 땅 속에 몇 달을 웅크리고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솟아나는 무서운 실천으로 나를 깨닫게 할 것이다.

작년 이맘때 생각도 난다. 연말연시 솔로부대 맘달래기 셀프 서비스에서 시작됐던 탄천 산책이 요맘쯤에는 제법 뜀박질로까지 발전됐었다. 뎀님이 장만해주신 새 PMP를 귀에 꽂고 새로 발견한 김효진의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이클에 맞춰, 열심히 뛰었다. 그러고 뛰고 나면 세상이 너무 환해져, 난 뛰어야 하는 사람이며, 언제까지나 그렇게 뛸 줄 알았다. 딴딴해진 장딴지가 마냥 흐뭇했던 것도 봄이 피크였다. 김효진이 짤릴 즈음, 오피스가 바뀌고, 뛰는 것도 중단됐지만.

모든 것엔 끝이 있다고 다 산 노인네처럼 혼잣말 웅얼대곤 하지만…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영원한 것은 그렇게도 없다는 것.

겨울도 봄도…가을도 여름도. 겨울이 지나 다시 봄이 온대도, 그 봄이 지나 여름이, 가을이, 그래서 또 다시 겨울이 온대도.

하지만 지금 내가, 내 몸이 확실히 느끼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추위는 매서웠고, 무표정하게 시간의 쳇바퀴를 돌리는 우주만큼이나 인간 역시 잔인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은 계속되고 있다. 멈추지를 않는다. 그래서 영원한 것은 없지만, 끝나는 것도 없다.

그렇게 나는 전대미문의 최대한 준비된 자세로 2010년 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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