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래서 이 길의 이름이 가로수길이었구나.
이 길에 참 많이 왔고
이 길 소개도 많이 했고
이 길에 대해 얘기도 많이 했건만.
가로수길이 이래서 가로수길이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어디로 시선을 던져도 눈에 걸리는 가득한 노란색들과
부츠 끝에서 느껴지는 바삭거림
어느새 코트 깃에 붙어 딸려온 은행잎
숨을 쉴 때마다 가슴 속으로 밀려오는….구수한 은행똥냄새
오감으로 알았다.
11월, 어느 나른한 일요일 오후
짧은! 이별을 위해 총총히 나선 가로수길에는
제철 맞은 은행나무들이 떨구어 낸 노오란 잎들이 햇살과 함께 내 마음에 쏟아졌다.

빼곡히 가로수길 양 옆을 채운 가로수들.

빌딩에 그늘을 드리우고

가을볕 환히 쏟아지는 높은 하늘을 가리고

쓸모없는 휴지조각처럼 한 귀퉁이를 차지하면서

쓸어내도 쓸어내도 지치지않고
어느새 또 그 자리를 수북히 채우네

빨간 꽃신 신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아직 푸릇한 연두기를 내비치는…꼭 바랜 청춘같기도.
무엇은 끝나고, 또 무엇은 시작되는지.

긴 세월을 버티며 기어이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아, 마음이여.
너와 나를 가를 수 없이 얽혀버린 인연.

사람이 예쁘고 정돈된 공간을 만들고 찾는 이유는
삶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거나 말거나
가로수길 최고 본좌 블룸앤구떼는 성황리 영업중
“언니, 이거 너무 잘되는거 아냐?”
“당연하지! 맛있으니까!” “이 동네 이만한데 없어, 얘! 어디 가지 말구 여깄어!”
러블리 러블리 언니들.
언니들이 힘들여 만들어 놓은 너무 예쁜 여기에 앉아 하얀 눈 내리는 거 보구 싶당…
뜨거운 다즐링에 산딸기 케이크 먹음서.
이 길에 낙엽대신 흰 눈이 쌓이면, 난 또 어떤 마음으로 이 풍경을 보고 있을까.

grandmother의 졸린 눈 벽화를 사이에 두고
한 놈은 노래졌고, 한 놈은 여전히 푸릇.
같은 종족, 같은 공간…그런데도 왜 니들은 서로 틀린거니.
영원히 미스테리할 발육상태의 비밀.

뭔가 앙증맞은 일탈을 꿈꾸게 하는 예쁜 숍들 가득

쇼윈도우에 예쁜 아이템들이 옹기종기 언니들을 유혹하고

사람과 동네는 서로 닮아간다니깐요.
홍대나 압구리와 다른 스탈리쉬 언니들이 시시때때로 출몰합니다.
단, 이 동네 전반적으로 심하게 여탕이라는 거. 난, 불만.

어찌보면, 소멸의 과정

그 소멸에 저항하며 우리는 애써 기록을 남긴다.
참 별난 데까지도.
어짜피 스러질 것을.

생명과 소멸의 공존……꽤 어울려.
아름답다.
서로 탓하지 않으니.

그리하여 그 인연, 어느 누추한 곳에 떨어지든

함께 이 공간을 호흡했던 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한 장의 추억으로나마.
함께 걸었던 가로수길과 그 모든 길들이
언제나 그랬듯 내 영혼에 힘을 줄 수 있도록.
다시 웃으며 이 길을 함께 걸을 그 날까지.
One comment on “[2007년 11월] 가로수길의 가을 – 歡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