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 째 태국 – 2005. 6. 4 Saturday ~6.10 Friday
또 왔다.
비행기 문을 나가자 확 다가오는 뜨거운 열기
이국적인 열대의 향.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나를 맨 처음 반겨주는
저 낯설고도 반가운 형이상학(?!) 문자들.
# 팟퐁 – 다시 이 거리에
호텔문을 나서 팟퐁으로 직행한다.
팁탑에서 밥을 먹고, 라디오 시티에 가기 위해서.

한 2주? 매일 새벽마다 여기서 밥을 먹었던 적이 있더란다.
메뉴를 고를 줄 몰라 옆에 서 있던 무표정한 땅달보 웨이터 아저씨에게
어설프게 recommend만 외쳤었지.
그때마다 그 아저씨 군말도 없이, 주저도 없이
메뉴판 어느 한 줄을 지목했었다.
그 카리스마 압도되어 난 아무런 토도 달지 못하고
네네~하는 눈웃음을 지으며 음식을 기다렸지.
그 다음 아저씨가 들고온 음식은 언제나 최고였어.
아저씨는 매일 다른 메뉴를 지목해 주었고
매일 새벽 반복되는 그 무언의 공감대 때문에 난 하루도 여길 거를 수가 없었어.
많이 돌아다녔고, 음악과 싱하에 잔뜩 취해있었고, 마음은 들떠 있었어.
그런 기분이라면 무엇을 줘도 맛있게 먹었겠지만,
아저씨가 골라준 메뉴들은 한번도 빗나가지 않고
그런 내 기분을 몇 배쯤 업시켜 주었지.
꼭 그 때가 나의 어린 시절같다.
그래, 그리 대단한 식당은 아냐.
내 마음을 쑥 자라게 했던 시간들과 함께 했던…나에겐 눈물과 웃음의 팁탑.

이 동네는 여전하구나.
밤을 밝히는 제멋대로 걸려있는 형광등…

요상스런 문자와


더 요상스런 언니들

그리고 변함없는 라디오 시티
엘비스, 탐 존스, 보스 밴드까지

왜 이 곳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걸까.
스무 살 후반 내 마음을 훌쩍 자라게 해 버린 이 곳,
이 동네 속으로, 다시 왔다.
눈물을 거두고 웃음도 지우고
아무 것에도 설레어 하지 않는 이런 재미없는 모양으로 다시 와버렸네.
# 나의 첫 번째 방콕 탈출 : 코사멧 핫 프라케우 – RELAX
여섯 번째 만에 처음이다. 태국에서의 탈방콕!
걍, 쉬고 싶었다.
코사멧 가는길

시작은 에카마이

에카마이에서 반페로

반페에서 배타고 코사멧으로

코사멧에서 핫프라케우로
핫프라케우는 White Sand Beach, 하얀 모래비치라는 뜻이란다.

썽테우도 안타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
아저씨 전신 문신의 포스가…그런데 만드시는 솜길은 섬세하기만 하다.
핫프라케우에 도착하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꽉 잠근 틈새까지 스며들어 트렁크안까지 수북히 쌓이는
밀가루처럼 고운 입자의 모래와

무지개
숙소도 정하지 않고 그대로 백사장에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게 했던 무지개.
고맙다는 느낌이었다.
마음을 찌르는, 이런 식의 환영. :-)
숙소를 잡자마자 주저없이 벗어(?!) 제치고 물 속으로 풍덩~
별로인 수영 솜씨지만 그래도 헤엄은 좀 쳐지더라.
낮동안 햇볕을 가득 머금고 따땃한 온기를 전해주는 물 속에서
굳은 마음도 스르륵 풀여가가는 것을 느끼고
기분 이빠이 좋아져서 머리도 홱 따고
해변 맛사지도 받았다.
수영 하다가 백사장으로 나와 쉬고 있으면
돗자리 하나씩 든 아줌마들이 “맛사~ 맛사~”하고 외치고들 다니신다.
그러다 눈맞으면 바로 그 자리에 돗자리 까는데
내가 할 일이라고는 그 위에 쭉 펴고 누웠다가 끝나면 지갑에서 한 200 바트 꺼내 쥐어드리는 거다.
코사멧표 즉석 해변 오일 마사지의 가장 놀라운 점이라면
백사장에서 날라온 미세한 모래 입자들이 오일과 섞여
뭔가 말할 수 없이 까끌까끌 야시시한 100% 샌드 스크럽 오르가즘 효과를 만든다는 것이다.
해질녘 저 멀리 석양이 내리고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 불어와 몸을 간지르는데
철석 철석 파도소리는 귀에서 그치지 않고.
아무리 고급이라도 도저히 스파라던가 이런 데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경지.
몸의 회복이 마음의 평화를 부르는가.
해변에 쭉 뻗어버린 그 행복한 가수면 상태에서…체험했다.
뭔가 조금씩 돌아와서 채워지는 느낌.
그때 난 돗자리 위에 누운 게 아니었다.
쓰러진 거였다.
간신히 간신히 여기까지 기어와서.

코사멧 해변의 밤.
저 먼 코리아에서부터 혼자 여기까지 찾아 기어들어온
솔로부대 여행자를 위한 차려진 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만
그래도 무작정 이 대열에 끼어 본다.
사랑해 마지않는 싱하와 어설픈(!!!) 씨푸드…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밤바다.

솔로부대원들의 만행은 여기서도 계속되지만
난 거기에 눈길을 주거나 질투를 할 새도 없었다.
그 때 난 알모도바르라는 남잔지 여잔지에 푹 빠져 있었거든.

해변의 아침
대략 2km쯤 되어 보이는 이 기다란 해변의 아침 산책.
한국만 뜨면 몇 배는 심해지는 선천적 야행성 기질에 있어 유일하게 예외였던 이 곳.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버릴 만큼 아름다운 코스였다.

ㅋㅋ

완전 어울려X3 …ㅋㅋㅋ

해변의 연인
코사멧은 연인들을 위한 공간이다.
이틀동안 아무리 둘러봐도 혼자는 나뿐이다.

하지만 그런 저런 사정을 따질 필요는 없다.
이런 햇빛 찬란한 여유 앞에서~

Relax…

편안해 보여.
이 동네에선 개들마저 죄다 퍼지고
수영하다 들어와서 책읽다
책읽다 또 가서 수영하다
이것만 반복해도 더할 수 없이 행복하지만.

그래도 드러나는 관광 본색!
스쿠버라는 일정을 우겨 넣어본다.

다이버 유진

스쿠버를 하고 말겠노라는 유진이의 땡깡에 어쩔 수 없이 착출된 세 남자
정말 표정에서부터, 돈때문에 마지 못해 이러고 있다는 강한 불만의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유진이의 첫 번째 스쿠버는 성공~!!
무려 수심 10m까지…
어두운 바다 속에 펼쳐진 신기한 세상 보면서
음 그래 사무실의 네모칸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입증.
하지만 스쿠버 끝나고 튜브에 몸을 맡긴 채
해맑은 초록빛 바다에 둥실둥실 떠서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던 순간이 더 감동적이었다.
전갈자리 유진이는 물이 좋다~
# 다시 방콕 : 몸과 입과 귀의 쾌락
그렇게 이박삼일 분의 도끼 자루를 부식시킨 후..다시 방콕으로 오는 길

꽉꽉 막힌 월탯 앞 사거리 교통도 여전하고

화려한 도시 뒷편, 태국 사람들의 비루한 삶도 여전하고

대형 광고판 속에서 그들의 욕망을 관음하는 나도 여전하다.
태국 남자의 로망이란 이런 걸까?

비잉 스파 (Being Spa)
연못 주변으로 스파룸이 빙 둘러져 있다

장장 다섯 시간 반짜리 스파.
내 언제 이런 호사 누려보랴

태국이기 가능한 일
이런 또 다른 스파도
맛있는 것도 빼 놓을 수 없지.
랏차다 쏘이 12(씹썽), 랏차다 스윗 호텔에서 쫌만 걸어가면 보이는 꾸앙 씨푸드
분위기는 실외 포장마찬데, 관광객이 아니라 진짜 방콕사람들 와서 외식하고 가는 데란다.

핫 팬 오이스터…T_T (생각만 해도 눈물이..)
입안에서 톡톡 씹히는 탱글탱글 살아있는 굴 속살들…

한국식 사이비 똠얌쿵 말구…지대로 스파이시한 원단 똠얌쿵~

이것도 한국식 뿌팟 뽕 커리 아닌 제대로 뿅가리~
이 집의 대표메뉴.
토실토실한 게 살들과 오묘한 소스의 만남…직접 가서 먹기 전에는 상상 불허.
윽윽…….

메뉴 하나하나 이루 말할 수 없이 너무너무 맛있는 것이다!

이제는 가이드 라이프 접으시고
방콕의 유수 필드를 주름잡는 진정한 프로로 거듭나신 나락님.
연락을 드리건 안 드리건 언제나 마음 속으로 의지하고 있는
유진이의 듬직한 방콕의 기둥서방(?????)님 ^^;;
이런 맛있는 음식은 물론
언제나 유진이가 그릇된 환락의 길로 빠지지 않을까 불철주야 모니터링
늘,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여행 사진에서 패턴화 되어버린 …유진이가 쓸고간 테이블

방콕가면 한 번은 꼭 들리는 아눅사왈리의 색소폰(SAXOPHONE)
변함없이 좋은 음악. 쿨한 친구들.
Aron Jazz Band.
몇 명은 남아있어 반가웠다.
거부할 수 없는 쾌락이 가득가득
방콕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유.
모든 것이 변한다는데…언젠가는 몸이 느끼는 이 쾌락마저도 변할까?
아마도 그때는 방콕이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이리라.
# 다시 카오산 : Same Same Different

그리고 카오산

이게 머야~
너무 변해 있었다. 속상할 만큼.

60바트 짜리 칵테일 수레는 그나마 애교
정신없고 복잡하고 돈만 밝히는 비싼 카오산.
이제 드디어 카오산을 뜰 때가 된걸까.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예고도 없이 찾아간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래는 버드와

그림은 변해도, 여전히 변치않는 버드의 소들

이 거리를 지키는 친구들.
그리고 저 놈의 장기.
다시 조금씩 되찾는다.
아직 나에겐 카오산에 다시 와야할 이유.
변해도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 속에서.
그 변하지 않은 것들이 변해가는 것들에마저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는 것.

북적거리는 것도 잠시

함께 모여 있는 것도 잠시

결국 모두들 흩어져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그 정신없는 카오산에서도.
이제 나 역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 안녕, 스타벅스 카오산

현란한 전광판

그 골목 사이 꼭꼭 숨어있는 스타벅스 카오산
동경에서 버드 만났을 때
꼭 와보리라 결심했었던,
동경 한 가운데서 방콕을 너무도 많이 그리워하게 만들었던 스타벅스 카오산

Room….
스타벅스라는 게 태국에선 이럴 수도 있다.
쾌락에 관한한 탁월한 DNA

2층 전시실.
버드, 여기 언젠가 너의 그림을 전시하겠다고 했었잖아.
그 날은 언제 올까.
그 때 내가 여기 올 수 있을까.
어라.
어느 새 마음은 이 여행을 시작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을 묻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행이란 것.
다른 질문을 하게 해 준것만으로도.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 답을 상상하게 해 준 시간만으로도.
그리고……이 것.
내내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정신없이 줄을 치고 별표를 치면서
페이지들이 넘어가고
가슴은 쿵쾅쿵쾅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태국에서
난 처음으로 태국보다 더 황홀한 것에 중독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방콕에서 방콕보다 더 좋은 게 생겼다.
그 날의 메모
센티멘탈 대폭발~!
이 정도면 감성은 뭐 20대 못지 않다 –;;;
이 책을 스무살에 읽었다면 이 책은 내 인생의 바이블이 되었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운명의 수퍼 에잇을 찾았을 것이다. 카뮈보다도 겐지보다도 난 알모도바르 캠프에서 청춘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이젠 너무 늦었다…나는 눈물이 날 것도 같고, 웃음이 날 것도 같다. 수퍼 에잇이 없다. 나는 아직 8mm도 완성을 못했다. 주말은 너무 피곤하다. 대신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본다. 그가 내게 화장을 해 줬으면 좋겠다. 금발 가발을 뒤집어 쓰고. 입술엔 초록색 립스틱을 칠하고, 새빨간 누나가 되어 그에게 팔베게를 해 주고, 그가 지어낸 거짓말을 들으며 온 밤을 깔깔거리고 싶다. 짓무른 웃음이 빛을 막아내는, 밤이 지나도 아침이 오지 않는 그런 길고 긴 밤을.
집에 오자마자 알모도씨의 DVD를 다 사고
그의 전작을 감상하고, 리뷰를 쓰겠노라고 결심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대신 난 아주 오랫동안 동굴에 틀여박혀 책을 써야만 했다.
그래도 그때 그 여행이 있어
책을 쓰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고
알모도바르씨에 한껏 삘이 받아
뭔가를 해보겠다는 열정도 되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제까지나 나에게 태국은 그대로 일거라 생각했는데
달라진 것을 더 많이 느꼈고
그래도 여전히 같은 것들이 남아 있어서
다시 변해버린 것들에 적응하며, 새로운 기쁨을 찾았던 시간.
덫에 걸려 넘어진 듯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던 순간,
종교를 찾듯 본능으로 기어갔던 2005년 태국의 스케치다.

2 comments on “[2005년 5월] 유진이의 여섯 번째 태국 여행기 : Same Same Differ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