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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4] 5th 일본 여행 (1) – 청춘의 밤

Day1 – 2007. 4 27 Friday

다시 나리타
17.2도.

12.1도, 24.5도, 10.9도…그리고 오늘은 그 사이 어딘가의 17.2도.
아직은 춥다. 하지만… 금방 따스해지겠지.
신주쿠로 가면. 그 높은 빌딩들 뒷편 어느 골목길을 걷다보면.

# 신주쿠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레이지가 아코를 데리고 갔던 병원이 있을 니시 신주쿠를 거쳐
일본 라멘 대회 1등 했다는 전설의 라멘 먹으러 멘야 무사시로.

소문대로 줄 서진 않았고, 맛도 그랬다.
멘야 무사시 앞에 매운 라멘집이 있던데 거기가 맛났을 듯.

이런 옛날 니뽕스러운 포스터들이 벽면에 잔뜩 붙어있고

뻘건 유니폼 입은 영계 오빠들이 단체 기합을 넣으며 라멘을 내 주는 색다른 정취 정도랄까.

정작 기대했던 라멘은 국물이 너무 강하고 느끼했다.

그래도 기념은 해야지~ 일본에서의 첫 끼.

그날 오후 내내 신주쿠 한 바퀴를 긴 반지름으로 빙~ 돌아오며
처음 왔을 때 그토록 실망했던 쇠락의 신주쿠, 아무리 걸어도 절대 잡히지 않는 이 거대한 미로가
내 마음에 조금씩 친숙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오갈 데 없는 잡초들의 거리, 하지만 잡초의 억센 뿌리들이 뒤엉켜 절대 무너지지 않을…신주쿠.
난 이 복잡함과 막돼먹음과 쉽게 곁을 내 주지 않는 쎈 기운에 매료된다.

# 첫 날은 치에 아야도 – 수다쟁이 왕언니

작정하고 보고 들으러 온 여행.
(절대 마시고 퍼질러 노래하고 대책없이 헤매다니려는 게 아니었는디!)
치에 아야도 언니의 콘서트로 문을 연다. 짠~

우에노에 자리한 도쿄 문화 센터~
키스 자렛씨 보러 월요일에 한 번 더 와야 할.

꽉 찬 관객들. 그런데 역시 중장년층이 많았다.

무대 위에는 그랜드 피아노 하나 뿐.

산전수전 다 겪고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모두 음미할 줄 알게 된 큰언니같은 치에 아야도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래서 키스 자렛 콘서트 하기 3일 전에 언니 공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빙고’를 외치며 일본 여행 스케줄을 확정지었다.
언니의 노래는 특히나 봄밤에 딱이다.
흐드러지게 핀 봄꽃이 뿜어나는 향기가 마음 깊은 속까지 자욱해져
잊고 싶은 아픈 추억까지도 아름답게 물들일 때,
언니의 노래는 ‘살아있는 게 얼마나 좋으니?’라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

역시나 언니의 노래는 그랬다.
예의 그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Everything must change~”라며 첫 곡을 시작할 때~
아, 그렇구나. 모든 것이 바뀌어가는구나. 그렇게 바뀌고 바뀌어 나는 여기에까지 와 있구나.
가슴의 갈피로 멜로디들이 스며들어, 참 행복했다.

대부분 재즈 스탠다드 넘버였고, 내가 듣고 싶었던 돈나도키모는 안 불러 섭섭했다.

하지만 중간에 반주하러 나온 오빠가 예뻤다는 것으로 봐 주련다.
십 몇년을 함께 노래한 오빠라던가.

일본인들은 함께 오래한 무엇을 참 소중히 여기는구나.
새로움보다는 그 함께 한 시간에 보다 가치를 두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둘이 함께 부르던 ‘tenderly’
그 녹아내릴 듯한 감미로움 속에서

“저는 연습보다는 라이브가 좋아요.
무대에서는 여러분들이 저를 응원해 주고 있다는 것을 가깝게 느낄 수 있으니까요.”

언니는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사람 맞는 거 같다. 최소한 무대 위에서는 그랬다.
함께 하고 박수 쳐 주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통해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감사하는 …매우 상식적인 사람.

# 밤의 하라주쿠 – Tender is the Night

꼭 한 번 와 보고 싶었던 하라주쿠에 너무 늦게 왔다.
소문난 크레페도, 벼룩시장과 예쁜 옷들, 특이한 너희들, 주말마다 열린다는 코스프레 아이들도…모두 다 보고 싶었는데

하라주쿠의 밤은 너무 일찍 막을 내린다.
Live, Love, Eat ….
(하지만 10시 전에…응? –> 이거 너무 시시하잖아. 그래도 청춘은 밤! 아니냐고)

벽화만 남은 닫힌 셔터들 사이를 또 다시 걸어본다.

문 닫을 준비하는 크레페 상점과

이거 내 이상형(?!) 잭 블랙 맞어? 반가운 마음에 찰칵찰칵~

그리고 또 걷는다. 요요기를 거쳐 신주쿠로
샤방샤방샤방…~참으로 오랫만에 이렇게 걸어본다.

철부지처럼 향긋한 밤의 냄새에 제멋대로 이끌려 다니며 만난 무수한 골목들,

요요기역 근처, 무작정 들어가 보고 싶은 좁다란 술집들을 거쳐…실제로 내가 술 마실 그 곳까지.
그래도 눈을 떠 보면 어쨌든 내 침대다.
언제나 주장하듯이, 아무리 마셔도 집은 찾아 간다는 거.

그래도 아침은 나보러 눈을 떠 보라고 한다.
술 먹으러 가야지~ 그러면서.

Day2 – 2007. 4 28 Saturday

에비스 역에서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로 가는 길.
실내에 편리한 에스컬레이터로 이어진 제대로 된 출구를 찾지 못하면
이런 멋진 건물들 사이를 지나며 한참을 헤매야 할 수도 있다.

나중에 보니 후카츠 에리양과 츠츠미 신이치씨가 나오는
일드 < 사랑의 힘(戀ノチカラ, 2002)>의 배경이 되는 건물이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밤새 광고 시안을 만들고 새벽녘에 저 건물을 빠져나오던 그들.
저 옥상에는 아직도 멋진 라운지 체어가 있어서 맥주를 마시며 작은 파티를 열 수 있는 걸까.

어번한 도쿄를 보고 잡어 떠난 길.
하지만 삿뽀로 비어 박물관 표지판에 붙들리면,
그런 어번한 풍경조차 알콜기에 흔들거리는 퇴폐적인 풍경으로 변할 수 있다.

#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 황홀한 맥주의 맛

아무런 정보 없이 찾아간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에서 자석처럼 끌려들어간 삿뽀로 비어 박물관.
어색하게도 홀에서는 피아노 컨서트가 열리는 가운데…
(술과 음악이라…그리 어색하지 않을 수도 있긴 하겠다)

그네들 답게 맥주에 관한 사료, 문헌, 사진, 역사, 광고, 맥주 제조 과정, 도구,
맥주에 얽힌 에피소드를 주제로 한 3D 입체 영상까지…
맥주에 관한 모든 것을 관람객의 동선에 따라 총망라 스토리텔링
일본의 컨텐츠 구성 능력에 다시금 놀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 박물관의 핵심이라고 하면

역시나 맷주 그 자체가 아닌가!
‘컨텐츠’로 할 수 있는 맥주에 관한 모든 뽐뿌질, 그리고 귀결하게 되는 종착지는 Tasting Room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바로 이 절묘한 타이밍의 예술이, 알고 보니 전형적인 일본식 상술(?!)이었다.
나중에 미술관 투어에서 보다 생생히 밝혀지지만 말이다!

그래도 난, 잠시 여기가 천국이 아닐까 생각했다.

네 종류의 대표 맥주 테이스팅.
하지만 저 중간의 안주에 주목하자.
유진이를 일본 여행객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

삿뽀로 비어 크래커와 비어 치즈. 내가 맛 본 최고의 맥주 안주다!
별 것 아닌 크래커일 뿐이지만….어쩌면 저렇게 맥주와 잘 어울릴 수가.

이렇게, 유진이의 favorite는 Yebisu – The Black으로 밝혀졌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은은한 캬라멜 맛. 음……..

매우 일본답게, 이런 분도 계셨다는 거.
삿뽀로 비어 박물관에 기린 모자 쓰고 와서 무슨 고시공부하듯 맥주맛을 음미하고
빽빽한 낡은 노트에 메모하고, 카탈로그 찾아서 성분 대조하고.

하지만 난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강조하고픈 것은

바로 이겁니다. 비극은 3봉지 밖에 안 사왔다는 거.
그래서 일본 가는 지인들마나 바지가랭이 붙잡고 애원해야 한다는 거.
삿뽀로 비어 크래커 한 박스만 사다달라고. T_T

※ 주의 : 이 크래커의 특징은 걍 크래커만 먹으면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약간 씁쓸한 크래커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
혹은 와인이나 소주나 위스키와 먹어봤자 이게 뭐지 싶다는 거.
하지만 맥주! 맥주와 곁들였을 때만 마리아쥬 대 폭발 한다는 거……..

# 커피 전문점 베르데 – 토요일 오후의 오아시스

에비스에서 다이칸야마 넘어가는 길.
일본 가서 많이들 거치는 도보 코스라고 들었다. 물론 나도 가고 싶었지. 다이칸야마.

하지만 거기까지 못 가게 된 건 중간에 발견한 간판 하나 때문이야.

베르데.
Verde.
초록.

창 너머로 가스 렌지에 커피물들이 퐁퐁퐁~ 끓어오르고 있었다.
따스한 불빛아래
로렐라이처럼 지친 여행자를 유혹면서~

자석처럼 그 작은 찻집으로 끌려 들어간다.
다이칸야마 따윈 어떻게 되도 좋아. 꼭 와플스에 가서 와플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게 그 작은 베르데가 나를 불렀다.
그냥 지나쳐 가려는 나를 정말로 부르는 것 같았어.
그때 너처럼.

커피프린스처럼 꽃미남들이 줄 서있는 곳은 아니지만
포스 넘치는 바리스타 아저씨.
헝겁으로 된 도구를 이용해 뭔가 내내 제대로 인 듯한 드립의 내공을 보여주신다.
손님들에게마다 모두.

그렇게 몇 년을, 혹은 몇 십년을. 지치지도 않고 드립만을…
그게 내가 일본에서 가장 즐기는 점, 그리고 가장 질려하는 점.

나에게도 어떤 종류의 커피를 원하는 지 복잡한 옵션들을 묻는다.
줄기차게 ‘오스스메’로 통과~

이 이상한 이웃들.
남자, 여자, 늙은이, 젊은이, 중년의 아줌마…전혀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들이
하나 둘 씩 베르데의 가게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를 하고 서로를 반기고
오픈 카운터 주변에 모여 친근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내가 본 일본의 특징은 오픈 키친, 오픈 카운터.
호스트 혹은 호스티스가 그 중심에서 음식을 서빙하며 대화를 주도한다.
만담가처럼 혹은 뚜쟁이처럼.
일본의 가게들에서는 어디서나 작은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그 중심에 chef 혹은 barista들이 있다.
단순한 요리 솜씨 가지고만은 이룰 수 없는 경지.

그들에게 말은 우리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무엇’일까.

그와 무관하게 커피맛은 heaven이다.
난 그냥 여기에 주저 앉아 커피맛에, 그리고 혼내를 숨긴 이웃들의 다정한 풍경에 취해 본다.
저녁이 내리고, 영원한 청춘의 거리 시부야가 나를 부를 때 까지

베르데에 취해서…깜빡 졸다가
허겁지겁 전철타고 시부야로.
내가 향해간 곳은……

시부야 B.Y.G
백양 메리야쓰 아님.

# 시부야 – 라이브와 술과 노래…청춘의 밤

키스 자렛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더 찾아보니 이상하게도 봐줄 것들이 충만했어.
BYG도 클럽 쿼트로도, 7th Floor도, 블루노트에도. 아카사카 B 플랫HUB, 라이브하우스 Friday도

동경 라이브하우스 정보
http://bro-a.mods.jp/livehouse/livehouse/tokyo.html

하지만 역시 인생은 계획한 대로 다 채워지지는 않는지
그래도 꼭! 이라고 생각한 것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몇몇들 것 외에는 찾아지질 않았어.

그 중에 B.Y.G는 ‘그래도 꼭!’이라고 생각한 것 중의 하나.
시부야에 있는 쬐끄만, 그러나 꽤 그쪽에서는 알아주는 듯한 라이브 바다.

카운터 주변은 CD와 LP 판들, 공연일정으로 꽉 채워져 있고.

오늘 토요일 밤에는
내가 지난 번 신주쿠 재즈 페스티벌 때 확 빠져들었던 타쿠 아저씨가 이끄는 캔사스 시티 밴드(Kansas City Band)의 새판 < 大人の事情>의 쇼케이스 공연이 있었다.

새로운 음악은 지난 번 것들보다는 어둡고 복잡했지만
어른의 사정이란 결국 그런 것일 테니까.
< 모이스처가 스루스루> 등 지난 번 노래들도 함께 불러줘서 2시간 동안 흠뻑 만끽했다.

화장실에도 빽빽하니 공연 스케줄

새파란 젊은 애들이 이런 곳에 빽빽하게 모여 음악을 즐긴다.

역시나 일본답게 혼자 온 사람들 많았고, 혼자 온 여자들도 많았다.
그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참 이상한 동네.
그 이상함은 금방 편안함으로 바뀌어 나는 이후로 내내 동경의 나홀로 모드를 그리워하게 된다.

내 옆에 앉은 언니는 혼자서 2시간 내내 뻑뻑 줄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마셔대며 밴드를 즐기시더라.
꽃미남이라고는 하나 밖에 없는 아저씨 밴드지만 그래도 all 남성 밴드라는 잇점 때문일까.

나이드니 본 것을 다시 보는 것이 그저 좋아지는 이 현상은 어쩌나 싶을 만큼
단 한 번의 인연에 이리 마음을 뺏기니 어쩌나 싶을 만큼
그저 좋기만 했던 시간.

그 다음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시부야의 밤과…술!
바야흐로 사케가 등장할 시간.

은장금 언냐의 일본 체험기가 왜 그리 생생히 떠오르던지
끌려가듯 전철 아래 일본말 잔뜩 써진 주점으로 당당히 걸어들어가는 나.

잠재의식이란 이리도
무섭다.

그 다음 찾아간 와라와라. 일본 대중적인 체인 술집이다.
오코노미야키와 감자 튀김, 볶음밥, 맥주…야밤에 참 배불리 자알도 먹었다.

술 먹었으면 노래를 불러야지.
분홍 종이꽃 찰랑찰랑 걸려 있는 시부야의 노래방을 구경시켜 줄께.
알로하~

일본 노래는 영어 캡션이 없고
에릭 클랩턴을 불러도 이런 그림이 나와 사람 황당하게 하더라.

Do I look all right? And I’ll say yes.

조금 취해서 시부야와 신주쿠의 골목들을 빙빙 싸돌아다니기도 했던
레온 보러 간다고 가부키초의 광고판들을 훑고 다니긴 했던
wonderful tonight.

깊어도 더 깊어도
시부야의 밤은 왜 이리 비슷한가.
청춘의 밤은.

쌩스, 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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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유진이의 다섯 번째 일본 여행기

[2007.4] 5th 일본 여행 (1) – 청춘의 밤 (day 1,2)
[2007.4] 5th 일본 여행 (2) – 록본기의 밤 (day 3)
[2007.4] 5th 일본 여행 (3) – 대정전의 밤 (day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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